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29화 (229/241)

229화. 전승행진

다른 때보다 유독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경기.

머레이는 정말로 확실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공격적인 샷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수비적인 포지션만 계속 고집했다.

아마 이전 대회의 참배로 화력 싸움을 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8강에서 만난 페더러보다 실력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머레이가 훨씬 더 잘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걸 보면 머레이는 적어도 코트 커버력 하나만큼은 빅4와 대등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러니 작년 윔블던에서 우승을 했겠지만.

[게임 머레이 5-5. 듀스.]

지혁이 무난하게 압승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관중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고 경기가 팽팽하게 유지되자 경기장은 ‘혹시?’하는 반응들이 늘었다.

잘만하면 결승전에 진출하는 선수가 달라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선수도 아니고 머레이 정도의 정상급 선수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이러다가 정말 대반전이 나올 수도 있겠어.”

“싱거운 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버티네. 베이스라이너가 유리한 클레이 코트라서 그런가?”

“그런 이유도 있겠지. 나는 그것보다 전략을 잘 준비해온 것 같아. 머레이의 저 지독한 플레이를 봐. 코트 끝에서 랠리만 길게 이어가고 있지 위닝샷과 브레이크를 전혀 시도하지 않고 있잖아. 장기전에 들어가려고 하는 게 분명해.”

“지금 추세로 5세트까지 가면 경기가 5시간이 넘을 수도 있겠는데….”

그들의 말대로 경기의 템포는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선수들이 모두 생각하는 게 있어서 굳이 먼저 급하게 나올 필요가 없었다.

장기전을 노리는 머레이와, 목표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지혁.

이렇게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니 모험적인 수가 전혀 나오지 않은 채 안정적인 랠리만 계속 이어졌다.

[세트 머레이.]

우와아아아아아!!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머레이에게 넘어가는 1세트.

관중들은 설마 요즘 전승행진을 하면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는 지혁을 상대로 먼저 세트를 가져갈 줄 몰랐는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머레이도 경기가 이 정도로 잘 풀릴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뭐야? 정말로 앤디가 골든 보이를 이기는 거야?”

“어…. 그런 것 같은데?”

“혹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가?”

“하드 코트가 아니라 클레이 코트라서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엄청 의외네. 만약 이러다가 앤디가 대신 결승전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재밌겠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잖아.”

“2세트에서도 이런 식이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아슬아슬하게 졌다고 해도 패배는 패배였다.

관중들은 1세트의 결과로 인해 지혁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는지 은근슬쩍 머레이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었다.

만약 세트 스코어가 2-0까지 벌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되겠지.

그런 꼴을 보기 싫다면 어떻게 해서든 동점을 만들어놔야 한다.

‘이기는 것보다 시간을 끄는데 집중하다 보니 삐끗했네. 그래도 이제 목표량에 거의 도달했으니 상관없어.’

어차피 그랜드슬램은 마스터즈처럼 세트 하나 내준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것도 아니었다.

아직 한참 남아있는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패승승승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레디.]

그렇게 2세트는 120초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시작되었다.

먼저 서브를 가져간 건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머레이였다.

탕!! 탕!! 탕!!

지혁을 상대로 승기를 가져갔음에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머레이.

빅4에 비해 유리멘탈을 가진 그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본인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상황이 잘 풀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비슷한 랭킹의 선수들에 비해 어린 축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는 지혁보다 6살이나 많은 87년생이었으니 이제 베테랑 선수라고 할만 했다.

[게임 머레이 1-0.]

[게임 리 2-2.]

[게임 머레이 4-3.]

그렇게 경기가 1세트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을 때.

지혁은 상황이 자신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데도 벤치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다 모였네.’

몇 개월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필요량이 모이자마자 바로 모든 포인트를 사용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지혁의 눈에는 서브의 등급이 A+에서 S로 바뀌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기다렸다는 듯이 어마어마한 정보량이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이미 완성에 달했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을 산산히 깨부수는 서브 기술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혁은 자신이 어떤 부분이 약점이고 부족한지 단번에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보완되어 가는 실력이 느껴지자 손이 흥분으로 가늘게 떨렸다.

잠시 후, 등급이 상승한 서브가 어떤 위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지혁]

근력: 80 민첩: 80 체력:80 신장: 188cm▲

서브(S), 포핸드(S), 백핸드(S), 풋워크(S), 외모(A), 트릭샷(A), 찰나(A+)

[포인트: 0]

[기본 기술을 모두 S등급까지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제한이 풀렸습니다.]

“…….”

[서브 리.]

지혁은 서브가 S등급으로 바뀌자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오는 글자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

예상한 대로 뭔가 특전들이 잔뜩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당장 포인트가 0이었기에 억지로 돌아가는 시선을 붙잡고 어플을 종료했다.

체어 엠파이어가 이미 콜을 내린 상화에서 계속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어딘가 급한 움직임으로 베이스라인으로 걸어가는 지혁.

바로 옆에서 공을 건네주던 볼 키즈는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채고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후…….”

곧 경기장이 조용해지자 심호흡 소리가 한 번 들리고 왼손에 들린 공이 허공으로 토스되었다.

활처럼 휘는 지혁의 왕관 자세는 그동안 보여줬던 서브와 어딘가 미세하게 달라 보였다.

훨씬 힘과 위압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쾅!!

[피프틴 러브.]

“…….”

왼쪽 서비스라인을 살짝 걸치는 절묘한 코스와 갑자기 더 빨라진 서브에 에이스를 허용하는 머레이.

그는 윔블던 우승자이자 세계 랭킹 4위다운 안목으로 뭔가 이질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이번 서브가 그저 운이 따른 결과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갑자기 실력이 뒤바뀔 리는 없었다.

쾅!1

[포티 러브.]

하지만 에이스가 세 번 연속으로 반복되자 그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영향인지 리턴을 하는 움직임도 조금이나마 늦어졌다.

쿵!!

[게임 리 4-4.]

“챌린지!”

머레이는 체어 엠파이어의 콜이 들리자마자 판정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고 곧바로 검지를 들며 반발했다.

확실히 관중들이 느끼기에도 T존 근처를 강타하고 코트 뒤의 벽을 때린 지혁의 서브는 어딘가 미묘했다.

타다다다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바닥에 눕다시피 하며 바운드 흔적을 확인하는 라인심.

클레이 코트를 사용하는 롤랑 가로스의 특성상 호크 아이가 없어서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카메라도 서브가 들어간 장면을 리플레이를 하며 T존을 최대한 확대했다.

해설들조차 애매한지 인과 아웃을 가지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만큼 에이스가 들어간 게 맞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인! 세트 리 4-4.]

결국 코드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난 후에 기존의 판정을 유지하는 라인심.

머레이는 그 판정에 멘탈이 살짝 흔들렸는지 라켓으로 T존을 가리키며 다시 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이미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그게 통할 리 없었다.

체어 엠파이어의 경고를 받고 물러나는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꽤 억울한 표정을 하는 걸 보니 그의 위치에서는 정말 아웃으로 보였나 보다.

‘롤랑에서 머레이를 상대로 에이스 네 번이라…….’

물론 기습적으로 서브의 위력이 올라간 영향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관중들도 지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서비스게임을 끝내버린 지혁의 서브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속도가 몇 km인 거야? 2…236km?”

“속도는 그렇다고 쳐도 컨트롤이 미쳤어. 네 번 모두 라인을 걸치는 거 봤어? 페더러의 전성기 시절이 떠오르는 서브였어.”

“하…. 저런 게 서비스라인에 걸치면 알아도 못 막지.”

“이렇게 되면 설마 이때까지 골든 보이가 적당히 수준을 맞춰주면서 플레이한 거였나?”

“앤디 머레이를 상대로? 그건 말도 안 돼!”

“경기를 더 지켜보면 알겠지. 방금 같은 서브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서브 머레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다시 시작하는 경기.

머레이는 자신은 생고생을 하며 얻은 게임을 너무 쉽게 내어주자 이를 악물었다.

그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지혁보다 최소 몇 배 이상이었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누구는 포티 서티나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해야 간신히 서비스게임을 지키는데 상대 선수는 고작 서브 네 번으로 끝내 버린다?

아무리 서로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도 짜증이 나는 게 당연하다.

[세트 리.]

결국 머레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기 템포가 꼬였는지 타이브레이크까지 가지 못하고 2세트를 내주었다.

마지막까지 승부가 비등비등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에게 정말 뼈아픈 패배였다.

‘무난하게 이기겠네.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지혁은 아직 스코어가 동점인데도 승리를 확신했다.

서브와 리턴 둘 중 하나를 압도하고 나머지조차도 비등비등하니 패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있는데 무엇이 무섭겠는가.

경기가 꼬여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간다고 해도 지금 상태라면 필승이 보장되었다.

그러니 그는 남은 경기를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믿을 만한 보험이 있으니까 이제 브레이크 타이밍 때 더 적극적으로 나가도 되겠네.’

머레이에게 맞춰주느라 수비에만 집중했는데 슬슬 공격적인 플레이를 시도해봐야겠다.

물론 이게 가장 효율이 높거나 정석적인 전략은 아니지만 지혁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정상급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에게 전력을 다해 샷을 퍼부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관중들은 즐거울 것이다.

그랜드슬램이라고 해도 쉽게 보기 힘든 명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올 테니 말이다.

결승전에 올라올 선수가 나달, 조코비치였으니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해도 되었다.

물론 그들은 머레이에게 없는 리버스 포핸드와 더 지독한 코트 커버력을 가진 만큼 더 까다로울 게 분명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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