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중국 아카데미
아카데미의 대표로 나온 2명의 중국 주니어 선수들은 정민의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지혁과 동행한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6-0 베이글로 모두 참패한 것이다.
코치들은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준 차이가 엄청나게 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유망주 풀은 중국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지혁과 정민이 등장하고 난 후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크윽···.”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건지 고개를 숙이며 화를 삭이는 남학생.
그는 정민보다 적어도 10cm 이상 키가 컸기 때문에 상당히 기묘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코트 주변을 감싸고 있던 아카데미 학생들은 정민을 내심 무시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이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
대표로 뽑힌 선수들은 그들 중 최고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을 차려 보니 경기가 끝나 버렸어.”
“딱히 특별할 건 없었는데.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지는 플레이였어. 게다가 골든 보이하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잖아.”
“잘하면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데······.”
학생들은 정민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작 가장 실력이 뛰어나 대표로 뽑힌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말이다.
안목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지혁이나 정민 모두 괴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벅저벅.
상대와 간단한 악수를 하고 지혁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정민.
그는 2명을 상대했음에도 아직 체력이 남은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중국 선수하고 워낙 실력 차이가 나서 경기 내내 여력을 담긴 덕분이다.
“소감은 어때? 경기는 할만했어?”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서 아슬아슬하게 중간쯤? 최대한 높게 잡아도 그 정도예요. 이 많은 주니어 선수들 중 이들이 최고라고 한다면 정말 심각하죠.”
정민은 이미 16세 부 세계 대회와 18세 부인 주니어 그랜드슬램에서 정점을 찍은 적이 있었던 만큼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퓨처스가 한계일 거예요. 기본기가 엉망인 걸 보니 코치진들 수준도 뻔하거든요.”
정민은 주변의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지 혹평을 내렸다.
통역을 통해 대화를 듣고 있던 아카데미 사람들은 그 영향인지 실시간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옆에서 자신들의 욕을 하는데 솔직히 누가 좋아하겠는가.
만약 정민의 최근 성적과 그가 지혁의 일행이 아니었다면 벌써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까 한 명쯤은 쓸만한 선수가 있겠지. 여기 있는 유망주들은 중국에서 나름 손에 꼽히는 인재들일 테니까.”
“글쎄요······. 저는 그다지 가망성이 없을 것 같은데요.”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냥 시험해 본다고 생각해.”
“···설마 제가 저 선수들을 전부 다 상대하는 건 아니죠?”
“잘하는 얘들만 몇몇.”
정민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동안 받은 게 워낙 많았기에 지혁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렇게 중국 아카데미에 도착하고 이틀.
탐탁지 않은 태도를 보이던 정민도 서서히 현재의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를 마치 신처럼 받드는 학생들의 반응에 취한 것이다.
지난 생에 스포츠 스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지혁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고작 17살인 정민은 칭찬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음···.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아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공을 더 보고 쳐야 돼.”
하얀 테니스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정민은 꽤 즐거워 보였다.
그동안 투어를 다니느라 제대로 인기를 누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니 꽤나 기쁜 것 같았다.
“정민! 경기 한 판 하자!”
물론 그동안 시간 낭비만 한 건 아니었다.
지혁이 쓸만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를 한 명 발굴한 것이다.
유망주의 이름은 하오강.
그는 아카데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혁에게 선택을 받고 하루아침에 입지가 수직 상승했다.
“하오강···. 그래. 마침 시범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됐네.”
정민은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오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부족한 유망주와 지혁의 관심을 나눠 갖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아!! 하오강이랑 정민이 경기를 하려나 봐!”
“오늘도? 다른 얘들의 부탁은 전부 거절하더니. 정말 하오강한테 뭔가 있나 보네?”
“쳇. 저 녀석이 뭐가 대단하다고. 장학생들이라면 순순히 납득하겠지만 쟤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랑 순위가 비슷했다고. 다른 얘들보다 테니스도 늦게 입문했고.”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짧은 시간 만에 우리를 따라잡았다는 거니까. 골든 보이의 선택을 받은 만큼 아마 하오강이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리의 코칭을 받게 될 거야.”
“골든 보이의 코칭이라니 부럽다···. 가치로 따치면 수천만 위안의 가치가 있겠지?”
“초청 한 번 하는데 그 이상의 금액이 드니까 그렇겠지. 천문학적인 스폰서 비용을 제시하고도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기사에서 올해 수입이 3억 위안을 넘었다고 했잖아. 이제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아니야.”
며칠 사이에 자신들과 비슷했던 하오강이 벼락출세를 하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학생들이 많았다.
질투에 휩싸인 시선을 보내며 그의 실력과 재능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은 세계 어딜 가도 비슷했다.
아마 성적으로 증명하지 않는 이상 마지막까지 인정하지 않겠지.
그 같잖은 질투심을 알아차린 건지 아카데미에 소속된 코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작 당사자인 하오강은 정민과의 대결에만 모든 신경이 쏠렸는지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탕!!
잠시 후, 경기는 하오강의 서브로 시작했다.
그는 피지컬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았기에 타구의 위력 자체는 평범했다.
그 탓인지 플레이 스타일도 대부분의 아시아 선수들과 같은 베이스라이너였다.
탕!! 탕!! 탕!!
와!!
예상과 다르게 랠리가 제법 길게 이어지자 구경을 하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물론 하오강은 이미 재능을 본격적으로 개화한 정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 게임도 따내지 못한 것이다.
[게임 정 2-0.]
그렇게 정민이 경기의 주도권을 한참 가져가고 있을 때.
갑자기 코트 구석을 제대로 공략하는 하오강의 위닝샷이 나왔다.
이때까지 그가 보여준 실력을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수준의 스트로크였다.
“···쯧. 너무 방심했네.”
고작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조차도 용납하기 싫은지 혀를 차는 정민.
그는 불편한 심기를 해소하기 위해 라켓 스트링을 손바닥으로 몇 차례 때렸다.
[게임 정 5-0.]
제대로 집중을 한 탓일까.
이후로 하오강이 위닝샷을 얻는 모습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정민이 압도적인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퍼펙트를 이어간 것이다.
이것조차 모든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서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정민은 상대가 알아서 자멸할 때까지 수비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지 하오강과 학생들은 정민에게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비슷한 나이대에서 이 정도 실력자를 어디서 봤겠는가.
“진짜 정민의 실력은 언제 봐도 대단하단 말이야. 나는 골든 보이를 말고도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아마 1~2년 안에 탑랭커에 들어가겠지? 천재들은 유망주 시절 때도 범재와 차원이 다르구나. 나는 이런 선수가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그런데 이틀 전과 비교하면 하오강도 많이 늘었어. 이게 재능인 건가···.”
학생들은 하오강이 엄청난 성장 속도로 자신들을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프로 세계에 본인들의 자리가 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보통 탑랭커들은 한 국가에서 최고의 천재들인 만큼 그들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다.
한국조차 지혁을 제외하면 탑랭커가 전무하지 않은가.
이틀 동안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하오강도 아직 탑100에 진입할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만큼 프로 테니스 세계의 경쟁률은 살벌했다.
연습 경기를 마치고 정민과 하오강이 휴식을 하길 잠시.
지혁은 두 사람을 호출했다.
부족한 점과 보완해야 할 부분을 코칭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그런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최강의 선수에게 지도를 받는 기회는 절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웅성웅성.
지혁이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이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던 사람들은 금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우선 정민이부터.”
지혁은 말보다 직접 몸으로 체험시킬 생각인지 라켓을 들고 반대편 코트를 가리켰다.
그렇게 정민이 후다닥 베이스라인으로 뛰어가 준비를 마치자 탕!! 하고 백핸드가 날아왔다.
힘을 빼고 대충 쳤는데도 차원이 다른 느낌의 스트로크였다.
탕!! 탕!! 탕!!
“으윽···.”
스트로크를 비슷한 위력으로 조절했음에도 얼마지나지 않아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정민.
중국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실력을 보여주던 그도 지혁에겐 그저 주니어 선수에 불과했다.
턱! 턱!
자신 있어하던 샷들이 네트에 몇 번이나 걸리고 아웃되자 주변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하오강은 그들 중 정민의 실력을 가장 잘 알았기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의 상식으로는 저게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충 두 게임 분량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민은 뭔가 알아차린 건지 움직임이 약간 변했다.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지만 말이다.
지혁처럼 어플의 능력도 없는데 짧은 시간에 약점을 극복하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너는 백핸드에 비해 포핸드가 너무 밋밋한 게 문제야. 특히 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높은 상대하고 랠리가 길어지면 습관적으로 조급한 모습을 보이잖아. 그러니까···.”
지혁은 다른 탑랭커들과 다르게 모든 기술들을 정상급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맞춤 해결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코칭은 같은 빅4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역사상 최강의 선수들이라고 해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건 확실하게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탕!!
오오!!
코칭의 효과를 받고 정민의 실력이 실시간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자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곧 하오강에게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저 마법처럼 느껴지는 코칭을 잠시 후에 받을 수 있다는 게 부러운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특출 난 재능을 가진 하오강이 얼마나 성장하게 될까.
학생들은 생각만 해도 부러움에 배가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