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36화 (236/241)

236화. 전승행진

지혁이 뉴욕에 도착하고 이틀 후.

드디어 합동 훈련을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니시코리는 일정상 딱 하루 동안 연습 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본선 1라운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체력 안배가 어느 정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 드디어 왔나 보네.”

지혁의 전담 코치는 실내 코트 입구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프라이빗한 이 공간에 방문할 만한 사람은 니시코리 밖에 없었기에 정체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한, 두 사람이라고 하기엔 많이 소란스러운 걸 보면 대동한 일행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세계 랭킹 7위이자 연수입 400억이 넘는 스포츠 스타가 혼자 다닐 리 없었다.

지혁에 비해 인기가 아래라 그렇지 니시코리는 탑랭커 중에서도 인기가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슈퍼 스타였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길 잠시.

예상대로 인기척의 주인공은 니시코리와 그의 코치들이었다.

니시코리는 코트에서 스트로크 훈련을 하고 있는 지혁을 발견하자마자 진심으로 반가운지 크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지혁! 나 왔어!”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훈련을 멈추는 지혁.

그와 동시에 마지막으로 친 백핸드 스트로크가 바닥에 부딪치며 실내 코트의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손님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오….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올해 초반부터 모든 경기를 전승행진하고 있는 지혁의 스트로크를 눈앞에서 보는 게 흥미로운 듯했다.

작년에도 지혁을 만나긴 했지만 지금과 그때의 위상은 많이 달랐으니.

“후…. 여전히 무시무시한 백핸드네.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실력이야.”

“여전히? 나는 예전보다 더 위력이 증가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왠지 뻗는 느낌이 달랐어. 힘이 더 강해졌다고 할까?”

“상식적으로 당연히 그렇겠지. 그때와 똑같은 실력이라면 지금처럼 무패를 유지할 수 있겠어? 무조건 실력이 성장한 게 맞아.”

“케이, 너는 직접 골든 보이를 상대해봤으니 우리보다 훨씬 잘 알겠지. 어떻게 생각해?”

“고작 스트로크 한 번 보는 것으로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지. 그래도 더 까다로운 느낌이 들긴 하네.”

“무려 세계 랭킹 7위의 감각인데 절대 무시할 수 없지. 이전에도 코치들의 분석과 다른 판단을 내렸는데 맞았잖아. 그러니 네 예감은 높은 확률로 맞을 거야.”

웅성웅성

니시코리의 코치들은 모두 현역 시절에 한가락 하던 테니스 선수들이라서 스트로크 한 번을 보고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그렇게 그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을 때.

지혁이 적당한 걸음으로 다가오자 대화가 뚝 끊겼다.

“케이,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서 왔네요. 연습 경기를 흔쾌히 도와준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같은 아시아 선수가 대기록을 앞두고 있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데 방금 전의 스트로크를 보니 나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

지혁은 니시코리에게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번처럼 일정을 앞당겨서 도와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둘 사이에 몇 년 동안의 인연이 없었다면 니시코리는 이번 제안을 100% 거절했을 것이다.

“대회 시작까지 시간이 촉박하니 남은 이야기는 연습 경기를 한 번 하고 나서 하죠.”

“그러자.”

외부인들이 들으면 무례하게 느껴지는 제안이었지만 니시코리는 전혀 기분이 나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겨우 23살에 세계 랭킹 7위를 찍은 선수인 만큼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지혁의 실력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말보다 직접 경기를 통해 확인하는 게 훨씬 정확하니 그는 이런 상황을 내심 반겼다.

수다를 떠는 것보다 테니스를 하는 게 더 재미있기도 했고.

탕!!

간단한 몸풀기용 랠리를 거친 후, 곧바로 시작되는 연습 경기.

니시코리는 지혁에게 양보를 받고 먼저 서비스게임을 가져갔다.

15분의 랠리로 예열이 충분할 것 같지 않아서 적응할 시간을 조금 준 것이다.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지혁의 고속 서브가 떨어지면 아무리 니시코리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게 뻔했다.

지혁은 허수아비처럼 세워놓으려고 그를 어렵게 섭외한 것이 아니었다.

니시코리가 랠리에 강점이 있는 베이스라이너인 덕분일까.

사전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경기의 수준은 코치들의 기대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시작부터 어지간한 정규 경기를 뛰어넘는 두 선수의 스트로크 대결에 그들은 감탄한 눈빛을 보냈다.

‘어렵게 섭외한 보람이 있네. 역시 니시코리의 코트 커버력은 랭킹 5위 아래에서 최고란 말이야.’

정상급 선수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피지컬로 쟁쟁한 탑랭커들을 연전연파하는 이유가 있었다.

서브와 공격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수비가 이렇게 견고하면 웬만해선 질 수가 없었다.

굳이 위닝샷을 넣지 않아도 상대가 자책하면 똑같이 점수를 얻게 되니 말이다.

머레이도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로 니시코리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지혁보다 3cm나 큰 191cm에 스트로크 속도마저 탑랭커들 사이에서 1, 2위를 다투는 몬스터인 터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아마 그런 차이가 니시코리가 랭킹 5위 안으로 계속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겠지.

그랜드슬램을 우승할 수 있는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려면 단순히 센스만으로 부족했다.

괴물 같은 피지컬이 베이스로 깔려있지 않으면 마지막 단계를 결코 넘지 못하는 것이다.

탕!! 탕!! 탕!! 탕!!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니시코리의 몸이 눈에 띄게 풀렸을 때.

지혁은 조금씩 경기의 템포를 올리기 시작했다.

60%, 70%, 80%.

랠리의 수준을 빠른 속도로 상승시켰음에도 니시코리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세계 랭킹 7위는 지혁도 진심으로 실력 발휘를 하지 않으면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건 힘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 전력을 받아낼 수 있겠는데. 마음 놓고 경기를 해도 되겠어.’

지혁은 니시코리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템포를 따라오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하는 연습 경기의 수확이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쿵!!!

생뚱맞은 타이밍에 갑자기 튀어나온 백핸드 위너.

니시코리는 뭔가 이질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지 긴가민가한 모양이었다.

하긴 겨우 위닝샷 한 번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리긴 너무 빨랐다.

탕!!!

“윽….”

지혁의 포핸드를 정면에서 받아치다가 힘에 밀려서 에러를 범하는 니시코리.

그는 손이 저린지 손목을 돌리면서 지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연습 경기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 같았다.

“스트로크가 이렇게 빠르다고? 작년에는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곧바로 경기가 재개되지 않고 시간이 잠시 지체되자 코치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솔직히 코트 바로 옆에서 관전을 하고 있는데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들 정도 되는 전문가들이 모를 수가 없었다.

“방금 골든 보이가 친 포핸드 봤어? 스트로크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어.”

“……니시코리의 서브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몇 km였지?”

“당장 스피드건 꺼내 봐. 절대 이전 경기에서 보여줬던 포핸드와 같은 속도가 아니야.”

코치들은 가방에서 장비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탕!!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스피드건을 꺼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지혁이 힘으로 니시코리를 찍어 누른 것이다.

니시코리는 한층 빨라진 스트로크의 속도에 스윙 템포가 꼬인 건지 부쩍 샷의 정확도가 떨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에 익숙하던 속도가 아니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 같았다.

“저건 방금 전의 그 포핸드가 분명해. 도대체 몇 km야?”

“그래. 다시 보니까 얼마나 빠른지 확실하게 체감이 되네. 빨리 말해 봐.”

“…174km.”

“……뭐?”

“174km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도를 말하는 코치의 말에 주변은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174km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속도인지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매쉬나 높은 타점에서 찍어 누르는 샷이 아니라면 이런 숫자가 나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평범한 테니스 선수의 플랫 서브가 보통 170~180km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스트로크 속도가 서브랑 비슷한 게 솔직히 말이 되는가.

이건 범재들이 자괴감에 빠져서 당장 은퇴를 할 법한 비현실적인 실력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그거 고장 난 거 아니야?”

“다시 측정해 봐. 그 스피드건이 뭔가 잘못된 걸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리 오차 범위가 커봤자 2~3km 수준일 거야. 엄청 빠르다는 것을 너희도 느끼고 있잖아?”

“그래도 상식의 범주 내에서 속도가 찍혀야지. 이대로 믿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숫자잖아.”

그들은 경기에 방해되지 않게 대화 소리를 조절하는 것도 잊은 건지 시끄럽게 떠들었다.

평소라면 니시코리가 당장 주위를 줬겠지만 그는 지금 모치들을 제지할만한 정신이 없었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조차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직접 스트로크를 경험한 사람의 충격은 어떻겠는가.

위닝샷이 나오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걸 보면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쿵!!!

지혁의 스트로크로 인해 소란이 일어난 기점으로 경기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초반만 해도 거의 대등한 랠리가 진행된 것과 다르게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된 것이다.

니시코리는 나름 최선을 다해 대항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수비에 실패하며 점수를 헌납했다.

그가 자랑하는 코트 커버력도 지혁의 기술과 무지막지한 힘이 합쳐지니 마치 랭킹 80~90위권의 탑랭커가 된 듯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다.

그나마 랠리에 강점이 있던 선수가 서브, 스트로크 양쪽에서 지혁에게 현격하게 밀리게 되니 지금 상황은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였다.

“하앗!”

탕!!!

결국 충격이 점점 누적된 니시코리는 지혁과 스트로크를 주고받던 도중에 라켓을 놓쳤다.

이 정도 상황에서 경기를 더 지속하는 것도 이상해서 연습 경기는 어쩔 수 없이 흐지부지하게 변해버렸다.

…….

연습 경기가 끝났음에도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실내 코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혁을 괴물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미 세계 랭킹 1위이자 무패를 이어가는 무적의 선수가 더 강해지다니.

지혁과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두고 경쟁하는 선수들에겐 정말 암울한 소식이었다.

올해 투어급 대회에서 우승도 몇 번 하고 랭킹도 최상위권인 니시코리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면 그 밑의 선수들도 어떤 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코치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번 US 오픈 우승자가 지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괴물이 다른 선수에게 패배하는 그림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대회에서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이 40년 만에 다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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