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08화 (208/241)

208화. 정민

펠리보는 브레이크를 한 번 당하고 나자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이건 그동안 퓨처스에서 정민을 상대하던 선수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아직 정민의 이름이 테니스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겉모습에 속아서 점수를 헌납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코치들은 경기가 익숙한 레파토리로 흘러갔음에도 지금 상황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상대 선수가 당황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즐거운 일이었다.

솔직히 이런 웃긴 상황을 어떤 프로 대회에서 볼 수 있겠는가.

탕!!

일단 스코어 격차가 생기자 경기의 내용은 초반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대로 남은 게임이 진행된다면 1세트는 정민에게 넘어가는 터라 펠리보는 수비적인 포지션을 버리고 공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보구만. 하긴 정이 방심할만한 선수가 아니긴 하지. 그나저나 데이비드, 너는 저 둘 중에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아마도 저 녀석이겠지.”

“오. 펠리보가 훨씬 이름 있는 유망주인데? 랭킹이나 커리어도 훨씬 높고 말이야.”

“그래 봤자 주니어 선수들한테나 먹히는 실력이지. 프로에 올라오면 아무것도 아니야. 단번에 경쟁력이 없는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버릴 걸. 그에 비해 정민은 달라.”

“음······. 그래. 괜히 골든 보이의 관심을 받는 게 아니겠지.”

US 오픈 본선에 참가했던 데이비드 해리슨과 그의 코치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그가 64강에서 탈락하고 스케줄이 널널해진 덕분이었다.

무려 2주가 넘는 여유 시간이 주어져서 이 기회에 정민의 경기를 관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물론 그들의 진짜 목적은 다른 관중들처럼 이다음의 메인 경기였다.

탑랭커에게 지혁과 조코비치의 대결은 보기만 해도 최고의 공부가 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앗!”

탕!!

정교한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세트 포인트를 장식하는 정민.

관중들은 펠리보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그 모습에 하나 같이 감탄을 내뱉었다.

[세트 정.]

“설마 저 무명의 선수가 괴물 같은 슈퍼 루키일 줄이야······.”

“2살이나 어린 나이로 펠리보를 이길 정도면 천재라고 불리기에 충분하지. 게다가 1세트를 이긴 걸 보니 저건 절대로 봐주는 게 아니야.”“피지컬도 부족해 보이는데 대단하네. 불리한 조건들을 테크닉으로 전부 극복하고 있다는 뜻이잖아.”

“허···. 몸만 제대로 성장하면 엄청난 괴물이 되겠는데. 저 기술에 강력한 샷까지 받쳐주면 얼마나 대단해지겠어.”

“글쎄. 오히려 지금 실력이 한계일 수도 있지. 아시아 선수들은 180cm도 못 넘기는 경우가 많잖아. 요즘 핫한 니시코리도 고작 178cm였지?”

“선수들의 성장은 워낙 천차만별이니까 우리가 일일이 예측할 수 없어. 어쨌든 오늘 결승전에서 우승하는 건 정민이겠네. 유력한 우승 후보인 펠리보에게서 얻은 트로피니까 이것만 해도 정말 큰 반전이지.”

대부분의 관중들은 아직 경기가 절반 이상 남았음에도 정민의 승리를 확신했다.

1세트에서 받은 인상이 정말로 컸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레디.]

그렇게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다시 재개되는 경기.

정민과 펠리보는 체어 엠파이어의 신호가 떨어지자 다시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도 이미 결승전의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지 표정이 꽤나 대조적이다.

특히 펠리보는 초반에 여유로웠던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

결국 경기의 후반에 반전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한 번 우세를 잡은 정민이 그대로 승기를 굳혀버린 것이다.

세트 스코어 2-0.

펠리보의 승리를 확신하던 사람들에겐 이건 꽤나 충격적인 결과였다.

유럽이나 미국 출신이 아닌 아시아 선수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세계 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다니.

이건 니시코리와 지혁이 테니스계에 등장하기 전까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됐네···. 이럴 줄 알았어.”

“와! 네 예상이 정확하게 맞았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었나 봐.”

데이비드가 낮게 중얼거리는 말에 코치는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천재는 선수를 보는 눈마저 특별한 모양이었다.

미국 최고의 유망주인 데이비드는 이때까지 코치가 맡았던 선수들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니 특출 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후······. 앞으로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

관중석에서 코트를 잠시 내려다보던 데이비드는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지혁을 이기기는 커녕 정민에게 따라 잡힐 것 같은 위기감이 들자 간만에 휴식을 즐길 마음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US 오픈이 종료되고 한동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승자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늘 경기를 보니 다시 미친 듯이 훈련에 집중하지 않으면 정민에게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정민은 이번 US 오픈을 계기로 많은 프로들의 경계 대상에 올라갔다.

상당수의 탑랭커들은 정민이 첫 데뷔를 하게 되면 제대로 밟아 놓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보통 기선 제압을 한 번 해놓으면 몇 년 동안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어린 유망주에게 잔인한 행동이었지만 경쟁자의 약점을 찌르는 건 건 프로의 세계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안면이 있는 데이비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피타이저인 주니어 선수들의 경기들이 끝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US 오픈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 단식이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관중들은 지혁과 조코비치와 차례대로 경기장에 입장하자 이제까지와 차원이 다른 환호성을 보냈다.

테니스계에서 빅4가 차지하는 위상은 그만큼 엄청났다.

와아아아아!!!

팬들의 응원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을 때.

지혁은 꽤나 오랜만에 재회한 조코비치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랜드슬램에서 만난 건 지난 호주 오픈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8개월 만이었다.

물론 마스터즈 대회를 제외하고 말이다.

“요즘 유망주를 키우고 있다며? US 오픈 주니어 부분에서 우승했다고 들었어. 축하해.”

이미 테니스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건지 조코비치는 정민에 대한 정보를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지혁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실시간으로 관찰당하고 있는 터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런던 올림픽에서 실력이 또 늘었더라. 내 말이 맞지? 윔블던에서 우승한 머레이에게 완벽하게 복수를 성공했잖아.”

조코비치는 정민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지 아주 짧게 언급하고 금방 화제를 돌렸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유망주가 현재 빅4의 아성을 깨트리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마 지혁과 관련이 없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탑10들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코비치가 주니어 선수를 머릿속에 오래 남겨둘 리 없었다.

“운이 따라줬죠. 그날따라 컨디션도 좋았고요.”

“그래?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지혁은 자처해서 자신의 수를 드러낼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그 대답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동안 코치들과 분석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단순한 기만전술에 속겠는가.

런던 올림픽 결승전을 수십, 수백 차례 돌려본 후였기에 그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그렇게 두 선수의 대화가 뚝하고 끊기자 코트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를 유일한 라이벌로 생각하는 만큼 경기 전부터 불꽃 튀는 신경전이 시작한 것이다.

세계 랭킹 1, 2위가 굳어진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자 관중들도 사태 파악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탕!! 탕!! 탕!!

잠시 후, 순식간에 조용해진 경기장에는 임팩트 소리만 들렸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어지간한 탑랭커를 간단하게 찜 쪄먹을 스트로크의 향연에 관중들은 조금씩 넋을 놓았다.

역사상 최강이라 평가해도 부족하지 않은 두 선수의 경기는 모든 테니스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꿈의 대결로 여겨지고 있었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행운이 따라주는지 먼저 서비스게임을 가져간 지혁.

시작부터 텐션이 다른 라켓을 들고 나오는 모습에 일부 눈치 빠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저걸 처음부터 꺼낸다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괜히 탐색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겠지. 경기를 꽤 많이 해봤으니 서로에 대한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있을 거야.”

“우리야 좋지만. 체력 부담이 엄청날 텐데 걱정되네.”

“걱정하지 마. 앞으로 휴식 시간은 널렸으니까. 게다가 US 오픈이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이잖아. 마스터즈를 건너뛰면 3개월도 넘게 쉴 수 있으니 괜찮을 거야.”

그 말대로 지혁은 이번 결승전에서 체력을 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사 탈진해서 남은 대회를 전부 불참하더라도 US 오픈에서 우승하는 게 몇 십배는 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에게 리벤지 매치를 성공한다는 의미도 있고 말이다.

쾅!!

허공으로 높이 토스된 공은 지혁의 라켓이 번개처럼 휘둘러지자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T존을 강타했다.

네트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볼 키즈들은 무시무시한 위력의 플랫 서브가 자신의 옆을 지나치자 흥분으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레전드들이 대결하는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것에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피프틴 러브.]

아직 고속 서브에 몸이 적응되지 않은 건지 에이스를 허용하는 조코비치.

지혁은 랠리를 하지 않고 포인트를 얻은 게 흡족한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히 쉬운 방법을 두고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자존심이 조금 깎이더라도 효율이 가장 높은 선택지가 있다면 무조건 그걸 고르는 게 맞았다.

‘이게 조금 더 통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긴 힘들겠지.’

쾅!!

끼이익- 퉁!

역시나 무결점에게 두 번의 요행은 통하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자신에게 이기려면 그 대가를 치르라는 듯이 랠리를 강요했다.

베이스라인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모습은 마치 절대 뚫어낼 수 없는 철벽을 보는 듯했다.

탑랭커들은 지혁이 무시무시한 스트로크들이 연이어서 막히자 자신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만약 그들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알아서 실책을 하며 말라죽었을 것이다.

조코비치는 체력, 기술의 완성도, 코트 커버력, 정신력 모든 부분에서 최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지혁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만약 한 달 전에 백핸드의 등급이 S로 오르지 않았다면 경기의 결과는 작년 US 오픈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겠지.

하지만 포핸드, 백핸드가 완성된 지혁은 조코비치 못지않은 안정감을 보여줬다.

올라운더의 공격력과 정상급 베이스라이너의 수비력이 합쳐지자 아무리 상대가 현재 최강의 선수라고 해도 간단하게 위닝샷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선수들의 랠리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CG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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