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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90화 (190/241)

190화. 예상 밖의 행운

반대편 코트 베이스라인 부근에서 직선으로 쏘아지는 델 포트로의 포핸드,

탑랭커들 사이에서도 감탄사가 터져 나온 그 스트로크는 어디에 바운드될지 알고 있는데도 지혁이 받아낼 수가 없었다.

포핸드의 스피드가 너무 빨라서 풋워크로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지혁은 제자리에서 가만히 선 채 세트 포인트가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세트 델 포트로.]

와아아아아!!

관중들은 언더독으로 취급받던 델 포트로가 1세트를 가져가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가 슬럼프의 원흉인 손목 부상을 완벽하게 극복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요즘 빅4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로 평가받는 지혁에게 세트를 한 번이라도 따낼 수 있겠는가.

평범한 탑랭커들과 급이 다른 탑10 선수들도 지혁보다 먼저 세트를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쏟아지는 찬사를 받으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델 포트로.

지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벤치로 묵묵히 걸어갔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표정에서는 패배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내 예상보다 잘하긴 해···.’

하지만 이기지 못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조코비치가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실력으로 가볍게 찍어 눌렀겠지.

“와아! 델 포트로가 이겼어!”

“이제 우승까지 한 세트만 남았네. 작년이랑 몇 개월 전을 생각하면 실력이 너무 달라졌는 걸.”

“드디어 재활이 끝난 거지. 2년 전에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이 정도 실력은 당연한 거야. 그는 무려 US오픈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라고. 그것도 결승에서 무시무시한 승률을 자랑하는 페더러를 꺾고 얻어낸 업적이야.”

“확실히 그 당시 페더러가 델 포트로를 자신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될 거라고 해서 엄청 떠들썩하긴 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부상으로 입지가 바닥까지 무너졌지만.”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골든 보이도 지금 위치에 쉽게 올라가진 못했을 거야. 델 포트로가 중요한 시기에 빠져줘서 방해를 받지 않고 ATP 랭킹 1위에 올라간 거라고.”

“글쎄···. 빅4가 있어서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은 아니네. 델 포트로의 전성기라고 해봤자 세계 랭킹 3위였으니 말이야. 그래도 방금 보여준 실력이 재작년보다 나아진 건 확실해. 이번 시즌에 랭킹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하네.”

과반수가 넘는 관중들은 가능하다면 델 포트로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길 원했다.

솔직히 지혁이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우승하는 건 너무 뻔한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오는 게 더 재밌었다.

“음···. 델 포트로의 경기력이 정말 좋네. 그래도 후반에 가면 골든 보이한테 역전을 당하겠지만.”

“그렇겠지. 아직 진짜 실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문가인 현역 선수들과 코치들은 대다수의 관중들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지금까지 경기는 탐색전이고 본 경기는 2세트부터야. 골든 보이는 기복이 거의 없는 선수라 조코비치처럼 컨디션 난조를 기대하기도 힘들어.”

“경기장의 분위기가 꽤 나빠지겠네. 팬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잖아.”

“어쩌겠어. 이게 현실인데. 영화도 아닌데 기적이 쉽게 일어나겠어?”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결국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지혁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근처에 앉은 다른 프로 선수들과 코치들이 반발하지 않는 걸 보면 전문가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한 듯했다.

하긴 지혁이 지난 1년 간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나 당연한 대우였다.

비록 US 오픈, 호주 오픈의 트로피를 조코비치에게 내줬지만 그 전의 그랜드슬램은 무려 4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으니 말이다.

***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지혁의 서비스게임으로 시작한 2세트.

델 포트로는 세트 스코어를 앞서고 있는 탓인지 자신감이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에서 본인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기세를 꺾어놓아야겠구만.’

프로 선수가 기세를 한 번 타면 경기력이 무서울 정도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2세트부터는 탐색전을 끝내고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야겠다.

웬만하면 찰나가 없이 이기고 싶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건 힘들 것 같았다.

‘가장 자신 있어하는 포핸드부터 무너트리면 되겠지. 포핸드가 막히면 그다음에 어떻게 플레이할지 궁금하네.’

델 포트로는 천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니 싱겁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혁은 이후의 일에 큰 기대를 가지고 서브를 시작했다.

쾅!!

굉음을 내며 T존 라인을 때리는 서브.

이미 1세트에 질리도록 보여준 기술이라 결과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무난하게 리턴이 되어서 지혁의 코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 와중에 가장 먼 반대쪽 사이드라인으로 날아가는 게 처리하기 제법 까다롭다.

200km를 훌쩍 넘는 서브를 리턴하면서도 다음 스텝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단순히 에이스를 막는데만 신경 썼다면 분명히 정면이나 근처로 떨어졌을 테니 말이다.

타다다다!

지혁은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며 랠리를 진행했다.

그렇게 스트로크 횟수가 쌓일수록 델 포트로의 포핸드가 진가를 발휘했다.

여러 스트로크 기술들이나 풋워크, 기본기가 월등히 뛰어난 지혁이 조금씩 스트로크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부 저 무서운 위력의 포핸드와 감각적인 플레이 때문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조금씩 밀리는구나.’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1세트처럼 패싱샷이나 크로스샷에 점수를 빼앗길 것이다.

탕!! 탕!! 탕!!

예상한 대로 지혁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더 심해졌다.

그렇게 랠리의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델 포트로에게서 그림 같은 포핸드 크로스샷이 나왔다.

이때까지 위닝샷을 수도 없이 허용했던 기술이었다.

보통 이런 수준의 스트로크는 어디로 날아올지 알고 있어도 못 막는다.

눈썰미가 좋은 몇몇 관중들도 그걸 아는지 이미 끝났다는 표정이었다.

타다다다! 탕!!

“······?”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코트에서는 풋워크 소리와 라켓에 공이 맞는 소리가 들렸다.

지혁이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괴물 같은 움직임으로 델 포트로의 포핸드를 받아낸 것이다.

심지어 스트로크의 위력마저 사람들이 놀랄 만큼 대단했다.

[피프틴 러브.]

담담한 표정으로 판정을 내리는 체어 엠파이어.

슈퍼 플레이에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관중들은 스피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들 중 지혁의 열렬한 팬들은 드디어 시작했다는 반응이었다.

“골든 보이가 이제야 재실력을 보여줄 마음이 생긴 모양이네. 이제 경기의 분위기가 금방 뒤바뀔 거야.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역전하겠지.”

“아니, 저걸 의도한 거라고? 실력이 아니라 그냥 우연으로 나온 플레이 아니야?”“만약 지금 경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다른 선수라면 네 말이 맞겠지. 하지만 골든 보이는 그런 평범한 선수랑 다르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 확실히 지금까지 테니스계에 없던 천재이긴 하지. 저 나이에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은 건 다른 빅4들조차도 불가능했으니까.”

물론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델 포트로도 엄청난 천재였지만 비교 대상이 지혁이라면 그 빛이 많이 바랬다.

“그럼 이제부터 리가 역전한다는 거야? 이미 한 세트를 내줘서 스코어도 많이 불리한데?”“못할 것도 없지. 항상 유리했던 경기만 한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이번 대회는 마스터즈야.”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일행의 말에 입을 다무는 남자.

지혁은 세트가 많은 그랜드슬램보다 단기전인 마스터즈에서 강세를 보였기에 나름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

마스터즈에서는 현재 최강인 조코비치조차 지혁에게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 전적이 앞서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임 리 2-0.]

지혁은 2세트가 시작하고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전 세트에서도 나름 괜찮았지만 지금은 어째서 그가 현재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듯했다.

퉁!

네트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드롭샷.

델 포트로는 급하게 방향 전환을 하느라 하드 코트에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달려왔지만 낮게 바운드되는 공을 시간 내에 걷어내지 못했다.

통. 통. 통.

[게임 리 3-0.]

그렇게 세 번 연속으로 게임을 가져오자 경기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지혁이 패배할 거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다문 것이다.

솔직히 제대로 눈이 달렸다면 지금 상황에서 델 포트로가 이길 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터벅터벅···.

기운이 없는 모습으로 벤치로 걸어 들어가는 델 포트로.

그는 고작 십여분 만에 자신만만하던 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

자비 없이 몰아붙이는 지혁의 실력 행사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경기가 너무 빨리 뒤집어진 거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력 차이가 더 나는 거지.”

“역시 델 포트로도 골든 보이한테는 안 되는구나. 지금까지의 성적이랑 랭킹을 고려하면 이게 당연한 결과이긴 하네. 그랜드슬램 1회 우승은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4회는 실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응원하던 선수가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이자 한동안 꿈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빠르게 현실로 복귀했다.

돌아가는 상황 덕분에 지혁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깨달은 것이다.

“아직 스코어는 델 포트로가 이기고 있지만 전혀 유리한 느낌이 안 드네···.”

“그래. 이게 빅4지. 이들은 원래부터 다른 선수들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실력자였잖아.”

[게임 리 4-1.]

[게임 리 5-2.]

그렇게 2세트의 스코어는 점점 쌓여갔다.

중간중간 델 포트로의 강력한 반격이 돌아왔지만 전세를 뒤집기에는 실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자신의 서비스게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브레이크를 따내는 게 가능하겠는가.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세트 리.]

결국 지혁은 어프로치샷과 발리를 이용한 연계 플레이로 경기를 동점까지 따라잡았다.

2세트의 최종적인 스코어는 6-2.

1세트가 7-5까지 가는 접전이었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결과였다.

짝짝짝짝.

워낙 충격적이고 일방적인 경기라서 그럴까.

훌륭한 경기력에 비해 박수 소리가 작게 들렸다.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골든 보이의 경쟁자는 조코비치밖에 없겠어. 저 델 포트로도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니···.”

“차라리 결승전에 조코비치가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훨씬 더 좋은 경기를 볼 수 있었을 거야.”

“아마 다음 마스터즈는 그렇게 되겠지. 컨디션이 1년 내내 안 좋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추세대로 몇 년 정도 지나면 더 심각해지는 거 아니야?”“그러지 않길 빌어야지. 우승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대회를 보는 재미가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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