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25화 (225/241)

225화. 되찾은 랭킹 1위

경기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경기는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설마 지혁이 몇 개월 만에 자신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게 될 줄 몰랐는지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당황한 심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먼 거리의 관중들이라면 모를까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숨길 정도는 아니었다.

[게임 조코비치 5-5. 듀스.]

결국 승부를 내지 못하고 1세트부터 듀스에 들어가는 경기.

그 결과에 조코비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예전처럼 전략이나 모험수를 던지지도 않았는데 듀스에 들어가다니.

이건 그에게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격차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코비치는 호흡을 정리하면서 심각해진 표정을 풀었다.

어차피 경기가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건 그가 선호하는 상황이었다.

베이스라이너인 나달하고 경기가 잡히면 플레이 타임이 4~6시간을 넘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 꺼려할 것도 없다.

알아서 자신의 범위로 들어온다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탕!!

[게임 리 6-5.]

[게임 조코비치 6-6. 타이브레이크.]

그렇게 1세트는 결국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까지 도달했다.

정해진 서비스게임과 듀스 안에 끝내지 못하자 7점승 규칙의 타이브레이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위닝샷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듀스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타이브레이크는 선수들 중 한 명이 먼저 득점을 하나만 얻으면 되어서 무한정 길어지기 힘든 구조였다.

실수 한 번이면 순식간에 세트가 끝나버리니.

“와……. 브레이크가 엄청 안 나오더니만 결국 여기까지 왔네. 엄청 치열하잖아?”

“이래야 그랜드슬램 결승전이지. 아마 경기 하나에 우승 트로피가 걸린 만큼 선수들의 집중력이 어느 때보다 최고일 거야. 정말 간만에 명경기를 보는 것 같네.”

“확실히 이전 라운드보다 훨씬 치열한 느낌이긴 해.”

“그나저나 누가 1세트를 먼저 가져가게 될까.”

“글쎄. 둘 다 중요한 순간에 실력 발휘를 하는 선수들이라 모르겠네.”

“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으니 우리는 즐기기만 하자.”

[레디. 서브 리.]

곧이어 시작되는 1세트의 타이브레이크.

지혁은 왼손에 공을 쥔 상태로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음…. 역시 찰나를 사용해서라도 첫 세트는 가져가는 게 좋겠지. 이번 타이브레이크의 결과에 따라 전략의 선택지가 엄청나게 변할 테니 말이야.’

만약 조코비치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그는 수비에 더욱 비중을 두며 최대한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도록 장기전을 유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혁이 바라는 바가 절대 아니었다.

상대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끌려가면서 수동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건 모든 측면에서 좋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흐름을 한 번 정도 끊어놓자. 그러면 이후의 세트에서 여유가 생길 테니 괜찮겠지.’

애초에 세트 막바지에서 컨디션을 생각하는 것도 우스웠다.

괜히 약간의 이득을 챙기려다가 전부 잃어버리는 소탐대실을 할 게 뻔했다.

경기의 방향이 결정되자 지혁은 왼손으로 공을 휙! 던졌다.

무릎과 허리가 굽혀지고 왕관 자세에서 힘이 응축되길 잠시.

188cm의 장신이 회전하면서 라켓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휘둘러졌다.

현재 빅 서버들 사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혁의 플랫 서브였다.

쾅!!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 T존에 꽂히는 공.

포인트 하나, 하나가 워낙 중요했기에 타구의 속도는 이전의 경기보다 더 빨랐다.

이때까지는 어느 정도 체력 배분을 하며 플레이를 했지만 타이브레이크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원래 모든 파국은 약간의 방심으로 인해 시작하니 말이다.

탕!!

조코비치는 가장 리턴하기 까다로운 위치에 바운드된 서브를 헛숨을 들이키며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코트 가장자리를 향해 어프로치샷을 날린 걸 보니 무너진 밸런스를 회복할 시간을 벌 생각인가 보다.

‘그 의도대로 따라줄 이유가 없지.’

타다다다다! 탕!!

지혁은 서브를 치자마자 베이스라인에서 네트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리턴이 바닥에 바운드되기 전에 라켓으로 맞출 수 있었다.

보통 발리는 어디로 떨어질지 예상을 하고 몇 박자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조코비치는 마지막까지 어떤 코스로 날아올지 확신하지 못한 채 스타트를 끊지 못했다.

처음부터 혼란을 주기 위해 고도의 페이크가 들어서였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정교한 플레이가 가능했던 건 고속 서브와 리턴이 되기도 전에 네트 앞으로 출발한 사전 빌드업 덕분이었다.

퉁!

하지만 조코비치는 자신이 어째서 최강의 베이스라이너로 불리는지 사람들에게 증명했다.

어떤 탑랭커를 데려놓아도 백중 백으로 위너가 나올 발리를 끝까지 쫓아가 기어코 퍼올린 것이다.

슬라이딩을 하면서 다리를 찢었던 터라 손으로 바닥을 짚고 나서야 균형을 회복하는 모습이 정말 경이롭다.

물론 이것만으로 지금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탕!! 탕!! 탕!! 탕!

그렇게 조코비치는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발리를 네 번이나 막아내는 무시무시한 저력을 보여줬다.

그 초인적인 코트 커버력에 관중들은 흥분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전문가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일반인들이라면 몰라도 선수 출신들은 묘기처럼 느껴지는 저 장면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솔직히 그들은 전성기 시절이라고 해도 따라할 엄두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쾅!!

스트로크가 약간 높이 떠오르는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이 스매싱을 때리는 지혁.

엄청난 속도로 코트 바닥을 내리찍는 타구는 아무리 세계 랭킹 1위의 선수라도 물리적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

우와아아아아!!!

승부가 결정되자 거대한 함성으로 흔들리는 스타디움.

관중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경기 중에 참았던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잘해봐야 일 년에 한 번 나올법한 선수들의 플레이에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그들이 어딜 가서 이런 경기를 볼 수 있겠는가.

방금 같은 장면은 이번 호주 오픈이 아니라 다른 그랜드슬램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와!! 첫 포인트부터 장난이 아니잖아.”

“역시 타이브레이크는 다르네. 걸려있는 게 크니까 안 그래도 높던 경기력이 더 올라갔어.”

“그러면 지금 실력이 골든 보이와 조코비치의 진짜 전력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기량을 숨기겠어? 아마 체력 안배나 기존의 전략 같은 건 전부 밀어 두고 승리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제 조코비치의 서브 차례인데 과연 방금 당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갚아줄지 궁금하네. 설마 기가 죽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골든 보이의 발리를 막아내는 플레이를 보니 뭐가 됐든 우리가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들의 말대로 조코비치는 지혁의 기선제압에도 전혀 움츠러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승부욕을 자극받았는지 눈빛이 더욱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마침 자신의 서브 차례가 왔으니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지 실점을 만회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스코어가 1-0이라고 해도 아직 브레이크가 나온 것도 아니니 딱히 불리한 건 아니었다.

조코비치는 언제나 그랬듯이 서브만 완벽하게 지켜내면 기회는 금방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탕!!

괜히 시간을 지체해서 물오른 집중력을 깨트릴 생각이 없는지 아주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경기.

상황이 워낙 극단적이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그 덕분에 관중들은 선수들이 추구하는 테니스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조코비치는 엄청 보수적으로 플레이하네. 골든 보이는 모험적인 샷들을 많이 시도하는 편이고.”

“성공률이 100%에 가까운데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선택이지. 어떤 샷을 쳐도 전부 라인 안에 집어넣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나저나 올라운더와 베이스라이너의 최강자가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이런 경기가 나오는구나. 너는 어떤 스타일이 더 유리하다고 봐?”

“각자의 장단점이 워낙 뚜렷해서 비슷비슷해. 이것만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 경기의 결과는 플레이 스타일보다 선수 본연의 실력에 달려있는 거야. 더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그래? 나는 조코비치가 이번 호주 오픈의 우승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데.”

남자가 자신 있게 말하자 곧바로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아무리 경기를 집중해서 보고 있어도 지혁과 조코비치 중에 누가 이길지 도저히 예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뭐야?”

“분명 골든 보이가 결정력이랑 공격력이 더 뛰어난 건 인정해. 하지만 실점을 막아내는 능력은 조코비치 쪽이 무조건 한 수 위야. 아까의 발리도 그렇고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 연속해서 막아내는 모습을 너도 봤잖아? 결국 역전도 만들어냈고.”

“그래도 단기전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골든 보이 아닌가.”

“물론 몇 포인트는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랜드슬램의 경기는 총 5세트라 다른 대회들보다 훨씬 길어. 스코어를 먼저 내주더라도 마지막까지 가면 수비를 잘하는 선수가 이기게 되어 있다고. 이건 통계적으로도 증명된 일이야. 괜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클래식 스타일을 고집하던 선수들이 전멸했겠어?”

그는 무조건 조코비치가 이길 거라고 장담했다.

지혁이 5-5 상황에서 두 번의 슈퍼 플레이를 연계해서 첫 브레이크를 따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관중들은 예술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스트로크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리! 6-5. 서브 리!]

“…….”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입을 다무는 남자.

당연하게도 지금 상황은 처음부터 지혁이 계획한 일이었다.

가장 베스트는 타이브레이크 후반이 되기 전에 브레이크를 넣는 것이었지만 2번 전략은 승리 조건인 7점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모든 실력을 쏟아부어 몰아치는 것이었다.

“조코비치가 이길 거라며? 어떻게 된 거야?”

“어……. 그, 아직 남아있으니까 기다려봐.”

남자는 마치 추궁하는 듯한 친구의 말에 허둥지둥 답했다.

발리를 막아내던 조코비치를 뛰어넘는 지혁의 미친 경기력을 보고 기존의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승부의 분기점이 된 11번째 득점은 대단했다.

관중들이 놀란 표정으로 한참 웅성거리고 있을 때. 정작 지혁은 속으로 조코비치의 실력에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두 번이나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완벽한 위닝샷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막아내다니.’

예고도 없이 슈퍼 플레이가 나왔는데 오히려 반격으로 인해 실점의 위기를 겪었다.

이번에 찰나를 연속으로 사용한 건 득점보다 방어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점수를 빼앗겼을 테니까.

‘후…. 정말로 방심할 수 없는 선수네.’

지혁은 자신만 알고 있는 위기를 겪고 나서 아무도 모르게 조코비치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올렸다.

믿었던 찰나와 풋워크의 조합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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