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전승행진
쿵!!!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매치 포인트를 따내는 지혁.
그렇게 3세트마저 조코비치의 패배로 돌아가자 세트 스코어는 3-0이 되었다.
US 오픈 결승전의 승자가 마침내 결정된 것이다.
[게임 세트! 매치 리!]
와아아아아아!!!!
리! 리! 리! 리! 리!
체어 엠파이어가 경기 종료 선언을 내림과 동시에 경기장에선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사람들은 무려 40년 만에 재연된 대기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동한 모양이었다.
지혁이 아니라면 앞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으니 말이다.
[아! 심판이 게임 세트를 외쳤습니다! 결국 이지혁 선수가 세계 랭킹 2위의 조코비치를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고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어요! 호주 오픈, 롤랑 가로스, 윔블던, US 오픈을 모두 재패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2013시즌의 전승행진도 무사히 유지되었습니다. 정말로 시즌 전체 승률을 100%로 마무리할 수 있겠어요. 퓨처스나 챌린저 같은 마이너 대회를 주로 출전한 것도 아니고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를 참가해서 얻은 결과라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프로 데뷔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테니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네요. 아마 지금부터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이지혁 선수는 오픈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레전드로 남을 겁니다. 솔직히 당장 페더러와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에요. 비록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는 부족해도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면 충분하죠. 모자란 우승 횟수도 몇 년 안에 따라잡을 테니까요.]
해설들은 테니스에 대해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지혁이 달성한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판단되자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 할 만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가십거리에 돈이 빠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테니스 선수들 중에서 두 번째로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이지혁 선수가 이번 US 오픈을 계기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였네요. 어쩌면 내년에는 페더러를 제치고 스포츠 선수 수입 1위를 찍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도 아시아 출신 스포츠 선수로서 최초겠군요.]
[그나저나 이번 US 오픈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이지혁 선수의 스폰서들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계약금이 너무 과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기업들이 정말 현명했네요. H 자동차가 나달을 유망주 시절 때 붙잡은 것과 거의 맞먹는 계약이었어요.]
실제로 마케팅 업계는 기업들이 지혁과 한 스폰서 계약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당장의 홍보 효과도 대단했지만 앞으로 얻을 수확이 훨씬 큰 것이 그 이유였다.
이제 막 만으로 20살이 된 지혁의 나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선수를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유망주가 나타나기에는 빅4의 장벽이 너무 높았으니 말이다.
해설들이 US 오픈 이후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며 한창 떠들고 있을 때.
드디어 선수들에게 트로피가 건네지며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절대 도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다니…….’
과거로 회귀하기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었다.
아마 원래 역사에서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플이 없었다면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겠지.
지혁은 은색 트로피 양옆에 달린 손잡이를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그간의 울분이 모두 풀리며 마음이 후련해지는 게 느껴졌다.
테니스계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점에 올라서고 나니 마음 한편에 응어리진 트라우마가 전부 해소된 것이다.
이제 경기를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위치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렇게 마음이 후련해진 지혁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지었다.
***
[골든 보이 이지혁, 조코비치를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고 40년 만에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 역시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경기.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아서 애쉬 스타디움에서 오랫동안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져.]
[US 오픈 결승전을 직접 관전한 테니스 레전드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리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조코비치를 확실하게 뛰어넘었다. 현재 그와 라이벌이 될 만한 선수는 없다. 테니스계는 한동안 그가 지배하게 될 것.”]
[조코비치, “가장 큰 패배의 원인? 그저 골든 보이가 나보다 더 잘한 것뿐. 결승전 경기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선 무조건 다른 결과를 보여주겠다.”]
[US 오픈 우승과 동시에 대기록을 세우고 환한 미소를 짓는 이지혁.]
─ 와... 한국에서 역대 최강의 테니스 선수가 나올 줄이야... 진짜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 기사 쏟아지는 속도 봐라 ㄷㄷㄷ 지금 포털 사이트 검색어 전부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뉴스에도 속보로 나오고 있네.
─ 국내만 그런 게 아니라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아시아 전부 비슷한 상황임. 애초에 캘린더 슬램이 나왔다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소식이잖아. 특히 서구권은 테니스 인기도 높은데 토픽으로 다룰만하지.
─ ㅇㅇ 맞음 이지혁 인기는 외국에서도 한국 못지않은 수준이다. 특히 동남아시아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음. 그중에서도 중국, 일본이 가장 열성적이고 ㅋㅋㅋ 얘네들 어떻게든 지혁이 섭외해보려고 난리도 아니란다 ㅋㅋ
─ 나 중국에 살고 있는데 바이두 핫 키워드로 지금 올라옴 ;;
─ 일본도 비슷함. 신기한 게 일본에서도 안티가 거의 없다. 전부 찬양하는 댓글들로 가득하네.
─ 현역 탑랭커 중에서 최강인데 얼굴마저도 배우 이상으로 잘 생겨서 그렇지. 일본 애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 자체잖아. 사소하게 트집 잡을 것도 찾기 힘든데 악플을 달면 시기 질투하는 게 뻔하게 보이고.
─ 그런데 이지혁이 저렇게까지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니냐? 얼음처럼 차가운 줄 알았는데 엄청 의외네.
─ 당연한 거 아님? 나라도 한 시즌을 무패로 마무리하고 캘린더 그랜드슬램까지 하면 입이 찢어져라 싱글벙글 웃겠다 ㅋㅋㅋㅋ
US 오픈에서 나온 결과로 인한 여파는 정말 엄청났다.
인간을 초월한 실력과 충격적인 성적이 시너지를 만들어내자 지혁이 종목에 국한받지 않는 세계적인 스타 반열로 올라간 것이다.
현재 지혁은 르브론 제임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타이거 우즈 이상의 인기와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의 오퍼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게 그 증거였다.
이제 다음 시즌의 컨디션을 생각하며 적당히 제안을 가려 받아도 연 수입 1위 자리를 강탈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게임 세트. 매치 리.]
지혁은 마지막 마스터즈인 런던 오픈을 우승하며 2013년 시즌을 마무리했다.
1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단 1패도 허용하지 않은 완전무결한 100% 승률이었다.
여기에는 빅4와 앤디 머레이, 탑10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지혁의 기록을 감히 평가절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쯤 되자 테니스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팬들조차도 과연 언제까지 무패가 유지될까 궁금해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탓인지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최근 테니스 종목의 인기가 부쩍 올라갔다.
주최진들은 지혁이 참가하는 대회마다 티켓이 매진되고 관중석이 꽉꽉 들어차자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혼자서 종목의 인기를 견인하는 스타가 이래서 중요했다.
여러 매체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서 홍보를 하는 것보다 슈퍼 스타가 한 명 나오는 게 팬들에게 훨씬 어필이 되었기 때문이다.
11월 말, 한국.
메이저 대회들이 전부 종료되고 탑랭커들의 비시즌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지혁과 일행들은 곧바로 국내로 귀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당히 피곤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동안 대회를 치르느라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는데 여유 시간이 주어지자 기자들과 방송국의 제안들이 무서울 정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혁은 지금 같은 상황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팬들의 관심이 클 줄은 몰랐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훈련과 대회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연락이 와요?”
“그래. 얼마나 부탁을 하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다양한 통로를 가지고 접근을 해서 매번 사양하는 것도 골치 아파.”
“그냥 적당한 걸 하나 골라서 출연할까요? 아마 그러면 금세 잠잠해질 거예요.”
“아니, 이제 급이 맞지 않으니까 웬만하면 거절하는 게 맞아. 국내 방송국들이 네 개런티를 맞춰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까. 굳이 몸값을 낮춰서 자원봉사를 할 필요는 없지. 걔네들이 뭐가 예쁘다고 그러겠어. 네가 막 데뷔를 하고 투어 비용이 필요할 때 따로 챙겨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코치는 나중의 일을 생각하면 공중파 방송 출연 제안을 거절하거나 마지막까지 최대한 버티다가 마지못해 나가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다.
이제 지혁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함부로 대할 사람은 전혀 없었지만 한 번 양보를 하게 되면 그게 기준이 돼서 나중에도 비슷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럴 바엔 지금처럼 확실하게 벽을 세워 놓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나았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꽤 남으니까 일단 정민이랑 두희를 만나보죠. 일 년 사이에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궁금하네요. 가능한 한 빨리 일정을 좀 조율해주세요.”
“그럴 필요도 없어. 네가 부르는데 걔들이 미쳤다고 늦장을 부리겠어? 아마 오늘 당장이라도 만나는 게 가능할 걸. 지금 부를까?”
“네. 그렇게 해주면 좋죠.”
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코치.
그가 예상한 것처럼 상대 쪽에선 긍정적인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세계 랭킹 1위이자 그랜드슬램을 포함해 참가한 모든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거물이 직접 실력을 봐준다는데 지혁을 신처럼 여기는 국내의 유망주들이 거절을 할 리가 없었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났다면 정민과 이두희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왔을 것이다.
“지금 바로 스케줄을 취소하고 오겠데. 역시 내 말이 맞지? 누구의 말인데 거절하겠어.”
“그때까지 주요 경기 몇 개 정도 살펴보면 되겠네요. 얘네들 자료는 가지고 있죠?”
“물론이지. 쓸만한 유망주 두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도 나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거든.”
코치는 지혁의 말을 듣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망주들의 가장 최근 경기 영상을 재생했다.
주변 사람들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인지 노트북 주변은 금세 북적거리게 변했다.
아무래도 지혁이 관심을 가지는 녀석들이 어떤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미 작년에 본 유망주들이었지만 이 나이 때에는 다시 재회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