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63화 (163/241)

163화. 첫 윔블던

지혁은 조코비치의 압박에 스트로크의 속도를 서서히 올리고 있었다.

비록 모든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팬들이 보기에는 가벼운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어지간한 탑랭커들의 경기보다 훨씬 내용이 알찼기 때문이다.

탕!!

와아아아!

조코비치가 완벽한 백핸드로 반격하는 모습을 보이자 관중석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코트 커버력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와···. 결승전을 미리 보는 기분이네. 진짜 장난이 아닌데.”

“나도 웬만한 그랜드슬램 매치보다 더 나은 것 같아. 그런데 조코비치가 미세하게 더 유리한 느낌이지?”

“어차피 진짜 실력도 아닐 테니까 지금 상황에 크게 의미를 두지 마. 호주 오픈에서도 정작 우승은 골든 보이가 차지했잖아.”

그들은 승부를 결정할 비장의 수가 이번 연습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혁과 조코비치의 대결은 윔블던 결승전의 전초전이 될 확률이 높은 터라 좀처럼 시선을 때기 힘들었다.

그렇게 경기를 시작하고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중간중간에 있던 휴식까지 고려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라켓을 내려놓고 악수를 나누는 지혁과 조코비치.

그 모습에 아쉬운 목소리가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나이에 그 정도 성적이면 충분히 자만할 법도 한데 말이야.”

“조코비치도 마찬가지인 걸요. 벌써부터 안심하기엔 경쟁자들이 너무 막강하잖아요.”

“후···. 마음 같아서는 더 붙잡고 싶지만 너도 16강이 있으니까 아쉽지만 놓아줄게.”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코치들의 재촉에 작별 인사를 했다.

솔직히 대등한 실력자를 만난 선수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기서 언제까지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벅저벅.

잠시 후 지혁과 니시코리가 같이 연습 코트를 떠나자 관중석은 순식간에 비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탑랭커의 훈련이 시작하지만 이미 빅4의 대결을 경험한 팬들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윔블던 8강 당일.

지혁은 모두가 예상했듯이 간단하게 16강을 통과했다.

애초에 상대가 네임드 선수가 아니라서 패배할 확률이 5% 미만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오히려 패배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빅4들이 남았구나···.”

현재 프로 선수들의 실력이 얼마나 비대칭적인지 알 수 있는 관경이었다.

대진표에 적혀있는 랭킹 1, 2, 3, 4위의 이름들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라인업이었다.

당사자인 빅4를 제외하면 도대체 누가 이 무시무시한 경쟁을 뚫고 우승할 수 있을까.

짝짝짝짝짝.

지혁이 복잡한 상념을 이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경기장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드디어 상대 선수가 도착한 것 같았다.

입구로 고개를 돌리자 ATP랭킹 7위의 다비드 페러가 코트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 서는 두 선수.

그러자 관중석이 급격하게 술렁였다.

“175cm라고 하더니 페러가 진짜 작네. 골든 보이 옆에 서니까 무슨 주니어 선수처럼 보여, 경기에서 제대로 된 상대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 네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거야. 저 불리한 피지컬로 무려 랭킹 7위를 찍은 선수야. 본인 만의 특별한 강점이 있다는 거지.”

“음···. 그래도 빅 서버나 공격형 선수는 아닐 것 같네. 고속 서브를 칠 수 있는 몸이 아니야.”

“물론 페러는 단신의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수비적인 플레이를 선호해.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게 현재 테니스계의 주류는 베이스라이너야.”

“그렇긴 하지···.”

친구의 설득을 듣고 금방 넘어가는 남자.

그들의 말처럼 현재 지혁과 페더러를 제외한 최상위권 선수들은 대부분 베이스라이너였다.

수치로 따지면 무려 80%가 넘는 비율이었다.

현대 테니스에서 가장 무난하고 승률이 높은 플레이 스타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베이스라이너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풋워크가 엄청 빠를 것 같긴 해. 그럼 페러가 골든 보이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할 수도 있겠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빅4라도 모든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야. 승률이 아무리 높아 봐야 90% 근처니까. 요즘 페러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어.”

“하긴 랭킹 7위나 되는 선수가 만만할 리 없지.”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랭킹 2위와 7위가 정면으로 부딪치는데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는 게 이상했다.

그렇게 8강전은 사람들의 기대가 담긴 시선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먼저 서비스게임을 가져간 선수는 지혁이었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쾅!!

번개처럼 내려 꽂히는 서브를 능숙하게 걷어내는 페러.

지혁은 상대의 빠른 풋워크로 에이스가 실패하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랭킹 50위 중반일 때 페러와 경기를 한 경험이 있어서 이렇게 될 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분명 수비가 엄청 단단했었지. 경기 결과도 빈틈을 찾지 못해서 일방적으로 패배했었고.’

그 기억 때문에 니시코리까지 불러서 사전 준비를 단단히 했다.

괜히 상대를 얕잡아 보다가 생각하지도 않은 일격을 맞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탕!! 탕!! 탕!!

지혁이 각오를 다지며 경기에 임하고 30분.

1세트의 전체적인 흐름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게임 리. 5-2.]

나쁜 쪽이 아니라 너무 좋은 쪽으로 말이다.

‘······너무 쉽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탐색전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다비드 페러가 인간계 수문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선수인 만큼 고생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 실력이 시원찮다.

분명 스트로크와 풋워크가 수준급이지만 중요한 부분이 어딘가 하나 빠져있는 느낌이다.

‘비슷한 랭킹의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분명 잘하긴 하는데.’

빅4를 상대로 승부를 결정지을 특별한 장점이 거의 없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송가, 칠리치, 델 포트로와 비슷한 실력의 선수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리가 없어.’

지혁은 과거에 페러에게 느꼈던 압도적인 실력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우세한 상황에서도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전략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처럼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기의 진행도는 아직 20%도 지나지 않았으니 마음을 놓긴 너무 빨랐다.

***

[세트 리.]

우와아아아!!

페러가 몇 발자국 떨어진 백핸드에 반응하지 못하고 실점하자 경기장을 뒤흔드는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지혁이 1세트에 이어 2세트까지 압도적인 승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지경까지 상황이 만들어지자 지혁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자신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다비드 페러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빅4 상대 전적이 처참하더니···. 전부 이유가 있었구나.’

다른 상위 랭커들이 10~20%의 승률을 유지하고 있을 때 페러 혼자 5% 미만이었던 이유가 있었다.

상대는 한계가 정말 뚜렷한 선수였다.

‘아마 부족한 피지컬 탓이 크겠지.’

애초에 테니스 선수들 중에 가장 작은 단신으로 랭킹 7위까지 올라간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최전성기 때 ATP 3위를 잠깐 찍지만 그 시절에도 빅3와 붙은 경기는 거의 전패를 했지 않은가.

‘앞으로 페러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지혁은 페러에 대한 경계심을 크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플레이도 더욱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오래 지속할 이유는 없었다.

순식간에 몰아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게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좋았다.

[게임 리 1-0.]

[게임 리 2-1.]

[게임 리 3-1.]

엄청난 속도로 3세트의 스코어를 쌓아가는 지혁.

관중들은 인간계 최강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에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다.

“페러가 3-0으로 진다고? 아무리 골든 보이가 대단하다고 해도 이게 말이 돼?”

“네가 치열한 경기가 될 거라고 장담했는데 싱겁잖아.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저렇게 작은 선수가 빅4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저 열악한 피지컬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건 불가능해.”

“······.”

경기 초반만 하더라도 페러의 승리를 장담하던 남자는 친구의 질책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경기 상황이 지혁에게 압도적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전할 가능성은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0%다.

“그나저나 이제 골든 보이는 다른 선수들이랑 격이 다르구나. 랭킹 7위를 저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말이야. 다른 천재들처럼 반짝하고 사라질 선수가 절대 아니야.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최소 10년은 테니스계를 지배하겠어.”

“······아무래도 페더러보다 더 지독한 독재자가 나온 것 같네. 같은 시대에 프로 활동을 하게 될 주니어 선수들이 불쌍하네. 저 괴물을 누가 이길 수 있겠어.”

“그건 그들이 걱정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새로 데뷔하는 선수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을 거야.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 리가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빅4에 대항할 수 있는 천재들이 무조건 나타날 거야. 이미 4명이나 있는데 몇 명 더 늘어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글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진 않을 걸. 올드 팬들은 지금 같은 황금기가 다시 올 수 있을지 회의적이거든.”

얼마든지 지혁과 나머지 빅4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과 다르게 앞으로 10년 동안 그랜드슬램 우승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30대 중후반, 심지어 40대가 되어서도 신예들이 빅4를 제압하지 못한 것이다.

이걸 보면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얼마나 대단한 괴물들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결국 지혁은 다비드 페러를 간단하게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랜드슬램이라는 무대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허무한 결과였다.

페러의 나이가 지혁보다 11살이나 더 많으니 다음 대회에서 재회하더라도 경기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

베테랑인 페러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아무래도 본인이 은퇴할 때까지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기 힘들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모양이다.

“골든 보이가 준결승에 올라갔는데 다음 상대는 누구야?”

“아직 다른 8강 경기가 시작하지 않아서 확정되지 않았어. 송가랑 페더러 중에 이기는 선수가 리와 붙게 될 거야.”

“그럼 이번 대회는 윔블던이니 페더러가 되겠네. 송가도 잘하지만 잔디 코트는 페더러의 무대이니까.”

“아마 큰 변수가 없다면 그렇게 되겠지.”

“리가 과연 잔디에서 빅4를 상대로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걸.”

“다른 빅 서버들의 경기처럼 서브에 집중하느라 재미없을 수도 있어.”

“그나저나 페더러는 드디어 복수전을 할 수 있겠네. 클레이에서 고생했던 걸 전부 갚아줄 수 있겠어.”

“오히려 주무대에서 패배할 수도 있지. 그럼 체면을 많이 구길 거야. 따로 변명을 할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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