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첫 윔블던
[ATP랭킹 2위의 이지혁, 첫 윔블던 참가에서 결승 진출의 쾌거를 올리다.]
[과연 사상 최초로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나올 수 있을까?]
[결승전 상대는 노박 조코비치, 무결점의 선수가 나달을 다시 한번 무너트리다.]
[빠른 속도로 교체되는 테니스계 드디어 페더러의 집권기가 끝나는가?]
[결국 코트의 무아마드 알리, 송가도 이지혁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테니스 전문가들은 윔블던 승률을 5:5로 보고 있어.]
[환경적인 요인은 이지혁의 손을 들어주지만 아직 실력은 조코비치가 낫다는 의견이 우세해.]
[KBC 다큐멘터리가 이지혁 선수의 윔블던 과정을 촬영한 걸로 알려져서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과연 세계적인 탑랭커는 어떤 일상을 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혁은 결국 송가를 꺾고 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다.
호주 오픈부터 시작된 행보가 윔블던까지 이어지자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작년 롤랑까지 합하면 무려 4회 연속이었다.
많은 국내 팬들이 놀랄만한 성과였지만 이때까지 없던 일은 아니었다.
나달과 페더러의 집권기에는 이런 상황이 밥 먹듯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혁이 두 선수와 대등한 위치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었지만 말이다.
ㅡ 이지혁 윔블던 결승 진출 확정!!! 페더러 이기고 올라온 송가 3-0으로 이김 ㅋㅋㅋㅋㅋ
ㅡ 그럼 조코비치하고 리매치하는 거네?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든다 ;; 요즘 조코비치 성적보면 엄청 살벌하잖아.
ㅡ ㅇㅈ 오히려 나달보다 더 어려운 상대일 걸? 그러니까 나달 대신 올라왔겠지.
ㅡ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음. 몇 달 전에는 하드 코트여서 더 불리했는데 이겼잖아. 잔디에서 붙으면 무조건 서브 느린 사람이 불리하게 되어 있음.
ㅡ 조코비치 서브가 대충 190km 부근이었나? 확실히 빠른 속도는 아니긴 하네. 이지혁하고 거의 40km 차이나네 ㄷㄷ
ㅡ 다큐멘터리는 뭐임?? 처음 듣는 건데 대체 어떻게 섭외한 거냐?? 이지혁 몸값 생각하면 공중파에서 출연료 맞춰주는 거 절대 불가능할 텐데
ㅡ 아마 팬 서비스 차원이겠지. 저번 비시즌기랑 휴식기에도 가끔 예능 나왔잖아. 돈 생각하면 영양가 없는데 한국 팬들 배려 차원에서 나오는 거임.
ㅡ 역시 지혁신 실력도 대단한데 인성까지 완벽함 ㄷㄷㄷㄷ
ㅡ 최대한 빨리 방영했으면 좋겠다. KBC 어서 일해라 ㅡㅡ 지금처럼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지 시간 지나고 화제성 떨어지면 시청률 떡락한다?
ㅡ 만약 이번 주 내에 방송하면 무조건 20% 이상 나올 듯.
ㅡ ㄴㄴ 이지혁 인기 생각하면 30%는 넘지.
ㅡ 윔블던 참가할 때부터 찍었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장편이겠고. 이번에 KBC 시청률 초대박이겠네 ㅋㅋㅋㅋ 다른 공중파 방송국들 배 많이 아프겠다 ㅋㅋㅋ
“와···. PD님, 기사 몇 개 올라간 것 치고 반응이 장난 아닌데요? 역시 이지혁 선수의 파급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니까 당연하지. 이제 어지간한 연예인들이랑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야. 몸값이 천문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괜히 기업들이 자기 돈 좀 가져다 달라고 하겠냐?”
“나이로 따지면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인데 저희랑 사는 세상이 완전 다르네요···. 미성년자일 때도 이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무서울 지경이에요.”
“아마 이대로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 전대미문의 스타가 되겠지. 지금도 한국에서 있을 만한 사이즈는 아니지만 말이야. 이번에 섭외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천운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지 못했을 걸.”
“그런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지혁 선수를 저희 방송에 섭외하신 거예요? 우리 스태프들이랑 다른 방송국에 있는 지인들이 엄청 궁금해하더라고요.”
“별거 없어. 운이야.”
“네?”
“운이라고. 그냥 던져본 제안이 승낙된 거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로또라도 살까.”
“······그러시는 게 좋겠네요. 복권에 맞을 확률에 당첨됐으니까요.”
스태프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PD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특별한 수완을 발휘한 줄 알았는데 그저 운이라니 머릿속에 있던 존경심이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이틀이 지나고 윔블던 결승.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페더러 대신 네가 올라왔구나. 물론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야.”
조코비치는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지혁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얼마 전 연습 코트에서 만났을 때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니 결승 상대가 지혁이 될 줄 본능적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페더러를 탈락시키지 않고 송가가 그 역할을 대신해줬지만 결과가 비슷하니 큰 상관은 없었다.
송가에게 패배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 어차피 결과는 똑같았을 테니 말이다.
“요즘 활약이 대단하던데요? 나달을 두 번 연속으로 이기는 건 운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랜드슬램 3연패를 달리고 있는 너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번 윔블던까지 합치면 4연패지? 미안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야. 내가 경기 상대가 됐으니까.”
자신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호언장담하는 조코비치.
지혁은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행동했지만 적지 않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냉정하게 실력적으로 밀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경기도 운이 많이 따라줘서 이길 수 있었지 지혁의 기량은 아직 같은 빅4들에게 완벽한 우세를 점할 수준이 아니었다.
코치들과 내부적으로 분석했을 때조차도 6:4의 승률이 나왔으니 말이다.
“글쎄요. 저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못 찾겠던데요? 호주 오픈과 달라질 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훗. 그건 경기가 시작하면 알게 되겠지.”
윔블던 우승을 앞두고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이는 두 선수.
신사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런 중요한 순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긴 힘들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다 보니 선수의 입장에서 필승의 의지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레디.]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윔블던 결승전이 시작했다.
경기의 중요도가 높아서인지 15,000석에 달하는 스타디움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앞 열에 위치한 특별석과 로얄석의 유명 인사들만 보더라도 이번 대회가 얼마나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탕!!
경기는 조코비치의 서비스게임으로 시작했다.
탑랭커치고 느릿한 서브가 서비스코트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속도보다 바운드 위치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무래도 에이스로 승부를 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탕!!
바닥을 때리고 빠르게 튀어 오르는 서브를 안정적인 자세로 리턴을 받아치는 지혁.
워낙 빅 서버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솔직히 이 정도 속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본이 220km 빠르면 240km가 넘는 공을 일상처럼 받다 보면 감각이 저절로 거기에 맞춰진다.
“흐읍!”
탕!!
조코비치는 이미 지혁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탐색전을 거치지 않고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강력한 스트로크가 폭우처럼 쏟아지자 기세는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역시 탑랭커들 중에 최강의 랠리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다웠다.
[서티 러브.]
‘후···. 나달이 연속으로 패배한 이유가 있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완성형 베이스라이너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공략할 만한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충격적이다.
약점이 없는 선수라니···. 이러면 순수한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밖에 없다.
조코비치를 상대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임 조코비치 1-0.]
지혁은 이미 기울어버린 1게임을 미련을 갖지 않고 내주었다.
어차피 승리에 필요한 건 한 게임이면 충분하다.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았으니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하앗!”
쾅!!
잔상이 남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플랫 서브를 라인 위에 내려꽂는 지혁.
윔블던에서 수도 없이 에이스를 만들어낸 서브였지만 조코비치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야. 빠른 공에 약했다면 지금 랭킹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100명이 넘는 탑랭커들 중에는 지혁보다 더 빠르고 위력적인 서브를 칠 수 있는 피지컬 괴물들이 몇 명이나 존재했다.
그런 선수들도 랭킹 5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으니 빅4의 리턴을 공략하는 건 솔직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서티 올.]
하아···.
조코비치의 위닝샷으로 길었던 랠리가 잠시 멈추자 관중석에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현재 스코어는 동점, 지혁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더 유리한 상황인 서비스게임조차 이러면 경기를 이기는 게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후···. 연습 경기도 엄청났는데 실전은 더 대단하잖아?”
“말도 안 돼. 그게 적당히 한 거였다고? 저 두 사람은 정말 인간이 맞는 거야?”
“정말 나달과 페더러의 시대가 저무는 건가. 적어도 5년은 지금 구도가 유지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난 4파전이 될 거 같아. 그들이 쉽게 무너질 선수들이 아니잖아.”
“나달은 아직 나이가 젊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골든 보이가 조금 불리한 느낌이지?”
“어. 확실히 그렇네. 조코비치의 실력이 예상 범위를 훨씬 뛰어넘었어.”
“그럼 경기 결과는······.”
조심스럽게 지혁의 패배를 점치는 관중들.
아직 경기 초반이었지만 누가 더 우세한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임 조코비치 4-2.]
대부분의 관중들이 예상했듯이 결국 서비스게임을 먼저 브레이크하는 건 조코비치였다.
관중석은 1세트의 승부가 너무 빠르게 기울어버리자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리의 플레이가 많이 아쉽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가?”
“아니, 경기력 자체는 평소보다 괜찮아. 단지 조코비치가 너무 잘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야. 작년이랑 비교가 되지 않는 실력이야.”
“고작 1년 사이에 그렇게까지 성장했다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실력으로 직접 증명하고 있잖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포텐이 폭발했어.”
“허···. 랭킹 3위였던 선수가 아직 남은 잠재력이 있었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선수네.”
“나달에 이어서 리까지 패배하게 되면 앞으로 조코비치를 상대할 수 있는 탑랭커가 있나?”
“···없지.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하면 페더러도 힘들어.’
그들의 말처럼 조코비치는 최근 전문가들에게 나달의 상위 호환 격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랜드슬램 우승 경력이 지혁보다 부족함에도 더 높은 승률을 준 건 전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테니스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조코비치가 맞았다.
[세트 조코비치.]
“······이러다가 정말 지는 거 아니야?“”당연히 뭐라도 보여주겠지. 골든보이가 허무하게 무너질 선수는 절대 아니잖아.”
“그랬으면 좋겠네. 이대로 패배하게 되면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
남자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기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