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15화 (215/241)

215화. 이두희

지혁은 팬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경기를 다시 시작했다.

1세트의 현재 스코어는 5-2.

한 번만 게임을 내주면 나달에게 세트가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약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쾅!!

굉음과 함께 서비스 코트를 강타하는 플랫 서브.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정민과 이두희는 입을 떡 벌렸다.

관중석과 코트의 거리가 가까웠던 만큼 타구의 속도를 제대로 체감한 것이다.

퓨처스에서 서브가 빠른 축에 들어가는 선수들보다 40~50km가 빠른 지혁의 서브는 주니어 선수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두희는 메이저 대회 관전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충격이 엄청났다.

“와아······.”

멍하니 감탄사만 흘리는 이두희.

하지만 나달이 아슬아슬하게 리턴을 성공하고 랠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자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보여줬던 플레이가 마치 몸풀기였다는 듯 경기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혁의 진지한 태도를 눈치챈 나달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슈퍼 매치의 승부를 떠나 기량이 비슷한 상대와 경기를 하는 건 그에게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서티 러브.]

갑자기 빨라진 서브 속도 때문에 리턴을 할 때부터 균형이 깨진 탓일까.

나달은 그 답지 않게 연달아 실점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혁이 분위기 전환용으로 라켓을 바꿔 든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텐션이 달라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한층 정교해진 백핸드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마 이전과 다르게 기술의 등급이 한 단계 오른 덕분이겠지.

나달은 몇 달 전 롤랑 가로스보다 눈에 띄게 강력해진 지혁의 실력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데뷔부터 빅4에 도달할 때까지 셀 수 없는 천재들을 경험한 그에게도 지혁의 존재가 괴물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게임 리 5-3.]

[게임 리 5-4.]

[게임 리 5-5.]

지혁은 서비스게임 두 번과 브레이크 한 번으로 순식간에 스코어를 동점까지 따라잡았다.

거짓말처럼 상황이 뒤바뀌자 경기장은 팬들의 환호성으로 금세 가득 찼다.

승부가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했던 터라 슈퍼 매치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 탓이다.

“···이게 진짜 빅4의 경기인가 보네요. 제가 상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섰어요. 이 정도 수준의 경기가 나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만약 제가 그랜드슬램에 참가하게 된다면 저런 선수들을 상대해야 되겠죠.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네요······.”

“지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혁이형이랑 나달은 우승을 경쟁하는 최정상급 선수잖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지 않는 한 만날 일이 없을 거야. 너 US 오픈 같은 대회에서 16강 이상 올라갈 자신 있어?”

그랜드슬램 16강이면 128강, 64강, 32강을 전부 이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평생을 노력해도 여기까지 도달하는 테니스 선수는 극소수다.

이건 전 세계 범위로 넓혀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세계 랭킹 30위 안으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빅4를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직 투어 대회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그래. 그러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 지혁이형이랑 나달을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만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그들은 이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나달의 서비스게임으로 다시 경기가 재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수다를 떠느라 이런 명경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

[게임 세트.]

결국 짜릿한 역전승으로 1세트를 가져오는 데 성공하는 지혁.

나달은 고작 이벤트 경기 가지고 승패를 연연할 생각이 없는지 진심으로 지혁의 경기력에 박수를 보냈다.

오늘 경기는 총 3세트이니 나머지도 즐길 생각인가 보다.

그 여유로운 태도는 지혁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굳이 승부에 집착하며 진지하게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기왕 슈퍼 매치가 잡혔으니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겠지.

마침 정민과 이두희도 관전을 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보여줘야겠다.

전력을 다하는 것도 공부하는데 정말 좋겠지만 나달이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 그건 선택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옛날 기억도 떠올릴 겸 오랜만에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해볼까.’

다양한 공격 옵션을 생각하면 올라운더가 가장 효율이 좋은 건 분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베이스라이너 스타일이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비적인 성향으로 선수 생활을 한 터라 오히려 더욱 익숙하게 느껴졌다.

탕!! 탕!! 탕!!

2세트가 시작하고 얼마 후.

관중들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전과 뭔가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랠리의 횟수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혁이 베이스라인에서 평범한 스트로크만 고집하고 있는 터라 모를 수가 없었다.

경기는 특별한 샷들이 전부 배재되자 순수한 기량 대결이 펼쳐졌다.

“아······.”

득점이 쉽게 나오지 않아서 매 포인트가 꽤 길었지만 정민과 이두희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베이스라이너가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게 한 눈을 팔겠는가.

게다가 지혁은 의도적으로 두 사람과 비슷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완성도나 수준은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게임 리 1-1.]

“형이 우리를 위해서 일부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 것 같아. 베이스라이너로 경기하는 건 처음 보는데 엄청 익숙한 느낌이네.”

“분명 중학생 시절에는 올라운더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코치님들에게 듣기로는 겨울 방학이 지나고 갑자기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유망주 시절 때 그런 경우는 많으니까 이상한 것도 아니지. 나달도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라켓을 쥐잖아. 아무튼 지혁이형이 어떤 식으로 경기를 하던지 정상급 선수인 건 확실하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올라운더가 아니라 베이스라이너로 그랜드슬램에 데뷔했어도 지금처럼 대단했을 거예요.”

그들은 지혁의 경기를 볼수록 당장 훈련을 하고 싶어 졌다.

상상 속에서 가능했던 플레이가 그대로 재연되자 영감이 폭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저 모습을 목표로 잡으면 되겠어.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롤 모델이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맞아. 엄청난 행운이지. 적어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았으니까. 다음 시즌이 기대되네. 내년에는 랭킹을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해.”

정민은 경기를 보면서 이번 비시즌기의 훈련이 얼마나 효과가 클지 예상되었다.

이미 베이스라이너를 완성한 지혁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데 엄청난 성장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자신이 잡은 기회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걸 깨달은 정민의 각오는 더욱 단단해졌다.

“···아무래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

그렇게 정민과 이두희를 위한 슈퍼 매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두 번째 세트에서 나달이 승리에 1-1이 만들어지고 마지막 3세트까지 이어진 것이다.

제법 긴 경기 시간과 훌륭한 퍼포먼스에 대부분의 관중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가치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이벤트 경기의 최종적인 승자는 지혁으로 결정되었다.

선수들이 모든 실력을 발휘한 게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홈 그라운드에서 패배하지 않는 건 기본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자국의 선수가 지는 걸 보고 싶겠는가.

아무리 상대가 빅4라도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와서인지 나달의 별명을 부르며 응원을 보냈다.

나달은 세계적인 스타인만큼 한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

나달과의 슈퍼 매치가 있고 대략 한 달 후.

드디어 테니스의 비시즌기가 종료되었다.

지혁은 1월 말에 개최되는 호주 오픈에 참가하기 전에 2013년의 첫 투어 대회를 출전했다.

그 영향으로 유망주들과 같이 하던 훈련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아무래도 해외까지 데리고 다니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정민과 이두희의 코칭까지 신경 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1라운드 상대는 러시아 선수야. 랭킹이 65위라서 주의할 점은 그다지 없어 보여.”

지혁에게 대진표와 선수의 분석 자료를 건네주며 상황을 설명하는 코치.

그는 마스터즈도 아닌 자그마한 대회에서 지혁이 패배할 거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이번 대회는 상금도 적은 편인 데다가 실전 감각을 되살리는 용도라서 까다로운 상대가 거의 없었다.

“상위 라운드까지 좀 참아. 최소한 8강은 돼야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실전이니 연습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지혁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상대 선수의 분석 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다.

아무리 패배할 확률이 한 자리 수라고 해도 평소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이틀 뒤.

그토록 기다렸던 본선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이번 무대는 지혁에게나 작은 편이었지 다른 선수들에게는 이런 대회가 메인급이었다.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는 소수의 상위 랭커들의 전유물인 터라 대부분의 선수들은 ATP 500 이하에서 모든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승 상금도 퓨처스보다 백배 가량 많은 수십만 달러에 달했고 말이다.

와아아아아!!

지혁이 제법 거대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들은 약속했듯이 거대한 환호성을 보냈다.

몇 년 동안 믿기지 않는 성적과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이제 테니스계에서 그의 인기는 어떤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상대인 러시아 선수는 벌써부터 표정이 어두웠다.

한참 기량이 물 오른 20대 후반의 베테랑도 골든 보이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조연일 뿐이었다.

[플레이어 레디.]

얼마 후, 체어 엠파이어의 콜로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는 선수들.

지혁은 공을 전달받고 곧바로 서브를 시작했다.

괜히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무려 두 달 만에 하는 실전이라 그의 얼굴에는 큰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중간에 슈퍼 매치를 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경기라 도움이 거의 되지 않았다.

‘공식 대회에서 하는 경기는 이벤트 경기와 다르게 특유의 긴장감이 있으니까.’

아마 승패에 돈과 랭킹이 직접적으로 걸려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거대한 스폰서를 배경으로 둔 상위 랭커들은 여유로워도 대부분의 선수들에겐 프로 생활을 유지하는데 대회 상금이 필수적이었다.

벌써부터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마음을 다잡는 러시아 선수.

그렇게 리턴 자세를 준비하는 그 옆에 무시무시한 플랫 서브가 내려 꽂혔다.

지혁이 시작부터 전광판에 220km의 숫자를 찍어버린 것이다.

러시아 선수는 겨우 한 번의 득점이었음에도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패배를 떠올렸다.

지혁의 서브를 경기 내내 받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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