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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73화 (173/241)

173화. 상하이 마스터즈, 이벤트 경기

“그러니까 진지한 대결보다 그저 중국 대회를 홍보할 목적이라는 이야기네요?”

“그렇지. 아무리 리나가 여자 랭커 중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라도 너와 경쟁할 수준은 절대 아니니까. 그건 세레나 윌리엄스를 데려와도 마찬가지일 걸.”

“그래서 핸디캡을 두고 경기를 하자는 거였군요. 정확한 조건은 뭔데요?”

“모든 게임에서 리나가 30-0으로 시작하고 서비스게임이 없을 거야. 만약 이게 일반적인 남자 단식경기였다면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불리한 조건이지. 뭐, 네가 경기를 한다면 그것도 모르겠네.”

지혁은 엄청난 핸디캡을 듣고도 전혀 꺼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어떤 조건을 붙여도 경기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치도 패배를 단 1%도 떠올리지 않는지 따로 준비할 건 없다고 말했다.

“페이도 상당히 괜찮고 중국의 인지도를 높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게다가 스폰서들도 좋아할 거야. 중국은 정말 거대한 시장이니까 말이야.”

“본선을 시작하기 전에 연습 경기를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승낙의 말을 듣자 옳은 선택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코치.

갑자기 일정이 하나 더 늘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같은 빅4나 탑10 정도의 상대가 아니라면 상대가 누구든 지혁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지혁은 중국 테니스의 상징인 리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상하이 마스터즈에서 이지혁과 아시아 여자 랭킹1위 리나의 이벤트 매치가 성사.]

[아시아를 대표하는 남녀 선수들의 대결에 중국 팬들의 관심이 집중.]

[핸디캡을 두고 하는 이벤트 매치의 승자는 누가 될까?]

[중국 테니스 팬들은 리나의 승리를 호언장담해. 하지만 전문가들의 판단은 매우 회의적이다.]

[전직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이지혁 선수가 봐주지 않는 이상 질 가능성은 1%도 없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과 비슷할 것.”]

[한국 테니스 레전드 이형석, “이번 경기는 승부 예측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대결이다. 이벤트 매치의 분위기는 이지혁 선수의 마음에 달려있다.”]

ㅡ 오. 이벤트 매치는 오랜만이네. 그런데 리나 유명한 선수임?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ㅡ 중국 스포츠 스타임. 실력도 있어서 랭킹도 탑10 안에 들어간다.

ㅡ 탑10? 그럼 니시코리보다 랭킹이 높잖아. 기사가 오버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력자네. 경기 볼만하겠다.

ㅡ ㄴㄴ 너무 기대하지 마. 여자 단식이랑 남자 단식은 체격이나 힘 때문에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난다. 무조건 실망함.

ㅡ 그래도 중국 넘버원인데 최소한 이름값 정도는 하겠지. 두 번 성사되긴 힘든 매치니까 나는 어떤 식으로 결판나더라도 챙겨 볼 거임.

ㅡ 상하이 마스터즈가 그걸 노린 거지. 지금 중국에서도 황제와 여제의 대결이라고 이슈 몰이 제대로 하고 있다.

ㅡ 어째선지 결말이 예상되네. 실망하고 돌아갈 중국인들 표정 떠올리니까 든든하누 ㅋㅋㅋ

ㅡ ㅇㅈ 나라면 이지혁 승리한다에 전재산 건다 ㅋㅋㅋㅋ

ㅡ 토토 사이트 배율 개웃기네 1.02 ㅋㅋ 역배들 돈 버리기 ON

***

상하이 마스터즈 본선이 시작하기 며칠 전.

지혁은 1만 석이 넘는 메인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시작하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회 개최지가 같은 아시아인 중국이라 그런지 관중들이 보내는 응원이 제법 열렬하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환영하는 분위기인 건 분명했다.

“저기 저 선수가 골든보이 맞지?”

“어. 기사에 나온 얼굴이랑 똑같네. 저 얼굴을 잊기는 쉽지 않지.”

“후···. 내가 황태자의 경기를 볼 수 있을 줄이야. 세계 최강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 별명은 이제 철이 지나지 않았어? 페더러조차 무너트린 랭킹 1위의 선수인데 황제라고 부르는 게 맞지.”

“이제 생일이 지나서 18살인데 별로 어울리지 않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직 황태자라고 부르니까 상관없어.”

지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기대가 담긴 표정을 짓는 중국인 관중들.

그들은 최근 지혁의 세계적인 활약으로 테니스에 입문한 초보자들이었다.

자국에서 리나의 뉴스도 많이 나왔지만 신기하게도 인기는 타국 사람인 지혁이 압도적이었다.

아마 지금 상황이 만들어진 건 테니스 대회의 인기를 남자 단식이 모두 독차지하고 있는 구조라서 그럴 것이다.

저벅저벅.

마침내 경기장에 도착한 리나는 지혁을 발견하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비록 나이는 그녀가 지혁보다 11살이나 더 많았지만 그 태도는 좋아하는 선수를 발견한 팬과 같은 모습이었다.

두 선수가 세계에서 받고 있는 평가나 실력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이벤트 매치를 성사되어서 다행이에요. 한 번쯤은 당신이랑 경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리나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대화 내용이나 태도를 보면 아무래도 오늘 경기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네. 저도 이런 식의 경기는 처음이라 나름 기대를 하고 있어요. 부디 좋은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승 상금 같은 게 걸려 있지 않아선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애초에 경쟁 상대라고 하기에는 활동하고 있는 리그도 다르고 실력 격차가 너무 커서 그럴 것이다.

아마 같은 빅4였다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살벌한 긴장감이 흘렀겠지.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드디어 경기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선수들이 각자의 라켓을 챙기고 베이스라인으로 이동하자 시끄럽던 관중석도 조용해진다.

리나의 서브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탕!!

기합을 내지르며 서비스 코트에 플랫 서브를 내려꽂는 리나.

제법 날카로운 실력이지만 지혁은 여유로운 얼굴로 리턴을 성공해냈다.

밸런스가 전혀 무너지지 않는 게 아직 풋워크의 여력이 많이 남는 것 같았다.

탕! 탕! 탕! 탕!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며 랠리가 한동안 이어지자 선수들의 기량이 대략적으로 드러났다.

‘역시 남자 선수들에 비교하면 공이 너무 가볍네···. 왜 핸디캡은 준 건지 알겠어.’

중국에서 워낙 대단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상자를 열어보니 솔직히 결과물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신체 구조상 스트로크의 파워가 밀리는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나 테크닉조차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쿵!!

“윽···.”

지혁이 위력을 조금 더 높인 리버스 포핸드를 치자 코트 반대편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이때까지 템포를 맞춰주고 있었지만 조금씩 실력을 꺼내기 시작하기 급격하게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일단 힘에서 밀리다 보니 스트로크에서 일방적인 열세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서티 피프틴.]

[서티 올.]

백핸드를 공략하는 샷에 허무하게 포인트를 내주는 리나.

중국 관중들은 아직 동점이라서 첫 번째 게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게임 리 2-0.]

“”······.“”

경기가 원사이드하게 흘러가자 경기장의 분위기는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지혁이 여력을 충분히 남겨둔 상태에서도 리나에게 승산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티 러브에서 시작하고 서비스게임이 없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어도 이건 도저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완급 조절을 조금 해야겠네.’

이대로 리나를 철저하게 박살 내놓으면 절대 좋은 소리를 듣진 못할 것이다.

이벤트 경기에서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비아냥이나 듣게 되겠지.

타고난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건 그림이 좋지 않았다.

[게임 리나 4-4.]

우와아아아아!!

마침내 경기가 동점까지 만들어지자 관중들은 리나에게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모두 지혁이 힘을 빼고 경기를 해서 일어난 결과였다.

정작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황태자를 상대로 4-4까지 오다니 역시 리나야.”

“초반에 불리하던 건 몸이 풀리지 않았던 거였어. 이대로만 하면 이길 가능성이 있겠다.”

“그러면 성대결에서 남자 테니스의 정점을 꺾을 수 있는 건가?”

“한국 테니스도 별것 아니구만. 10년만 더 지나면 아시아에서 테니스 종주국의 위치를 우리가 가져올 수 있겠어.”

중국인 관중들은 리나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조금씩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였다.

수면 아래의 정확한 사정도 모르고 지혁의 실력을 얕잡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을 말들이었지만 이대로 경기를 양보하게 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너무나 뻔했다.

‘음······. 너무 놀고 있었나 보네.’

승패를 생각하지 않고 설렁설렁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행동 방침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괜히 패배하게 되면 평생 박제될 게 뻔한데 안면도 없는 선수를 위해 굴욕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피지컬로 찍어 누르면 변명 거리나 되겠지. 그러니까 테크닉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자.’

원래 파워가 아니라 섬세한 컨트롤로 승부를 보는 플레이 스타일이라 전력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탕!!

지혁의 한 손 백핸드는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쩍 날카로워진 각도는 리나에게 아주 간단하게 점수를 가져왔다.

원래 무식하게 강력한 스트로크보다 속도가 느려도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타구가 처리하기 훨씬 까다로웠다.

퉁!

백핸드 위너를 이어서 두 번째 득점은 트릭샷이었다.

천재적인 경기 감각과 재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플레이였지만 지혁에겐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꽤 많은 탑랭커들이 인기와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 따라 하길 시도했지만 현재 탑랭커 중에 트릭샷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세트 리.]

1세트는 리나가 언제 이기고 있었냐는 듯이 순식간에 지혁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승리를 확신하던 중국인 관중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상하이 마스터즈 대회를 구경 온 외국인들은 그 모습에 꼴좋다는 얼굴로 비웃음을 보냈다.

“하···. 진짜 골든 보이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무리 안목이 부족한 초심자라고 해도 착각도 적당히 해야지.”

“리도 적당히 봐주려고 하다가 주변의 반응을 보고 심경이 변했나 봐. 이거 예상보다 그림이 웃기게 됐네.”

“일부로 리나와 타구의 위력을 맞춰주고 있는데도 경기가 일방적인데. 역시 숙련도의 차이인가?”

“원래 골든 보이의 스트로크 완성도는 탑랭커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잖아.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하지.”

“트릭샷이라도 구경할 수 있게 리나가 조금이라도 더 버텨줬으면 좋겠네. 다른 경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잖아.”

“적어도 2세트는 더 남아있으니까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시간은 넘칠 정도로 충분해. 상하이 마스터즈가 괜히 막대한 개런티를 지불했겠어?”

남자의 말처럼 이번 이벤트 매치는 무려 5세트로 기획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마스터즈가 3세트인 걸 고려하면 대회와 어울리지 않는 초장기전이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경기 시간을 늘리려는 의도겠지.

선수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관중들에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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