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11화 (211/241)

211화. 중국 아카데미

US 오픈이 끝나고 얼마 후, 파리 마스터즈를 끝으로 지혁의 2012년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ATP 랭킹은 조코비치에 밀려 2위.

작년의 성적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하반기에 보여준 실력이라면 다음 해에는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런던 올림픽과 US 오픈을 모두 우승하고 나니 어플에 필요한 포인트를 대부분 모을 수 있었다.

무려 절반 이상의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역시 우승을 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준우승을 했을 때보다 몇 배는 빠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실력이 변했는지 궁금한데 그걸 당장 시험해볼 수 없다는 게 아쉽네.’

지금은 시즌이 막 종료된 터라 마땅한 상대를 찾기 어려웠다.

지혁의 전력을 받아낼 선수는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니시코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인 정민이 국내 랭킹 3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솔직히 국내 실업팀 선수들은 훈련 파트너로 언급될 가치조차 없었다.

“와. 여기 되게 넓네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아카데미인데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지혁의 옆에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던 남자가 흥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중국 스케줄에 같이 동행한 정민이었다.

이미 퓨처스에서 우승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에게 중국 유망주들과의 교류가 도움이 될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지혁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매리트가 있었기에 정민은 스치듯이 건넨 제안을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받아들였다.

“확실히 넓기는 하네. 돈을 많이 들인 만큼 시설도 괜찮은 편이야.”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아직 네임드 선수가 없는 게 유일한 단점이었다.

뭐, 이대로 10년이 지나도 중국에서 쓸만한 탑랭커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혁이형, 혹시 이두희라고 들어봤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정민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건지 질문을 했다.

‘이두희라···.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

워낙 특이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 데다가 고등학생일 때는 탑10급 재능이라고 떠들썩했던 유망주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 정민이 만들어 놓은 최연소 기록들을 연이어서 격파해서 정말로 한국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자자했다.

물론 그 기대는 이두희가 성인이 되고 나서 귀신처럼 성장이 멈춰버린 탓에 금세 좌절되었지만 말이다.

이두희는 고등학생일 때 랭킹을 100위 대까지 끌어올려놓고 정작 본격적으로 투어를 다닐 때 4~5년 동안 탑 100에 들어가는 걸 실패했다.

주니어 시기 때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두희 같은 케이스는 아시아 선수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보통 어린 시절에는 재능의 한계까지 도달하지 않는 터라 수재가 천재를 이기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외국 아카데미는 기본기 중심으로 교육을 하지만 한국은 대회 성적을 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한몫했다.

명문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입상 성적이 필요한데 투박한 기본기만으로 7~8년을 묵묵히 버티는 게 말처럼 쉽겠는가.

실력이 검증된 코치의 조언과 선수의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은. 실력이 대단하던데?”

“역시 두희를 알고 있었네요. 하긴 요즘 국내 테니스계의 뜨거운 감자인데 모를 리가 없죠. 무려 중학생이 퓨처스에서 준우승을 했으니까요.”

“지금 성적만 유지하면 제대로 조명을 받을 거야. 언론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니까.”

아마 이두희 본인은 대중들의 주목이 그리 반갑지 않을 것이다.

관심의 원인이 ‘청각 장애’를 가진 선수라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두희까지 있으니 조만간 한국의 탑랭커가 3명으로 늘겠네요.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어요.”

“······.”

정민은 자신감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어서 성장기가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계속 승승장구할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랭킹 100위 근처에서 슬럼프를 겪고 나면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테니스계에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었다.

지혁은 두 번이나 주니어 시절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지혁은 아카데미 직원의 안내를 받아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로 보고 싶다고 사전에 전달한 덕분인지 거창한 환영식은 생략할 수 있었다.

탕!! 탕!! 탕!!

지혁이 일행들과 길을 걷길 몇 분.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몰려있는 훈련장이 보였다.

나이가 다양한 걸 보니 14세, 16세, 18세부가 섞여있는 것 같았다.

힐끔힐끔.

엄격한 코치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데도 지혁에게 뜨거운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

우상이나 다름없는 스타의 등장에 분위기는 금세 활활 타올랐다.

지혁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저기 골든 보이다. 정말로 아카데미에 왔어. 솔직히 허풍인 줄 알았는데 코치들이 말했던 게 정말이었구나.”

“옆에 있는 녀석이 US 오픈 주니어에서 우승한 정민인가? 나도 골든 보이에게 특별 코칭을 받으면 주니어 그랜드슬램에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하! 네가? 쟤는 이미 퓨처스에서 몇 번이나 우승한 천재야. 우리하고 재능의 크기가 다르다고.”

“퓨처스 우승? 아직 고중 1학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천재라고 하는 거지. 보기와 다르게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고. 골든 보이가 괜히 데리고 다니겠어?”

“흥. 저런 꼬맹이가 뭐가 대단하다고. 만약 경기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어.”

중국 선수들은 감히 지혁을 험담할 용기는 없는지 정민에게 질투심을 쏟아냈다.

비슷한 나이와 특별할 것 없는 피지컬을 보고 내심 만만하게 생각한 것이다.

정민도 승부욕이 담긴 시선을 느낀 건지 표정이 약간 굳었다.

아무리 언어가 안 통하더라도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눈치를 아주 조금만 가지고 있으면 학생들이 정민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훗. 너랑 경기를 하고 싶나 본데? 네 생각은 어때?”

“···시간만 주면 몇 명이 되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여기 제 상대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뭐, 경기를 몇 번하고 나면 알아서 지금 상황이 해결될 거야.”

“빨리 그때가 됐으면 좋겠네요.”

지혁과 정민은 한동안 학생들이 훈련하는 걸 지켜봤다.

어떤 코칭을 할지 결정하려면 전체적인 수준을 아는 게 가장 먼저였다.

그렇게 시간이 20분 정도 지났을까.

묵묵히 보기만 하던 지혁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거 심각한데?”

“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 이하네요. 왜 이름이 안 알려졌는지 알겠어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학생들의 수준은 퓨처스 데뷔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낮은 대회의 예선전 통과도 어려운 실력.

엄청난 시설 규모에 비하면 투자 대비 효율이 최악이었다.

“후······. 아직 잘하는 학생들이 남았으니까 기다려보자. 전부 이러진 않을 거야.”

“글쎄요. 여기 있는 선수들도 상위권일 걸요. 형이 온다고 특별히 위치를 배정했을 게 뻔하니까요. 다 똑같을 거예요.”

“만약 그게 정말이면 바로 돌아가야지.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지혁이 동행한 IMG 중국 통역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자 아카데미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최대한 지혁이 원하는 데로 움직일 생각인가 보다.

이것만 봐도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초청 자체가 기적이었던 만큼 괜히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한 것이다.

훈련장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들리길 잠시.

지혁이 있는 곳으로 다섯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남학생 3명, 여학생 2명이었다.

“이들이 저희 아카데미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입니다.”

“일단 간단한 연습 경기부터 해보고 코칭은 나중에 이야기하죠. 지금 바로 경기를 해도 괜찮나요?”

“네. 이지혁 선수가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학생들은 통역의 말을 훔쳐 듣고 눈을 반짝이며 지혁을 바라봤다.

현재 테니스계를 조코비치와 양분하고 있는 거물과 연습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그들을 직접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정민아, 아까 말했던 대로 한 번 해볼래?”

“네.”

“······.”

지혁이 직접 나서지 않고 대타를 세우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실망한 분위기가 흘렀다.

은근히 정민을 원망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연습 경기를 대충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혁의 요청인만큼 선수들의 자리는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가장 넓고 시설이 좋은 코트를 배정한 것이다.

경기는 시간 관계상 1세트씩 진행하기로 했다.

대표로 나서는 중국 선수는 남학생 2명.

모두 정민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선수들이었다.

우르르르.

아시아권에서 정민도 나름 유명했던 만큼 학생들은 코트 주변으로 빠르게 몰려들었다.

주니어 그랜드슬램을 우승한 유망주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레디.]

간단한 랠리를 하고 나서 곧바로 시작된 경기.

네트 앞에서 동전을 던진 결과, 먼저 서비스게임을 가져간 건 정민이었다.

탕!!

“음. 유명한 주니어 선수치고 서브는 평범하네.”

“이러다가 우리가 이기는 거 아니야? 별로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세계 무대도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네. 저런 녀석도 주니어 그랜드슬램을 우승할 수 있다면 중국의 유망주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보통 정민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혁처럼 천재적인 재능이 번뜩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 탓에 경기 초반에 그를 평가절하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안정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리 특출 난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원래 베이스라이너의 진가는 시간이 지나야 발휘되는 법이다.

[게임 정 1-0.]

[게임 정 2-0.]

[게임 정 3-0.]

스코어가 쌓일수록 학생들의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작아졌다.

정민의 성공으로 시작한 경기가 퍼펙트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포인트도 얻지 못한 중국 선수의 표정은 이미 한참 전부터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벽을 상대하는 느낌에 엄청난 압박감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선수는 경악스러운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정민에게 도저히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골든 보이가 특별히 선택한 유망주는 자신과 격이 다른 천재였다.

“이게 세계 무대에서 우승한 선수의 실력이구나······.”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지자 학생들의 자신감도 빠르게 떨어졌다.

정민이 본인들이 상대할 선수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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