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이세계 드래곤 [19] 36.악마의 유혹.
외박하고 온 혜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잔소리였다. 물론 예전에 시집가고도
애가 2명이어야 할 나이이니 잔소리는 예전보다 더 파워 업 된 것이라 곤혹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한 잘못은 알고 있었으나.. 역시나 부모님의 잔소리는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무척이나 싫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짜증이
밀려와서 싫은 내색을 보였다. 덕분에 왠지 오늘은 무척이나 좋은 일은 없을 것 같
은 예감이 들었다. 그중.. 안 좋은 일의 예상 중 하나는 이미 지각을 해서 1교시를
놓쳤다는 것. 덕분에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말았으니 혜진이는 정말로 한강 물
속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생길 정도였다. 잔소리는 집에서만도 벅찬데.. 학교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숙제를 안 해와서 혼난 것과, 그러지 않아도 늦어버려 도시락을 쌀 시간이
없어서.. 점심시간에 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지갑에는 딱 차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날따라 혜진이는 재수가 엄청 없는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난에
고난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며칠이 지났으면 서서히 마약에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었지만.. 혜진이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았다. 가끔 약을 하고 싶을 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부터
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암시를 걸어 어렵게 그것을 참으며 지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인내심이라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라 혜진이가 무척이나 대견하게 보였다.
그 정도로 마약의 갈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밖에 별 이상은 없었기 때문에
며칠만 더 참으면 이런 고통은 없을 줄만 알았다.
"하아...."
지금은 점심시간. 아이들은 저마다 도시락 통을 챙기면서 친구끼리 밥을 먹기에 바
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혜진이는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양팔을 앞으로 벌리며
엎어졌다.
이상하게 아침에 늦잠을 자버린 바람에 부모님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들었어야만 했
다. 덕분에 상쾌한 아침은커녕.. 짜증이 파락 쏟아나는 아침을 맞이했었다. 그런 일
을 당했는데 어떻게 정신적인 피로보다는 물리적인 피로가 먼저 몸 속 구석구석을
강타하는지 혜진이는 연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자장가를 튼 것도 아닌데, 잠까지 오니.. 수업은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도통 알지도 못한 채 하루종일 멍한 시선으로 흐느적
거리기에 바빴다.
'왜 이렇게 졸리지.....?'
아침잠도 많은 편이 아니라서.. 잠이 올 리가 없는데.. 몸은 계속 피곤하다는 신호
를 보내니.. 난감했다.
나른한 채로 하루종일 지속한다는 것은 역시나 무리일까나...? 무게가 100톤 정도
되어버린 눈꺼풀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졌다. 그리고 깜빡할 사이에 누가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야야.. 일어나.. 선생님 오셨어. 일어나..."
"......으... 으응...."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면서 자신을 깨우는 사람이 있자, 혜진이는 짧은 신음과 함께
어렵게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얼래? 선생님이 오셨다면.. 벌써 점심시간이 끝난 것
인가?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니.. 혜진이는
오른쪽 교실 벽에 걸려져 있는 둥근 시계를 쳐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1시 36분...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치고도 6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
리자 선생님은 출석부를 보며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혜진이는 자신
을 깨워준 아이에게 고개를 돌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찰나...
"헉!!"
그녀는 무서운 것을 보는 마냥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이 크게 떠져버렸다. 자신을
깨워준 아이를 보는 순간 얼굴에 징그러운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괴물의 모습으로 비
쳤기 때문이다.
"뭐, 뭐야? 뭘 그리 놀라는 거야...?"
깨워준 아이는 혜진이의 놀라는 모습에 의해서 의아한 얼굴로 말을 했다. 그러자 혜
진이는 정신이 팍 들은 느낌이 들었고,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의아한 표정
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냐.. 아무것도.. 고, 고마워...."
"그래?"
그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며 대답을 했고, 이이상 신경을 쓰
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
'뭐지....?'
혜진이는 한쪽 관자놀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언가.. 갑작스런 착시현상에
너무나 당황했고 무서웠다.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었고, 뇌리에 박힐만한 광경이라
쉽게 그 생각을 지우지 못한 혜진이었다. 하지만 눈의 착시현상 뿐이고.. 그저.. 피
곤해서 그런 환상을 본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혜진이는 앞에 설명을 하고 있는 선
생님에게 집중을 했다.
"자.. 여기는 시험에 나올 부분이니.. 빨리 적도록..."
선생님은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저마다 아이들은 필기장을 꺼
내 선생님이 가리킨 부분을 적기 시작했다. 혜진이도 노트를 꺼내서 필통에 있는 필
기도구를 꺼냈다.
"꺄악!!"
혜진이는 필기도구를 꺼내자마자 놀란 마냥 큰 비명과 함께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렸
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혜진이에게 쏠렸다.
"뭐, 뭐야...? 저, 저것은..."
떨리는 목소리로 혜진이는 두려운 것을 보는 마냥.. 떨어뜨린 필기도구를 보았다.
"이혜진 뭐야!!?"
선생님은 비명을 지른 혜진이를 향해서 윽박질렀다. 혜진이는 깜짝 놀라 번뜩 선생
님을 쳐다보았다.
"아, 아니요... 제 피, 필기도구에.."
혜진이는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선생님에게 말하려는 찰나 다시 고개를 돌려 떨어
뜨린 필기도구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필기도
구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이상하다.. 뭐, 뭐지...?'
뭔가가 이상하자, 순간 뒤통수를 강타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본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혜진 뭐냐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고 필기도구를 떨어뜨려서요
..."
또다시 선생님이 윽박지르자 혜진이는 다시 한번 깜짝 놀라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허둥지둥 자신의 필기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혜진이는 칠판에 적혀져 있는 글을 노
트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상해도 엄청나게 이상했다. 혜진이는 눈앞에 쥐고 있는 샤프를 바라보았다. 분명
히 자신의 눈에 본 것은.. 이런 필기도구가 아니었다. 필통 안에 샤프라고 생각해서
꺼낸 것은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흐물흐물한 징그러운 뱀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더러운 벌레들의 무리들이 자신의 팔에 달라붙어서 점점 위로 기어오자
혜진이는 비명과 함께 그것을 내팽개친 것이다.
그렇게 피곤했던 것일까? 그러니 이런 환상이 보여지는 것이었나? 그런 끔찍함을 2
번이나 겪으니 혜진이는 몸이 급속도로 힘이 빠져버렸다.
'그래.. 피곤해서 그런 것이겠지....'
혜진이는 그런 환상이 보이는 것이 피곤함 때문에 그런것이라는 자기 긍정을 얻고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몸만 피곤하고, 머리만 복잡
해 질 테니 쉽게 납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띵딩띵딩, 띵딩딩딩-
"자! 오늘은 여기까지다! 앞으로 시험에 나올 것이니!! 확실히 공부하도록!! 이상!!
"
종이 치자마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시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는, 출석부를 가지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하아..."
선생님이 빠져나가자 혜진이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엎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졸음
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것을 참지도 못하고 그만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10분이
지나서 쉬는 시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혜진이는 깨어날 줄 몰랐고, 이번에도 혜진
이를 깨우는 이가 있었지만 혜진이는 쉽게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 잠이 들어 버렸다
.
"으응..."
눈을 떠보니..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밖에는 붉은 노을
빛이 건물들 사이의 공간을 가로질러 아름답게 비추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의미였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자 혜진이는 당황한 것보
다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풍겨왔다.
혜진이는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건만.. 이상하게 개
운하지 않았고, 여전히 피로한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잘 느끼
지 못했다.
언제부터 자신은 혼자 외로이 돌아갔었을까? 아마도... 아진이와 선희와 헤어졌을
때부터겠지... 언제나 같이 가주고, 같이 기다려줬던 그녀들, 그리고 즐겁게 놀았던
그녀들과의 하교 길은 재미있기만 했지만.. 지금은 그 두 녀석이 없으니 재미가 있
을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은 혜진이가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 아무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그 흔한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결과가 나타나버렸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것이라 혜진이는 아무런 느낌
을 자아내지 않았다.
"하아... 응보라는 것인가?"
오늘로서 벌써 3번째 한숨이다. 그리고 나쁜 짓을 했었으니.. 되돌아오는 것이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혜진이는 혼자서 집으로 향했고,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덕분에 혜진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지만.. 앞으로
더욱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은 혜진이는 모르고 있었다. 이미 악마는 혜진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