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160화 (160/277)

-뿌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카이란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진철의 주먹을 으스러버렸기 때문이다. 주먹의 뼈가

부러져 버린 진철은 비명을 질러댔다. 소리는 이미 카이란이 실프(간만에 등장한 실

프지만 애석하게도 대사하나 없고 설명묘사로 끝내버린 실프... 아~ 슬퍼라...)에게

차단을 시켰기 때문에 반경 50미터 안에만 들리고 그밖에는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

었다. 그러니 이곳에 비명을 질러봐야 아무도 듣지 못한다.

"시끄럽군."

카이란은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진철의 팔을 잡다 당기며 그의 팔을 부러뜨려 버렸

다.

-뚜득!!-

이 소리만 들어도 끔찍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할 것이다. 눈앞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

리는 그야말로 공포감이 있는 소리일테니.... 자신의 눈앞에서 관절이 2번 꺾여 있

으면 어떤 공포를 불러올까? 카이란은 정확히 진철이의 아래팔뼈를 부러뜨렸기 때문

에 인간으로 나올 수 없는 팔의 관절이 꺾여 있었다. 진철은 자신의 팔을 보고는 헛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굴을 웃고 있었지만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픔보다는 자신의 팔에

대한 황당함이 앞서 있었다. 이제 복싱을 하지도 못하는 팔이 되어버렸다.

"큭큭큭큭... 우습냐? 하긴 우습겠지.. 이런 네놈의 모습은 나도 우스우니... 그런

데 이제 나를 죽인다는 것은 포기했나? 한번쯤 저승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네놈의

한 딱지 한다는 실력을 저승으로 보냈었나 보군... 큭큭큭큭큭큭큭"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 카이란. 그야말로 악마의 화신이 라고 부를 수 있

는 미소였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도 더 이상 진철이가 맞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지 같이 덤비기 시작했다.

"이자식!"

"이 C-Bal놈이!!"

욕과 함께 그들도 덤벼보았지만 카이란은 그들에게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며 안면을

먹여주었다.

-퍽!! 퍽!!-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은 왜 자신들이 쓰러져 있는지 몰랐다. 정말 빠른 스피

드라 미처 카이란의 주먹도 보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본 카이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기다리라고 했지? 그러지 않아도 이놈을 손봐주고 난 뒤 네놈들의 차례라는 것을..

.. 그러니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좋을 거야."

역시 싸움의 화신, 악마의 화신다운 말이었다. 그들은 그런 카리안의 미소에 벌벌

떨었다.

-풀썩-

진철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넋을 잃고 진철은 자신의 팔을 보며 눈물만

흘렀다. 카이란은 가만히 풀썩 주저앉은 진철을 보았다. 카이란의 눈길에는 자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자책감은 없었고 오직 생글생글 웃는 잔혹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

다.

"뭐지? 이제 주저앉았냐? 이러면 재미없지... 안 그래?"

카이란은 풀썩 주저앉은 진철에게 다가가며 그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 진철은 점차 카이란에게 공포감을 느꼈는지 바둥바둥 움직이며 그의 품속에 빠져

나가려고 발악했다.

"놔...놔줘... 요...용서해줘... 미...미안해..."

이제 보통 인간들처럼 위기감에 처한 본능이 나오기 시작하는 진철이의 행동이었다.

카이란은 그런 진철이의 애걸한 표정을 보고도 표정변화 없이 오히려 더욱 짙은 미

소를 흘리며 그에게 말했다.

"싫은데... 내가 왜 용서해줘야 하지? 네놈은 나에게 이럴 생각 아니었나? 내가 약

한 놈이라고 한다면 네놈들도 이러지 않았을까? 만약에 네놈들에게 당해서 내가 용

서를 구한다면 네놈들은 나를 용서해 줄까?"

"용서해줘... 제발....."

카이란의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진철이는 연신 용서를 구하는 말만 내뱉었다

. 그런 진철의 모습이었지만 카이란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말했다.

"용서 같은 웃기는 소리 작작해라. 나는 너희 방식대로 한 것뿐이다. 약한자는 더더

욱 괴롭혀서 재미를 맛보는 방식을!! 알겠냐!"

-퍽!-

카이란은 그 말을 끝내는 동시에 주먹으로 진철이의 북부를 강하게 쳤다. 마나를 실

지 않아서 그냥 충격만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진철은 엄청난 고통을 만끽해야

만 했다.

"끄윽..! 큭.. 클록! 클록!."

진철은 비명이 나오고 싶어도 비명이 나오지 못했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

문에 비명대신 기침만 나왔다. 그리고 카이란은 그런 진철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그

대로 반대쪽 손으로 진철을 턱을 날렸다.

-퍽!!-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쓰러지고 싶었지만 카이란이 멱살을 잡고 있어서 쓰러지지

도 못하고 억지로 서 있는 상태였다. 진철의 몸무게는 60kg이 넘는 몸무게였다. 그

리 큰 몸무게는 아니지만 평균적인 몸무게보다 좀 나가는 편이다. 그런 몸무게인 진

철에게 한 손으로 들어올리는 것도 무지막지한데... 다른 한 손으로 쳐서 진철이의

고개만 움직이게 만드는 카이란의 힘에 놀랄 따름이었다.

약하게 쳤으면 말을 하지 않지만... 카이란이 턱을 후려쳤던 진철이의 입에서는 또

하나의 어금니가 날아간 것이 있었기 때문에 약하게 쳤다고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또다시 이빨 하나가 날아간 진철이의 입에서는 또다시 피가 흘러 나왔다. 피를 흘리

고 있는 진철의 얼굴을 보며 카이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왜 용서를 해주는 것이지? 내가 네놈 핸드폰을 부셔버렸는데 말이

야... 원래 내가 더 나쁜 놈 아니었나? 내 잘못은 있지만 네놈들의 잘못은 없다? 안

그래? 큭큭큭큭큭큭큭..."

맞는 말이다. 카이란이 진철이의 핸드폰을 파괴시켜서 저지른 일이지 진철이가 카이

란의 중요한 물품이나 시비거는 행동을 보인 것은 없었다. 물론 그전에 언행으로 카

이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있지만 그것은 모두 진철이의 본능적인 깡패같은 말투지

잘 못한 짓은 없다. 그러니 잘못한 인간(드래곤)은 카이란이다.

진철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용서고 뭐고 이제는 말도 나올 힘이 없었다. 카이란의 말

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이었다.

-퍽!-

그 마음을 아는 듯 카이란은 이제 재미없다는 표정과 함께 마지막 카운터로 진철이

의 턱을 날렸다. 그리고 진철이는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기절을 해버렸다.

"흥!"

카이란은 코방귀를 뀌며 남은 진철이 친구 2놈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사악 자체

의 얼굴로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는 마냥 웃고 있었다.

움찔! 진철이의 친구 두놈은 카이란의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몸이 움찔거렸다.

이렇게 벌벌떨거면 왜 도망을 안 갔는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공포감 때문에 도망가

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친구의 우정을 위해서 자기네들끼리만 도망칠 수 없었

는지 모르지만... 카이란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고 좋았다. 아직 장난감 2

개(?)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큭큭큭큭큭큭큭... 이제 네놈들을 요리해 줘야겠군..."

카이란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무서운 공포영화의 보는 것 마냥 카이

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기라도 덤빌 생각을 않고 무서움에 못 이겨 벌벌 떨기만

하니 카이란은 그런 놈들의 행동에 웃음만 나왔다.

"큭큭큭큭큭큭큭큭큭큭큭....."

인간이란 이런 존재였다. 지금까지 카이란이 보아온 인간들은 모두 이랬다. 그러니

새삼스레 놀랄 필요도 없고 우스워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들

의 모습이었으니.....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자신도 모른다. 언제나 이런

모습을 보아왔는데.... 역시 인간이란 동물은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새끼들아 뭐해 빨리 도망쳐 이 멍청한 새끼들아!!"

당황한 목소리가 진철이 친구들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그들을 도와주는 목

소리였고, 남자처럼 굵지 않은 엷은 여성의 소리였다. 그 음성은 카이란이 잘 알고

있는 음성이었다. 그 때문에 카이란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바로 혜진이였다.

"야 이새끼들아 빨리 도망쳐! 이 병신들아!"

또다시 도망치라고 말하는 혜진의 목소리에 그들은 정신을 차렸는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이란은 그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가느다란 손이 카이란의 허리

를 둥그렇게 감싸 않으며 막았다.

"뭐..뭐야! 뭐 하는 짓이지!! 안 놔!!?"

"싫어! 안 그러면 저 녀석들도 마구잡이로 팰 거잖아! 그러니 싫어!"

혜진이는 잡고 있는 허리를 놓지 않겠다는 고집스런 말과 함께 카이란의 허리를 더

욱 바짝 안았다. 야릇한 느낌이 들었지만 카이란은 그런 혜진이를 향해 짜증이 생겨

났다. 자신의 허리를 잡은 혜진이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때는 늦었다. 혜진이가 허

리를 잡고 있는 바람에 그들은 벌써 진철이를 데리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혜진이가

허리를 잡을 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정말 빠르게도 도망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니 그런 재빠른 동작이 생겨났나

보았다.

그들이 도망간 것을 확인한 혜진이는 천천히 카이란의 허리에 손을 뗐다. 그리고 조

심스럽게 카이란을 올려보며 그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했다. 카이란은 자신을 올려보

는 혜진을 향해서 새침한 태도와 함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뼈를 몇 개 부러뜨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게 뭔 짓이었지?"

싸늘한 어조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보다는 뼈를 몇 개 부러뜨린다는 말

에 혜진은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까 전의 진철이에게 하는 행동

을 보면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뭐야! 너는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무슨 사람의 뼈를 나무쪼가리

로 보는 거야 뭐야!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다니... 정말..!!"

혜진은 사람의 뼈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부러뜨리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났다.

처음 그가 진철이를 이길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것이 현실에 나타나니 그야말로 놀라움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긴 것도 모자

라 그는 잔인성까지 보이니 혜진은 이제 놀라움보다는 카이란은 행동에 눈살을 찌푸

려졌다. 그것도 더해서 카이란은 진철이를 치면 칠수록 얼굴에는 오싹하게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를 보는 착각을 일으켰다.

카이란은 화를 내면서 자신을 나무라는 혜진을 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한마

디를 했다.

"닥쳐."

흠칫! 혜진은 카이란의 그 한마디에 놀라버렸다. 아까 전의 분위기랑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카이란의 모습에 섬칫한 감이 돌았다. 그래도 혜진은 그 섬칫함

을 이겨내고 입을 열었다.

"뭐..뭐야!! 너무 한 것 아냐? 나에게 그런 말은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리고

너의 첫.사.랑.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너무하다.. 너무해..."

이제는 혜진이의 필살기라고 불릴 수 있는 첫사랑의 강조 말! 혜진은 카이란을 곤란

케 만드는 그 말을 꺼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오산이라는 것을 알

았다.

"시끄럽다고 했다. 네가 나를 예전에 잘 안다고 하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 기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너를 모른다. 그렇다고 예전일을 알고 싶었지만.. 이제는 알 필

요도 없다. 예전에 왜 너에게 차였는지를 지금은 알만하군.. 그러니 이제 닥쳐라.

더 이상 지껄이면 너부터 죽여버릴테다...."

또다시 싸늘한 어조가 혜진이의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 심장이 멈출 정도의 싸늘한

카이란의 말에 혜진은 벌컥 겁에 지르기 시작했다. 겁을 지르기 시작하는 혜진이를

보며 카이란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이곳에 별 볼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거의 밤이 다 되어가려고 했다. 가을인지 밤이 정말로 빨리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밝기는 있었지만 대략 30분만 지나면 이곳을 모두 어

둠으로 뒤덥히게 만들 것 같았다.

여름과 달리 밤이 되니 춥다고 느낄 정도의 바람이 그의 살결에 부딪쳤다 혜진이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른다. 카이란을 욕할 수도 있고, 잔인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카이란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 밤이네...."

혜진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심한 욕과 함께 먼저 가버린 카이란 때문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설마 카이란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할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녀는 잠

시간 충격에 휩싸여 머리 회전이 정지했다. 그 덕분에 어느덧 대기에는 완전하게 검

해졌고, 자신도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상태였다.

"가야겠지.... 집에가서 공부해야 하니까...."

밤이라서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도 많이 없는 쾌적한 거리가 되어버렸다. 이제 밤이

되어서 쾌적했지만... 나중에 이곳은 술 취한 사람의 거리로 돌변할 수 있는 곳이었

다. 추운 가을 바람이 혜진이를 뒤엎자 그녀는 자신의 팔을 감싸 안으며 몸을 부르

르 떨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가로등은 빛도 밝지 않으니 무언가 으스스한 공포분

위기를 연상케 하는 거리였지만 아직까지 연인사이의 인간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서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탁.. 탁..-

공원을 빠져나가자마자 혜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다 큰 여자가 8시가 다 되

어 가는데 집에 빨리 가지 않는 다는 것은 크게 문제되는 일은 누구나 알 고 있는

사실. 그런데도 느긋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뭔가가 비상식적인 행동이었다. 혜진은

사람들을 헤쳐나가며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요즘은 시설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버스 기다리는 곳에는 작은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 앉았다. 혜진은 한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가 왔는데도 몇 대를 보내며 시간을 보냈

다. 결국 30분 정도만 시간을 보내서야 혜진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에다가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 덕분에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

렇다고 빽빽막혀 있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가기에 조금 힘들 정도이다. 혜진은 아무

자리나 섰다. 그리고 위에 달려있는 고리에 손을 잡았다.

"하아... 망할 백성이 녀석..... 이렇게 예쁘고 착한 나를 놔두고 먼저 가버리다니.

.. 쳇...."

먼저 가버린 카이란을 생각하자 그녀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 잔인한 모습과 자

신을 매정하게 말해놓고 혼자 가버린 카이란을 향해 혜진은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카이란의 모습을 생각하는 혜진이가 대단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는 무난하게 찻길을 다녔다. 막히는 것 없이 원활하게 다니니 시원스럽기도 했

다. 하지만 혜진이에게는 그것이 싫었다. 집에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녀는 얼굴

이 찌푸려졌다. 왠지 집에 가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의 신분으로

는 학생. 아직까지 부모 밑에 자랄 나이라서 가고 싶지 않은 집이라도 해도 가야 하

는 실정이다.

-삐!-

혜진은 버스 벨을 누르며 이번 정거장에서 내린다는 신호를 보냈다. 2분 정도 지나

자 혜진이가 내리는 정거장에 도착했고, 버스는 뒷문을 열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

렸고, 걸음을 옮기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디라도 들리고 싶었지만... 들릴 곳이 없었다. 억지로 아무 곳이나 들릴 수도 있

지만...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일이 시험이니 어쩔 수 없

이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인데... 이러고 있으니 자신이 조금 한

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뒤에서 노는 것은 아니다. 이래봐도 반 등수 20등 안을

유지하는 성적이다. 모두 억지로 공부하는 결과였다.

-딸깍-

혜진은 집 앞에 있는 현관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카이란의 집과 다르게 부유

층 집안이 아닌 어디에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1층 짜리 집 안이었다. 거실에는

소파와 탁자가 놓여져 있었고, TV와 비디오 같은 가전기기도 있었다. 일반 아파트라

2층은 없었다. 그저 방 3칸에 화장실이 있는 평범한 집 안이었다.

"다녀왔습니다."

혜진은 힘없이 현관문 앞에서 인사를 건너며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혜진이가 인사

를 건네자마자 안방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시기 시작했다.

"뭐니!? 왜 이제 오니!?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야? 8시가 넘었어! 지금 네가 정신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그리고 내일도 시험 아냐!? 뭐 하는 짓이야 도대체! 이래놓고

시험 또다시 꼴등을 하려고 하는 거니!!!"

꼴등한 적은 없다. 요즘 20등 안에 든 것도 꼴등인가? 왜 이렇게 과장으로 말하는지

혜진이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 엄마 말대로 어디 갔다 온 거야!? 다 큰 여자가 밤늦게 싸돌아 다니기나 하고

말이야!!! 당장 올라가서 공부해! 있다가 아빠가 10분마다 체크 할 테니까!! 내일

시험 못 보기만 해봐라! 김씨의 딸은 반 등수 5등 안에 들 수 있다고 하더라!! 너는

뭐냐! 만약 성적표 지난번처럼만 가지고 왔다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라!!"

지겨운 부모님의 말씀... 여기서 당장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제 변명도

하기 싫었다. 예전에는 그냥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말이라도 했었지만 이제는

귀찮아서 하기도 싫었다. 이래서 혜진은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공부..

공부.. 공부하라는 말씀... 정말 싫었다. 언제나 부모님은 밖에 있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신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지...... 왜 자신과 비교를 당해야만 하는지 혜

진이는 진절머리가 났다.

왜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지? 아무리 인생이 중요한 거라고 하지만... 공부는 인생

에서 전부는 아니잖아? 혜진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이 뭐라고 그랬지만 그녀의 귀에서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곳에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겹다... 지겹다... 언제나 말하는 부모님의 말씀은 너무나 지겹다. 공부하라는 말

은 언제나 입에 담고 사신다. 특히 시험 날에는 무척이나 신경이 날카롭게 변하시는

부모님들... 그러지 않아도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인문계라 시험이 무척이나

많은 고등학교다. 그래서 혜진이에게는 날마다 부모님의 잔소리에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큭....."

혜진은 벽에 몸을 기대면서 천천히 주저앉았다.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 안이 싫

다.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이런 집

이라도 나가고 싶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눈앞에 있는 책상을 응시했다. 하고 싶지는 않았

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공부... 혜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공부를 하면 부모님은 좋아하신다. 자신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하신다.

하지만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혜진은 집중력이 높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공부에는 취미가 없다. 늦게 들어오는 이유는 이거였다.

그냥.. 잔소리 몇 번 듣는 것이 그녀에게는 속 편했다. 그 대신 시험 끝나자마자 공

부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녀에게는 이런 짓이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우욱...."

혜진은 가슴이 답답했다.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답답한 가슴 진정을 시키

기 위해 혜진은 자신의 방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적셔주자

약간은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하아... 이제 공부해야겠다...."

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책상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문제집과 교과서를

응시했다. 그리고 교과서를 피며 그녀는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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