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190화 (190/277)

(195) 이세계 드래곤 [20] 3.그 후....

-짹짹...-

참새들이 여기저기 지저귀며 짹짹거리는 기분 좋은 날씨. 겨울이 온다는 징조인지

아침 공기는 가슴을 쓸어 내리는 상쾌함이 묻어 있어 숨을 쉴 때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다. 또한 이제는 떨어질 것이 없는 벌거숭이가 된 나무들. 그런 풍경

을 보면 조금후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 짐을 느꼈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를 내며 승환이는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저 하늘로 날아가는 참새들을

바라보았다. 자유롭게 날개 짓을 하는 새들을 보면 문득 저 새들은 천사가 아닐까라

는 의심이 가진다. 세상을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새들. 인간의 모

든 마음을 훔쳐보며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무엇을 볼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새들

눈에는 하늘 다음은 무엇으로 보일까? 저 세상과 열려있는 문? 아니면 푸르른 창공

의 대지?

피식.. 승환이는 웃음이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이봐야 학생? 꽃 살라우? 여자친구가 아주 좋아하는 꽃이 있는데.. 한송이 사가봐.

"

꽃? 승환이는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인상 좋게 친근감 묻어있는 얼굴로

아줌마가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코를 자극해 주자 문득 그

녀에게 꽃을 내밀면 좋아할 것 같다는 예상이 스쳤다.

"음.... 그럼.. 빨강 장미 20송이 주세요."

20송이는 조금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주는 것 많이 주는 것이 좋

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그렇게 사버렸다.

"그려.. 그려.. 잘 생각했어.. 아마 여자 친구가 굉장히 좋아할걸.."

승환이는 그냥.. 웃음만 지을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돈을 건내주며

안개꽃과 잘 아울린 붉은 장미 20송이를 건네 받았다. 그러자 아줌마는 눈웃음을 지

으면서 승환이에게 말했다.

"이렇게 사줘서 고마우이.. 그리고 학생에게 좋은 것 가르쳐 주지.. 붉은 장미 10송

이면.. 그것이 무슨 뜻인 줄 아나?"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어서.. 승환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후훗.. 붉은 장미 20송이면...."

말을 흐릿하게 끊고는 다음 말은 승환이 귓가에 소곤소곤 말했다.

".....라는 메시지야. 여자친구가 이 의미를 알고 있으면 아마 얼굴이 빨개질꺼야..

. 후훗.."

능글맞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고 귓가에 떨어졌다. 승환이는 그런 의미인줄도

모르고.. 어리버리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아줌마에게 인사를 건네며 꽃가게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2주가 지났다. 그때 답

답했던 마음은 이제 없이 모든 것이 평상시대로 되돌아 왔다. 힘들었던 나날이었지

만 그래도 좋은 쪽이니 쉽게 정리 할 수가 있었다.

-뚜벅 뚜벅-

어느 정도 걸어가니 목적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이 들어가

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 회색으로 되어 있는 철문의 문고리에 손을 잡았다. 그

리고 오른쪽으로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늦었잖아!!"

"미안.. 미안... 조금 준비 좀 하는 바람에 늦어버렸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삐친 듯이 화를 내는 어느 한 여성이 말했다. 승환

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얼굴 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승환이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쳇! 하여튼.. 느림보 거북이."

"그래? 그럼 그대로 집에 갈까? 네가 못마땅한 것 같은데..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네..."

"아니.. 아니.. 그 말 최소.. 최소.. 하여튼.. 으그.."

억울한 듯 그 여성은 입 살을 찌푸렸다. 아쉬워하는 것이 자신이니 어쩔 수 없이 승

환이를 잡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후후훗.."

승환이는 그 여성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하얀 색에 세로로 '아름다운 마음'이라

고 써져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많이 힘이 들었는지 야윈 모습이었고

, 머리에 큰 수술을 의해서 붕대로 칭칭 감은 상태였다.

"후훗.. 많이 성질이 죽어졌네요.. 역시 도를 닦는 여스님답군요.."

"뭐야....? 너 그 말 하지 말랬지..! 하여튼...."

여성은 인상을 팍 쓰며 바로 불만을 토했다. 머리카락도 없고, 붕대가 칭칭 감아져

있으니 꼭 세상 연을 끊어서 도를 닦겠다는 스님처럼 보이니.. 승환이는 그것을 거

지고 놀렸다. 그 여성은 그 말에 의해서 왠지 모를 창피함이 느끼고는 조금이라도

그것을 덜 하기 위해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며 투덜거렸다.

"쳇쳇.... 흥!!"

토라해진 듯 여성은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승환이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부드

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외모였지만.. 아름다움은 어떠한 형태라도 바뀌지

않는 다는 말이 헛말이 아닌 듯, 그 여성의 외모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다만 야

윈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오히려 남자의 로망(?)인 병약한 소녀의 아름다움을 취

지를 느끼는 것 같아서 꼭 감싸주고 보살펴 주고 싶은 충동을 서려줄 정도였다.

"와!! 장미꽃이다!!"

"어머 진짜네!!"

청아한 두 여성의 목소리.. 승환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18살 정도 보이는 조숙한 처

녀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뒤에 감추고 있는 승환이의 빨간 장미꽃 20송이를

보고 감탄어를 내뱉었다.

"이거 누구꺼야? 오호라... 여자친구를 위해 이런 장미꽃을!! 으으.. 부럽도다!!"

갈색머리에 목까지 오는 단발머리 여성이 오버하는 행동과 표정으로 애꿎은 손수건

을 쥐어뜯으며 탄식했다.

"그러기에.. 너도 좋은 남자 빨리 구하라고 했잖아. 괜히 네 이상형만 찾다가는..

좋은 남자 다 날아 가버리니까.. 빨리 마음을 정하는 것이 좋을걸."

긴 머리에 포니테일을 한 또 다른 여성이 짓궂게 말을 했다. 그러자 짧은 단발머리

여성은 표독스런 표정으로 빤히 그 여성을 쳐다보며 바로 불만을 토했다.

"그래.. 니 잘났다. 하지만! 소녀는 멋진 남자를 생각하는 꿈이 있다고! 네가 감히

그런 꿈을 짓밟겠다는 것이냐!!?"

"그래그래.. 그런 꿈 실컷 꿔라.. 난 좋은 남자 있으면.. 빨랑 그 남자에게 갈 테니

까..."

대충 넘어가겠다는 뜻으로 포니테일의 여성은 팔을 저으며 외면했다. 그리고 시선을

승환이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왜 그 꽃은 안주는 거야? 뒤에 숨기고 있는가보면.. 분명히.. 깜짝 놀라

게 해줄 심산이었나 보네?"

승환이는 아까 꽃가게에서 산 장미꽃 20송이를 아직 뒤에 감추고 있는 상태였다. 물

론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냥 의미 없게 주기에는 조금 재

미없는 감이 들었기 때문에 여지껏 뒤로 감추고 있었던 거였다.

"아아.. 아무래도 들켰으니.. 이제부터 보라는 듯이 줘야겠지?"

"이거.. 눈꼴시려워 못 보겠군..."

불만어린 미소를 지으며 포니테일의 여성은 팔짱을 꼈다. 승환이는 피식 한번 웃고

는 침대 위에 궁금하다는 듯이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여성에게 장미꽃 20

송이를 넘기며 말했다.

"이거 받아... 정확히 붉은 장미꽃 20송이."

붉은 장미꽃 20송이라는 그 말에 그 여성은 귓불까지 빨개졌다. 그러자 포니테일의

여성과, 단발머리의 여성은 능글스런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오호.. 장미꽃 20송이라.. 너 그 뜻을 알고나 있기는 하는거야?"

"맞아.. 승환이 너 알고 있어?"

그 말에 승환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이고는 그 여성에게 시선을 돌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열(10) 열(10)히 사랑합니다. 혜.진.양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

정이고요."

승환이의 대담성에 의해서 그 여성은 홍당무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집게손가락으로 서로 콕콕 찌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헤헤~ 이거.. 정말 눈꼴시러운데.. 설마 이렇게 말할 줄이야.. 젠장.. 누군 좋겠다

.. 이렇게 멋진 남자친구에.., 저런 말도 서슴없이 하다니..."

"맞아.. 맞아.. 이거 서러워서 빨리 남자친구 사겨야겠다. 그렇지 않냐?"

"나중에 지 서방 자랑하기 전에 빨리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래.. 에구.. 솔직히 부럽긴 부럽다... 아! 누가 저런 남자 없나!!!?"

서로 맞짱구를 치면서 포니테일의 여성과 단발머리의 여성은 정말로 부럽다는 말투

로 밉살거렸다. 그 말에 그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붉게

물들인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헤헤.. 아진아.. 선희야.... 헤헤헤헤헤헤"

그녀의 수줍은 미소에 승환이는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거짓이 아닌.. 정

말로 행복이 넘치는 웃음이었다.

혜진이는 살아났다. 그것도 아주 건강히.... 절대로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때.

. 승환이의 절규에 부응이라도 해주었는지 멈췄던 혜진이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리고 3일정도 지난 후에 그녀는 의식을 되찾았고, 지금 이렇게 건강

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직 마약에 인한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아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병원이 아닌..

마약 제활 치료 센터로 옮겼기 때문에 지금은 금단의 현상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면회기간은 자자 주어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자주 올 수는 없지만 이로써 그녀가

계속 건강하게만 있어준다면 더할 나위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이 순조롭고 잘되기

만 하니.. 승환이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솔직히 혜진이를 잘 못 보니 너무 섭섭

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처음 승환이는 제활 치료 센터로 가는 것을 많이 꺼려해

서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조금 힘든감이 많았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승환이에게는 혜진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

이라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었다. 또한 기쁨에 기쁨을 낳아 그녀가 가장 보고 싶

고, 가장 원했던 아진이와 선희가 돌아왔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아진이와 선희는

눈물 범벅이 된 채로 혜진이에게 사과를 하면서 나타났던 것이다.

-푸드득!!-

새하얀 비둘기가 창문너머로 날개 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꼭 혜진

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임무를 마친 비둘기의 모습 같았다.

-끼익..-

"여어.. 몸은 괜찮은 건가?"

문이 열리고 기본적인 안부인사를 건네는 이는 검은머리의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는

카이란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줄줄이 민지, 사미, 혜미, 아리아가 들어왔고, 인사

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혜진 언니."

"건강한 것 같군요."

"다행히 건강하네요."

"건강하게 보여서 다행이네요."

줄줄이 인사를 건네자 혜진이는 카이란 일행에게 시선을 돌리며 환하게 웃으면서 대

답했다.

"응.. 괜찮아 졌어. 고마워.. 그리고 여러분들도 고맙고요."

카이란이 들어오자마자 아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질로 카이란을 가리키며 크

게 소리쳤다.

"그래! 나 이 남자로 정했어!! 이 남자를 내 남자친구로 정해야겠군!!"

"엑!!?"

카이란은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얼굴로.. 짧은 의문성을 내뱉었다.

"너 내 남자 친구해라!! 지금 생각해보면.. 너 때문에 며칠째 시달린 것을 보면 무

척이나 괘씸해! 하지만.. 너 때문에 이렇게 다시 혜진이와 사이가 좋아졌기 때문에

불만은 없지만.. 그때 너에게 시달린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 여린 가슴에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어! 또한 그렇게 혜진이를 생각하는 마음! 난 그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그러니 그 은혜와 보답으로 네가 내 남자친구가 되는 거야! 좋지!! 어때!!"

"무, 무슨 헛소리야!!"

카이란은 아진이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맞아요! 무슨 소리인가요? 제가 옆에 있는 것은 괜한 폼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생각 집어치우시는 것이 좋을 거에요!"

"사미양 말 맞다나.. 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요. 백성님은 누구에게도 줄 수 없

습니다."

옆에서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들 사미와 아리아가 있는 이상.. 그녀들

은 카이란을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뿜었다.

"오호.. 옆에 이렇게 예쁜 2명이 있었네.. 흐흠..."

그리고 심각한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고, 손으로 '딱'하는 소리

를 낸 후 아진이는 명쾌하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나까지 합쳐서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쓰리 다리를 만드는 거야!!"

"................"

이 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소리. 아진이의 그 발언에 기가 막혔는지 아무도 그 말에

대꾸를 못했다. 카이란은 도끼눈으로 혜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친구는 닮아간다고

하더니만.. 아진이가 혜진이를 닮아 가는 것인지.. 아니면.. 혜진이가 아진이를 닮

은 것인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혜진이도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는지.. 카이란의 시선에 애써 딴청을 피우며 오른쪽

볼을 긁적였다.

"백성이라고 했죠?"

"아..."

선희의 부름에 카이란은 짧게 대답했다.

"우선.. 너에게 감사해.. 아진이 말대로 며칠간 고생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고 너의 행동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야.. 확실히 우리는 무서웠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너의 말을 안 들었어. 그것이 가장.. 우리는 혜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

선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혜진이를 보았다. 그러자 혜진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괜찮다라는 답변을 해 주었다. 아진이와 선희가 혜진이를 멀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친한 친구인 혜진이가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것이 무서워서 자신들도 모르게 그녀를

멀리 해 버린 것이다. 친한 친구일수록 그것을 하지 말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

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기에 아진이와 선희는 지금 혜진이의

모습에 뼈속까지 후회감이 저려왔다.

"아니.. 괜찮아. 뭐.. 그럴수도 있지. 인간의 마음에는 심리적인 공포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거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겁을 먹은 인간들은 너들이 처

음이다."

카이란은 그때 그 일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아진이는 바락 나서서

카이란에게 대들었다.

"누, 누가 겁먹었데!! 다만 혜진이의 얼굴이 볼 면목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 그리고 말 좀 곱게 써라! 어떻게 첫 대면하는 사람에게 '야! 너희들 혜진이 친구

지? 차사하게 마약했다고 친구를 버리다니! 마음 같았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라고 말하는 인간은 너 밖에 없을거다! 내가 살다보아 너만큼 황당한 남자는 처음이

었다!"

확실히 카이란 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마음 같았으면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야 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싶은 카이란이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뭐, 내 성격이니.. 너희들이 이해해 달라고. 그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거라고.

. 만약에 너희들이 남자였다면.. 다짜고자 다리몽둥이 하나 부러뜨려놓고 얘기를 했

을걸."

씩.. 웃으면서 말하는 카이란의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묻

어 있어, 농담이 아닌 진담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 장! 한! 우리 오빠 '나는야 한 무식을 자랑해서 말보단 주먹이 나가는 놈입

니다'라고 자랑을 해라 자랑을.. 하여튼... 바보라니깐."

한심하다는 얼굴로 민지는 입 살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혜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훗.. 그래도... 민지양.. 어찌보면.. 백성군 답잖아요. 만약에 정중한 어조로 말

한다면.. 분명 귀신을 보는 마냥 길 한복판에 비명을 지를걸요."

"맞아! 맞아! 분명히 그럴거야. 백성님이야 원래 무식쟁이에 힘만 자랑하는 분이니

까.. 아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본다면 아마도 자살할 가능성이 높을거야."

혜미에 이어 사미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 저도 사미양말에 동감! 후훗.."

사미에 이어 아리아까지 합세하니 카이란은 은근슬쩍 약이 올랐다.

"어이.. 어이.. 니들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 안 해? 어떻게 그렇게 밖에 평가를 못하

냐? 혜미 선배도 너무하고요..."

"후훗.. 하지만.. 백성군의 행실을 보면..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되는 걸요. 언제나

말보단 주먹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니..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보는 것뿐이에요. 그

리고 이미 말했잖아요. 아마 너희들이 남자였다면 다리몽둥이 하나 부러뜨렸을 거라

고요. 스스로 자기무덤을 판거랑 마찬가지니.. 그렇게 투덜거려봐야 이미 늦었어요.

후훗..."

의외로 혜미는 얄궂은 성격이 있었나 보다. 어떻게 웃으면서 저렇게 말하는지 그로

써는 상상외의 모습이었다.

"아아.. 너의 행실이 얼마나 나쁜지 안 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그러기에 처음부터

잘 행동했으면 좋았잖아. 얼마나 칠칠맞게 굴었으면.. 대부분 저렇게 공감을 가는

말밖에 없냐...?"

아진이는 양팔을 으쓱하면서 지금까지 카이란의 행동이 어쨌는지를 쉽게 파악이 갔

다. 그러자 아리아는 그런 말이 못마땅했는지 바락 나서서 반박했다.

"뭐라고욧!! 그래도 우리 백성님 좋은 모습도 많이 있다고욧! 어떤 좋은 모습이냐면

... 음... 공부는 좀 하는 편이고.. 음.. 에또.. 그리고.. 싸움도 잘하고... 음....

음... 어쨌든!! 좋은 모습 많아요!!"

이거.. 왠지 병주고 약주는 꼴에 부작용이 생겨 오히려 병만 악화된 것 같았다. 두

둔하려고 말했던 아리아였으나 좋은 모습은 그다지 없다는 것만 강조하는 꼴이라 오

히려 더욱 두둔이 아닌 우둔한 것 같았다. 카이란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난... 악역이었어.. 악역.. 난 좋은 점도 없는 악역이었던 거야.... 어떻게

.. 얘들 눈에도 좋은 모습을 못 볼 수가 있는지.. 난.. 악역이었어..... 악역...."

이제 알았냐? 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일으킬지 궁금했지만.. 정말로 충격에 벗

어나지 못한 모습으로 중얼거리는 카이란의 말에 하나같이 어색한 웃음밖에 지을 수

가 없었다. 카이란의 기분이 안 좋은 쪽으로 고조되는 것 같자 선희가 재빨리 나섰

다.

"호홋.. 그래도.. 백성이가 우리들을 다시 혜진이와 만나주게 했으니.. 이것만으로

도 난 감사하다고 생각해. 무서운 감정을 없애주고 혜진이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용

기를 심어 준 것만으로도 좋은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한번 너에게 감사하다

고 말하고 싶어.. 정말 고마워..."

선희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카이란에게 전했다. 카이란은 그

런 선희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아려주었다.

"나도 감사해! 그리고 또한 우리 혜진이를 도와줘서 감사하고!"

선희와 아진이는 혜진이를 보았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 혜진이의 모습은 예전에 웃

던 그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미소였다.

아진이와 선희는 카이란이 불러서 데려왔었다. 예전에 운디네와의 대화에서 카이란

은 이런 말을 내뱉었었다.

'그녀를 치료해주는 방법말고도.. 지금 다른 것을 도울 수는 있다고..'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다시 아진이와 선희라는 인간의 여성을 불러서 혜진이가 좀더

힘을 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나이트에서 혜진이가 쾌락에 젖어 이상한 말을 내뱉

을 때 카이란은 아진이와 선희라는 이름을 외워두어 그녀들을 찾았었다. 물론 찾기

란 그리 쉽지 않고 굉장히 힘들었다. 아무것도 단서 하나 없이 딸랑 이름만 아는 인

간의 여성을 찾기란 무척이나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란은 포기하지

않고, 끝내 아진이와 선희라는 여성을 찾을 수 있었다.

카이란 성격으로는 당연히 좋은 말로 나갈 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다짜고짜 반말에

괴팍한 말투로 나가니.. 아진이와 선희는 당연히 좋게 볼 리가 없어서 그의 말을 몽

땅 씹었었다. 하지만 카이란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하루에 1번은 꼭 아진이와 선희

를 보러 왔었고, 그녀들을 설득했었다.

그 설득에 점점 마음이 약해진 아진이와 선희였고, 말투는 좀 괴팍하지만 혜진이를

도와준다는 일념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매일 찾아와 주니 문득 혜진이가 굉장히 걱정

이 됐다. 하지만 한번 헤어짐을 가져서 다시 만나기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

에 선뜩 카이란의 말에 응해주지 못했고, 때마침 카이란의 입에서는 혜진이가 자살

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진이와 선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 친구를 그렇게 버린 잘못이 계속 남았었는데... 그런 충격적인 소식

을 들으니 한구석에 있던 그 마음은 폭발해 혜진이의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메워버

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살아났을 때.. 이제는 용기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무조

건 혜진이에게 잘못했다는 용서를 빌고 싶었다.

마약이란 생소한 약이다. 일반인들이 잘 보지 못하고 구경도 하기 힘든 약이다. 그

래서 그녀들은 혜진이가 마약을 했을 때부터 왠지 모를 공포감이 조성되어서 자신들

도 모르게 그녀들을 멀리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결국 어설프게 헤어짐을 가져 한순

간에 우정이 끊어진 것이다.

"아라..?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혜진이 친구들이 이렇게 놀러 온 거네.."

반가움이 역력한 어른의 말투. 병실에 있는있는 모든 인간, 엘프, 드래곤은(뭔가...

) 뒤를 돌아보며 누구인지 확인했다.

"우리 혜진이 이렇게 친구들이 많다니.. 아빠는 좀 기쁘다.. 하핫.."

"아~ 아빠! 엄마!"

다름 아닌 혜진이 부모님이다. 병실안에는 카이란, 사미, 민지, 아리아, 혜미, 아진

, 성희, 승환이까지 있으니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혜진이 부모님이 오자마자 그들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사미만 사뭇 다르게 쭈

물쭈물 앞으로 걸어가며.. 허리를 바짝 숙이고 인사를 건넸다.

"저기.. 안녕하세요!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혜진이 부모님은 사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자 부드럽게 웃으면서 사미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괜찮단다.. 솔직히 네가 한 말은 틀린 것은 없단다. 우리도 그것에 의해서 많이 반

성했는걸. 그러니 괜찮아."

"맞아.. 너무 미안해 할 것 없어. 그러니 이제 고개를 들어... 오히려 감사를 해야

할 사람은 너희들인걸..."

혜진이 부모님은 많이 변하셨다. 그것을 가장 쉽게 느끼는 인간은 항상 같이 살고

같이 지냈던 혜진이가 가장 잘 알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지시고.. 많이 웃

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바뀌니 느낌이 이상해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이

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바뀐 부모님의 모습이 더 좋다고 느꼈다.

"감사합니다... 헤헤헤..."

사미는 고개를 들며 배시시 웃었다.

점점 몰려드는 사람 수의 의해서 시끌벅적 해졌지만.. 결코 껄끄럽지 않았다. 오히

려 환한 즐거움만이 있었다. 승환이는 이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고,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족함이었다. 특히 혜진이의 미소는 정말 좋았다. 앞으로도 혜진이는 저

런 미소를 유지해서 계속 나아갈 생각이었다.

-푸드득.-

또다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승환이는 날아가는 비둘기를 쳐

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승환이만 비둘기를 본 것이 아닌 혜진이도 승환이와

같이 비둘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빙긋.-

먼저 웃는 쪽은 혜진이였다.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양 볼이 약간 붉게

물들어 졌다. 승환이는 활짝 웃으면서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혜진이는 행복이

란 뭔지 느낄 수가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

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이런 행복을 유지할거라는 희망찬 미래가 그녀를 기다

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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