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85화 (185/241)

185화. 성장

정민과 지연의 코칭을 봐주는 동안 비시즌기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2012년의 첫 번째 투어 대회인 ATP 250, 브리즈번 오픈이 시작한 것이다.

지혁은 같은 나라에서 개최된 브리즈번 오픈은 우승했지만 가장 중요한 그랜드슬램인 호주 오픈에서는 준우승의 결과를 얻었다.

모든 원인은 무결점, 노박 조코비치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건 작년 US오픈에 비해 지혁의 실력이 크게 상승하지 못한 탓이 컸다.

ATP 250에서는 무난하게 이겼지만 5시간 12분에 달하는 초장기전이 펼쳐지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유일한 약점인 글루텐 알레르기를 극복한 조코비치의 체력은 거의 슈퍼맨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혁은 1월의 두 경기를 출전하고 나서 3월의 마스터즈까지 적당한 ATP 250, 500급 대회를 골라서 참가하면서 시즌 초반을 보냈다.

상금보다 경기력 유지 차원에서 참가한 대회들이었다.

***

2012년 3월, 미국 플로리다 주.

지혁은 세 번째 인디언 웰스 오픈을 참가하기 위해 일주일이나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시차 적응을 완벽하게 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려면 이렇게 일정을 여유롭게 잡는 게 편했다.

“지혁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너랑 훈련을 하고 싶어 하는 탑랭커들이 엄청 많아. 하긴 어떤 선수가 빅4와 연습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겠어.”

“저번보다 선택지가 많아서 좋네요.”

“이제 플로리다에 왔으니까 누굴 고른 건지 빨리 말해 줘. 이틀 뒤부터 파트너랑 조금씩 실전 감각을 다져야 해.”

“제가 원하는 선수는 바브린카예요. 조코비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스트로크를 가진 베이스라이너가 제일 좋은 훈련 상대이니까요.”

“바브린카라. 훌륭한 선택이네. 코치들도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던 후보진이었어.”

박 코치와 5명의 코치진들은 지혁이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밀리는 조코비치를 공략하기 위해 몇 개월에 걸쳐 분석을 지속했다.

이제 조코비치만 쓰러트리면 모든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그랜드슬램을 정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패인은 체력과 랠리의 지속성이야.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그래도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여기서 제 백핸드가 포핸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완되면 승률이 비슷하게 올라가겠죠?”

“음···. 내 생각으로는 미세하게 불리한 느낌인데. 정확한 건 내부적으로 의논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거야. 만약 그게 궁금하다면 내일까지 코치들하고 분석해서 알려줄게.”

“부탁할게요. 가장 효율이 높은 방향을 찾고 싶거든요.”

빅4급 선수가 갑자기 백핸드 실력을 상승시키는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박 코치는 이때까지 지혁이 보여준 기적들을 바로 옆에서 산증인으로 경험했기에 어떤 비현실적인 일도 철석같이 믿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지혁에게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니시코리의 성적이 심상치 않더라. 작년과 차원이 다른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아마 남은 시즌이 잘만 풀리면 ATP 랭킹 5~7위까지도 찍을 수 있을 걸?”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작년 12월에 연습 경기를 하고 나서 느낌이 왔거든요.”

“그래서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

“냉정하게 잠재력으로 따지면 5위 정도겠죠. 가끔 대진운이 좋거나 빅4 중에 한, 두 명이 부상으로 부진한다면 3위도 가능하겠고요.”

“음···. 머레이급으로 보고 있구나? 전문가들의 의견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네.”

“네. 조건만 잘 맞아떨어지면 그랜드슬램에서 반짝 우승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요.’

지혁은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니시코리는 부상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슬럼프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만날 때마다 여러 차례 주의를 줬지만 지금까지 미래가 달라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니시코리의 플레이 스타일인데 해결될 리가 없었다.

이틀 뒤, IMG의 사설 테니스 코트.

바브린카는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지혁을 만나기 위해 훈련장에 방문했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온 걸 보면 그도 이번 협력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리, 오랜만이야. 다시 볼 때마다 랭킹이 상승하던데? 이제 세계 랭킹 1위라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지만 말이야. 다음번에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도 달성하는 거 아니야?”

“다른 빅4가 버티고 있는데 어렵죠. 조코비치가 순순히 당해주겠어요? 그런데 저번 롤랑 가로스 이후로 처음으로 만나는 거죠?”

“그래. 네가 큰 부상당했던 그 대회. 그때 페더러가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 자신을 탈락시킨 선수인데도 너를 앞으로 테니스계를 이끌어갈 미래라고 하며 극찬했거든. 당시에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1위를 찍으면서 내 예상을 박살 내버리더라.”

“영광이네요.”

예전의 바브린카는 질투심에 휩싸인 모습으로 지혁에게 경쟁심을 불태웠지만 지금은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

아마 두 사람의 격차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자 과감하게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그냥 다른 빅4들처럼 하늘 위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경쟁 상대에서 배제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나름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동안 엄청난 숫자의 탑랭커들이 지혁의 공략법을 찾으려고 하다가 수도 없이 머리가 깨졌으니 말이다.

“내 실력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너를 의식하지 않기로 했어. 그래서 훈련 파트너도 제안한 거야. 어차피 대회에서 만나면 내가 질 게 뻔하니까.”

담담히 자신의 결정을 말하는 니시코리의 모습에 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10위대의 현역 탑랭커가 저런 말을 하는데 속마음이 멀쩡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당히 씁쓸할 게 분명했다.

“나를 파트너로 골랐으니 이번 대회에서 네 최종적인 목표는 조코비치겠지?”

“맞아요. 조코비치처럼 폭발적인 위력의 스트로크를 가진 선수는 정말 소수니까요. 한동안 고민을 했지만 저는 바브린카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최근 그는 완벽 그 자체인데 너도 엄청 고생하는구나.”

“아무래도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노력해야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 골든 보이,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새삼 괴물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네.”

한동안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선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훈련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서로 특정 상황을 재연해주며 취약한 부분이 익숙해질 때까지 플레이를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감각을 맞춰 놓으면 경기를 적응하는 시간 없이 단번에 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탕!!

무시무시한 궤적을 그리며 비어있는 베이스라인을 강타하는 바브린카의 백핸드.

비록 풋워크나 다른 샷들의 숙련도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지만 확실히 이거 하나만큼은 조코비치와 견줄만했다.

‘역시 바브린카랑 연습을 하니까 백핸드 대응 훈련이 되네.’

그렇게 선수들이 훈련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지혁의 코치들은 긍정적인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디언 웰스 오픈은 지혁이가 무난하게 우승하겠네. 저 정도 실력이라면 별다른 변수가 없겠어.”

“애초에 불리한 건 그랜드슬램이었지 마스터즈는 우승할 확률이 높았어.”

“그래. 지혁이는 단기전에서 무적의 실력을 보여주니까. 그걸 5세트까지 확장시키지 못하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심리적인 이유일까? 멀쩡하게 5세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많았잖아.”

“물리적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니 그렇겠지. 어쨌든 나는 집중의 차이라고 생각해. 슈퍼 플레이를 많이 보여줄수록 빨리 지치더라고.”

“잠깐 생각해보니까 진짜잖아? 끝내주는 샷을 보낼 때마다 좋다고 환호했는데 설마 그런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그냥 얻어지는 건 정말 없구만.”

후웅! 쿵!!

날카로운 코스의 백핸드를 간발의 차이로 놓치는 지혁.

라켓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우자 훈련장은 아주 잠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런 상황이 나온 건 지혁이 엄청난 핸디캡을 감수하고 있어서였다.

한정된 범위와 오직 백핸드로 날아오는 공만 받아치면 되는 바브린카와 달리 현재 그는 코트 전 범위를 커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바브린카도 작년에 비해 실력이 엄청 늘었잖아? 나이도 지혁이보다 8살이나 많은데 신기한 선수네. 보통 저런 케이스는 극히 드물잖아.”

“아무래도 대기만성형의 선수인가 봐. 30살이 돼서야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는 미완의 대기인 거지.”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설마.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 거 아니야?”

바브린카의 뛰어난 경기력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농담을 하는 코치들.

정확한 속마음을 살펴보면 아무도 그가 대기만성형의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그들의 말이 맞았다.

바브린카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잠재력이 폭발하는 선수였던 것이다.

‘30살과 31살에 그랜드슬램을 세 번이나 우승하는 걸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있겠지.’

한 번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세 번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실력이었다.

‘2014년과 2015년을 한정으로 하면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와 견줘볼 만한 선수야.’

지혁이 괜히 그를 파트너로 고른 게 아니었다.

이런 뒷배경이 있었기에 랭킹이 더 높은 선수들을 전부 제치고 바브린카가 선택될 수 있었다.

‘니시코리가 그랬던 것처럼 바브린카도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확률이 높아.’

지금의 테니스계는 지혁으로 인해 원래 역사와 많이 달라졌기에 탑랭커들에게도 변화가 생기는 게 이치상 당연했다.

쿵!!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잡생각을 떠올려서일까.

바브린카의 위닝샷 빈도는 급격하게 치솟았다.

그 이질적인 상황에 주변에서는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야. 훈련이나 신경 쓰자. 내가 이번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는 조코비치니까.’

얼마 후, 지혁의 플레이는 다시 처음과 비슷해졌다.

그 결과 코치들의 의문이 담긴 시선도 자연스럽게 거둬졌다.

비슷한 광경이 반복되며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었지만 이런 과정이 있어야 승리의 달콤함도 누릴 수 있는 법이었다.

여기서 바브린카가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지만 그를 위한 맞춤 훈련은 따로 해주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아마 그의 요구사항은 적잖은 탑랭커들이 주무기로 사용하는 탑스핀 스트로크와 고속 서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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