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66화 (166/241)

166화. 첫 윔블던

지혁이 1세트를 먼저 내주자 윔블던을 중계하던 BBC 해설자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조코비치의 최근 기량을 생각하면 윔블던에서 우승을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3. 조코비치의 백핸드가 유독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위닝샷 역할을 제대로 해줬어요. 완벽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아···. 오늘 경기는 골든 보이가 많이 힘들겠는데요. 아마 복잡한 심경일 겁니다. 수비가 너무 단단해요. 과연 저 코트 커버력을 뚫을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요?]

경기 내용을 평가하며 조심스럽게 지혁의 열세를 언급하는 해설자들.

조금 이르긴 했지만 방금 전 1세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생각이었다.

조코비치는 그만큼 무결점에 걸맞는 경기력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일단 랠리는 명백하게 조코비치 쪽이 우세하네요. 두려울 정도의 안정성이에요. 이건 단순히 베이스라이너와 올라운더의 차이가 아니에요.]

[···설마 실력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하시는 겁니까?]

[네. 저도 믿기지 않지만 조코비치의 실력이 골든 보이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리에게 더 유리한 윔블던 잔디 코트에서 말이에요. 아쉽지만 그의 연승 행진은 여기서 멈출 것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지혁의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를 평가절하하는 해설들의 말을 듣고 곧바로 반발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최연소 그랜드슬램 우승에 이어서 롤랑 가로스까지 3연패를 달성한 전대미문의 천재는 이렇게 무시받을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페더러처럼 압도적인 행보를 보여줄 레전드 선수였던 것이다.

ㅡ 지금 BBC 해설들 너무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고작 1세트 끝난 걸 가지고 왜 저러는 거야? 아직 경기는 한참이나 남았다고.

ㅡ 맞아. 올해 그랜드슬램에서도 역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데. 벌써 결론을 내리기는 너무 이르지.

ㅡ 혹시 골든 보이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러는 건가?

ㅡ 그럴 수도 있겠네. 저들이 역겨운 인종차별 주의자라서 저런 형편없는 해설을 하는 게 분명해.

ㅡ 그게 사실이면 정말 최악이네.

지혁의 인기는 이미 세계적이었기에 팬들의 반발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에서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며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걸 못마땅해하는 안티들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때까지 흠잡을 기회만 노리던 사람들은 지혁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빠른 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혁이 고작 17살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로 부와 명성을 전부 거머쥔 것에 악의를 품은 사람들이었다.

마침 본인들이 응원하는 선수들을 탈락시킨 것도 못마땅했고 말이다.

ㅡ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공정한 해설인데 말이야. 리가 드디어 바닥을 드러낸 거지. 슬슬 공략법이 나올 시기가 되었잖아.

ㅡ 나도 그 말에 100% 동의해. 데뷔 초반이라서 실력에 비해 너무 좋은 성적을 얻은 거지. 마이클 창도 첫 번째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고 평범한 선수로 떨어졌잖아. 이건 프로 세계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상황이야.

ㅡ 이제 실력에 어울리는 랭킹으로 내려가야지 대충 9~10위 정도가 맞는 것 같네. 17살에 이 정도면 엄청 잘 쳐준 거야. 페더러하고 나달도 못한 일이니까.

ㅡ 리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앞으로 최소 3, 4년은 더 지나야 다시 그랜드슬램 우승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같네.

ㅡ 그러면 다음 황제는 조코비치가 되는 건가? 지금 실력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ㅡ 탑랭커들 중에 유일하게 나달을 이길 수 있으니까 아마 그렇겠지. 세르비아 선수가 황제가 되는 상황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시아 선수가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

커뮤니티에서 지혁의 팬들과 안티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선수들은 막 2세트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자 댓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혁이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윔블던 결승전은 무조건 봐야 했다.

[서브 리.]

가방에서 새로운 라켓을 꺼내 든 지혁.

그 모습에 관중석 앞 열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든 기술을 사용한다는 기대감에 팬들의 눈은 기대로 가득 찼다.

쾅!!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146MPH]

우와아아아!!

지혁이 에이스를 성공시키고 전광판에 236km이라는 엄청난 속도가 찍히자 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역전을 떠올렸다.

“······.”

조코비치는 갑자기 빨라진 구속에 적응이 안 되는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저벅저벅.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다음 서브 위치로 이동하는 지혁.

곧바로 공을 꺼내 바닥에 튕기는 모습에 시끄럽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쾅!!

에이스는 두 번 연속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똑같은 수법으로 당하기에는 선수들의 수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리턴이 크게 불안해진 건 분명했다.

시작부터 밀리기 시작하면 랠리에서 주도권을 찾아오는 건 정말 어려웠다.

[게임 리 1-0.]

살벌한 속도로 오른쪽 사이드라인을 때리는 포핸드 다운 더 라인.

조코비치의 스트로크보다 더 강력해 보이는 그 위닝샷에 중계를 하던 해설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골든 보이가 라켓을 바꿔 들고 믿기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의 분위기가 뒤집히고 있어요. 고속 서브와 초강력 스트로크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입니다.]

[확실히 천재적인 재능이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저건 다른 선수들이 따라 할 수 없는 테크닉이에요. 그가 어째서 역대 최고의 천재라고 평가받는지 납득이 가는 실력이었어요.]

[그래도 저 방법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한계가 너무 뚜렷해요. 조코비치가 익숙해지면 오히려 본래 사용하던 라켓보다 더 불리할 게 분명해요. 무엇보다 상대 선수가 그 조코비치입니다.]

아직 지혁의 승리를 장담하긴 이르다고 말하는 해설.

가혹한 평가에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시청자들의 불평이 쏟아졌지만 경기는 정말 그의 말대로 진행되었다.

[게임 조코비치 2-2.]

조코비치가 완벽하게 적응하는데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미 한 번 겪었던 상황이라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프틴 포티.]

그렇게 지혁은 거짓말처럼 다시 브레이크를 당할 위기에 다시 처하게 되었다.

여기서 먼저 스코어에 뒤처지면 사단이 날 수도 있었다.

세트 스코어 1-0과 2-0은 정말 천지차이였으니 말이다.

조코비치의 압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숨겨놓은 밑천을 꺼내 드는 지혁.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띄울 비장의 수단이지만 일단 급한 상황부터 막아야 한다.

탕!!

숨 쉴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조코비치의 위력적인 스트로크.

그러다가 코트 위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장면이 나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서티 포티.]

······.

지혁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스트로크를 몇 템포 빠르게 백핸드로 당겨 치며 믿기지 않는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동물 같은 감각이었다.

원래 단순히 위력적인 샷보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샷이 더 받기 힘든 법이다.

그러니 수비 범위 안에 떨어진 백핸드를 조코비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점수를 내준 것이다.

[허···. 저기에서 저런 샷이 나온다고요?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신기하네요.]

[아마 사전에 계획한 빌드업이 아닐 겁니다. 반사적으로 나온 게 분명해요.]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닌가요···? 재능만으로 저게 가능한 선수가 존재하긴 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탑랭커들에게 더 절망적으로 들릴 겁니다. 이번 생에 골든 보이를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어쩔 수 없죠. 테니스는 원래 그런 종목이니까요.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니라면 탑10에도 들어갈 수 없어요.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해설들의 낯 뜨거운 극찬이 한동안 쏟아지고 난 후, 지혁은 마치 그것에 보답하듯이 자신의 장기인 슈퍼 플레이로 게임을 뒤집었다.

[게임 리 3-2.]

지혁이 단 한 포인트도 주지 않고 4연속으로 득점하는 모습은 수많은 관중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한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촬영팀도 방송을 전부 잊은 채 흥분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휴······. 이대로만 하면 이지혁 선수가 이길 수 있겠어요. 1세트가 끝나고 많이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이때까지 봤던 경기들 중에 최고야. 한국에서 이런 선수가 나왔다니···.”

“조코비치가 상대라서 그런가 느낌이 차원이 다른데? 이게 이지혁 선수의 진짜 실력인가.”

“설마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힘을 아끼고 있었다고? 그랜드슬램에서 그게 가능해?”

“그게 아니라면 지금 경기가 말이 안 되잖아. 분명히 내 생각이 맞을 거야.”

***

관중석이 지혁의 활약으로 인해 술렁이고 있을 때.

조코비치는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한 표정으로 다음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슬슬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혁은 지금처럼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쳐야 방금 같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면 랭킹 1위를 어렵지 않게 찍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브레이크를 내준 것도 아니니 경기는 아직 나한테 유리해.’

경기에서 지혁의 슈퍼 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으니 방심만 하지 않으면 결승전에서 승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갑자기 많이 지쳐 보이네. 장기전을 가는 것도 괜찮겠어.’

작년이라면 모르겠지만 올해라면 5세트까지 가더라도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

지혁도 그걸 알고 있는지 실력으로 위기 상황을 막아 낸 것치고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계획했던 대로 수비에 더 큰 비중을 두자. 슈퍼 플레이만 완벽하게 막아내면 신경 쓸만한 변수는 없어.’

수비에만 집중하면 어떤 스트로크가 날아와도 걷어낼 자신이 있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조코비치.]

체어 엠파이어의 목소리가 들리자 벤치에서 일어나는 선수들.

곧이어 조코비치의 플랫 서브로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탕!! 탕!! 탕!!

예상대로 공격적인 포지션을 잡은 건 지혁이었다.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뜻이라서 팬들은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공격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수비적인 플레이를 하는 조코비치의 선택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그것도 모르고 기세가 뒤집혔다고 판단하고 연신 지혁의 이름과 별명을 외쳤다.

정작 늪으로 가라앉고 있는 건 본인들이 응원하는 선수였는데 말이다.

이건 나달이나 조코비치가 그토록 좋아하는 전형적인 베이스라이너의 승리 플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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