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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74화 (174/241)

174화. 상하이 마스터즈, 이벤트 경기

중국 팬들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나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었다.

정정당당하게 붙으면 가망성이 없다고 해도 지혁이 큰 핸디캡을 가진 상태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임 리 3-0.]

하지만 그것도 2세트가 중반부를 넘어가기 시작하자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테니스의 정점인 리나조차도 지혁 앞에서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선수일 뿐이었다.

비슷한 위력의 스트로크를 사용해 찍어 눌렀으니 피지컬을 핑계로 늘어놓기도 어려웠다.

지금 상황은 100% 실력 차이로 생긴 결과였다.

그렇게 중국 관중들 사이에서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중국 플랫폼으로 이벤트 매치를 보고 있던 한국 시청자들은 조롱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경기 초반에 의기양양하게 굴던 행동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ㅡ 리나가 중국 테니스의 여제라고 했지? 실력이랑 정말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네.

ㅡ 빨리 아까 전에 했던 말 다시 한번 해 봐. 누가 누굴 이긴다고?

ㅡ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추어랑 경기하는 줄 알겠다. 실력이 너무 차이 나서 상대가 안 되잖아?

ㅡ 남자로 태어났으면 빅5 됐을 거라고 하던 얘들 어디 갔냐고

ㅡ 얘네들 지혁이가 힘이 아니라 테크닉으로 찍어 누르고 있어서 변명도 못하네.

ㅡ 그나마 양심은 있는 듯. 아니 부끄러움인가. 경기 시작 전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으니까 말이야.

ㅡ 오늘 경기 봤으면 앞으로 리나가 아시아 넘버원이라고 말 좀 꺼내지 마라. 일본 선수인 니시코리가 나이도 훨씬 어린데 기술적인 완성도가 백배는 낫네. 지혁이랑은 애초에 비빌 수준이 아니고.

ㅡ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ㅡ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

빠르게 올라오던 메시지는 운영진과 매니저의 개입으로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수백 명이 몇 초 만에 강퇴를 당하자 한국 팬들은 채팅을 멈추며 몸을 사렸다.

이곳에서 추방되면 이벤트 매치를 볼 수 있는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미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내뱉은 뒤라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

[게임 리 4-0.]

지혁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연승 행진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경기 시간이 지날수록 실전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있어서 승기는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남은 세트가 진행되면 역전은커녕 베이글 세트가 나와버릴 것이다.

원수지간도 아닌데 이벤트 매치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나면 승자의 입장인 지혁에게도 별로 좋지 않았다.

중국 테니스 팬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힐 테니 말이다.

‘경기에서 패배만 하지 않으면 되니까 스코어를 조금 조절해야겠네. 리나는 내가 경쟁심을 불태울 상대도 아니니까.’

리나의 얼굴은 이미 안색이 어두운 게 멘탈이 많이 흔들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그녀의 면을 적당히 세워줘야겠다.

[게임 리나 5-3.]

지혁이 득점을 생각하지 않고 팬 서비스를 하는데 집중하자 경기의 균형이 서서히 맞춰졌다.

위닝샷이 될 법한 스트로크를 전혀 보내지 않았기에 이 정도면 베이글 세트가 나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트 리.]

리나는 비록 2세트도 내주고 말았지만 마지막에 게임을 가져온 게 조금은 위안이 된 모양이다.

정면대결에서 도저히 이길 방법을 찾지 못해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지혁의 배려로 자국 대회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실력 격차를 제대로 느꼈기에 이제 초반처럼 대항하려는 마음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일단 상황이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경기에 대한 부담감도 많이 덜어졌다.

탕! 탕! 탕!

이벤트 매치를 중계하고 있던 중국의 방송들은 리나가 열세를 극복하는 그림이 그려지자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러자 2세트 동안 형식적인 멘트만 하며 입을 꾹 닫고 있던 태도도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경기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었지만 진심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들만 설득할 수 있으면 괜찮았다.

[리나가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황태자를 밀어붙이고 있네요! 역시 중국의 대표 선수다운 저력입니다. 올해 호주 오픈, 롤랑 가로스, 윔블던에서 3연승을 한 괴물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남녀의 특성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는데 자랑스럽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증명한 거나 다름없어요.]

[성별이 똑같거나 신체능력만 비슷했다면 더 좋은 경기가 만들어졌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을만한 남자 탑랭커가 빨리 나와야 될 텐데요.]

[요즘 테니스의 인기가 많이 올라가고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쓸만한 유망주가 나올 겁니다. 투자나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일본도 이지혁과 니시코리를 배출하지 않았습니까. 투자 금액이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이라면 반드시 가능할 거예요.]

[그나저나 한국은 ATP 250도 개최하지 못하는 걸로 아는데 저런 선수를 공짜로 배출하다니 운도 좋군요. 몇 년 전에는 고작 챌린지 수준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탑랭커가 황태자 한 명밖에 없는 거잖아요. 10년만 지나면 아시아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중국 해설들은 빨리 그 시점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90년대 중, 후반의 아시아 유망주들은 한국이 압도적인 선두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중국도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성과가 어느 정도 나오지만 한국이 정민을 시작으로 천재 5인방을 줄줄이 배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지혁도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가능하면 지도를 해주거나 원정에 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성공할 게 확실한 선수들이라 헛된 노력이 될 확률도 없었다.

[세트 리나.]

우와아아아아!!

경기장은 리나가 처음으로 세트를 가져가자 거대한 함성으로 무너질 듯이 흔들렸다.

중국 팬들은 리나가 ATP 랭킹 1위인 지혁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자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안목이 높은 관중들이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지만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었다.

오늘 이벤트 매치가 끝나면 이번 생에 두 번 다시 재경기를 할 일이 없을 테니 이대로 좋은 그림으로 끝나는 게 훨씬 나았다.

[게임 세트. 매치 리.]

결국 경기는 세트 스코어 3-1로 종료되었다.

지혁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 선수들과 관중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시청률도 기대 이상으로 나왔으니 상하이 마스터즈의 홍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많이 배웠어요.”

경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잠시 머뭇거리는 리나.

그녀는 아주 잠깐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더 파고들어봤자 본인에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직접 경기를 했기에 실력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솔직히 모를 수가 없었다.

이대로 마무리하는 게 그녀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이었다.

“그럼 상하이 마스터즈에서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래요.”

리나는 이번 이벤트 매치로 탑랭커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장을 떠날 때까지 거리를 두었다.

처음 만났을 때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다가오던 행동과 상당히 대치되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반전은 없었다. 이지혁, 중국의 리나와 한 대결에서 3-1의 완승을 거두다.]

[경기를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피지컬보다 기술 숙련도.]

[전문가들은 이지혁 선수가 전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않았다고 말해.]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중국 언론들도 이벤트 매치에 호평일색.]

[상하이 마스터즈의 본선 티켓 예매율이 급격히 치솟고 있다. 벌써부터 이지혁 선수의 경기는 암표까지 높은 가격으로 성행하고 있어.]

ㅡ 꺼억~ 덕분에 잘 먹고 갑니다.

ㅡ 배당 1.02일 때부터 알아봤다 ㅋㅋㅋㅋ 역시는 역시임.

ㅡ 중국 얘들이 동수라고 말하는 거 믿고 있는 흑우 없지? 2세트 5-0부터 엄청 봐준 거임 ㅋㅋㅋ

ㅡ 솔직히 중국 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지. 걔들이 이 악물고 우겨도 애초에 숨길 수가 없는 격차라.

ㅡ 그런데 지혁이가 진짜 진심으로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ㅡ 난 3연 베이글 예상한다. 핸디캡 더 걸어도 무조건 압살할 걸?

ㅡ 아··· 그 광경을 직접 봐야 하는데 리그가 달라서 아쉽네.

***

상하이 마스터즈 본선이 시작하고 며칠이 흘렀을 무렵.

지혁은 중국 팬들로 인해 어마어마한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매번 메인급 경기장을 배정받았음에도 모든 좌석이 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도가 높은 코트는 보통 1만 석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니 이건 절대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그랜드슬램이나 유럽 마스터즈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이 정도 반응은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방문했을 때도 볼 수 없었다.

리! 리! 리! 리!

지혁이 본선 경기를 하기 위해 스타디움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목소리가 관중석에서 크게 들렸다.

이미 상대 선수가 도착해있는 상태인데도 응원의 비율은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프랑스 국적의 탑랭커는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는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히 저 상태로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쩐지 본진에서 경기를 하는 기분이네.’

한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대회를 경험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만약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휴···. 드디어 황태자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건가. 본선 티켓을 구하느라 정말 고생했어.”

“엄살 부리지 마. 나는 세 배나 되는 가격을 지불하고 이 자리를 얻었다고. 예매 경쟁이 얼마나 심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결승까지 미리 사둘 걸 그랬어.”

“아무리 황태자의 인기가 대단해도 초반 라운드부터 지금 같은 상황이 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 내년에도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두자.”

중국인 관중들은 프랑스 선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지 지혁의 얘기만 계속했다.

ATP 랭킹이라도 높았다면 경기 결과에 대해 토론을 했겠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기로 유명한 지혁이 광탈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게다가 리나와의 대결로 컨디션도 완벽에 가깝다는 걸 확인했지 않은가.

“이번 경기에서도 지혁이 아시아 선수를 대표해서 유럽 선수를 박살 내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네.”

“그래도 티켓 값은 하고도 남을 거야. 이때까지 3-0으로 모든 선수들을 이기면서 올라왔으니까.”

“얼마 전에 경기를 직접 본 친구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일까?”

“나도 처음이라 모르겠어. 우리가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대신해서 직접 확인해보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명성이 정말 어울리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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