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94화 (194/241)

194화. 앤디 머레이

[세트 리.]

지혁의 포핸드가 라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치자 인 판정을 내리고 2세트를 종료하는 체어 엠파이어.

1세트보다 큰 점수 차이에 관중석의 분위기는 경기 초반보다 뒤숭숭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승부가 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혁을 상대로 2-0에서 역전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겠는가?

적어도 지금 관중들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탑랭커는 조코비치 말고 없었다.

퍽! 퍽! 퍽!

머레이는 자신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에 짜증이 나는지 허벅지를 주먹으로 몇 번이나 때렸다.

2세트 중간에 라켓을 하나 박살 낸 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관중들도 꽤 있었지만 대다수는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사실 어떤 선수라도 저 자리에서 지혁을 상대하고 있었다면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지혁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베이스라이너의 천적 같은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상급 카운터 펀쳐가 카운터로 위너를 당하고 있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제 1세트 남았네. 남은 경기에서 갑자기 역전이 나올 것 같진 않은데······.”

“응. 지금 앤디의 실력으로 골든 보이를 이기는 건 힘들 것 같아. 냉정하게 기량 차이가 너무 나.”

“그런데 빅4의 벽이 이렇게 높았었나. 물론 이때까지 언론에서 귀가 따갑도록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것보다 리가 특별한 거겠지. 최근 다른 빅4들이랑 한 경기의 내용은 나름 괜찮았잖아.”

비록 상대 전적은 낮았지만 그건 당연했다.

탑10급 선수는 전부 처지가 비슷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머레이의 승률은 그들에 비해 훨씬 나았다.

“오늘 경기는 많이 힘들어 보이니까 머레이가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겠어.”

“그래도 아직 이번 시즌이 많이 남아있어. 애초에 롤랑은 머레이의 주무대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지.”

“망할 클레이. 이런 이상한 재질의 코트보다 영국처럼 잔디 코트가 많았으면 좋으련만. 매번 특정 선수들이 너무 이득을 보고 있잖아.”

“맞아. 맞아. 롤랑처럼 편파적인 대회는 가치가 낮아. 누가 뭐래도 가장 권위가 높은 그랜드슬램은 윔블던이니까 잔디 코트를 사용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가장 의미있지.”

영국인 관중들은 잔디 코트도 마찬가지인 것을 애써 외면하며 롤랑의 조건을 욕했다.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머레이의 처참한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머레이가 그랜드슬램 우승 문턱에서 넘어진 횟수가 너무 많아서 인내심이 바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

3세트에서 먼저 서비스게임을 시작한 선수는 머레이였다.

이미 말릴 대로 말린 경기 상황은 도저히 회복하기 힘들어 보였다.

[러브 포티.]

머레이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스코어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서브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연달아 위너를 허용했다.

그 무력한 모습에 머레이의 승리를 믿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마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모든 관중들은 롤랑 가로스 8강전이 3-0으로 끝날 거라고 확신했다.

[게임 리. 1-0.]

별다른 반전도 없이 지혁의 브레이크가 성공하자 이마에서 땀을 후두둑 떨어트리는 머레이.

안 그래도 멘탈이 약한 그는 정신적인 부담감과 극심한 체력 소모 때문에 엄청 지쳐 보였다.

[서브 리.]

쾅!!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227km/h]

쾅!!

[서티 러브.]

[SERVE SPEED: 225km/h]

아아아아···.

그렇게 지혁이 새로운 라켓을 꺼내 에이스를 성공시키고 있을 때.

갑자기 경기장에서 커다란 탄식 소리가 들렸다.

한창 랠리 중이던 머레이가 크게 넘어지는 사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가 중단되고 메디컬 타임이 나올 만큼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다.

“윽···.”

의료진이 부상당한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신체검진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머레이.

왼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부상이 큰 모양이었다.

그나마 무릎이나 주력으로 사용하는 오른손이 아닌 게 다행이지만 양손 백핸드를 사용하는 선수에게 왼팔을 다친 것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이제 진짜 끝났네. 저런 상태로 경기를 어떻게 해.”

“경기에서 져도 괜찮으니까 부디 시즌 아웃을 당할 정도로 다친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동감이야. 부상 때문에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머레이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되지.”

“앤디, 제발······제발···.”

관중들은 메이컬 타임이 끝날 때까지 손을 모으며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멀쩡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인지 머레이는 바로 기권을 하지 않고 코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휴······. 다행이다. 경기를 하는 걸 보니 크게 다친 건 아닌가 봐.”

“멀쩡한 상태로 끝나기만 하면 돼.”

그들은 큰 걱정을 덜었다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메디컬 타임이 선언되고 의료진들이 달려오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에 비해 머레이의 상태가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괜찮은 게 맞나? 분명 엄청 위험하게 넘어졌는데.’

프로 활동을 하면서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을 워낙 많이 보기도 했지만 지혁도 비슷한 사고를 몇 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어서 지금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뭐, 운이 좋았나 보네. 그게 아니면 몸이 유난히 튼튼하던가.’

뭐가 어떻게 됐던지 큰 부상만 아니라면 됐다.

경기를 하고 있던 입장에서 상대 선수가 갑자기 시즌 아웃을 당해버리면 굉장히 찜찜할 테니 말이다.

상황이 수습되자 지혁은 굳이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서비스게임을 다시 재개했다.

한창 집중하던 도중에 흐름이 끊겨서 서브의 코스는 조금 안정적인 위치를 골랐다.

탕!! 탕!! 탕!!

그렇게 경기가 진행되길 잠시.

지혁과 관중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머레이의 상태가 심각하다!

가볍게 처리해야 할 스트로크들도 어렵게 걷어내는 모습을 보면 바보도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턱!

결국 네트 상단에 걸려서 떨어지는 머레이의 포핸드.

선수들이 랠리를 하는 동안 숨을 참아왔던 관중들은 승부가 결정되자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다.

[게임 리 2-0.]

[게임 리 3-0.]

이후 3세트의 스코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쌓였다.

애초에 눈에 띄게 떨어진 경기력으로 지혁의 스트로크를 막아내는 게 말이 안 되었다.

머레이를 응원하던 관중들은 그 초라한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이미 패배가 결정되었는데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렛츠 고 앤디! 렛츠 고 앤디!

1세트보다 더욱 커진 응원 소리는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제 그들에게 롤랑 가로스 8강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왠지 악역이 된 느낌이네.’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없는데 꺼림찍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아마 머레이의 홈그라운드인 윔블던에서 그를 상대한다면 이런 느낌이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빨리 끝내주는 게 머레이를 도와주는 거야. 괜히 경기가 길어지면 부상이 심각해질 테니 말이야.’

지혁은 일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페이스를 유지했다.

관중석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영국인들도 무서운 기세로 스코어가 쌓여가자 서서히 질린 표정으로 변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경기력에 자신도 모르게 경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임 리 5-0.]

결국 경기는 마지막 게임을 남겨두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머레이의 몰골은 몰라보게 초라해졌다.

다친 왼팔을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이 뛰어다니느라 어쩔 수가 없었다.

[서브 머레이.]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경기를 시작하는 머레이.

이전 게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라 지혁은 여유로운 태도로 리턴을 준비했다.

탕!!

그렇게 지혁이 간단하게 리턴을 성공하고 나서 랠리에 들어가는 경기.

관중들은 아무런 기대 없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스트로크의 횟수가 15구를 넘어가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길어도 7, 8구쯤에서 위닝샷이 나왔던 터라 지금 상황이 낯설었던 것이다.

[피프틴 러브.]

와아아아아!!

팬들은 오랜만에 머레이가 득점하게 되자 거대한 함성을 질렀다.

“와! 완벽한 백핸드 위너였어. 저 골든 보이도 따라가지 못했다고.”

“정말 대단한 끈기네. 역시 내가 응원하는 선수야.”

“영국을 대표해서 윔블던을 되찾아올 영웅인데 당연하지. 머레이는 국내의 다른 조무래기들과 달라.”

“경기는 이미 기울어버린 지 오래지만 이렇게 된 거 골든 보이에게 한 방 먹여주자!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주자고.”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온 위닝샷은 관중석의 분위기를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지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를 하고 있네. 굳이 안 해도 되는 짓인데 말이야.’

원래 머레이는 부상당한 왼팔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기 위해 한 손 백핸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경기가 싱겁게 변해버린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사이드라인을 강타하고 지혁에게 위닝샷을 따낸 스트로크는 분명 조코비치에 이어서 최강의 백핸드로 평가받고 있는 머레이의 양손 백핸드였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거리를···. 이런다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하면 경기가 아니라 이번 서비스게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다.

지혁은 느슨하게 풀려있던 고삐를 잡고 제대로 플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대의 부질없는 미련을 끊어버리려면 실력 행사가 답이었다.

적당히 하던 태도를 집어치워서일까.

경기의 수준은 이전과 차원이 달라졌다.

쿵!!

“”······.“”

서비스게임을 끝내는 위닝샷에 조용해지는 코트.

스피커에서는 한 박자 늦게 판정이 들렸다.

[게임 머레이 1-5.]

모두의 예상을 깨고 6게임의 승자는 머레이였다.

‘설마 브레이크가 실패할 줄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부상당하기 전보다 오히려 더 잘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실력을 보여줬다면 한 세트 정도는 내어줬겠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힘들겠네.’

억지로 양손 백핸드를 사용한 대가는 컸다.

머레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왼쪽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 상태에서 베이글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게임을 내준 건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전세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지혁은 그저 패자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여기고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어차피 다음은 그의 서비스게임이라서 머레이가 방금 같은 플레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패배할 가능성은 0%였다.

그러니 아주 작은 흠 정도는 관대하게 넘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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