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05화 (205/241)

205화. 런던 올림픽

경기의 내용은 2세트에 들어가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머레이가 지혁의 백핸드에 간간이 실점하는 장면이 계속 나온 것이다.

나름 잘 버티는 것 같았지만 지금 그의 실력으로 런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건 명백히 무리였다.

쿵!!

[게임 리 3-1.]

반박자 빠르게 임팩트되는 지혁의 백핸드.

코트 오른쪽에 떨어진 그 스트로크는 가볍게 포인트를 따내었다.

이건 샷의 위력보다 고도의 심리전을 이용해 상대의 역동작을 유도한 덕분이다.

머레이는 자신의 생각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자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결승전에서 이런 상황이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솔직히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갑자기 멀어졌는데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끝났구만······. 도저히 역전할 것 같지가 않아.”

“내 착각인가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꽤 나는 느낌이야. 리가 위닝샷이랑 브레이크를 너무 쉽게 얻어내잖아. 혹시 이번 올림픽에서 앤디의 컨디션이 유독 나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데.”

“컨디션 난조? 저 무시무시한 플레이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건 절대 아닐 거야. 그냥 골든 보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하는 것뿐이라고.”

“음···. 확실히 오늘따라 리의 백핸드가 유독 환상적이긴 했지.”

탕!!

[아웃!]

패배의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머레이는 상당한 압박감을 받은 건지 스트로크를 실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퍽! 퍽! 퍽!

극심한 스트레스를 참기 어려웠는지 바닥에 라켓을 몇 번이나 내려치는 머레이.

관중들은 라켓의 헤드 부분이 완전히 파손된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감정적인 분풀이는 그리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머레이는 경기가 끝나고 벌금을 맞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걸 얼마든지 감당할 자신이 있었으니 방금 같은 행동을 했겠지만.

애초에 스타 선수들에게 푼돈조차 되지 않는 금액이라 솜방망이 같은 처벌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후우······.”

관중들이 라켓을 부수는 행동을 무의미하다며 싫어했지만 당사자인 머레이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흥분된 얼굴이 빠르게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게임 머레이 2-3.]

팬들의 비판을 신경 쓰지 않고 화풀이를 마음껏 한 효과일까.

결과적으로 5게임에서 지혁의 브레이크는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다.

“휴···. 엄청 아슬아슬했네. 하마터면 이번에도 질 뻔했어.”

“이번 서비스게임으로 네 생각도 확실해졌지?”

“응. 런던 올림픽에서 앤디가 우승할 확률은 거의 없겠어.”

그들은 비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경기의 판도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사실 1세트 후반부터 워낙 일방적인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어서 어지간히 초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완전히 글렀네. 다음 그랜드슬램인 US 오픈을 노려봐야지. 앤디는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라서 하드 코트도 엄청 잘하는 편이잖아.”

“확실히 여기보단 조건이 유리하겠네. 리가 사용하는 샷들의 위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할 테니까.”

“쯧. 그랜드슬램보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이 더 가치 있는데 아쉽네. 마침 윔블던에 우승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기는 관중들이 예상한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무난하게 지혁이 승리하는 그림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머레이의 실력으로 지금의 대세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

***

쿵!!

결승전의 매치 포인트를 장식하는 건 오늘 경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지혁의 백핸드였다.

2시간에 걸친 대결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지혁에게 슬럼프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포핸드와 백핸드가 완성된 효과는 정말 어마어마했기에 패배할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지혁은 작년처럼 메이저 대회에서 엄청난 연승 행진을 하며 ATP 포인트를 쌓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게임 세트. 매치 리.]

런던에서 영국 국적의 선수인 머레이를 무참히 패배시켜서일까.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는 결승전에 우승한 것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다.

지혁이 워낙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마지못해 박수를 보낸다는 느낌이었다.

“······.”

머레이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건지 경기가 끝나고도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제자리에 서있었다.

아무래도 지혁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윔블던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머레이의 모습에 탑랭커들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빅4 같은 천재들은 모르겠지만 평범한 선수들인 그들은 저 심정을 너무나 잘 알았다.

심지어 괴물 같은 천재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내성이 생길 지경이었다.

“이번 경기로 골든 보이에게 벽을 느꼈나 보네. 하긴 보고 있는 우리도 어이가 없긴 했지. 저 실력으로 패배할 줄 누가 예상했겠어.”“이제 잔디 코트의 최강자는 골든 보이인가?”

“오늘 보여준 실력을 생각하면 그렇겠지. 경기 상대가 머레이가 아닌 빅4라고 해도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진 않네.”

“그러면 호주, US오픈은 조코비치, 롤랑은 나달, 윔블던은 리. 이렇게 우승을 번갈아가면서 하겠네.”

“그렇겠지. 이전에도 비슷했잖아. 그냥 새로운 우승 후보가 한 명 추가된 것뿐이야. 그나저나 앞으로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기 더 어려워지구만. 머레이 정도면 충분히 빅5에 들어갈 실력이니까 말이야.”

이후 런던 올림픽의 시상식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지혁과 굳어있는 머레이의 모습이 너무 대비가 된 탓이다.

마치 한 달 전의 윔블던을 복사한 것 같은 상황에 팬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라고 느낀 건지 커뮤니티에 댓글들을 쏟아냈다.

물론 이번에는 두 선수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ㅡ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ㅋㅋㅋㅋ 저 뚱한 표정 어딘가 익숙하지 않냐??

ㅡ 아, 한 달 만에 입장이 바뀔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ㅋㅋ 내가 머레이라도 어이가 없을 듯. 게다가 똑같은 코트에서 붙은 터라 변명할 여지도 없어. 심지어 개최지까지 런던이라 머레이의 홈그라운드잖아.

ㅡ 앞으로 잔디 코트는 자기가 지배할 줄 알았을 텐데 진짜 멘탈 제대로 깨졌겠네.

ㅡ 아마 윔블던 끝나고 싱글벙글했겠지 ㅋㅋ 조코비치랑 동급이라고 평가받는 이지혁을 잡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경기 보니까 전부 신기루였네.

ㅡ 이지혁이 버티고 있는 한 내년 윔블던은 머레이가 우승 못 할 것 같네.

ㅡ ㅇㅇ 경기력 차이 확실하더라. 냉정하게 보면 7:3 정도?

ㅡ 7:3은 무슨 최소 8:2지. 이지혁이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하고 나서 브레이크가 몇 번이 나왔는데.

ㅡ 다음 그랜드슬램 기대되네 US 오픈이 아마 2주 남았지?

ㅡ 아 ㅋㅋ 지금 실력으로 조코비치랑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

지혁은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US 오픈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끝도 없이 밀려드는 섭외 요청을 대부분 거절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진을 극복하고 다시 부활한 스포츠 스타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언론들이 끈질기게 접근했다.

미국의 테니스 훈련장까지 따라오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기사로 실은 것이다.

그만큼 지금 지혁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꺄아아아!!

평소 조용하던 공용 테니스 코트의 관중석은 갑자기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들었던 대로 지혁이 다섯 명의 코치들과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짜 골든 보이야! 여기서 훈련을 한다더니 정말이었어!”

“와···. 기사보다 훨씬 잘생겼어. 가장 잘생긴 테니스 선수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네.”

“아직 18살이라고 했지? 저 나이로 세계 랭킹 1위를 찍는 게 가능한 거야?”

“현대 테니스에서는 어떤 유망주를 데려와도 힘들지. 골든 보이가 말도 안 되는 천재인 거야.”

소식을 듣고 몰려온 팬들은 응원을 보내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등, 꽤나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 지금 세계에서 지혁이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훈련장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지고 있을 때.

테니스복을 입은 장신의 백인 남자가 코트 안으로 들어왔다.

근육질로 탄탄한 몸과 준수한 외모는 누가 봐도 운동선수로 보였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금세 그에게 몰렸다.

“데이비드 해리슨? 골든 보이랑 아는 사이인가?”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졸업생이잖아. 2년 전에 코칭을 받으면서 인연이 생겼겠지. 마침 나이도 비슷하고 천재끼리 통하는 게 있을 테니까.”

“아니, 두 사람을 같은 천재로 묶는 건 솔직히 아니지 않아? 랭킹이나 쌓아놓은 성적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데이비드도 미국 최고의 유망주야. 성인이 되기 전에 탑100 안에 들어간 슈퍼 유망주를 평범한 재능을 가진 선수로 보긴 힘들지. 물론 리는 이미 루키 딱지를 뗀 지 오래지만 말이야.”

애초에 데뷔 2~3년 차에 그랜드슬램 우승 4번, ATP 랭킹 1위를 달성한 괴물을 누가 유망주로 생각하겠는가.

그동안 쌓아놓은 커리어가 기존의 빅4와 비슷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만큼 지혁은 비슷한 또래의 천재 유망주들과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다.

“오늘은 두 사람이 훈련 파트너인가 보네.”

“와. 얼마 전까지 1위였던 최강의 선수랑 US 오픈을 대비할 수 있다니 데이비드가 횡재했는 걸. 지금 상황은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직접 도와주는 거랑 비슷한 거잖아. 로딕처럼 성적을 기대해봐도 되겠네.”

“훗. 높아봤자 2, 3라운드겠지. 아직 상위 랭커가 되기에는 한참 멀었······.”

저벅저벅.

팬들은 데이비드가 코트 중앙에 도착하자 급격히 조용해졌다.

과연 두 선수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적인 말들이 전부였지만 사람들은 그것조차 흥미로운지 눈을 반짝이며 훔쳐 들었다.

코트와 관중석의 거리가 유독 가까워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훈련장에 앳된 얼굴을 한 새로운 손님이 등장했다.

미국 팬들은 생소한 동양인의 얼굴을 보고 정체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지혁의 앞에서 인사를 건네고 있는 사람은 이번에 US 오픈 주니어 그랜드슬램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정민이었으니 말이다.

본래 역사보다 7~8개월은 빠른 세계 무대 데뷔였다.

지혁을 만나고 성장에 가속이 붙은 덕분이었다.

최근 정민은 아시아의 퓨처스를 몇 번이나 우승했기에 이번 대회에서 경쟁력은 충분했다.

아마 지혁에 이어서 주니어 그랜드슬램 우승자가 다시 한번 배출된다면 한국은 난리가 날 것이다.

분명 정민도 국내 한정으로 스타 반열에 오르겠지.

학업과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에게 상당히 좋은 일이었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면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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