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189화 (189/277)

(194) 이세계 드래곤 [20] 2.그 후....

긴장한 빛이 역력한 채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카이란 만

이 유일하게 여유를 잃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

나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여유를 잃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

는 것은 아무래도 그가 드래곤이라는 최강의 종족이라 그런 것인 것 같았다.

아리아는 카이란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눈빛이라 카이란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란은 고개를 절래 저으며 아리아에게 텔

레파시로 말했다.

<안 돼. 아니.. 안 할 생각이야. 그러니.. 그런 눈빛을 해도 소용없어.>

그 말에 깜짝 놀라는 아리아.

<어째서죠? 백성님이 조금만 힘을 쓰신다면 혜진양은 쉽게 살아 날 수 있잖아요.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 이들인데.. 왜 안 된다는 것이죠?>

아리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카이란은 혜진이를 치료해 줄 마음이

없었다.

<미안.. 그래도 안 돼. 이것은 그녀의 문제니까...>

그녀의 문제?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아리아는 이이상 말하지 않았다. 한번 안 한

다고 하면 쉽게 다시 마음을 돌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리아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치료 마법이야 아리아도 할 줄 알지만 1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엘프이기 때문에

아직 마력과 마나가 그다지 높지 않아 중상을 입은 인간에게는 무리가 있었다. 그

래서 지금은 자신의 힘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한이 될 줄은 몰랐다.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실 입구만 바라보고 있는 승환이. 벌써 몇 시간째 그런 채로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초조함은 더해갔고 혹시나 잘못된

것은 아니겠는지 계속 불안하기만 했다.

장작 5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술실에 켜진 불이 꺼졌다. 수술을 완료했다는 뜻이었

다. 수술실 입구에 있는 카이란, 사미, 민지, 혜미, 아리아, 승환이, 혜진이 부모

님은 모두 자리에 일어섰고, 문에 누군가 나오기만을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수술복 입은 인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 이 수술을 맡은 의사가 마스

크를 벗으며 혜진이 부모님에게 향했다.

"어떤가요? 선생님!!"

급하게 물어본 사람은 승환이였다. 의사는 승환이를 보며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설

래설래 저으며 말했다.

"우선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오늘이

고비일 것 같군요. 환자의 의지력이 있어야 살 수 있겠습니다. 저희로써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럴수가...."

"아아..."

모두 실망이 역력한 기색을 보였다. 수술은 성공했으나 오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니... 승환이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오늘을 넘겨야 혜진이의 운명이 결정되니

불안함 감에 몸이 떨려왔다. 승환이는 천천히 양 무릎이 땅을 짚었다. 그로써는 충

격이 클 만도 했다.

-덜컹!-

수술실 문이 크게 열리며 그 안에 혜진이를 실은 중환자용 침대가 나왔다. 승환이

는 혜진이를 실은 침대가 나오자 벌떡 일어나서 혜진이 곁으로 갔다. 머리에 붕대

를 감은 채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고 있는 혜진이의 모습이었다.

승환이 뿐만 아니라 카이란, 사미, 혜미, 아리아, 민지와 혜진이 부모님까지 모두

그녀의 곁으로 갔다. 쇠약하게 초라해진 혜진이의 얼굴을 보니 다들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 발활 했던 혜진이의 얼굴은 이제 옛 얼굴이 되어버렸을 만큼 핏기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자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쉽게 파악을 할 수 있을 만

큼 초췌했다.

막상.. 혜진이 부모님도 딸의 이런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핍박했던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 같이.. 오늘이 고비이자

밀려오는 슬픔에 의해 혜진이 부모님은 오열을 터트렸다.

"혜진아... 혜진아!!!"

"흑흑.. 미안하구나.. 얘야..."

승환이도 울상이 된 채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혜진이를 뒤따랐고, 안타까운 듯 인상

을 찡그리며 사미, 아리아, 민지, 혜미도 그 뒤를 뒤따랐다. 카이란만 아무렇지 않

은 듯 담담한 채로 걸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이미 예견한 듯 아무런

감흥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 현재 새벽 6시가 조금 안된 시각. 앞으로 18시간이 후면 어떻게 되는지 그 누

구도 알지 못한다. 미래를 알지 못하니.. 답답함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알 수는 없기에 그들은 운명의 장난에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승환이는 오늘 학교도 가지 않고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혜진이를 기다릴 수 밖

에 없었다. 오늘을 넘겨야 혜진이를 살 수 있으니 제발..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

라며 승환이는 두손을 꼭 모아 기도를 했다. 신도 뭐도 믿지 않는 '무교'지만 오늘

만큼은 그것을 따지지 않고 신이 있다면 꼭 이 기도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간이란 물 흐르듯이 빨리 가지만 오늘따라 시간은 무척이나 가지 않았다. 결과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혜진이가 무사히 목숨을

부지하기만을 간절히 바랬었다. 시간이 끌면 끌수록 혜진이는 점점 의지를 잃어 자

신의 곁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혜진이 곁에만 쭉 있었고, 어떻

게 시간을 허비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다. 심장박동 기계가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나

는 302호의 어느 한 병실에 중환자라고 가르쳐 주듯 주사 약병이 4개정도 걸려 있

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그 환자는 다름 아니 혜진이였다. 산소호

흡기로 숨을 쉬고 있는 혜진이는 핏기 하나 없는 채 병실에 누워있었다. 주위에는

승환이와 혜진이 부모님이 있어야 하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지금 혜진이만 병

실에 있었다.

-스슥..-

심장 박동 기계와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병실에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났다. 검은머리에 눈매가 날카롭게 예기를 뿜어내는 이는 카이란이었다

. 마법을 사용해서 카이란은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카이란은 천천히 혜진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수척함이 그녀가 많이 힘들어했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카이란은 오른

손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카이

란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상하게 보였다.

"그래.. 네가 결정한 것은 이거구나...."

결정.. 이것은 그녀의 결정이었다. 마약의 인한 괴로움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

아 그녀는 죽음을 선택했다.

"사실.. 난 너를 쉽게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너도 알

고 있을 거다.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닌 이것은 네가 정한 운명의 길이니까.."

운명의 길. 생과 사의 갈림길...

"넌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서 해방감을 찾은 것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것. 이것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한 길, 그 길로 나가면.. 넌 영원한 해방을 찾을 수

있는 길이지. 그리고 현세(現世)에서 살리려고 하는 힘과 친구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마음의 의해서 다시 살려고 하는 의지의 길, 이 길로 가면.. 넌 또다시 괴로

운 고통을 겪어야 하는 힘든 시련을 기다리고 있지. 이것이 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장난. 네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니까..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카이란은 그녀의 선택을 중요시 여기며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자살이란 스스

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즉 이것은 목숨을 잃더라도 그것은 그녀가 결정을 내린 데

로의 결말이다. 생과 사는 그녀가 결정을 해야지 억지로 살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

었다. 물론 그런 길이 있을지 없을지는 카이란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살려

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녀는 다시 눈을 뜰 거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카이란은 억지로 현세에 붙잡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카이란은 새벽에 간절히 바라

는 듯이 바라보는 아리아의 생각을 단번에 거절했던 것이다.

"시간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네가 선택한 행동도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3600년

동안 살면서 너와 비슷한 인간은 많이 봐왔고, 모두 내 손으로 끝장을 낸 인간도

많이 있었다. 괴로움에 발버둥을 치면서 오기라도 버티려는 인간이 있었지만.. 나

는 그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내 손으로 끝장내서 억지로 해방감을 안겨줬다. 하

지만.. 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네가 결정해라. 살 것인

가 죽을 것인가를..."

그 말을 끝으로 카이란은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고

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난 네가 살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의 소녀여..."

사라질 때 카이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다시 기계음만 들리고 무거

운 적막감이 흘렸다.

불안한 마음에 의해서 승환이는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었다. 10분

정도만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혜진이 부모님과 승환이는 마련된 의자에 앉은

채 초조하게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아직까지는 평온하게 일정한 상태로 혜진이의 상태는 변화가 없었다. 현재 시각은

8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불안한 감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것 때문

에 밖에 나가서 잠시간 바람을 쐰 것인데.. 여전히 점점 손이 떨려오는 승환이는

자신의 심정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삐!!-

심장박동 기계가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갑자기 크게 소리내어 중환자

실을 크게 메웠다. 그 소리는 곧 심장이 멎었다는 의미이자 승환이는 등골이 싸늘

하게 식었다. 지금 무슨 소리가 나고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모른 채 승환이는 멍

하니 혜진이가 누워있는 것만 보았다.

심장박동 기계가 일정한 음으로 계속 메우자 의사 몇 명과 간호사 몇 명이 긴박하

게 뛰어왔다. 그리고 혜진이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다급하게 응급조처를

했다. 심장충격기 소리가 몇 번을 걸쳐 어떻게든 혜진이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보

였지만 쉽게 심장이 다시 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흑.. 혜, 혜진아... 흐흑..."

"여보.. 꼭 괜찮을 거야.. 꼭..."

혜진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혜진이 아버지에의 가슴에 기대서 흐느꼈다. 굳세

게 혜진이 아버지는 위로를 했지만.. 자신도 지금 이 광경에 의해서 몰려오는 절망

감을 떨치지 못했다.

승환이는 부들부들 떨었다. 혜진이가 죽어간다...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아니

! 죽으면 안 된다!

"혜, 혜진아.. 아, 안 돼.. 제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승환이의 오른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이런 결과를 기다려

야 하고? 왜 이런 결말을 지어야 하는지 승환이는 어디서 따지고 싶었다. 그래서

싫었다. 어디서 따질 데는 없지만 승환이는 혜진이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멀어져

가는 혜진이를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안 돼! 혜진아 눈을 떠! 눈을 뜨란 말야!! 왜!! 왜 눈을 감으려고 하는거야!! 제

발!! 눈을 뜨란 말야!! 이 바보야!!"

승환이는 벌컥 달려들며 무언가를 잡으려고 모습으로 혜진이에게 달려들자, 몇 명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승환이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놔!! 놔란말야!! 혜진이.. 혜진이를 붙잡아야 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떠

나버린다고!! 그러니 놓으란 말이야!!!! 놔!!!"

몸부림을 치며 자신을 말리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왜들 말리는 것이지? 혜진이를 붙잡아야 한다고!! 이렇게 혜진이를 보낼 수가 없단

말야!! 승환이는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떠나가는 혜진이를 붙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데.. 몇 년만에 그녀의 마음을 들었는데... 이

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었던 일이 무척이나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언제나 그녀와 같이 웃으면서 하려고 하는 행동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와

이렇게 헤어지기는 싫었다.

'안녕! 나와 같이 놀자!! 난 혜진이야!! 넌 이름이 뭐야?'

'와! 같은 아파트에 같은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네... 헤헤헤.. 다행이다.'

'헤헤! 나 아빠한테 칭찬 받았다!!'

'뭐야! 넌 누군데! 우리 승환이를 건드리니!! 빨리 사과해!! 사과하란 말야!!'

'걱정마..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야. 겨우 시험 문제 하나 틀렸다고 그렇게

울상이면 어떻게? 내가 잘했다고 칭찬해줄게. 헤헤헤..'

'다른 학교지만.. 우리는 같은 동네잖아. 그러니 아무 때나 만날 수가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마.'

'....승환아.. 나 기분이 우울해.. 시험 10등 떨어졌어..'

'아니. 괜찮아. 확실히 축하해 줄 일이니까. 그러니 됐어.'

'와...! 이렇게 우리가 걸어본지 얼마만이야..? 헤헤헤헤헤!!'

'네가 지금까지 걱정하던 것, 이제 안 할 생각이야.'

'난 이제 싫어.. 이런 고통..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 언제까지 이런 채로 있을

바엔... 차라리....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미안.. 승환아.. 그리고... 나도 너를 좋아해..'

하나 하나의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기뻤던 일.. 슬펏던 일. 언제나 같이 있었을 때

가 많았기 그녀를 떠나버리게 만든다면 완전 자신의 반쪽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

다. 그녀를 그만큼 좋아했고, 정이 많이 든 자신의 하나뿐인 그녀였었다.

"놔! 혜, 혜진이가 떠나간단 말야!! 혜진이가!!! 그러니 놓으라고!!!"

모든 것이 느릿하게 보였고,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는 착각이 들었다. 의사들이 뭐

라고 떠들면서 혜진이에게 응급조처를 했지만.. 오직 승환이의 귀는 심장이 멈춘

기계 음만 계속 드릴뿐이었고, 시각에는 혜진이가 떠나는 환상만이 보였다.

"놔 란 말이야!! 놔아아아아아!!!!!!"

절규하며 승환이는 부르짖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