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휴식
첫 번째 코너는 유인석의 진행으로 무한챌린지 멤버들이 먼저 슛을 하면서 시작했다.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들이라 그런지 특별히 뛰어나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동네에서 조기축구를 하는 아저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일일 선생님으로 온 전직 축구선수는 멤버들의 볼품없는 슛을 보고 재능이 없다며 크게 웃고 있었다.
전문가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수행능력이 완전히 구제불능이었기 때문이다.
“실패! 이로서 무한챌린지 멤버들이 전부 실패했습니다. 이제 이지혁 선수의 차례입니다!”
지혁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축구공이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그러자 촬영장의 사람들에게서 기대가 잔뜩 담긴 시선이 따갑게 쏟아졌다.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천재가 과연 축구에서도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한 모양이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뒤로 물러나 도움닫기를 하는 지혁.
곧이어 뻥! 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간 축구공이 골대 모서리 부근의 그물에 걸려 찢어버릴 듯이 회전하자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슛의 파워나 정확도가 도저히 초심자의 실력으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와아!!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환호 소리.
유인석은 예상보다 훨씬 결과가 좋게 나오자 눈을 빛내면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와! 테니스가 아니라 축구 선수를 모셔온 줄 알았습니다. 정말 따로 배워본 적이 없는 게 맞나요? 실력이 범상치 않으신데요?”“네. 초등학교 이후로 축구는 처음이에요. 방금 건 우연히 잘 들어간 것 같아요.”
“그렇군요. 선생님.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이지혁 선수의 실력이 어떤가요?”
“너무 짧아서 정확하게 평을 내리긴 어렵지만 단순히 방금 슛만 두고 보면 아마추어는 확실히 뛰어넘는 실력입니다. 운동 감각을 타고났어요.”
그의 말대로 테니스로 단련된 지혁의 피지컬과 신체의 밸런스는 어떤 스포츠를 하더라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해줬다.
괜히 지혁이 19살의 나이로 쟁쟁한 탑랭커들을 모두 재치고 ATP랭킹 2위를 달성한 게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이 평범한 선수들이랑 차원이 다른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국적의 괴물들조차 지혁에게 힘이나 체력적인 우세를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 솔직히 아시아인의 피지컬로 보기는 어려웠다.
유인석은 몇 분에 걸쳐서 지혁을 칭찬하다가 이내 남은 슛을 이어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혁은 사람들의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축구 시험이 전부 마무리되었다.
그러자 지혁과 멤버들은 다음 코너가 준비되어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세트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이동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자! 두 번째 종목은 야구입니다!”
유인석의 소개와 동시에 들어오는 야구 선생님들.
장비를 차고 들어오는 그들의 얼굴은 이번에도 어딘가 익숙했다.
“어! 저분들 재작년이랑 작년에 은퇴한 프로 야구 선수들이잖아.”
“그래? 난 야구는 잘 몰라서. 유명한 분들이야?”
“아마 야구팬들은 대부분 이름을 알고 있을 걸. 그런데 이번에는 투수, 포수, 타자까지 3명이나 오셨네.”
멤버들의 의문처럼 지혁도 지금 상황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상 위험 때문에 포수나 투수 역할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매니지먼트가 미리 말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냥 시범을 보여주려고 온 거겠지.’
어차피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걸 시켜봤자 할 생각도 없었다.
아마 하려고 해도 촬영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매니지먼트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하며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혹여나 지혁이 부상이라도 당해서 US오픈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여파는 MBS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촬영은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타자 역할만 하기로 했다.
프로들에게 짧은 교육을 받고 순식간에 차례가 넘어오자 타석에 들어가는 지혁.
유인석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지금 상황에 맞는 에피소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지혁 선수는 예전에 다른 예능에서 타자 역할을 해보신 적이 있으시죠? 당시에 홈런을 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좌타석이랑 테니스의 백핸드가 꽤 비슷해서요. 무엇보다 당시 투수분이 치기 좋게 던져주셔서 그렇죠.”
“역시 겸손하시네요. 이번에는 어떨 것 같으신가요? 투수 역할로 오신 선생님이 봐주지 않겠다고 하셨는데요.”
“음······. 솔직히 빠른 공은 익숙해서 자신 있어요. 게다가 야구는 경험도 조금 있으니까요.”
오!!!
스태프들은 지혁이 자신감을 보여주자 흥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세트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투수는 그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듯 가소롭다는 얼굴로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비록 작년에 은퇴해서 현역은 아니었지만 아마추어에게 당할 실력은 절대 아니었다.
쐐애액! 퍽!
포수에게 몇 차례 공을 던지며 투구 연습을 하는 투수.
130km은 가뿐히 넘어가는 구속에 무한챌린지 멤버들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공이 너무 빠른데? 저건 지혁이라고 해도 힘들겠어. 애초에 라켓이랑 배트는 타격 범위도 다르잖아.”
“살살 던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헛스윙을 하면 그림이 어색해질 텐데 걱정이네.”
“운동선수들 자존심에 그 말을 듣겠어? 일단 진행해보고 도저히 가망이 없으면 그때 가서 다시 말해보자.”
투수는 몸이 풀렸는지 준비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촬영장은 지혁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급격히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황에서 레그킥을 하는 투수.
그가 스파이크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자 레이저 같은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왔다.
연습보다 속도가 더 빨라진 게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여준 투구가 전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딱!!
““······?””
사람들은 완벽한 직구에 당연히 헛스윙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타석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깔끔한 타격음이 들렸다.
좌타석에 선 지혁이 공을 배트에 맞춘 것이다.
게다가 멀리 뻗어나가는 타구의 궤적을 보면 안타가 분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데? 공기 약간 무겁긴 해도 탑랭커들이 치는 스트로크 속도에 비하면 속도가 많이 느린 편이야.’
물론 바운드 없이 공중에서 발리로 처리해야 돼서 조금 까다롭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허용범위 안이다.
조코비치의 백핸드나 페더러의 포핸드는 이것보다 적어도 몇 배는 더 까다로웠으니 말이다.
애초에 230, 240km 서브도 받아내는데 130km가 빠르게 느껴질 리가 없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김지호PD는 지혁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 쉽게 안타를 치는 데 성공하자 투수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달라고 말을 전달했다.
끄덕.
지금 상황이 부끄러운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투수.
그렇게 두 번째 투구가 시작했다.
부웅!
“야! 그건 아니지! 너무하네!”
“아마추어를 상대로 그런 변화구를 사용하는 게 어딨어. 방금 건 나도 못 치겠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실력이 여전해.”
지혁이 헛스윙을 하자 동료 선수들에게서 너무 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아래로 뚝 떨어지는 커브를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테니스 선수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괜찮아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면 좋죠.”
지혁은 투수에게 비난의 여론이 계속 쏟아지자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전혀 기가 죽지 않은 그 모습에 선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시험과 상관없는 외부인이 오지랖 넓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까다롭긴 해도 못 칠 수준은 아니야. 그래도 경우의 수가 늘어났으니까 조금 더 집중해야겠네.’
테니스에서도 탑스핀 스트로크랑 슬라이스, 플랫이 있으니 대충 비슷하게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타석에서 자세를 다시 잡자 투수가 이를 악물며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옆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였다.
딱!!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변화구는 직구보다 속도가 느렸기에 지혁은 여유롭게 안타를 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선수들은 괴물 같은 재능을 본능적으로 느낀 건지 입을 떡 벌렸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이 따갑게 쏟아졌지만 지혁이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매번 프로들에게 받았던 눈빛이라 어색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딱!! 딱!!
이후로 이어진 투구들도 스윙을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타석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마지막은 임팩트있게 가자.’
이때까지 스트라이크를 당하지 않기 위해 단타 위주로 했으니까 홈런도 한 번 쳐줘야지.
투수는 직구가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가장 자신 있는 커브를 결정구로 던졌다.
이것만큼은 궤적이 상당히 까다로워 지혁도 간단히 처리하기 힘들었다.
찰나를 사용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밑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공이 지혁이 휘두른 배트에 걸리자 뭔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타격음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이건 홈런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처럼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 외각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그 모습에 선생님 역할을 맡은 선생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자신들의 노력이 전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천재 앞에서는 어떠한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
지혁의 활약이 상상을 초월하자 촬영장은 아주 잠깐 침묵에 휩싸였다.
물론 시간이 촉박해서 그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와···. 이번 특집은 레전드인데? 이게 방송으로 나가면 시청자들의 반응이 엄청날 거야.”
“어째서 사람들이 이지혁, 이지혁하는지 드디어 알겠네. 쟤는 사람이 아니야.”
“테니스가 아니라 야구 선수를 했어도 메이저 리그는 그냥 갔겠는데? 처음 배운 게 이 정도면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어지간한 투수는 그냥 찜 쪄 먹겠어.”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일까.
촬영장의 들뜬 분위기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야구는 여기서 끝이지? 가능하면 조금 더 보고 싶은데···.”
“지금도 원래 계획보다 더 오래 했으니까 어려울 거야. 저기 무서운 눈을 하고 있는 이지혁 선수의 매니지먼트도 있잖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 방법을 조금 다르게 하면 되지 않을까? 다음 코너 시간을 조금 줄이는 거지.”
김지호PD는 스태프들의 대화를 듣고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마무리하기엔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건지 지혁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름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말에 이야기는 빠르게 진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