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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89화 (189/241)

189화. 예상 밖의 행운

존 이스너와의 준결승이 끝나고 하루 뒤.

인디언 웰스 오픈은 마지막 순간까지 테니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놀랄 만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페더러가 존 이스너에게 8강에서 탈락했던 것처럼 조코비치가 준결승 상대인 델 포트로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덕분에 지혁은 졸지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선수와 경기를 하게 되었다.

조코비치에게 당한 패배를 되갚아주기 위해 코치들하고 전략까지 단단히 준비했는데 말이다.

“싱겁게 됐네요. 설마 델 포트로가 최종 라운드에 올라올 줄이야···.”

“나달하고 조코비치를 연달아 패배할 줄 누가 알았겠어? 2009년 US 오픈에서 우승했던 때가 떠오르던 경기력이었어. 남미의 황제라고 불리는 게 완전히 허명이 아니더라고.”

“그동안 재활을 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던 걸로 아는데 이제 부상을 회복했나 보네요.”

“어. 이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선수 목록에 델 포트로도 추가해야겠어. 만약 정상 컨디션이라면 앤디 머레이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니까. 부상 이후로 2년이나 지났으니 슬슬 타이틀 경쟁에 복귀할 때도 됐지.”

준비해놓은 작전들이 전부 폐기해야 할 상황이 닥쳤지만 지혁과 코치들의 분위기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조코비치를 피할 수 있다는 호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대 선수가 결승에서 본래 실력 이상으로 활약을 해봤자 어차피 원래 각오하고 있던 경기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만약 오늘 조코비치의 포핸드 컨디션이 엉망이 아니었다면 델 포트로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일도 없었겠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너를 제외한 다른 빅4들이 첫 마스터즈부터 전부 중도탈락하다니 말이야.”

“뭐, 가끔 일어나는 상황이잖아요. 어떤 선수도 모든 대회에서 우승할 수는 없으니까요.”

“음······. 확실히 네 말대로 워낙 대회의 숫자가 많긴 하지.”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빅4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는 상황은 시즌 중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이미 경기를 봐서 알고 있겠지만 너는 델 포트로하고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아. 힘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선수는 네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잖아. 그래서 존 이스너와 했던 경기도 내켜하지 않았던 거고.”

코치의 말대로 지혁은 강력한 힘으로 스트로크를 코트 깊숙이 보낼 수 있는 선수를 가장 싫어했다.

이런 스타일의 선수에겐 가장 자신 있는 무기인 리버스 포핸드와 코트 커버력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서였다.

천천히 상대 선수를 말려 죽이는 지혁에게 폭발적인 포핸드와 탄탄한 수비력을 갖춘 델 포트로는 극상성이었다.

델 포트로가 지혁과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나달, 소더링, 조코비치하고 유독 상대 전적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랠리를 길게 끌고 가지 않으면 괜찮을 거예요. 제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절대 아니에요.”

“하긴 수비만 주구장창하는 베이스라이너들하고 다르게 너는 공격 옵션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별문제는 없겠지.”

“후···. 미리 준비한 수비 전략은 아쉽지만 버려야겠네요.”

“다음 대회에서 조코비치를 만났을 때 써먹으면 되지. 그러니까 완전히 헛수고를 한 건 아니야. 내일은······.”

그렇게 지혁과 코치들은 갑작스럽게 상대하게 된 델 포트로를 결승전에서 쓰러트리기 위해 급하게 공략 방법을 논의했다.

물론 전혀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의 지혁이 패배할 확률은 아주 낮았지만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 선수에게 맞는 마음가짐이었다.

***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인디언 웰스 오픈 결승전 당일.

지혁과 델 포트로는 경기장에 막 도착해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관중들은 한창 하위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 정상인 만 17살, 22살의 어린 선수들이 마스터즈의 우승 트로피를 두고 경쟁하는 게 어색한지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통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들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에 분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테니스계도 많이 바뀌었구만. 막 프로에 데뷔하는 나이의 선수가 ATP랭킹 1위라니 말이야. 그러고 보니 델 포트로도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19살쯤에 했었지?”

“맞아. 20살이 되기 11일 전이었지.”

“페더러의 시대가 저물고 다시 천재들의 시대가 열렸구나. 조코비치랑 나달도 23, 24이니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심심할 틈이 없겠어.”

“부디 남미의 황제, 델 포트로가 새로운 빅4의 멤버로 들어가 줬으면 좋겠네. 경쟁자가 많을수록 대회가 재밌어질 테니까.”

“만약 이번 웰스 오픈에서 골든 보이를 꺾고 우승한다면 네 생각대로 될 가능성이 높겠지. 빅4 중 3명을 탈락시키고 얻어낸 우승을 단순히 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정해진 시간이 되자 결승전은 조금도 지체되지 않고 곧바로 시작했다.

쾅!!

지혁은 시작부터 며칠 전의 존 이스너가 연상되는 플랫 서브를 반대편 서비스 코트에 정확하게 떨어뜨렸지만 그걸로 에이스가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결승전인 만큼 델 포트로의 준비태세와 집중력이 완벽했던 것이다.

나달, 조코비치를 탈락시키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선수가 상식적으로 만만할 리가 없었다.

탕!! 탕!! 탕!!

“하앗!”

쿵!!

[피프틴 러브.]

긴 혈투 끝에 어렵게 첫 포인트를 가져오는 지혁.

관중들은 그 결과에 드디어 숨 돌릴 틈을 얻은 건지 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일방적인 경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결승전을 기대해봐도 되겠는 걸? 델 포트로의 실력이 기대 이상이야.”

“그래.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하는 추태를 보이진 않겠어.”

[게임 리 1-0.]

[게임 델 포트로 1-1.]

[게임 리 2-1.]

선수들은 몇 차례의 짧은 게임을 하고 난 후, 벤치로 걸어 들어갔다.

브레이크가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 누가 유리하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존 이스너도 그렇고 역시 키가 큰 선수는 힘이 무식하게 세단 말이야.’

198cm의 거구가 탑10급 라켓 컨트롤과 코트 커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승기를 가져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브나 스트로크의 위력 자체는 존 이스너보다 약간 부족하지만 델 포트로의 기본기는 피지컬에만 의존하는 빅 서버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다.

역시 그가 2009년에 세계 랭킹 3위를 찍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지혁이 벤치에 앉자 관중석에서는 이때까지 참아왔던 말들이 쏟아졌다.

“와! 델 포트로 진짜 대단하네. 저 골든 보이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스코어를 대등하게 유지하다니 다시 봤어. 누가 저 선수를 고작 30위라고 생각하겠어?”

“아무래도 재활을 하는 동안 실력을 완벽하게 되찾은 모양이야. 아니, 골든 보이랑 대등하게 경기를 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더 강해진 건가?”

“심각한 부상을 극복하고 메이저 대회인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를 다시 탈환한다라···. 정말 상상만 해도 멋진 스토리인데.”

“그가 골든 보이를 이기고 이번 대회에서 기적을 써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델 포트로는 지난 2년 동안 손목 부상으로 생고생을 했기에 상당 수의 팬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언더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의 입장을 자신에게 대입해서 공감을 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위대한 업적들 덕분에 지혁의 팬 비율은 델 포트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오늘 경기를 한정으로 응원의 방향이 달라졌다.

[서브 델 포트로.]

“하앗!”

쾅!!

지혁의 플랫 서브와 거의 엇비슷한 속도로 T존을 강타하는 델 포트로의 서브.

라켓 컨트롤은 지혁 쪽이 훨씬 더 정교해도 십여 cm 높은 타점에서 임팩트된 상대의 타구는 깊이가 날카로워 어중간해 보이는 바운드 위치와 어울리지 않게 처리하기 상당히 까다로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치는 서브보다 빠르지. 나는 텐션이 낮은 라켓으로 쳐야 이 정도 속도를 간신히 뽑아낼 수 있으니까.’

랠리에 어울리는 라켓으로 230km가 넘는 숫자를 전광판에 찍어 버리다니 정말 타고난 재능충이다.

보통 스트링의 텐션이 높으면 컨트롤, 느슨하면 파워인데 델 포트로의 라켓은 누가 봐도 짱짱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게임 델 포트로 2-2.]

‘탐색전을 하지 않고 곧바로 브레이크를 따내는 건 어렵겠어.’

***

같은 시간 한국의 어느 테니스 커뮤니티.

인디언 웰스 오픈은 그랜드슬램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경기였기에 국내 스포츠 방송국은 중계권을 흔쾌히 구매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의 단일 경기와 비교하면 가격이 꽤나 비쌌지만 지혁이 출전하는 대회는 적어도 손해를 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국내 테니스 팬들은 지난 중국의 베이징 오픈처럼 도방을 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실시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ㅡ 델 포트로 언제 실력이 저렇게 는 거냐? 이지혁이랑 비슷비슷한 수준인데? 고속 서브하고 스트로크 센스 진짜 미쳤다. 특히 포핸드는 탑3 안에 무조건 들어갈 듯. 저 이지혁이 역동작에 걸리고 있잖아.

ㅡ 아직 초반이라 봐주는 거 아님? 게임 스코어도 이제 3-3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너무 이른데.

ㅡ 지금 당장 숨 넘어갈 것 같은데 저게 어딜 봐서 적당히냐 ㅋㅋㅋ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ㅋㅋㅋㅋㅋ

ㅡ ㅇㅈ 저 모습이 설렁설렁하는 거면 진작에 저 두 사람이 랭킹 1, 2위 차지하고 있었겠지. 아···. 그러고 보니 이지혁은 1위가 맞았지···.

ㅡ 이거 명경기 냄새가 나는데? 내 날카로운 촉이 말해주고 있음. 전반기 최고의 명경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제대로 든다.

ㅡ 명경기든 뭐든 중요한 건 전부 델 포트로한테 달려있다. 이지혁이 전력을 다하는 플레이를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하이라이트에 들어갈 테니까.

ㅡ 조코비치랑 하는 슈퍼 매치는 애초에 기대도 안 하니까 다른 빅4랑 비슷한 수준의 경기력만 보여줬으면 좋겠네.

ㅡ 솔직히 행복회로를 불탈 때까지 돌려도 무결점은 무리지 ;; 조코비치는 인간이 아니고 신이잖아.

테니스 팬들은 델 포트로가 지혁을 상대로 생각보다 잘 버티자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경기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런 의견들의 신빙성이 높아져갔다.

사정을 봐주는 것도 한, 두 게임이지 1세트 후반까지 게임 스코어가 똑같이 유지되며 난타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혁은 가지고 있는 실력을 대부분 발휘하고 있었다.

빅4 대전에서만 사용하는 찰나를 제외하고 모든 공격 옵션을 동원했음에도 승기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이걸 보면 델 포트로가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뼈를 깎는 트레이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 그의 ATP 랭킹이 30위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최소한 7위를 찍을 게 확실했다.

운과 상황만 따라준다면 5위 안도 가능할 테고 말이다.

그리고 2009년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3위도 찍을 수 있겠지.

이미 한 번 밟아놓은 경지니 못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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