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32화 (232/241)

232화. 전승행진

롤랑 가로스 결승은 지혁의 예상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달이 2세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결국 세트 스코어를 1-1, 동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쯤 되니 지혁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정말 한 번만 삐끗하면 우승 트로피가 그대로 넘어가니 말이다.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한테 절대 유리한 고지를 넘겨줄 수 없지.’

지혁은 괜히 안일한 태도로 자만하다가 역전당할 생각이 없었다.

공격보다 지키는데 특화된 선수에게 주도권을 주는 건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황이 되면 나달은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시간을 무한정 끌게 분명했다.

그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은 누가 뭐라고 해도 초장기전이었으니까.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쾅!!

그렇게 3세트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지혁의 서브로 시작했다.

그의 플랫 서브는 경기 중반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탕!!

엄청난 속도로 바운드되는 공을 여유롭게 리턴하는 나달.

그 모습에 관중들은 꽤나 놀란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정확한 사정을 모른다면 그들처럼 나달의 리턴 실력이 갑자기 상승한 것처럼 느껴질만도 했다.

[피프틴 러브.]

“아…. 이길 수도 있었는데 아깝네. 엄청 팽팽한 랠리였어. 그나저나 역시 라파인가. 경기를 간단하게 넘겨주지 않는구만. 정말로 무서운 적응력이야. 이러면 그가 이번 롤랑에서 우승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어. 초반만 하더라도 아슬아슬했는데 말이야.”

“글쎄. 내가 보기엔 그저 임시방편일 뿐인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상황이 좋아 보여도 지금의 균형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어.”

“음? 어째서?”

“리턴할 때 위치가 평소보다 훨씬 뒤로 물러나 있잖아. 저 자리에 있다는 건 사실상 위닝샷을 포기했다는 뜻이야.”

“……?”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음에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이 돌아왔다.

남자는 굳이 애써가며 친구에게 설명을 세세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저런 임시방편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면 지혁과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 진작 사용하고도 남았겠지.

이때까지 저 전략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

[게임 리 1-0.]

결국 나달은 지혁이 네 개의 포인트를 얻어서 1게임에서 승리할 때까지 위닝샷을 한 번밖에 따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평정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원래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뭔가 계획한 바가 있으면 멘탈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법이다.

경기가 잘 맞아떨어진다면 언제라도 역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생각하고 있는 작전이 있나 보네. 뭔지 예상이 돼. 애초에 선택지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까.’

솔직히 브레이크 기회를 버려가면서까지 경기 시간을 끌고 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했다.

지혁의 체력을 소모시키면서 겸사겸사 본인에게 유리한 초장기전으로 유도하는 거겠지.

이러다가 갑자기 포인트를 앞서가기라도 한다면 2세트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력을 다해 승부를 걸어올 것이다.

물론 지혁은 나달의 급조한 전략에 넘어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탕!! 탕!! 탕!!

안 그래도 코트 커버력이 강한 나달이 본격적으로 방어적인 포지션을 고집해서일까.

3세트의 플레이 타임은 비정상적으로 길어졌다.

랠리 한 번, 한 번이 무식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관중들의 눈은 경기에 집중을 하느라 이미 한참 전부터 빨갛게 충혈되어있었다.

[게임 리 3-2.]

[게임 리 4-3.]

특별히 달라지는 것 없이 쌓여가는 3세트의 스코어.

선수들의 멘탈은 여전히 멀쩡했는데 정작 경기를 구경하던 관중들이 먼저 인내심이 바닥나서 조급한 반응을 보였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다 보니 결국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피로를 호소한 것이다.

“후……. 내가 직접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숨이 왜 이렇게 막히는지 모르겠네. 땀도 너무 많이 흐르고 힘들어. 이러다가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힘들면 이번 게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서 쉬어도 돼.”

“저 재미있는 경기를 두고?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남자는 친구의 제안을 듣고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완강하게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 명경기가 성사되었는데 고작 피로 때문에 관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늘 같은 경기는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다고 확신하기도 힘들었으니, 아마 그런 선택을 한다면 평생 후회할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라파가 머레이처럼 수비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그는 베이스라이너 중에서도 위닝샷 비율이 꽤 높은 편인데 말이야.”

“아무래도 상대가 골든 보이라서 그렇겠지.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거야.”

“클레이 코트에서?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그것 말고 지금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있어? 경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분위기가 일방적이었잖아. 게다가 3세트는 이전 세트보다 더욱 그렇고.”

그 말을 듣고 딱히 반박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그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아주 잠깐 맴돌았다.

지금 나달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저 녀석은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내심 나달의 우승을 바라던 팬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경기는 단순히 롤랑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랭킹 1, 2위를 갈아치우며 급부상한 지혁과 조코비치가 아무리 대단한 활약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클레이 대회만큼은 나달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침범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앞으로 테니스계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은 아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건 올해가 아니라 3~4년이 지난 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경기가 끝난 게 아니야. 실망하는 건 승자가 정해진 후라도 늦지 않아.”

“…그래. 아직 동점이니 나달이 이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100% 패배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들은 아직 3세트가 남아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달은 어중이떠중이 선수들처럼 이대로 쉽게 무너질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

쿵!!

코트 왼쪽의 사이드라인을 때리며 서비스게임을 마무리하는 나달의 탑스핀 포핸드.

바운드된 공은 기괴한 각도로 튀어 오르며 지혁의 라켓을 유유히 피해 갔다.

승부의 분기점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에 다시 한 번 동점이 나오자 관중석에서는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혁에겐 속이 쓰린 결과였지만 그들이 그런 걸 세세하게 신경 쓸 의무는 없었다.

오히려 관중들은 선수들과 다르게 타이브레이크처럼 더 긴박하고 살 떨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를 바랐다.

가혹한 환경이 만들어질수록 선수들의 잠재력이 한계까지 폭발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임 나달 5-5. 듀스.]

‘이대로라면 또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가겠는데.’

물론 그게 지혁에게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단기전으로 승부를 가린다면 나달보다 그가 이길 가능성이 어떤 측면으로 봐도 더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혁은 3세트가 더 길어진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굳이 나달이 원하는 구도를 맞춰줄 필요는 없지.’

원래 테니스에서 가장 위력적인 샷과 전략은 상대의 예상을 벗어난 것들이었다.

나달도 지혁이 자신에게 유리한 타이브레이크를 준비할 거라고 생각할 테니 그 맹점을 공략하면 뭔가 성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서브 리.]

탕!!

기습적으로 트위스트 서브를 사용하는 지혁.

나달은 역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공을 어떻게든 리턴해보려고 했지만 오늘 경기에서 처음 나온 기술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피프틴 러브.]

결국 공은 나달의 라켓 헤드에 틱!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아웃되었다.

허점을 제대로 찔린 표정이 꽤 볼만하다.

이제 지혁이 사용하는 서브의 선택지가 하나 늘었으니 리턴을 하는데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이스 빈도도 늘어날 거고.’

경기 초반부터 트위스트 서브를 사용하지 않고 아껴둔 건 전부 이 순간만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지혁이 서브를 섞어가며 사용하자 나머지 서비스게임은 아주 간단하게 넘어왔다.

기대를 충족하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게임 리 6-5.]

저벅저벅.

3세트의 마지막 휴식을 하기 위해 벤치로 돌아가는 선수들.

이번에 지혁이 브레이크를 성공하면 이대로 세트가 종료되고 실패한다면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게 된다.

관중들은 선수들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달의 표정은 살벌했다.

“거기서 갑자기 트위스트 서브가 나올 줄이야. 그 샷 때문에 나달의 템포가 완전히 꼬였어.”

“확실히 너무 싱겁게 끝나긴 했지. 타이밍도 절묘하고 전략도 엄청 나이스했어. 사전에 준비한 거겠지?”

“당연하지. 대회 내내 사용하지 않고 아낀 이유가 뭐겠어. 결승에서 써먹으려는 이유밖에 더 있겠어?”

“골든 보이 정도의 실력과 명성이면 조금은 나태해질 법도 한데 이번 대회에서도 부지런하네. 이미 세계 랭킹 1위인데도 준비를 정말 철저하게 했어.”

그들은 대회 초반부터 결승 3세트까지 이어진 빌드업이 결국에는 성공하자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랜드슬램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게 그냥 테니스 재능만으로 얻은 성적이 아니었구나. 경기 지능도 대회 성적에 어울리는 녀석이야.”

“어. 마치 프로 경력이 10년 정도 되는 베테랑 선수가 떠오르는 능숙함이네.”

관중들이 지혁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길 잠시.

곧 경기를 재개하라는 체어 엠파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결승전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이었다.

[서브 나달.]

탕!! 탕!! 탕!! 탕!!

한동안 선수들의 기합 소리와 임팩트 소리만 들리는 코트.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그 소음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뚝 끊겼다.

마침내 첫 번째 포인트의 승자가 정해진 것이다.

치열한 경쟁 끝에 먼저 위닝샷을 성공시킨 건 나달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번 시대를 지배하는 빅4인 걸 증명하듯이 지혁의 슈퍼 플레이에 밀리지 않는 만점짜리 백핸드 위너를 선보였다.

‘……충격적인데.’

아직 상황이 나쁘지 않음에도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가는 지혁.

그가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찰나를 사용했는데도 그걸 위닝샷으로 되받아쳤어….’

그게 너무 의외의 일이라 지혁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1세트에서 했던 짓을 반복해야겠어. 그때 출혈이 너무 커서 여기서는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지혁의 과욕이었던 것 같았다.

‘역시 승부처에서는 정면 돌파밖에 답이 없어. 잔꾀를 부리지 말자.’

모든 곳에서 정석이 환영받는 것은 항상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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