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우승
[게임 리 1-0.]
후우······.
고작 첫 번째 서비스게임이 끝났을 뿐이지만 시작부터 경기장의 분위기는 당기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모두 지혁과 조코비치의 대결이 다른 선수들의 비해 압도적으로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결승전 중계를 하고 있던 해설자들은 느끼는 바가 많은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잠시 진행에 차질 있어서 죄송합니다. 워낙 대단한 경기라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네요. 과연 세계 랭킹 1, 2위의 대결입니다. 이번 US 오픈 경기들 중에 가장 수준이 높아요.]
[네. 그랜드슬램 결승전에 어울리는 경기력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거머쥘 수 있는 거죠.]
카메라 뒤편에서 손을 휘적거리는 PD의 신호를 받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는 해설자들.
그들은 마치 약속했다는 듯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호주 오픈보다 두 선수의 실력이 더 상승한 것 같아요. 긴장감이 다르다고 할까요.]
[역시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군요. 사실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입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골든 보이는 당연한 거고 조코비치도 25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한창 성장하거나 운동 능력이 절정에 달할 때죠.]
[여기서 더 강해지다니 안 그래도 괴물인데 다른 선수들은 정말 끔찍하겠네요.]
[스포츠 선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죠. 게다가 테니스는 개인 종목이니 다른 종목에 비해 그런 점이 더욱 심하고요.]
선수들이 코트를 교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곧 해설들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첫 서비스게임은 지혁의 차례였기에 이번에는 서브권이 조코비치에게 넘어갔다.
탕!!
긴장한 기색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플랫 서브를 때리는 조코비치.
원래 서브 속도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법이라 그의 서브는 다른 빅 서버에 비해 많이 느렸다.
물론 주력 무기가 아니라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만 말이다.
경기는 약속했다는 듯이 랠리로 이어졌다.
베이스라인 근처에서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며 정면승부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이 전혀 바뀌지 않은 걸 보니 조코비치는 1게임의 전략을 계속 사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굳이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만 고집해도 이길 자신이 있는 거겠지.
오만하게 느껴지는 자신감이었지만 지난 1년 동안 그가 쌓아온 커리어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했다.
테니스 전문가들과 탑랭커에게 완성형 베이스라이너라고 평가받던 나달마저 저 철벽 같은 수비를 뚫지 못하고 패배했기 때문이다.
탕!!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스트로크를 리버스 포핸드로 받아치는 지혁.
헤비 스핀이 걸린 타구는 포물선을 그리며 네트를 빠르게 넘어갔다.
지혁의 포핸드는 궤적도 예술적이었지만 가장 대단한 건 바운드가 된 직후였다.
코트 끝단을 때린 공이 마법처럼 조코비치의 어깨까지 튀어 오른 것이다.
괜히 다른 탑랭커들이 지혁과의 랠리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바운드 정점에 도달하기 전에 라이징샷을 사용하거나 베이스라인 뒤로 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지혁에게로 넘어갈 테고 말이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그런 평범한 선수들과 완전히 달랐다.
쿵!!
[서티 러브.]
조코비치도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하는 만큼 원래 자리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완벽한 대응을 보여준 것이다.
정점에 달한 스트로크 기술과 코트 커버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 저번에 쓴 전략은 안 통하네. 그동안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해왔어.’
가능하면 최고의 효율로 스코어를 쌓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큰 욕심이었던 것 같았다.
‘그럼 백핸드를 한 번 시험해볼까. 얼마나 먹히는지 알아야 이후의 경기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지혁은 이번 대회에서 전력을 다하는 건 처음이라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부디 런던 올림픽 결승전의 머레이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
일단 결심을 하니 지혁의 플레이는 급격하게 달라졌다.
포핸드와 백핸드의 비중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하앗!”
탕!!
[포티 서티.]
날카로운 각도로 꺾여 들어가는 백핸드 크로스샷.
조코비치는 브레이크의 문턱까지 추격하는 지혁의 공세에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와아아아아!!
[와! 정말 훌륭한 백핸드였습니다. 완벽 그 자체였어요. 오늘 경기는 보기만 해도 눈이 환해지는 기분이군요.]
[허···. 조코비치의 빈틈을 공략한 게 아니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서 득점을 만들어냈네요.]
[위닝샷 두 번이 모두 백핸드였죠? 골든 보이에 대한 소문이 진짜였나 보군요.]
[아직 경기 초반이라 벌써 확신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아마 1세트가 끝나 봐야 어느 정도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
보수적인 해설은 위닝샷 한, 두 개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단 판단을 보류했다.
어차피 소문이 진실이었다면 지혁이 먼저 브레이크를 성공하고 세트를 가져갈 게 분명했다.
섣부르게 말을 내뱉는 것보다 그때 가서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게 여러모로 옳았다.
괜히 시청자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었다가 조코비치가 1세트를 이겨버리면 분위기가 상당히 민망해질 테니 말이다.
[게임 조코비치 1-1.]
서비스게임은 결국 조코비치가 아슬아슬하게 지켜내었다.
서브권이 없는 불리한 상황과 이미 벌어진 스코어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경각심을 깨우긴 충분했나 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지혁에게 빠르게 공을 전달해주는 볼 키즈.
아직 선수들의 체력이 남아돌았기에 경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했다.
***
백핸드 실력이 몰라보게 상승한 영향일까.
지혁은 1세트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거의 막바지에 와서 브레이크를 성공한 것이다.
[세트 리.]
희비가 갈린 채로 벤치로 걸어가는 선수들.
경기를 보고 있던 테니스 팬들은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자 난리가 났다.
분명 결승전을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조코비치가 이길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랜드슬램 성적과 세계 랭킹을 보면 현재 최강의 선수는 누가 뭐래도 조코비치였다.
ㅡ 와!!! 이지혁이 6-4로 1세트에서 이겼는데?? 하드 코트에서 불리할 거라고 말하더만 다 거짓말이었네. 오늘 하는 거 보니까 충분히 이길 수 있겠는데?
ㅡ 그러면 랭킹 1위도 다시 탈환하는 건가?
ㅡ US 오픈 하나 가지고는 힘들지. 이지혁이 이번에 우승해도 조코비치는 최근 1년 동안 3번이나 우승했으니까. 남은 마스터즈에서 이겨도 ATP 포인트 차이가 안 매꿔짐.
ㅡ 그래도 만약 이번 대회에서 이기면 그것도 시간 문제지. 조코비치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하드 코트에서 이길 정도면 다른 대회는 안 봐도 뻔하잖아. 설마 잔디랑 클레이에서 이지혁이 지겠냐.
ㅡ ···.정말로 이러다가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하는 거 아니냐?
ㅡ ㄹㅇ 지혁이가 한 시즌 싹쓸이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데. 조코비치만 해결되면 4개 그랜드슬램 전부 유력한 우승 후보잖아.
ㅡ 김칫국인 건 알고 있지만 진짜 그렇게 되면 장관이겠네 ㅋㅋ 아직 두 시즌에 걸쳐서 하는 논 캘린더 그랜드슬램도 안 나왔잖아.
ㅡ 그때가 되면 이지혁이 황제도 뛰어넘는 진정한 레전드가 되겠지. 빨리 보고 싶네 ㅋㅋㅋ
팬들이 경기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을 때.
지혁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1세트를 복기하고 있었다.
관중석 앞열에 앉은 어린 팬들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슈퍼 스타가 자신의 바로 앞에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탑랭커를 목표로 하는 주니어 선수들도 지혁을 신처럼 여겼지만 평범한 테니스 팬들에게도 그는 영웅이었다.
‘랠리는 조코비치하고 거의 대등하네. 풋워크가 약간 밀리긴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만한 수준이야.’
이 정도면 이번 US 오픈 결승전에서 우승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물론 똑같은 하드 코트를 사용하는 호주 오픈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워낙 경기가 아슬아슬한 만큼 승리를 장담하기엔 아직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러니 한 시즌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건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했다.
[레디.]
순식간에 지나가는 휴식 시간.
경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되자 선수들은 쓸데없이 시간을 끌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지혁은 2세트에서도 무자비한 플랫 서브를 내려 꽂았다.
무시무시한 속도의 타구는 세심하게 컨트롤되어 T존을 때렸지만 여전히 조코비치의 리턴은 견고했다.
페더러도 그렇지만 조코비치도 유명한 승부사인 만큼 불리한 상황이 되자 집중력이 더욱 증가한 모양이었다.
만화와도 같은 상황이지만 이건 레전드 슈퍼 스타들이 가진 특징이었다.
그래서 빅4가 테니스 종목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거였고 말이다.
탕!! 탕!! 탕!!
[와···. 이번 경기의 진면목은 백핸드 대결이네요. 완벽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어울리는 선수들이 있을까요.]
[비록 플레이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모두 정점에 달한 기술입니다. 두 선수 모두 스트로크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어요.]
[그나저나 오늘 경기로 골든 보이의 천재성이 더욱 돋보이네요. 서브, 스트로크, 풋워크 이제 정말로 약점이 없어요. 조코비치도 서브는 느린데 말이에요.]
[네. 공격과 수비를 모두 완성한 선수는 지금 프로들 중에 골든 보이가 유일할 겁니다.]
지혁은 해설들의 칭찬에 어울리는 경기력을 계속 보여줬다.
고속 서브로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켜내고 상대의 서브 차례에서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이용해서 조코비치가 연상될 만큼 철저한 코트 커버력을 유지한 것이다.
[게임 리 2-1.]
[게임 조코비치 2-2.]
[게임 리 3-2.]
[게임 조코비치 3-3.]
비록 경기는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고 유지되었지만 점점 초조해지는 건 조코비치 쪽이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지혁에게 브레이크를 당할 위기감이 계속해서 느껴졌던 탓이다.
이건 먼저 세트를 내어준 터라 심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2세트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채 조금씩 스코어를 늘려갔다.
관중들은 언제 팽팽하던 상황이 기울어질지 몰라서 긴장감을 잠시도 놓지 못했다.
잠시 눈을 떼기만 하면 브레이크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임 조코비치. 듀스!]
[타이브레이크!]
결국 듀스를 거쳐서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가는 경기.
경기가 마지막 타이브레이크로 들어가자 관중석에서는 한숨이 쏟아졌다.
두 선수의 길었던 승부가 드디어 마무리가 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 지혁이 이긴다면 전세가 확실해지고 조코비치가 이긴다면 승부는 원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