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61화 (161/241)

161화. 첫 윔블던

윔블던 본선 1라운드.

나달, 페더러에 이어서 3번 시드를 받아낸 지혁은 막 경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상대 선수는 랭킹 95위의 프랑스 선수.

세계 최고의 실력자로 급부상한 랭킹 2위의 지혁을 상대하기엔 많이 부족한 선수였다.

관중석 앞 열에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런던으로 온 연예인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회 초반이라 경기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지혁이 그들의 모습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TV에서 나오는 유명인들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한국인들도 제법 있었고 말이다.

“은근히 동양인이 많네요. 런던이라서 대부분 백인들일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아마 대부분 이지혁 선수를 보러 온 거겠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과반수가 중국인들인 거 같은데?”

“중국에서 한국 못지않게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어. 큰 테니스 대회를 개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던데. 이름이 상하이 마스터즈였나?”

“와. 마스터즈라고요? 엄청 적극적이네요.”

“응? 그게 뭐길래 그러는 거야?”

“그랜드슬램을 제외하면 제일 높은 단계의 대회에요. 프로 대회는 대충 6단계로 나뉘는데 한국에서는 챌린저까지만 개최할 수 있거든요. 마스터즈가 5단계라면 챌린저가 2단계에요. 솔직히 이지혁 선수를 배출한 나라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지금까지 인기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면 조만간 많이 개선될 거야. 그것보다 지연이, 너 테니스에 대해 엄청 알고 있잖아? 꽤 의외의 모습이네.”

“제가 이지혁 선수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잖아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으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지연.

그녀는 비록 테니스 경기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기간은 짧았지만 지식만은 왠만한 골수팬 못지 않았다.

며칠 전에 지혁에게 말했던 것이 단순히 방송용 멘트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이다.

[레디.]

“이제 시작하나 봐요. 실제 경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어떨지 진짜 기대돼요.”

“나도. 연습하는 모습도 엄청났으니까.”

“쉬잇!”

“아! 죄송합니다.”

재잘거리던 연예인들은 옆자리의 관중이 조용하라는 재스처를 보내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경기장에 직접 오는 건 처음이라 사전에 들은 주의 사항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인 경기장.

프랑스 선수는 주위의 방해가 사라지자 그제야 서브 자세를 취했다.

관중석이 조용해질 때까지 시작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흐읍!”

쾅!! 탕!!

그렇게 서브가 반대편 코트로 날아가자 타격음이 곧바로 들렸다.

[러브 피프틴.]

시작부터 리턴 에이스가 나오자 프랑스 선수의 표정이 볼만하다.

설마 이렇게까지 실력 차이가 날 줄 몰랐겠지.

지혁과 경기를 해본 선수들이 괜히 그를 기피하는 게 아니다.

상대 선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급격히 분위기가 나빠졌다.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는 그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

1세트가 중반을 막 넘어갈 무렵, 한국 반응.

솔직히 경기의 승자는 뻔했지만 중계방송의 시청률은 제법 나왔다.

압도적으로 이기는 장면도 나름 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였다.

올해 윔블던에 출전한 한국 선수가 한 명 더 늘었지만 냉정하게 지혁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했다.

ㅡ 상대가 아예 안 되네 ㅋㅋㅋ 2시간도 안 걸리겠는데?

ㅡ 애초에 급이 다른데 당연하지. 95위 따리가 어딜 골든 보이랑 비비려고 함? 요즘 나달이랑 페더더랑 붙어도 이기는데 개처발리는 게 정상임. 6-0 베이글 안 당하는 거만으로도 감사해야지.

ㅡ 그런데 이지혁 시계는 왜 차고 있음? 원래 저거 없었잖아. 경기할 때 불편하지 않나.

ㅡ 새로 스폰서 계약했나 보네. 비싸 보이는데 브랜드는 모르겠다. 듣보잡 아님?

ㅡ 저거 리차드 밀이네. 대략 3~4억 정도 하는 거. 가장 싼 라인업도 1억이다.

ㅡ 지금 기사 떴는데 9억 2천만 원이라고 함 ㅋㅋㅋㅋㅋ 무슨 아파트를 손목에 차고 경기하네.

ㅡ 무슨 시계가 그렇게 비쌈? ㅅㅂ 저러다 깨지면 –9억이잖아?

ㅡ 올해 예상 수입 400억 이상이라던데 괜찮겠지. 그리고 협찬이라 돈 주고 사지도 않았을 걸.

ㅡ 이지혁이 그렇게 많이 번다고? 그럼 리차드 밀도 스폰서 비용 엄청 깨졌겠네.ㅡ 어차피 본전은 뽑고도 남음. 경기하는 동안 계속 홍보되잖아 윔블던 시청자가 몇 명인데  ㅋㅋ

ㅡ 그런데 이지혁은 이제 진짜 다른 세계 사람이 됐네. 2년 전만 해도 주니어 대회 나가던 고등학생이었는데······.

ㅡ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 ㅋㅋㅋ 이지혁은 스포츠 스타들 사이에서도 인지도 1~2위를 찍는 얘인데

ㅡ ㅇㅇ 한국에서 오히려 과소평가받고 있는 중이지. 미국이나 유럽에서 직접 이지혁 인기를 겪어보면 놀랄 사람들 정말 많음.

ㅡ 전부 너무 잘나서 그런 거지. 누가 한국에서 저런 역대급 천재가 나올 줄 알았겠냐고 ㅋㅋㅋㅋ

***

쿵!!

[세트 리.]

와아아아아!

지혁의 백핸드 위너가 코트를 빠른 속도로 꿰뚫어 버리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환상적인 컨트롤과 강력한 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이미 정점에 올랐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경기 내용이었다.

“와아! 진짜 대단했어요! 런던까지 온 보람이 있어요.”

“역시 영상으로 보는 거랑 실제 경기는 차이가 크네. 속도감이 장난이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이 왜 테니스를 보러 왔는지 알겠어. 솔직한 마음으로 이 정도 경기라면 매년 오고 싶어.”

지연과 남자 출연진들은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관전평을 내놓았다.

경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리! 리! 리! 리!

한동안 지혁을 응원하는 소리가 이어지자 지연은 신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성별, 나이, 인종을 가리지 않고 지혁의 성을 크게 외치는 게 엄청난 인기가 체감되어서였다.

“이지혁 선수의 인기가 어마어마해요.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네요. 제가 응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저기 사랑고백을 하는 여자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콘서트라고 생각하겠어.”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하네. 한국 못지않은 인기야.”

모든 관중들이 지혁을 응원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프랑스 선수는 큰 압박감을 받은 건지 움츠러든 반응을 보였다.

일방적인 상황에 마치 적지로 들어온 느낌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비교적 나이가 어린 선수라 더 그럴 것이다.

실력도 현격하게 차이나는 상황에서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나 뻔했다.

결국 지혁의 윔블던 1라운드는 3-0으로 종료되었다.

경기 시간이 100분이 약간 넘는 아주 짧은 경기였다.

프랑스 선수가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떠나자 지혁은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줬다.

평소에도 경기가 끝나고 10분 정도 사인을 해주었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필사적인 표정으로 손을 뻗는 팬들을 대부분 상대해주는데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

윔블던 본선이 시작하고 며칠.

연예인들과 촬영팀은 그동안 지혁이 얼마나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지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훈련장에서 외부인들과 접촉하지 않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밖으로 나오게 되니 팬들의 신드롬적인 반응을 생생하게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여자 팬들이 유달리 많은데 크게 놀랐다.

꺄아악!

리! 여기 좀 봐줘!

사랑해!

지혁이 연습 코트로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여자 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많이 어색했지만 이제 익숙해진 일이었다.

어느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지연은 어떻게든 스킨십을 하려고 드는 여자들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그녀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잠깐 잊은 것 같았다.

“저······. 지연아 표정 좀 펴.”

“그래. 눈빛이 너무 무섭다···. 어차피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 볼 사람도 아니잖아.”

남자 출연진들은 차마 네가 여자 친구도 아닌데 오버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연의 살벌한 도끼눈이 그만큼 무서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남자라 미녀들에게 열렬한 관심을 받는 지혁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기엔 정말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그냥 팬들일뿐인 걸요.”

“맞아맞아. 우린 촬영이나 집중하자.”

팬들로 잠시 멈춰있던 걸음은 코치들의 도움으로 금세 뚫렸다.

훈련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여기서 시간을 무한정 낭비할 수는 없었다.

연습 코트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도착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혁은 익숙한 얼굴의 사람을 보고 곧바로 클레이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니시코리가 있어요! 같이 훈련할 사람이 저 선수였나 봐요.”

“니시코리? 그게 누군데?”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스포츠 스타인데 몰라요? 수입이랑 인지도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걸로 알아요.”

“사실 일본 선수들한테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지?”

“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테니스 선수니까요.”

니시코리 케이를 발견하자 언제 기분이 좋지 않았냐는 듯이 밝은 미소를 짓는 지연.

비록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와 비교하면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는 선수였지만 테니스 팬에게는 니시코리도 꽤나 인지도가 높았다.

“지혁, 저 사람들은 누구야?”

니시코리는 지혁이 처음 보는 일행들을 대동하자 궁금한 표정이었다.

하긴 코치나 트레이너라고 하기엔 겉모습이 너무 어설펐다.

지연의 외모도 일반인치고 너무 예뻤고 말이다.

“한국에서 방송을 찍으러 온 분들이에요.”

“아···. 그랬구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그런데 저 여자분은?”

슬쩍 눈짓을 하며 큰 관심을 보이는 행동에 지혁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니시코리의 여자 친구, 유즈키가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 건지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유명한 아이돌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뭐가?”

“···저기 뒤를 한 번 보세요.”

“앗!”

유즈키와 눈이 마주치자 뜨거운 불에 댄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니시코리.

지연에게 품은 그의 흑심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바···바로 시작하자. 서로 피차일반으로 바쁘잖아.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지.”

니시코리는 허둥지둥 베이스라인으로 뛰어갔다.

괜히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훈련에 집중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두 선수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자 구경하러 온 팬들이 한 명, 한 명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이미 사전에 지혁의 훈련 스케줄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 숫자는 적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코트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네임드 선수들이 만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