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37화 (237/241)

237화. 전승행진

니시코리와 합동 훈련을 하고 며칠 후.

마침내 탑시드를 배정받지 못한 선수들의 예선전이 모두 끝나고 US 오픈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번 대회는 지혁의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 팬들에게 작년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다지 매리트가 없는 1, 2라운드 경기조차도 관중석의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그 증거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다른 선수들이 지혁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한 듯했다.

[세트 리.]

와아아아아!!!

지혁이 무시무시한 위력의 포핸드 위너로 세트 포인트를 따내는데 성공하자 환호성으로 뒤덮이는 경기장.

윔블던 이후로 피지컬과 자잘한 부분들이 개선된 덕분인지 경기의 흐름은 이전보다 더욱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상대가 무려 세계 랭킹 20위대의 탑랭커였음에도 지혁에게 이길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너무 쉬워졌잖아….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야.’

하긴 니시코리와 한 연습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 랭킹 7위도 반항을 하지 못하고 제압당했는데 그 밑의 선수라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탕!!!

[게임 리 4-0,]

굳이 복잡한 심리전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스트로크의 위력만으로 위닝샷을 따내는 지혁.

관중들은 이미 수십 번 넘게 본 장면이 질리지도 않는지 뜨겁게 반응했다.

전문가가 아닌 그들이 보기에도 지혁의 샷이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 두 번이면 몰라도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르면 모를 수가 없었다.

“…골든 보이가 이렇게 스트로크가 강력한 선수였나? 내가 기억하기론 분명 힘이 아니라 테크닉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선수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느낌이 완전 달라졌잖아. 대체 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마 오늘따라 유독 컨디션이 좋은 거겠지. 마침 상대도 주력인 플레이 스타일로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선수고. 만약 8강 이상이었다면 지금처럼 하지 못했을 거야. 파워가 올라가면 그와 반대로 정확도가 떨어지니까.”

“그런가…….”

“확실해. 상식적으로 두 달 만에 피지컬이 상승하겠어? 그것도 한창 투어 다니느라 바쁜 시즌 중에? 저건 분명히 컨트롤을 희생하고 얻은 위력일 거야.”

웅성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관중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지금 상황은 지혁이 라켓을 바꿔가며 서브의 위력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이런 가정이 꽤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지혁의 라이벌이 같은 빅4와 머레이밖에 없어서였다.

쿵!!

[세트 리.]

두 번째 세트마저 압도적인 스코어 차이로 가져가는 지혁.

상대 선수는 그 결과에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번 경기를 본인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드디어 인정한 것이다.

랠리에 가장 강점이 있는 베이스라이너가 스트로크에서 밀리는데 이 상황에서 역전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는 직접 경기를 하면서 관중들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얻은 건지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탕!!

그렇게 사실상 한쪽이 경기를 포기한 덕분에 3세트는 이전보다 더 싱겁게 진행되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결국 3-0으로 종료되는 경기.

지혁은 훌륭한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모든 전력을 다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니시코리도 그랬지만 랭킹 20위대의 선수가 그와 대등한 상대가 되긴 한참 부족했다.

솔직히 너무나 큰 전력 차에 다른 탑랭커들에게 흥미를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더라도 도저히 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긴장감을 느끼려면 최소한 준결승까지 올라가는 수밖에 없겠네.’

아마 페더러와 머레이라면 오늘처럼 간단하게 경기를 넘겨주는 일은 없겠지.

이제 1경기만 더 이기면 그토록 기다리던 준결승이니 아주 조금만 참으면 되었다.

***

지혁의 예상대로 8강에서 만난 선수는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16강에서 만난 20위대의 선수와 별로 다를 것 없이 3-0으로 완파를 당한 것이다.

테니스 팬들은 마치 윔블던이 떠오르는 파죽지세의 기세에 정말로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하드 코트에서 지혁과 경쟁할만한 선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조코비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초부터 시작한 전승행진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니 승리의 여신이 지혁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아! 마침내 페더러가 머레이를 3-2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정말 치열한 대결이었어요.]

[최근 머레이의 성적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인데요. 최근 두 선수의 전적도 머레이가 확실하게 앞서고 있었잖아요. 이러면 골든 보이의 경기 전략이 많이 달라지겠습니다.]

[맞습니다.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의 수비를 뚫는 것에서 올라운더들의 난타전으로 바뀔 테니까요. 무엇보다…….]

지혁의 코치들은 해설들의 멘트를 들으며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이거 제대로 꼬였네…. 페더러가 준결승에 진출할 확률을 낮게 잡고 있어서 훈련의 비중을 줄이고 있었는데 제대로 한 방 먹었어.”

“쯧. 능력도 좋네. 페더러는 늙지도 않나. 서른이면 한참 은퇴할 시기인데 말이야.”

“오늘 하는 걸 보니까 경기력이 더 좋아진 것 같더라. 그동안 뼈를 깎는 훈련을 한 게 분명해.”

“그 나이에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짜 지독하구만…. 이미 평생 놀고먹을 부와 테니스 역사에 남을 엄청난 명성을 쌓아 놓은 선수가 도대체 왜?”

그들은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전설적인 업적을 달성한 선수가 뭐가 아쉽다고 개고생을 하면서 버틴단 말인가?

한 세대를 지배한 레전드들이 괜히 적당한 시기에 은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이길 선수들에게 패배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성적이 그나마 유지될 때 물러나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그러면 그나마 테니스 팬들의 환상은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혁아,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할 만해 보여?”

“네. 딱히 질 것 같지는 않네요.”

자신감이 가득 담긴 지혁의 대답에 불안이 전부 날아간 얼굴을 하는 코치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선수인지 떠올랐다.

이때까지 전례가 없는 어린 나이로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천재에게 애당초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아무리 페더러가 예상 밖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혁의 전승행진을 저지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불안이 모두 해소되자 코치들은 갑자기 다음 경기가 기다려졌다.

“후….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네. 준결승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궁금해.”

“그래. 조코비치가 남았는데 페더러에게 발목을 잡힐 걱정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지혁이라면 무난하게 넘어갈 거야.”

“그러면 분석 자료나 다시 정리하자. 머레이가 올라올 거라고 예상해서 애써 준비한 것들이 전부 쓸모없어졌으니 말이야.”

“그래야지. 상대가 누구든 전력을 쏟아야 하니까.”

***

시간이 흘러 US 오픈 준결승 당일.

페더러는 시간에 맞춰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딱히 늦은 것도 아니었지만 코트 중앙엔 지혁이 이미 몸을 풀고 있었다.

워낙 중요한 기록이 걸려있는 경기인 만큼 각오가 남달랐던 것이다.

혹시라도 여기서 지혁이 패배하게 된다면 캘린더 그랜드슬램도 전부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강철 멘탈을 가진 그도 상당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쾅!!

기록의 희생양이 되느냐 마느냐가 걸려있었기에 경기는 별다른 말 없이 시작되었다.

페더러는 지혁이 기록을 달성하도록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지 1세트 초반부터 전력을 다해 플랫 서브를 내려꽂았다.

끼이이익- 탕!!

까다로운 위치로 바운드되는 공을 빠르게 쫓아가며 리턴하는 지혁.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하느라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코트에서 들렸다.

탕!! 탕!! 탕!! 탕!!

두 선수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략하며 랠리를 한동안 지속했다.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선수들답게 어느 하나 간단히 처리할만한 스트로크는 없었다.

관중들은 그럼에도 도통 위닝샷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역시 어중이떠중이들하고는 다르네. 단순히 힘만으로 제압할 수가 없어.’

세계 랭킹 7위의 니시코리를 연습 경기에서 완전히 제압한 엄청난 위력의 스트로크가 계속 쏟아지는데 페더러에게선 위태로운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쌓이면 결국에는 내가 승리하겠지만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지혁은 랠리의 횟수가 쌓이자 경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힘만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략을 사용하면 된다.

탕!!!

생각이 정리됨과 동시에 베이스라인에서 네트 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지혁.

그 모습에 페더러는 물러서지 않고 똑같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발리와 반사신경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만큼 승부를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펼칠 생각인 듯했다.

선수들 간의 거리가 급격하게 좁혀 든 탓인지 스트로크의 간격과 타격음이 들리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칼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에는 어느 한쪽이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 리 2-1.]

그렇게 1세트 극초반부터 브레이크가 나와버리자 관중석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떠들썩했던 것에 비해 허무하게 끝나는 거 아니야?”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으니 더 기다려봐야지. 페더러가 동점을 따라잡을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방금 정면 대결에서 피지컬이 확연히 밀리는 느낌이었잖아. 아무리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나이를 극복할 수는 없나 봐.”

“8강에서 탈락한 머레이도 힘 하고 서브 속도 자체는 더 강했어. 그런데도 탈락한 건 그였잖아. 테니스는 신체 능력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종목이 아니야.”

관중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페더러가 수도 없이 역전을 하는 것을 봐왔기에 끝내 실망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혁보다 더 강력한 스트로크와 서브를 가진 선수들도 아주 적지만 존재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이 탑10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중요한 건 개별적인 기술들의 완성도가 아니라 얼마나 밸런스가 잘 맞는가였다.

‘음…. 예상대로 브레이크 한 번 가지고 투지가 죽지는 않네.’

이래서 빅4가 좋았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승부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평범한 선수들은 여기서 멈추지만 이들은 종종 기적을 만들어내었다.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역전을 이뤄내는 것이다.

지혁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코어를 먼저 앞서가고 있음에도 방심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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