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17화 (217/241)

217화. 버릇없는 유망주

[세트 리.]

지혁은 1세트를 6-4로 가져가면서 안드레아스 세피와 자신의 수준 차이를 완벽하게 증명했다.

마치 이때까지의 플레이가 탐색전이었다는 듯이 간단히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노···놀랍네요. 랭킹 23위의 탑랭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이지혁 선수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요.]

[아뇨, 이건 실력이 상승한 게 분명합니다. 작년 시즌 초반과 비교해보면 확실해요. 지금까지 상위 랭커를 주니어 선수처럼 다룬 적은 없잖습니까.]

[확실히 US 오픈에서 조코비치를 꺾고 나서 그런 소문이 잠깐 돌긴 했죠. 아무래도 그게 정말이었나 보네요. 이전에도 대단했는데 거기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상태라니, 올해 이지혁 선수가 어떤 성적을 얻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지혁이 워낙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탓에 결승전은 팬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싱겁게 흘러갔다.

이번 경기에 우승 상금과 트로피가 걸린 만큼 안드레아스 세피가 필사의 노력을 했지만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역전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자 그를 응원하던 팬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경기는 일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4, 6-1.]

역시나 마지막까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체어 엠파이어가 담담한 목소리로 승자를 부르자 세피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격차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건 빅4와 경기를 마치고 대다수의 선수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이 시련을 극복한다면 탑10으로 올라올 거고 아니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겠지.

물론 각성을 한다고 해도 빅4의 자리를 탈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골든 보이 이지혁, ATP 250 시드니 오픈에서 세계 랭킹 23위의 안드레아스 세피를 2-0으로 제압하고 우승 달성.]

[빅4를 제외하면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없다! 호주 오픈의 결과도 긍정적으로 예상돼.]

[작년에 비해 더욱 강해진 실력. 21살의 이지혁은 아직도 성장 중.]

[안드레아스 세피,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한 실력이었다. 빅4의 벽을 느끼게 된 경기.”]

ㅡ 와 시작부터 좋네. 이제 탑랭커들도 지혁이한테 아예 상대가 안 되는구나.

ㅡ ㅇㅇ 갑자기 뭔가 달라진 느낌임. 패배할 것 같은 기분이 전혀 안 드네.

ㅡ 빨리 호주 오픈 시작됐으면 좋겠다. 마스터즈 이하 대회는 이제 긴장감도 거의 없잖아. 어차피 우승은 이지혁이니까.

ㅡ 그러니까. 이지혁 때문에 그랜드슬램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돼버렸음 ㅠㅠ

ㅡ 요즘 한국에서 테니스 인기가 그렇게 높은데 퓨쳐스랑 챌린저가 푸대접인 이유를 알겠네

ㅡ 아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해서 못 보겠다고요 ㅋㅋㅋ

ㅡ ㄹㅇ 역체감 미친 수준이긴 하지. 이지혁 경기 보다가 국내 선수들 보면 너무 느려서 하품 나오더라.

ㅡ 나는 처음에는 슬로우모션 걸고 중계방송하는 줄 알았자너 전광판에 서브 스피드 찍힌 거 보고 40~50km 얘들이 느리다는 걸 눈치챔 ㅋㅋ

ㅡ 동네 대회랑 세계 무대가 같을 수가 있나 이게 당연한 거임.

***

실전 감각을 채울 겸 참가한 시드니 오픈이 끝나고 얼마 후.

본격적으로 호주 오픈의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지혁은 탑시드 2번을 받고 대회에 참가했기에 본선 1라운드까지 시간이 널널하게 남았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니시코리하고 훈련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대진표가 그렇게 나왔으니까. 8강에서 만날 텐데 연습 파트너를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런데 니시코리가 8강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아요?”“응.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지금 그 녀석의 랭킹이 7위거든. 이 정도면 8강에 충분히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이야.”

니시코리는 지혁한테 가려져서 그렇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천재였다.

유럽과 미국, 남미의 스타 유망주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혁이라는 변수가 생긴 이후로 그의 성장 속도는 기존의 역사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분명 이 시기에 갑자기 얻은 인기와 부에 취해 슬럼프에 빠지는데 그런 일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7위라······. 이제 니시코리도 탑10이네요. 더 이상 얕볼 수 없겠어요. 송가, 앤디 로딕, 델 포트로, 존 이스너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니까요.”

“솔직히 우리 코치들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예상 못했는데 이번에도 네 안목이 적중했네. 부족한 피지컬이랑 평범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아무도 탑10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지혁은 코치의 질문을 듣고 그냥 웃기만 했다.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렇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행동에 알아서 납득을 한 건지 코치는 그냥 넘어갔다.

“어쨌든 이번 호주 오픈에서 한 번 만나면 좋겠네요. 그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해요.”

“그래. 마침 상성도 괜찮은 편이니 정말로 네 말 대로 됐으면 좋겠네.”

니시코리처럼 수비적인 스타일의 베이스라이너는 지혁에게 잡아먹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머레이나 조코비치, 나달 같이 최정상급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코치들도 분석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혁과 니시코리의 경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공짜 승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예선전이 끝나고 드디어 본선 1라운드가 시작할 날짜가 되었다.

지혁의 호주 오픈 첫 번째 상대는 남미에서 떠오르는 유망주 마르셀로 페레이라였다.

엄청난 속도로 탑100 안에 진입한 그는 무서울 게 없는지 지혁을 앞에 두고도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기자들에게 건방지게 느껴지는 언론 플레이를 한 건 진심이었나 보다.

물론 대부분의 테니스 팬들은 페레이라의 말을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비웃었다.

‘마르셀로 페레이라는 여전하구나.’

하긴 조코비치에게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이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건 타고난 천성이겠지.

그래도 막 그랜드슬램에 데뷔한 선수가 저렇게 행동한다는 건 실력에 커다란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페레이라.]

페레이라는 먼저 서비스게임을 얻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베이스라인으로 걸어갔다.

표정을 보면 정말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쾅!!

그는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게 마냥 허풍이 아니라는 듯 강력한 플랫 서브를 T존에 떨어트렸다.

지혁이 코트를 빠져나가는 공을 걷어내며 리턴을 성공하자 곧이어 스트로크 대결이 진행되었다.

탕!! 탕!! 탕!! 탕!!

““!!!””

관중들은 자신들의 예상과 다르게 페레이라가 신인답지 않은 저력을 보여주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방 지혁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랠리가 제법 팽팽하게 이어진 것이다.

솔직히 이 정도면 랭킹 50위 이상의 탑랭커와 비슷한 실력이었다.

[서티 올.]

그렇게 두 번씩 위닝샷을 주고받은 지혁과 페레이라.

그 결과에 관중석이 급격하게 소란스러워졌다.

웅성웅성.

“이건 유망주가 보여줄 경기력이 아닌데······.”

“저 선수의 이름이 마르셀로 페레이라라고 했지? 오늘부터 기억해둬야겠어. 골든 보이와 맞상대를 할 재능이면 금방 상위 랭커로 치고 올라올 테니 말이야.”

“약간 니시코리하고 델 포트로가 떠오르지 않아?”

페레이라는 경기장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 진짜 지혁의 영광을 뺏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적당히 엄청 봐주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애초에 지혁이 전력을 당했다면 한 포인트도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서브를 시작했다.

‘괜히 페이스를 바꿀 필요는 없지.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자.’

[게임 페레이라 1-0.]

아슬아슬하게 첫 서비스게임을 지켜내고 세레머니를 하는 페레이라.

지혁은 은근히 도발하는 그 행동을 신경 쓰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코트를 교체했다.

어차피 오늘 경기의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서브 리.]

쾅!!

[피프틴 러브.]

첫 서브부터 큰 차이로 들어가는 에이스.

‘역시 리턴은 아직 어설프네.’

이번이 첫 그랜드슬램 출전인 만큼 경험이 부족한 게 너무나 잘 느껴진다.

그렇게 미친 듯이 코트를 뛰어다니며 얻은 것이 무색하게 게임은 순식간에 지혁에게 넘어갔다.

페레이라는 약간 타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며 투지를 불태웠다.

경기 초반이라 충분히 극복 가능한 범주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게임 리 1-1.]

[게임 리 2-1.]

[게임 리 3-1.]

게임 스코어가 쌓여가자 슬슬 멘탈이 부서지기 시작하는지 페레이라의 표정이 빠르게 심각해졌다.

하긴 이쯤이면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되었다.

[러브 포티.]

퍽! 퍽! 퍽!

서브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점수를 내지 못하자 화가 나는지 코트 바닥에 라켓을 격렬하게 내려치는 페레이라.

프로 테니스 선수의 힘은 엄청났기에 라켓은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박살이 나버렸다.

지혁은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빛에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이 냉정하게 쳐다봤다.

그래도 이 정도 행동이면 아직 선을 넘은 수준은 아니었다.

경기에서 라켓을 부숴 먹는 탑랭커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빅4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코비치조차 이런 행동이 그리 바람직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통. 통. 통. 통.

페레이라는 화풀이가 끝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벌한 눈빛으로 서브를 준비했다.

지혁을 지긋이 노려 보는 게 은근한 악의가 느껴졌다.

“하앗!!”

쾅!!

그렇게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마치 실수라는 듯 스트로크가 지혁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당장이라도 타구에 맞을 것 같은 궤적에 마음이 약한 관중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탕!!

하지만 페레이라가 기다리던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지혁이 신기와 같은 움직임으로 스트로크를 피하며 백핸드를 성공시킨 것이다.

쿵!!

[게임 리 4-1.]

페레이라는 설마 이런 장면이 나올 줄 몰랐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의 상식 속에서 이런 플레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허···. 결국 선을 넘었다 이거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지혁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유망주라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쓰레기라는 평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선수들을 대신해서 참교육을 시켜주는 수밖에.

반항할 생각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밟아 놓으면 버릇이 조금은 고쳐지겠지.

페레이라는 자신이 사자의 코털을 뽑은 것도 모르는지 여전한 모습이었다.

곧 그에게 닥칠 험난한 미래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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