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되찾은 랭킹 1위
[게임 리 1-1.]
휴…….
간발의 차이로 페더러의 브레이크가 실패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관중들.
지혁은 그들 이상으로 압박감을 받고 있었기에 서늘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서비스게임은 그조차 아슬아슬하게 느낄 정도로 팽팽했기 때문이다.
‘역시 페더러는 완급 조절을 하면서 상대할 선수가 아니구나. 얕보다간 경기를 순식간에 내줄 수도 있겠어.’
아무래도 적당히하며 지금의 실력을 파악한다는 생각은 버려야겠다.
당장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US 오픈을 탈락할 수는 없으니.
애초에 8강에서 만난 니시코리와 같은 대접을 하기에는 페더러가 격이 다른 선수이긴 했다.
‘최근 슬럼프라고 해도 페더러는 그랜드슬램 우승을 16번이나 한 살아있는 레전드이니까.’
현역 선수들 중 두 번째로 우승 기록이 많은 나달조차 아직 우승 횟수가 9번에 불과하니 현재 테니스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벅저벅.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드는지 기세등등한 분위기로 베이스라인에 걸어가는 페더러.
볼 키즈는 그를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테니스공을 몇 개 건넸다.
3게임의 서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쾅!!
약간의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지혁의 서비스 코트를 강타한 퍼스트 서브.
가장 처리하기 까다로운 위치에 타구가 떨어진 터라 지혁은 더 이상 기량을 숨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계산이 담겨있는 게 아닌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타다다다! 탕!!
엄청난 속도로 서브를 따라잡으며 리턴을 성공하는 지혁.
관중들은 그 움직임에서 제법 여유로운 느낌이 들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턴이 예상보다 반박자 이상 빨라서일까.
페더러는 서서히 스텝이 밀리며 오른쪽 사이드라인에 위닝샷을 허용했다.
퍼스트 서브를 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러브 피프틴.]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게 리턴했는데 3게임에 들어오고 갑자기 달라졌는데? 골든 보이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준비 동작에서 코스를 읽힌 게 아닐까. 풋워크가 급하지 않고 여유로웠잖아.”
“음……. 그럴 확률이 높겠네. 페더러가 뭔가 실수를 했나 봐.”
아직 한 포인트에 불과했기에 지혁의 달라진 경기력은 유야무야하며 넘어갔다.
그래도 궁금증이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는지 관중석에는 의문이 섞인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쿵!!
[피프틴 포티.]
하지만 똑같은 광경이 세 번이나 반복되자 지혁의 위닝샷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페더러도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자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연을 기울인 자신의 플랫 서브가 너무 쉽게 막히는 게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방향을 고집한 것도 아니고 코트 전체를 공략했으니 말이다.
서브 코스를 예측당한 것도 아니라면 고작 몇 개월 사이에 풋워크 실력이 급상승했다는 뜻인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는 세계 랭킹 100위 밑의 유망주라면 몰라도 빅4의 레벨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임 리 2-1.]
예상과 다르게 극초반부터 브레이크가 나오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게 타올랐다.
지금 경기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사실상 지혁의 US 오픈 결승 진출이 확정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와우..... 페더러한테 브레이크를 엄청 쉽게 하네. 테니스 전문가들이 올해 이지혁 실력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니만 정말이었구만. 진짜 클래스가 달라지긴 했다. 같은 빅4를 전략도 아니고 순수한 경기력만으로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야.
─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놀랄만한 일인 거냐? 페더러 작년부터 여기 커뮤니티에서 퇴물 취급받지 않았어? 슬럼프와서 경기 성적 제대로 말아먹었잖아. 그랜드슬램 우승도 한 번도 못하고.
─ ㅇㅇ 2위였던 랭킹도 쭉쭉 밀려서 4위까지 머레이한테 뺏기고 결국 5위에 안착해버림. 사실 6위부터 10위까지 천상계랑 넘사벽으로 차이나는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5위가 마지노선이지. 그 밑으로 추락하면 차라리 은퇴하는 게 나을 듯.
─ 100% 동의한다. 레전드 선수면 기존의 관례대로 아름답게 퇴장하는 게 낫지. 쩌리들한테 밀릴 때까지 버티면 보기 엄청 안 좋음. 안 그래도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잖아.
─ 아니 ;; 너희들은 오늘 경기보고도 페더러가 슬럼프라는 소리가 나오냐? 도대체 어딜 봐서 퇴물이라는 거지. 나랑 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거 맞나.
─ ㅋㅋㅋ 서브만 봐도 2010 시즌 황제가 보이는구만 설레발치는 애들 많네. 내가 장담하는데 경기 절대 싱겁게 안 끝난다.
─ 응 그래봤자 이지혁한테 털리고 있어.
─ 최소한 1세트는 끝나 봐야 아는 거지 고작 브레이크 한 번 가지고 설레발 ㄴㄴ
페더러의 플레이가 작년에 비해 월등히 나아보여서 일까.
팬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경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경기의 진행률이 아직 10%도 되지 않은 터라 최종적인 의견은 더 지켜봐야 된다고 나왔다.
그리고 지혁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맞았으니 분명 페더러도 이제까지와 다른 대처를 해올 게 분명했다.
브레이크를 당하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그 증거였다.
***
90초의 휴식을 마치고 지혁의 서비스게임으로 다시 시작하는 경기.
두 선수는 지금이 경기의 분기점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지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살 떨리는 광경에 관중들도 영향을 받은 건지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이번 게임에서 뭔가 일어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앗!”
쾅!!
[SERVE SPEED: 234km/h]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서비스라인에 내리꽂히는 서브.
타구가 흐릿한 잔상과 함께 반대편 코트 쪽에서 나타나자 관중들은 고개를 한 박자 느리게 움직였다.
탕!! 탕!! 탕!!
페더러는 브레이크를 당하고 약간의 방심마저 지워버렸기에 이전처럼 위닝샷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랠리가 베이스라이너의 경기처럼 장기전으로 흘러간 것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그저 네트를 넘기는데 급급한 안전한 샷들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올라운더를 떠올릴 만한 화려한 플레이들이 줄줄이 튀어나온 것이다.
단지 마법과도 같은 움직임과 라켓 컨트롤로 인해 위너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
이제까지 경험했던 다른 탑랭커들과 격이 다른 경기력에 멍하니 입을 벌리는 관중들.
거기에는 같은 탑랭커들과 전문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혁과 페더러의 대결은 프로들에게조차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페더러가 슬럼프를 극복한 게 분명하군. 골든 보이와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면 조코비치와 만나도 충분히 이길 수 있겠는데?”
“올해는 빅5가 전부 컨디션이 좋을 것 같으니 5파전을 기대해봐도 되겠어.”
“이러면 최종 라운드에 누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10년 전이었다면 간단하게 테니스계를 지배했을 선수가 5명이나 존재한다니 정말 미쳐버린 시대구만.”
“덕분에 같은 탑랭커들만 불쌍해졌어. 저 몬스터들을 전부 뚫고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는 게 가능하겠어?”
“냉정하게 보면 많이 힘들지. 상, 하단 쿼터에 절반씩 나눠져 배치되어 있으니 기적이 최소한 2~3번은 일어나야 하잖아. 한 번이라면 몰라도 이건 확률상으로 불가능…….”
쾅!!
그들은 코트에서 거대한 임팩트 소리가 들려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운이 좋으면 몇 달, 보통 1년에 한 번 나올만한 명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서티 피프틴.]
“허억…. 허억….”
20구가 넘어가는 랠리 끝에 간신히 위닝샷을 얻어낸 지혁.
다른 경기보다 코트를 뛰어다닌 시간과 거리가 월등히 많았기에 체어 엠파이어의 콜이 들리자 선수들은 한동안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니시코리랑 페더러도 그렇고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작년 시즌보다 훨씬 발전했네. 정말로 준비를 많이 했어.’
만약 방심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추월당할 수도 있었겠다.
지혁은 예전 실력으로 호주 오픈을 참가했다면 오늘 경기가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뻔하게 예상이 되어서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페더러보다 아주 미세하게 유리한 상황인 게 확실해.’
장시간 랠리를 몇 번해보니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느껴졌다.
‘코트 커버력이랑 결정력도 그렇고 전체적인 밸런스가 내가 더 나아.’
실제로 페더러도 지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세 판단과 경기 지능이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선수이니만큼 경기가 이대로 진행되면 자신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정면대결에서 밀린다면 특별한 전략과 모험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는 수비를 하기 좋은 위치에서 조금 더 공격적인 자리로 한 발자국 이동했다.
지혁의 압박에 밀려서 말라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포지션을 변경한 것이다.
그 갑작스러운 결정에 몇몇 전문가들은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냈다.
선수들의 위치가 달라진 만큼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탕!!
‘베이스라인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는데 내 플랫 서브를 안정적으로 리턴하다니….’
이건 아무리 페더러라도 평소라면 어려운 플레이였다.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엄청 좋긴 한가 보다.
이전에 없던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임 리 3-1.]
지혁은 돌발 상황에 잠깐 흔들렸지만 곧바로 태세를 정비했다.
솔직히 탁월한 전략으로 승리를 따낸 게 아니라 기량으로 찍어 누른 느낌이 컸다.
괴물 같은 풋워크가 베이스로 깔려있다 보니 예전이었다면 놓칠만한 샷들도 억지로 퍼올릴 수 있었다.
사실 강력한 창과 방패를 전부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패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상한 삽질만 하지 않으면 기본은 하니 말이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와 3위인 나달과 조코비치도 딱히 뭔가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자멸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지 않은가.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경기가 지속될수록 관중들의 환호성은 뜨거워졌다.
풋워크가 완성도니 지혁과 컨디션이 최상인 페더러가 슈퍼 플레이를 끝도 없이 쏟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조코비치와 나달의 우주 방어가 떠오르는 지혁의 플레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메이저 대회에서 천재적인 플레이를 가장 많이 보여주는 골든 보이가 이런 코트 커버력까지 갖추게 되다니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군.”
“분명 페더러도 대단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긴 어렵겠어. 상대가 너무 강력해.”
“…이때까지 내가 본 테니스는 뭐지? 정말로 저 선수들이 사람이 맞긴 한 거야?”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빅4의 경기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구나?”
“…어떻게 알았어?”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다면 다른 탑랭커랑 그들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거든.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리 이 4명의 선수는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은 존재야.”
“요즘 들어 테니스 종목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이런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보고 나면 누구라도 빠질 수밖에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