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188화 (188/277)

(193) 이세계 드래곤 [20] 1.그 후....

-삐뽀!! 삐뽀!!-

차도에 하얀색 구급차가 시끄럽게 사이렌을 크게 울리며 비상 깜박이도 가세해서

여러 차들을 가로질러 무섭게 질주했다. 급한 환자를 실은 구급차라는 것을 인식하

는지 차도에 있는 자동차들도 쉽게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규모가 큰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구급차가 서자마

자 들것을 가지고 와 흥건히 피에 젖은 얼굴에 산소호흡기를 찬, 어느 한 소녀를

데리고 응급 중환자실로 급히 이동했다. 그리고 갈색 잠바를 입은 잘생긴 청년이

들것에 실은 소녀의 뒤를 따라 급히 뛰어갔고, 연이어 40대 중반의 부부가 나와서

똑같은 방향으로 들어갔다.

"혜진아!! 혜진아!!"

갈색 잠바를 입은 그 청년은 울부짖으며 들것에 실려 가는 여성을 불렀다. 흥건히

피에 젖은 그 소녀는 다름 아닌 혜진이였다. 그녀는 떨어질 때 밑에 나뭇가지에 걸

려 낙하속도를 줄여져서 다행히 즉사는 면했지만 지면에 머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머리에 심한 출혈로 인해 수술실로 급히 이동되고 있었다. 11층에 떨어져서 즉사는

면해서 다행이었지만 하필 머리먼저 떨어지는 바람에 행운에 이어 불행으로 번져버

렸다.

목을 부러지지 않았지만 머리에 뿜어져 나오는 출혈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행여

나 머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갈 정도였다. 승환이는 계속

의식 없는 혜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이상 가지 못하는 수술

실에 도착하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쾅!!-

욕을 읊어되며 승환이는 주먹으로 벽을 힘껏 쳤다. 주먹이 아펐지만.. 이런 것은

혜진이의 비해 아무것도 아닌 고통이었다. 이제 승환이는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

었다. 오히려 즉사는 면해서 승환이에게는 천만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생

사는 현재 갈림길에 놓여져 있으니 불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는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 쪽으로 치우치자 승환이는 그런 자

신의 마음을 다시 고치며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혜

진이가 11층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직접 본 것과, 들것에 실려가서 분수처럼

나오는 피를 생각하면 쉽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질 못했다.

혜진이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이 이 현실에 대

해 충격에 벗어나지 못해 지금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별할 수 있는 사리가 없었다

.

승환이도 이것이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다. 하지만.. 벽을 쳤던 통증이 전해져 오

니 이것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자 암담한 현실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은 심정

이었다.

자살.. 하필 자살이라니!! 어떻게 그런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줄 수 있는지.. 벼랑

끝에 자살까지 몰고 간 마약이라는 약이 저주스럽고도 무척 원망스러웠다. 그런 약

은 왜 있어야 하고,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 분노에 휩싸여 화만 머리끝까지 났다

.

"젠장!!"

또다시 승환이는 욕을 내뱉으며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승환이가 치

를 떨고 있을 무렵 급하게 뛰어오는 몇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

를 듣자마자 승환이는 고개를 돌려서 누구인지 확인했다.

"여어!!."

현재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듯이 여유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승환이

에게 인사를 건네는 인간은 다름 아닌 카이란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아름다운

4명의 여성 사미, 아리아, 민지, 혜미가 보였다.

"오빠! 그런 말투는 너무하잖아!! 당사자들을 생각해야지!!"

카이란의 여유스러운 말투에 민지는 못마땅한 듯 승환이와 혜진이 부모님을 번갈아

눈치를 보면서 카이란에게 윽박질렀다. 확실히 불상스런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카이란 같이 저런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면 그것은 앞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상당

한 불쾌감을 줄 것이다.

"뭐.. 상관없잖아? 인명은 제천이야. 운명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는 역할밖에 할 수 없어. 여유가 있든 가슴을 졸이고 있든 그

것은 죽는 그 사람의 운명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게 힘을 들어 할

필요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실례가 되잖아!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과연

오빠는 이렇게 여유있는 모습을 보일거였어?"

"흐음.... 그렇기는 하네.... 어쨌든.. 우선 저 녀석을 만나보자고."

이 상황에 저런 말이 오고간다는 것이 정말 어이없고 막돼먹은 짓 같았다. 카이란

은 민지와 거기까지만 얘기한 채 승환이에게 다가갔다.

"미안.. 너무 늦은 시각에 전화를 해서..."

승환이는 이런 일이 일어난 뒤 아무래도 카이란에게도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 바로 전화를 했었다. 다행히.. 카이란이 전화를 받았었고, 지금 연락을 받자마

자 이곳으로 온 카이란 일행들이었다.

"아니.. 괜찮아.. 그나저나.. 그래도 다행이군.. 그나마.. 지금은 살아있다는 것이

..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겠군."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어서 미약하게나마 고

개를 끄떡였다.

"얌마.. 사내자식이 그렇게 풀이 죽어서야 되겠냐! 어깨를 펴! 어깨를! 네가 이렇

게 걱정한다고 모든 것이 풀어지는 것이 아냐! 이것은 그녀가 결정해야 하는 운명

의 장난이니... 너도 단단히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거야."

카이란은 승환이의 양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승환이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여

전히 힘이 없는 채로 고개를 떨궜다. 그녀가 깨어나면 현실 속에 가혹한 운명에 시

련을 계속 겪어야 하고, 그대로 깨어나지 않으면.. 그녀는 영원히 자유를 얻게된다

. 그것을 말하는 카이란이었다.

"그나저나.. 혜진양이 자살까지 할 정도라니... 우려했던 일이긴 했지만.. 그 정도

였을 줄은 몰랐군요.. 겨우 그런 의지였다니.. 약간 실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에 씁쓸한 듯 사미는 입맛을 다셨다. 사미뿐만 아니라.. 혜

미, 민지, 아리아 역시 비슷했다.

"아무래도.. 힘들었을거야.. 물리적이나 정신적이나, 고통은 모두 다 똑같아 그것

은 다른 것과는 그리 차이가 없이 모두 의지로 버텨야 하는 괴로움이야. 혜진양은

그 괴로움에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을 거야. 의지가 강하든 약하든 우리는

그 혜진양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괴로움을 알 수 없어서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

어. 어디까지나 우리들은 타인의 입장일 뿐이니까."

혜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모두 자신일 뿐이지 혜진이가 아

니기 때문에 그녀의 고통은 알 수 없다. 함께 나누자는 고통은 결국 같이 힘을 내

자는 의지를 기를 뿐,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고통은 전해질 수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혜진양이 너무 불쌍하군요..."

아리아는 지금 수술실 입구를 쳐다보며 동정하는 눈빛으로 말을 했다. 공감되는 하

나의 형성된 말. 누구하나..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고, 반발도 하지 않았다.

"못난년.. 망할년.. 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거지...? 마약이라니.. 크

윽... 한심하기는.... 아비의 이름을 먹칠할 생각인거야..... 못난년 같으니라고..

."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참지 못해 욕짓거리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혜진이 아버

지였다. 혜진이가 마약을 한 것이 수치심과 굉장한 분노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

에 일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지면서 혜진이 부모님을 쳐다보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공부도 하지 않고 맨날 밖에 싸돌아 다니더니만.. 그것이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저런 짓이나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여튼.. 정말이지 자식이 아니라 원수야! 원수!!!"

이 와중 어떻게 저런 말을 꺼낼 수 있는지 정말 승환이는 분노가 치솟았다. 자식을

완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혜진이 부모님을 보니.. 승환이는 뭐라고 반박을 하려고

했다.

-짝!!!-

수술실 입구 앞에서 고막 찢어질듯 한 뺨맞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그리고 혜진

이 아버지는 고개가 오른쪽으로 틀어지는 것이 보였다.

"정말 듣는 사람이 귀가 썩을 정도로 천박한 부모들이군요."

오들오들.. 뼈속까지 오한이 저릴 정도로 긴박하게 가시가 돋는 말투로 사미는 굉

장한 분노감을 혜진이 부모님에 선보였다. 흠칫 싸늘한 그녀의 눈초리는 오싹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른의 따귀를 때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행동이자 순

간 카이란과 민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미의 행동에 입이 벌어졌다.

"당신들이 과연 부모인지 의심이 되는군요. 어떻게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잘 나오

는가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 알기나 아는지 모르겠군요."

"이... 이.."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것에 굉장한 수치심이 들었는지

혜진이 아버지는 이를 갈았며 화가 난 눈초리로 사미를 노려보며 큰소리쳤다.

"뭐야!!! 어디서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 거야! 감히 어른의 따귀를 때리다니!! 막돼

먹은 버릇 정말 못쓰겠구나! 너 부모가 누구야!!?"

"우리 부모 알아서 뭐하게요? 알면 우리 부모에게 따지기라도 하게요? 오호호호호

호호호호호호호! 정말.. 어이없군요. 우리 아버지도 속이 썩었다는 것은 알지만..

당신들도 만만치 않게 썩었군요."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막 말하는 사미의 입은 얌전하지 못했다. 다만..

사미는 아버지를 정말 싫어 할만한 이유가 많기 때문에.. 저런 말을 내뱉은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저런 버르장머리하고는... 저따위로 어른에게 대들다니.. 예의라는 것을 모르고

살은 아이군!"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버르장머리라고요?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 우리 아

버지입니다."

사미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혜진이 부모님을 농락했다. 그 말에 더욱 화를 내시는

혜진이 부모님들.. 혜진이 어머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사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네 부모 누구니!? 아무리 막돼먹었다고 하지만 너무 심한 말 아니야! 네 부모 누

구니!?"

"오호호호호호호!!! 그렇게 알고 싶은가요? 그렇담 말해 드리죠.. 조직계 우두머리

진거만이라면 될까요? 어디 한번 따져보시겠어요? 오히려 생매장이나 당하지 않았

으면 좋겠군요. 오호호호호호호호호!!"

조직!! 이 말에 혜진이 부모님은 놀람에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 갑자기 분노를 끓으며 바락 사미에게 대들었다.

"그래.. 네년이지!! 네놈들이 우리 혜진이를 꼬득였지!!? 네년같은 조직계 사람이

니 충분하지 않겠어! 그렇지!!"

이제는 생사람까지 잡으려는 혜진이 부모님의 말에, 사미는 기가막힌 듯 헛바람을

내뱉었다. 또한.. 이제는 막 나가는지... 욕까지 내뱉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허! 이것은 무슨 헛소리인가요! 정말 어이없군요! 이제는 생사람까지 잡으려고 하

다니!! 당신들의 한 아이의 부모라는 것이 웃기는군요!"

"웃기지마 이년아! 어디서 발뺌을 내밀려고 그래! 그래! 네년을 모두 고발하겠어!

고발! 어디서 마약이나 팔고 있는 인간쓰레기 같은 년이 어딜 대드는 거야! 너 오

늘 잘못 걸린 줄 알아라!!"

그 말에 더욱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저렇게 나갈 수가 있는지... 어른

같지도 않았다.

"정말 유치하고 천박하기 한이 없군요! 이러니 혜진양이 당신네 같은 사람 때문에

저렇게 된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시끄러워! 어디서 계속 말대꾸야! 너 오늘 잘못 걸린 줄 알아라! 여보 핸드폰 줘!

저런 인간쓰레기무리들은 콩밥한번 먹어 봐야해! 감히 착한 우리 혜진이를 꼬득여

마약까지 하게 만들다니!!"

혜진이 어머니는 지갑 속에 핸드폰을 꺼내며 경찰서에 전화를 하려고 했다. 점점

사미는 상황이 이상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봐도.. 승산은 사미에게 없었다.

자신은 조직의 딸. 그리고 아버지는 조직의 우두머리. 확실히 조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찰쪽에서는 조직의 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조직과 마약의 사

이는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기 때문에 잘못되다가는 혜진이가 마약을 하

게 된 동기가 바로 자신의 집안 때문이라는 것으로 판명될 수가 있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죠! 이렇게 증거 없이 우리 집안 때문을 몰아세워도 되는

건가요! 당장 안 그만 둬요!!?"

상황이 좋지 못해 사미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더욱 기고만장하

게 혜진이 부모님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웃기지마! 어디서 계속 큰소리야! 큰소리!"

사미는 어떻게 하질 못하고..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는

지 분노로 인해서 섣불리 나선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뒤쪽에서 황당한 어투로

혜진이 부모님에게 화를 내는 언성이 들렸다.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정말 웃기는 분이시네요. 두분 혹시 적반하장(賊反荷杖)

이라는 말을 알고 계시는 건가요!? 잘못한 사람이 누군데!! 오히려 사미 언니에게

덤터기씌울 생각인가요!!?"

화를 내면서 소리치는 사람은 사미가 아닌 가운데 가르마에 양 머리를 갈래로 묶은

귀여운 소녀 민지였다. 그런 민지의 화를 내는 말에 혜진이 부모님은 또다시 열을

올리며 말했다.

"오호라! 네년도 같은 패거리구나! 그리고 저기 뒤에 있는 모든 년, 놈들 다! 하긴

배운 것도 없이 막 자란 인간쓰레기이니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고 막돼먹게 나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군!"

이제는 사미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카이란, 민지, 혜미, 아리아까지 모두 같은 패

거리를 보고, 막나가는 혜진이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민지는 그 말에 벌컥 화를 내

면서 바락 대들었다.

"말조심하세요! 우리 부모님 모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 줄 아세

요!? 바로 대검철청 검사입니다! 검사라고요!!"

그 말에 놀라는 혜진이 부모님들.. 그리고 사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직과 검사

.. 뭔가 이치가 맞지 않는 다는 얼굴로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민지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치마주머니를 뒤지며 종이쪼가

리 한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쪼가리를 보여드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는 혜

진이 아버지는 무슨 의미냐는 얼굴로 말했다.

"뭐냐? 이 성적표를 보여주는 저의는 뭐냐? 검사의 딸이면서 맨 날 저런 놈들과 놀

아서 아버지 체면을 깎이게 만들 심보냐?"

민지가 보여드린 것은 다름 아닌 지난번에 시험 봤던 성적표였다.

"그렇게 보이시겠죠? 검사인 아버지지만 전 아버지의 기대를 부응하지 못하고 맨

날 뒤에서 노는 성적을 가지고 와요. 하지만.. 절대로 뭐라고 그러시지 않아요. 오

히려 열심히 하면 됐다고 하면서 칭찬을 거듭하셔서 오히려 제가 무안할 정도로 너

그러운 분이세요. 부하에게 체면도 있겠지만 우리들이 강하고, 또한 사람답게 살아

가기만을 바라시는 분이라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으시는 멋진 분이세요! 그리고 언

제나 우리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셔요. '사람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은 공부도 아닌 마음가짐'이라고 말씀하시죠. 공부는 하면 되지만.. 성품은 배운다

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이죠. 압박하게 타이르지 않

는 다는 것이 우리를 믿는다는 쪽의 좋은 의미를 가지고 계시죠. 정말 웃기죠? 대

검찰청 검사님인데.. 저희집은 언제나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고, 언제나 열심

히만 하고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은 너로써 최선을 다한거라고 하면서 오히

려 칭찬해 주실 때가 많은 분이라는 것이. 누구처럼 자기 자식 성적을 자랑하고 싶

은 마음이 없으신 분들이죠."

허리에 팔을 대며 민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셔요. 그리고 오빠와 저는 그 사랑을 듬뿍 받

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 그런 채로 사랑을 주시고 있는 멋진 부모님이

시죠. 그런데 지금 아저씨의 직위는 뭐죠!? 어느 한 회사 사장!? 부장!? 아니면 어

느 학교의 교육자!!? 그래서 혜진 언니에게 공부를 하라고 억압 주는 것인가요!!?

부하직원에게 공부 못하는 창피한 딸의 모습을 보면 체면이 깎여서 얼굴을 들지 못

할까봐요!!? 정말 한심하군요!! 체면이 무슨 밥 먹여 줄까요!!?"

민지는 점점 격해지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혜진이 부모님에

게 큰소리를 쳤다.

"왜 그렇게 그렇게까지 혜진 언니를 압박하는 건가요! 그렇게 체면이 중요하세요!

중요한 거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할 정도로 그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거냐

고요!! 왜 혜진 언니가!! 언니가... 마약을 한 이유가 뭔지 아시는 건가요!!?"

물론 알 리가 없었다. 처음에 안되었던 집중력이 향상이 되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

기 때문에 시작한 마약이었다는 것을 혜진이 부모님은 몰랐다.

"바로 당신들 때문이라고요!"

"그, 그게 무슨...."

무슨 말도 안되냐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혜진이 아버지 입에서는 그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왜! 왜! 그렇게 핍박을 줘야 하는가요!?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는 없었나요? 혜

진이 언니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시거나 아니면 혜진이 언니의 대해서 조

금이라도 알고 계신 것이 있나요? 모르시겠죠! 아니 당연히 알 리가 없지요! 맨날

공부하라는 잔소리밖에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었으니까요! 공부는 중요하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과연 인생에 있어 공부가 전부인가요! 사람에게 있어 인생이란 가

장 중요한 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무참하게 인생을 망가뜨리게 할 수 있나요! 자기

자식이라도 엄연한 인간이라고요!!"

점점 격해지는 감정의 의해서 민지는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리고 계속

말을 할 찰나 누군가가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그만해요!!!"

찌렁찌렁.. 수술실 입구에서 메아리가 울렸다.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른 인간은 다름

아닌 승환이였다. 승환이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숙였다.

"그만해요.. 지금, 지금이 어떤 때인 줄 아세요? 제발 그만하라고요... 혜진이는

지금 생사를 왔다갔다하고 있을 시기라고요... 그런데.. 지금 그런 말싸움이나 하

고 있을 때 인가요...? 그러니.. 이제 그만.. 그만하세요.... 제발요..."

그렇다. 지금 그렇게 한가롭게 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생명이 잃느냐 아니면.

. 부지하느냐라는 중대한 순간인데.. 이런 싸움이라니..

"하, 하지만...."

"됐어요.. 민지양.. 이제 그만 해요...."

혜미가 민지를 살짝 안아주면서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혜미는 혜진이 부모

님을 쳐다보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

"민지양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민지양네는 절대로 공부하라

는 강요를 하지 않고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요를 하십니다. 하지만 두 분은 뭔가요?

왜 혜진양의 입장을 생각해 주시지 않죠? 그렇게 공부를 해서 자랑을 늘여놓고 싶

으신가요? 혜진양은 두 분의 대용품이 아니에요. 자식은 도구로서 체면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닌, 한 사람으로 태어나 한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에요."

그 말이 끝으로 주위는 잠잠한 적막이 흘렀다. 혜진이 부모님은 부끄러움을 느꼈는

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훈계를 당한 수치심에 의한 것인지 고개를 숙이며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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