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67화 (167/241)

167화. 첫 윔블던

[세트 리.]

지혁은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며 조코비치에게 2세트를 가져왔다.

물론 그 과정이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이전 세트보다 훨씬 강도 높은 경기가 펼쳐졌던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거친 호흡을 내쉬는 선수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전성기의 조코비치랑 붙는 느낌인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이 정도 실력이면 다른 빅4들 보다 명백히 한 수 위다.

지혁 말고도 경기를 보고 있던 프로들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메이저 대회의 구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걱정인 모양이다.

“골든보이도 대단하지만 나는 조코비치의 경기력이 더 인상적이네. 작년과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서 돌아왔어.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플레이야.”

“그래. 비록 2세트는 아깝게 내줬지만 남은 경기에서 얼마든지 갚아줄 수 있을 것 같네.”

“나는 조코비치가 패배할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나만 그런 건가?”“···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긴 해.”

현역 프로들은 뛰어난 감각 덕분인지 본능적으로 조코비치의 우세를 점쳤다.

아마 약점이 없는 무결점의 플레이를 본 영향일 것이다.

지혁 대신 저 자리에 있었더라도 이길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웅성웅성.

관중석에서 다양한 언어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질 때.

지연과 나머지 촬영팀은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사람들이 이지혁 선수가 불리하다고 말하는 거 맞지? 동점인데 왜 저러는 걸까···.”

“경기 내용 때문이겠죠. 숨겨놓은 기술들을 대부분 사용했는데도 전혀 압도하지 못했으니까요.”

“하긴 승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긴 했어. 그럼 윔블던 우승은 어떻게 되는 거야?”

“······.”

그나마 테니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꾸물거리자 촬영팀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방송의 화제성을 생각하면 우승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3세트가 시작되었다.

촬영팀의 눈에는 경기 시작과 달리 이미 기대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조코비치.]

탕!!

지혁은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기에 전력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한동안 화려한 플레이가 이어졌지만 조코비치는 이제 익숙해졌는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묵묵히 스트로크를 받아냈다.

어떤 샷을 치더라도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벽을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게임 조코비치 3-1.]

와아아아!

아······.

결국 지혁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허용하자 경기장은 탄식과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팽팽하게 유지되던 경기의 균형이 무너졌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는 역시 조코비치였던 것이다.

[게임 조코비치 4-1.]

[게임 조코비치 5-2.]

[게임 리 5-3.]

[세트 조코비치.]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가 한 번 무너지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경기가 기울어져버렸다.

만약 간발의 차이로 3세트를 내줬다면 그나마 역전할 수 있는 희망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결국 3세트가 6-3으로 조코비치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베이스라이너의 정수가 무엇인지 보여준 경기였어요.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누가 저 선수를 이길 수 있을까요.]

[그랜드슬램을 3연패 중인 골든 보이가 이렇게까지 당하는 걸 보니 다른 프로들이 상대라도 결과는 비슷할 겁니다. 테니스계에서 새로운 절대자가 나타났어요.]

마지막까지 지혁의 편을 들어주던 해설이 조코비치의 손을 들어주자 희망을 부여잡고 있던 시청자들도 하나, 둘 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인지 초반만 해도 괜찮았던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과반수였던 지혁의 팬들이 전부 모습을 감추고 안티의 비율이 급격하게 치솟은 것이다.

ㅡ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골든 보이는 무슨 이제 추락할 일만 남았다.

ㅡ 솔직히 최근에 저 녀석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네.

ㅡ 잔뜩 낀 거품도 이제 걷어진 거지. 탑랭커들 사이에서 활약하던 것도 이제 끝임.

ㅡ 오늘 경기하는 거 보니까 앞으로 페더러랑 나달한테도 못 이길 것 같은데? 랭킹만 따져봐도 그렇잖아.

ㅡ 빨리 ATP랭킹 2위 자리나 반납했으면 좋겠네. 2위는 저 녀석에게 어울리지 않는 랭킹이야.

ㅡ 와우. 악질들 이때다 싶어서 나오는구나. 이러다가 역전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냐? 아이디 전부 박제되는 중인 거 알지?

ㅡ 어차피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없어. 너도 눈이 있다면 이 상황에서 조코비치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걸?

ㅡ 젠장···. 반박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 할 말이 없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지혁의 패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지혁은 아직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게임 조코비치 3-2.]

4세트에서도 먼저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조코비치.

휴식 시간을 맞아 벤치로 들어가는 그의 표정은 경기 상황에 어울리게 여유로웠다.

결승전이 후반부에 접어들자 지혁의 플레이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양이다.

분명히 더 이상 변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솔직히 선수들의 실력을 냉정하게 분석했을 때 그리 틀린 판단도 아니었다.

지혁은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건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볼 키즈가 가장 앞 열의 관중들이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지만 거기에 신경을 분산할 여력은 없었다.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렸던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5,312,321포인트.]

‘500만 포인트···. 드디어 다 모았구나. 이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랜드슬램 3연속 우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1년은 더 걸렸을 테니 말이다.

‘과연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포인트가 투자된 만큼 분명 작은 변화는 아닐 것이다.

지혁은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급하게 어플을 사용했다.

90초 후에 경기가 다시 시작하니 감상에 빠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음···.”

[포핸드가 S등급으로 상승하셨습니다.]

[이지혁]

근력: 80 민첩: 80 체력: 80 신장: 188cm▲

서브(A+), 포핸드(S), 백핸드(A+), 풋워크(A+), 외모(A), 트릭샷(A), 찰나(A)

[포인트: 0]

엄청난 정보량이 머릿속으로 급격하게 쏟아지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혁.

하지만 체어 엠파이어는 그런 사정을 알 수 없었기에 무덤덤한 목소리로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했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조코비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몸은 무의식적으로 코트 안으로 움직였다.

볼 키즈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이내 경기가 불리해서 그런 줄 알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탕!!

[피프틴 러브.]

멍한 상태에서 에이스를 내어준 지혁.

조코비치는 이렇게 득점을 할 줄 예상하지 못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광판에 찍힌 116MPH의 속도는 절대 빠른 수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웅성웅성.

그 의외의 상황에 관중석이 술렁이자 지혁은 그제야 정신을 제대로 차렸다.

담담한 표정으로 다음 리턴 자리로 이동하자 혼잡한 분위가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저 해프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스윽-

지혁은 잔디가 전부 사라져 흙이 드러난 베이스라인을 발로 잠깐 다지다가 상체를 숙였다.

탕!!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브가 서비스 코트를 강타했다.

비록 다른 탑랭커들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쉽게 처리하기 힘든 코스였다.

탕!! 탕!! 탕!!

약속한 것처럼 살벌할 스트로크를 주고받는 두 선수.

경기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조코비치가 베이스라이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승부가 랠리로 결정되었다.

이전 게임에서는 이렇게 10구쯤 가다가 조코비치가 위닝샷을 넣거나 지혁이 먼저 실수를 하는 그림이 나왔다.

쿵!!

“음···.”

조코비치는 예상을 뛰어넘는 높이로 튀어 오르는 탑스핀 스트로크에 불편한 신음을 내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라켓을 컨트롤해 스트로크를 돌려보냈지만 많이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갑자기 포핸드 위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앗!”

탕!!

애써 지혁의 플레이에 적응시켜 놓은 감각이 뒤틀리자 조코비치의 템포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바운드가 정점까지 도달하기 전에 라이징샷을 친 것이다.

높은 난이도만큼 실수할 확률도 상당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이것밖에 없었다.

[피프틴 포티.]

800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가 투자되서일까.

지혁의 포핸드의 활약은 심상치가 않았다.

열세에 처했던 랠리에서 완벽하게 주도권을 가져온 것이다.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탑스핀 스트로크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게임 리 3-3.]

우와아아아아!

체어 엠파이어의 판정이 떨어지자 스타디움을 뒤흔드는 거대한 함성.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 상황에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포핸드가 나올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게다가 그들 사이에서는 지혁의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지금의 변화가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포핸드 실력이 갑자기 달라졌어. 바운드 높이를 좀 봐. 휘유. 각도가 진짜 살벌한데···.”

“단순히 탑스핀 스트로크뿐만이 아니야. 플랫이나 슬라이스도 만만치 않아.”

“골든 보이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 위기 상황에서 각성이라도 한 건가···.”

탑랭커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조코비치는 주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반대편 코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혁은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드디어 기세를 가져왔다는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날카로운 눈빛을 받아냈다.

“와우. 자신만만한데. 방금 전 경기가 우연이 아니었나 봐.”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역전이 나올 수도 있겠는 걸?”

“그래도 포핸드 하나만으로 힘들 거야. 너희들도 조코비치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직접 봤잖아. 이번 윔블던에서 그는 최강이야.”

“음···. 확실히 그 말이 맞긴 하지···.”

“아니, 나는 리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해. 저렇게 완성도 높은 포핸드는 본 적이 없거든.”

“그건 골든 보이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거 아니야? 경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잘 풀릴 때가 있잖아. 바브린카의 그 날처럼 말이야. 저번만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지혁의 활약에 프로들의 의견은 두 개로 갈라졌다.

하지만 아직 한 게임에 불과해서 조코비치가 우세할 거라고 생각하는 쪽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아마 지금의 분위기는 경기가 조금 더 진행되어야 바뀔 것 같았다.

탑랭커들에게 확신을 주기엔 보여준 게 너무 적었으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