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70화 (170/241)

170화. 휴식

KBC가 야심 차게 준비한 특집 다큐가 종반부를 넘어가자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영향으로 안 그래도 높던 지혁의 인기도 절정에 도달했다.

모든 매체에서 아주 사소한 소식조차 비중 있는 뉴스로 다룬 것이다.

정작 화제의 주인공은 주위의 관심에 신경 쓰지 않고 훈련장과 집을 반복하며 재미없는 일상을 보냈지만 팬들은 그것마저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쿵!!

마지막 스트로크를 코트에 꽂아 넣고 휴식을 하기 위해 벤치로 들어오는 지혁.

코치는 휴식 시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붙여왔다.

“며칠 전에 말한 것은 생각 좀 해봤어?”

“아, 그러고 보니 방송국에서 섭외가 들어왔다고 했죠? 훈련을 하느라 까먹고 있었어요. 코치님 생각은 어떤데요?”

“단순히 섭외가 들어온 정도가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고 있어. 네 팬들도 엄청 바라고 있으니까 팬 서비스 차원에서 한 번 정도는 출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침 다음 마스터즈까지 남은 기간도 두 달이나 있어서 스케줄도 넉넉하잖아.”

“음······. 알았어요.”

“아! 잘 생각했어!”

무려 며칠 만에 지혁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자 코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귀국하고 난 직후부터 매니지먼트와 여러 통로를 통해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고 있는 지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스트레스가 상당했었다.

일단 첫 방송 출연을 하고 나면 대회를 핑계로 섭외를 거부할 명분이 생기게 되니 이제 걱정을 어느 정도 덜었다.

“휴······. 그나저나 저번에 너랑 연습 경기를 했던 구지연인가? 그 얘 요즘 여자 테니스 쪽에서 꽤 유명해졌더라. 프로 데뷔에 데뷔하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데. 알고 있었어?”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서 조금은요. 그런데 윔블던에 집중하느라 자세하게는 몰라요.”

“처음 봤을 때부터 싹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 너랑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라 그런지 정말 재능이 대단하더라. 한국 테니스의 미래라고 언론에서 띄어주고 난리도 아니야. 아마 얼굴도 아이돌처럼 예쁜 편이니 스타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제대로 된 성과만 내주면 빠른 시간 안에 엄청난 스타가 될 수 있을 걸.”

최근 한국에서 테니스의 인기는 타 종목의 스포츠를 전부 압도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저도 슬럼프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금방 투어급 선수로 올라올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연이의 잠재력은 여자 프로들 사이에서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니까요.”

“···그 정도라고?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까 더 주의 깊게 봐야겠네. 네 안목은 정확하기로 유명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수준까지 성장할 거라 생각해? 중국의 리나처럼 탑5 안에 들어갈 수 있겠어?”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죠. 여자 테니스라고 남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피지컬적인 문제도 있고 잘해봐야 20~30위권이 한계라고 생각해요.”

“아···. 그럼 샤라포바나 윌리엄스 자매 같은 재능은 아닌가 보구나. 하긴 그런 기적이 연속으로 일어날 리가 없지.”

샤라포나나 세레나, 비너스 윌리엄스는 모두 여자 테니스에서 우승을 다투는 유명한 탑랭커들이었다.

물론 그랜드슬램을 13번이나 우승하며 압도적인 연승 행진을 하고 있는 세레나 윔리엄스의 위상에 비하면 다른 두 선수의 무게감은 많이 떨어졌다.

지혁이 과거로 돌아오기 직전에 지금도 어마어마한 우승 기록이 무려 29번까지 늘어나게 되니 세레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테니스 역사에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업적을 쌓은 존재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국에 있는 동안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네요. 이제 챌린저로 넘어갈 시기니까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할 거예요.”

“확실히 그 구간이 퓨처스에서 활약하던 유망주들이 좌절을 하는 구간이긴 하지. ATP랭킹 100위대의 실력자들도 출전하니까 말이야.”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까지 챌린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절대 만만한 대회는 아니었다.

국내 선수들조차 지혁을 제외하면 전부 퓨처스와 챌린저의 벽에 막혀 잔류하고 있는 처지였다.

“지혁이, 네 케이스가 이상한 거였어. 첫 퓨처스 데뷔부터 그랜드슬램까지 전승으로 진출했잖아. 호주 오픈 4강에서 앤디 머레이한테 진 게 첫 패배였지?”

“맞아요. 실력으로 완벽하게 제압당했죠. 기량 차이가 너무 현격해서 아무것도 못했어요.”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복수를 달성해서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있지만 당시 지혁과 코치진들의 분위기는 정말 심각했었다.

상위 랭커의 실력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그랜드슬램의 높은 벽을 뚜렷하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2년이 다 돼가네. 앞으로 한국에서 너 같은 선수가 나오긴 힘들겠지? 국내 유망주들도 딱히 주목할 만한 녀석들이 없잖아.”

“음······. 탑10에 들어올만한 잠재력을 가진 주니어 선수가 한 명 있어요.”

“···어? 있다고? 그게 누군데!?”

“코치님도 기억하실 거예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서 같이 본 정민이라는 선수예요.”

“아! 닉 키즈였던 그 안경 쓰고 키 작은 꼬마?”

“네.”

코치는 지혁의 말을 듣고 도저히 공감이 가지 않는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정민에게 특별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과거였다면 몰랐겠지만 코치들의 눈은 지혁이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보고 나서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

“저기······. 재능은 있는 건 인정하겠는데 탑10은 힘들지 않을까? 정말 잘 풀린다고 가정해도 50위권이 최대일 것 같은데.”

“한 번 믿어보세요. 분명 몇 년만 지나면 유망주들 사이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어. 네가 그렇다면 맞겠지.”

반드시 그럴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지혁의 말에 코치와 주변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무래도 행동과 다르게 진심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띠딕.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상태로 대화를 하던 도중 알림음이 울렸다.

휴식 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주는 신호였다.

“아, 시간이 다 됐네요. 남은 이야기는 끝나고 하죠.”

“그래. 훈련이 먼저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마.”

코치는 아직 궁금한 게 남아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이후니 나중에 시간이 남을 때 차근차근 물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최소 몇 년이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급할 것도 없었다.

정민이 탑랭커로 성장하려면 최소한 6~7년은 걸릴 테니 말이다.

***

매니지먼트를 통해 섭외 요청을 받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 당일이 되었다.

지혁이 출연하는 방송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 무한챌린지였다.

“오늘의 게스트는! 이지혁 선수입니다!”

““와아아아!!””

“지호 형!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인데 어떻게 섭외한 거예요?“”드디어 우리 방송에 오셨구나. 솔직히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 작년부터 섭외하려고 국장님이랑 김지호PD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와. 오랜만에 특집 방송을 제대로 하겠는데요? 지호 형 섭외 능력이 진짜 보통이 아니네.”

오프닝으로 지혁이 등장하자 무한챌린지 멤버들은 호들갑을 떨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MC인 유인석을 제외하면 정말로 사전에 들은 게 없는 분위기였다.

세트장에 돈을 많이 들인 걸 보고 대형 게스트인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지혁인지는 몰랐었다.

시즌 중에는 워낙 바빠서 지혁의 얼굴을 방송에서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지혁은 사전에 전달받은 대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유인석들과 무한챌린지 멤버들 사이에서 와!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매번 지혁의 실물을 보고 사람들이 약속처럼 보이는 리액션이었다.

“같이 촬영한 후배들이 엄청 잘생겼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잖아···. 비주얼이 운동선수가 아니라 무슨 배우를 데려온 느낌이네. 연예계에서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잘생겼다.”

“키도 진하 형보다 더 큰데? 머리 크기가 무슨 절반이야. 진하형 웬만하면 우리 지혁이 옆에 서지 마. 외계인처럼 보인다.”

“외계인이라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리고 너도 똑같아. 멤버들 중에 잘생긴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 조용! 오늘 코너를 전부 진행하려면 촬영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능하면 오프닝이 끝나고 멘트를 해주세요.”

“야! 우리도 말할 권리가 있어! 너만 입···.”

유인석이 시끄러운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자 무한챌린지의 맡형인 박명주가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이 입을 막으며 끌어내자 난동은 금방 진압되었다.

방송을 같이한 기간이 길어서인지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콩트였다.

지혁은 TV에서나 보던 그 모습을 신기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코너는 ‘과연 테니스 선수는 다른 운동도 잘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지혁 선수 잘할 자신이 있나요?”

“네. 몸으로 하는 스포츠라면 뭐든지요.”

“오! 자신감이 대단하네요! 역시 그랜드슬램 우승자입니다!”

유민석은 간단한 근황 토크를 하다가 지혁을 첫 번째 세트장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골대가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종목은 축구인 모양이다.

당연히 메이저 종목이 나올 줄 알았다.

들어본 적도 없는 이상한 스포츠를 들고 오면 아무리 잘해봤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지혁 선수 축구를 해본 경험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주니어 선수로 활동해서 거의 없어요. 아마 3~4번 정도 해봤을 거예요.”

“그러실 줄 알고 저희가 특별 선생님을 초청했습니다.”

신호를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달려오는 30대의 남자.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은퇴한 축구선수였다.

“와. 지혁이 온다고 얼마나 준비를 한 거야. 설마 다음 코너들도 전부 선생님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마 네 생각이 맞을 거야. 원래 지호 형이 간신 스타일이잖아. 민석이 형하고 우리를 대하는 행동을 봐.”

“진짜 치사하다. 치사해.”

무한챌린지의 멤버들이 은근슬쩍 PD가 횡포를 부린다고 몰아가자 김지호PD는 이 정도는 얼마든지 예상했다는 듯이 툭 말을 내뱉었다.

“하동진 씨는 이지혁 선수님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요?”

“네? 그건 아니지만···.”

“어쩐지 촬영 전부터 투덜대더라고요. 저는 지금 상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혁이한테는 이것보다 더 해줘도 돼요! MBS 기둥 하나, 아니 몇 개 정도는 뽑아야죠!”

“야! 너 이 간신배가!”

김지호PD가 멤버 하나를 타겟으로 돌리자 다른 멤버들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순식간에 태세 전환을 했다.

지금 지혁은 윔블던 우승으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역적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던 하동진은 안절부절하며 연신 사과를 했지만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이 찍혔다.

그리고 애초에 악의가 담기지 않은 말이었기에 세트장의 분위기가 나빠지는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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