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이세계 드래곤 [22] 6.심심했는데 다행.
"그런데 출발하는 날짜는 언제지? 가정통신문을 못 봤으니.. 날짜를 모르고 있어."
"앞으로 4일 후예요."
중요한 가정통신문을 보지 못했으니 카이란은 언제 극기훈련을 가는지 몰랐기 때문
에 그것을 물어보자 아리아가 바로 대답했다.
"앞으로 4일후.. 흠.. 극기훈련이라.. 두근두근 하는 군...."
앞으로 2박 3일 여정의 극기훈련.. 과연 재미있을지 재미없을지는 잘 모르나 그것
은 카이란에게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때마침 지루한 일상생활이 짜증나기 일보직전
에 체력과 자기의 욕심, 충동, 감정 등을 몸소 체험해서 이성적인 의지의 힘으로
눌러 이기라는 목적을 담은 이벤트(?)가 학교에서 가는데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
지 않을 리가 없다! 물론 카이란에게는 욕심, 충동, 감정 등을 이기려는 마음이 아
닌.. 순전히 자기 만족을 채우기 위한 것이 문제지만...
"헤에.. 오빠 조금 기대되나 보네.."
민지는 카이란의 기대가 부풀은 표정을 보며 말을 했다. 물론 기대 만빵! 카이란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때마침 무진장 따분하고 심심했거든. 그래서 주위에 재미있는 사고 같은
것 하나 터졌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잘 됐지 뭐. 후훗..."
재미있는 사고..., 재미있는 사고란 카이란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사미,
혜미, 아리아는 궁금했지만... 듣지 않아야 할 것을 들을 것만 같았기에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심심했는데 때마침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가..? 에구.. 오빠답다... 가서 사고나
치지마..."
언제나 같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자신의 오빠의 성격조차 모두 파악한 민지는 카이
란의 말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조금 어이가 없다는 억양만 내뱉을 뿐,
재미있는 사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사고라.. 글쎄.. 후후.. 모르지.. 세상일이란 순탄하지만 않으니.. 앞으로의 일은
알 리가 없잖아."
웃으면서 말하는 카이란의 말투에 앞으로 벌어질 극기훈련에 대한 미래가 왠지 모
르게 불안했다.
"백성님 큰 사고만은 피해주세요."
"아무리 혈기 왕성한 나이더라도 즉흥적 발상으로 인한 어린 아이적인 사고는 피해
주세요 백성군."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사미와 혜미는 보험을 들어두듯 엄숙하게 말했다. 그러자 카
이란은 그녀들의 기세에 잠시간 주춤 밀려나 할 말을 잃어 버렸고, 다시금 헤픈 웃
음을 보였다.
"헤헷... 설마 사고를 치겠어요? 그냥.. 심심했는데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
쁜 것 뿐이에요."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못미더운지 그녀들의 눈은 불신이 가득했다.
"그 말이 믿느니 차리리 펭귄이 냉장고 안에 살수 있다는 것을 믿겠다."
역시나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민지. 민지의 이 한말에 핏발이 서는 동시에 오른쪽
눈썹 바로 위 가장자리에 혈관이 무섭게 불긋 치솟았다.
"메야!!? 이..."
"백성군!"
뭐라고 할 찰나에 혜미의 질책성이 깃든 한 소리에 카이란은 그만 움찔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억양도 그리 크지 않았고 여전히 혜미의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은 상
태인데도 그녀의 한마디는 꼭 대성일갈 한 마냥 가슴이 철렁거렸다.
"제가 말한 것이 이런 것이랍니다. 급하게 화를 내는 그런 성질을요."
그리고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혜미. 그 미소를 보면 어디론까 빠져들
것 만 같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혜미의 미소파워 덕분인지 카이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긋 활짝 웃었다.
"누가 화를 낸다고 그래요? 헤헷.. 그냥 과민반응이에요. 과민반응..."
과연 과민반응인지... 아닌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아마도 본성격일 가능
성이 99.999999%이기에 아무도 카이란의 그 말은 믿지 않았다.
"오빠."
민지의 부름에 카이란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민지는 배
시시 웃으면서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검지로 눈가 밑을 살짝 내리며 말했
다.
"거짓말도... 보여요. 베~"
어느 모핸드폰 사에서 나오는 옛날 CF의 명 대사를 읊조리며 민지는 혀까지 쏙 내
밀어 약올렸다. 카이란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리고 점점 이마에 푸른 핏줄이 치솟
아 올랐지만 카이란은 애써 얼굴근육을 웃게 만들었다.
"후, 후, 후, 민지가 참으로 어여쁜 짓을 하는 구나... 이 오빠는 너무 사랑스러워
서 이렇게 해주고 싶네."
-주욱..-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웃으면서 카이란은 손을 뻗어 민지의 볼을 꼬집어서 옆으로 주
욱 당겼다. 그러자 그 귀여웠던 민지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흉측한 개구리처럼 볼
이 부풀려졌다. 화를 내지 않는 민지는 이에 뒤지지 않고 똑같이 양팔로 양 볼을
꼬집어 주욱 늘어뜨렸고, 억지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호호.. 오빠.. 얼굴 근육이 억지로 웃는 것이 보여. 화내는 것 보이니까. 원래대
로의 다혈질 모습으로 돌아와 주길 바래용.. 바보 오빠씨... 호, 호, 호, 호..."
어색하게 웃음소리를 흘리는 민지도 원래 화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라는 것을 가르
쳐 주듯 억지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불안해 보이기만 했다.
"나의 사랑스런 동생이야말로 오늘따라 오빠에게 대들지 않다니.. 마치 나의 동생
같지 않으니 그런 이질감 나는 행동은 그만두도록 해라..."
"호, 호, 호.. 이질감이라니.. 오빠.. 이게 나의 본래의 천사같은 모습이라고.. 누
구처럼 다혈질에 바보라는 생각하지마..."
"후, 후, 후.. 앞으로 그 말들의 의미를 바꿔야겠네. 이치가 맞는 것이 전혀 없어.
또한 바보라니.. 등수도 나보다 떨어진 주제.. 바보라는 단어를 누구에게 부여하는
거야? 응! 바보 동생아..."
뿌드득.. 이마에 굵은 힘줄이 나온 동시에 민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호, 호, 호.. 우.연.찮.게 운 좋아서 21등 한 주제에 그것가지고 괜히 폼재고 있
네.. 솔직히 시인해.. 원래 그것 애들 것 협박해서 그 정도 점수 맞은 거지? 그게
아니라면 뭔가 비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천연 바보 오빠씨."
은근슬쩍 우연찮게라는 말을 강조하는 민지의 말뜻의 의미는 즉.. 연필 구르기를
해서 잘 맞은 점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또한 비리로 인한 시험 성적이 상승
했다는 의미도...
"후, 후, 후.. 우연찮게라고..? 내가 그런 나쁜 놈 인줄 아느냐! 난 착한 놈이라는
것 그 어느 세상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감히 그런 극악무도한 놈이랑 나와 비
교를 하다니! 난 그런 놈이 아니고 초 울트라 핸섬(?)하고 착한 놈이다는 거얏!"
"오, 호, 호.. 오빠 단어를 모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딜봐서 극악무도인이 아
니라는 거야? 이 극악무도인 오빠야..."
"바보 민지.."
"바보 오빠.."
주욱... 점점 그들의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옆으로 더욱 늘어뜨렸다. 점점 망가지
는 카이란과 민지의 얼굴...., 그러면서 그 둘의 웃고 있는 표정은 가관이다. 무엇
보다 가장 신기한 것은 그 상태에서 잘만 말한다는 것이다. 뭔가 미스터리 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에구.. 또 시작하네요...."
얼굴 근육만 웃지 서로 불꽃튀는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면서 바라보는 그 둘을 보며
아리아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사미도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하여튼.. 남매라면 대부분 비슷한 구석만 있다고 하던데 백성군과 민지양은 그것
이 아닌 완전 판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혜미가 한 말에 사미, 아리아는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들으면 바보남매
라는 의미가 깃들인 말이었다.
"얘들아 밥 먹자!"
"넷!"
"네!"
주방에서 열심히 저녁을 차리고 있는 어머니는 준비가 끝났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자 그것을 들은 카이란과 민지는 순식간에 으르렁거리는 눈싸움을 멈추고는
샬래샬래 주방으로 향했다.
"............."
그리고 지금까지 카이란과 민지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들은 달리 할말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싸웠던 건지.. 아니면... 사람 놀라게 하는 것인지.. 그녀들은 해답이 무
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밥이나 먹으로 가죠..."
"네... 그러죠."
차라리 해답을 찾느니 지금까지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몸에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미의 제안대로 그녀들은 어머니가 저녁을 차려놓은 주방으로 향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간다. 그래서인지 가끔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날짜개념을 잊을 때
도 있을 만큼 시간은 유수히 지나갈 때가 많다.
그다지 바쁜 일정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농간으로 인해서 어느덧 4일이 순
식간에 지나갔고, 드디어 카이란이 기다리던 극기훈련 가는 날짜가 왔다.
"그래 잊은 물건은 없고...?"
수건, 칫솔, 비누, 샴프, 팬티, 구급약품, 갈아입을 옷과, 여벌의 옷, 카메라.. 이
모든 것을 챙긴 상태라 잊은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이란은 고개를 끄
덕였다.
"민지 너는...?"
"응. 나도 잊은 것 없어."
고개를 돌려서 어머니가 민지를 향해 똑같은 질문을 하자 민지는 고개를 끄떡이며
밝게 대답했다. 꼼꼼하게 챙긴 그들을 보며 어머니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마지막 말
을 내뱉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네! 그럼 다녀올게요."
"엄마 다녀올게!"
그 둘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집 앞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자 배회하는 새
들이 여기저기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뒤덮었다.
"으.. 춥다..."
민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현관문 밖에 나선 첫 감상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몸 동작이 멈춰지고 밝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나중에 따뜻해서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아."
오슬오슬 옅은 안개가 낀 쌀쌀한 날씨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 들어오는 따뜻한 기운
이 느껴져서 앞으로 몇 시간후면 어떤 날씨로 바뀔지 기대해 볼만해 활동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는 날씨라는 것을 몸으로 느껴졌다.
"그래..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응.."
둘은 천천히 학교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에는 무겁게 보이는 가방을 짊어진 채
터벅터벅 도보를 걷는 그 둘의 모습은 가벼워 보였다.
오늘부터 2박3일 동안의 짧은 여정으로 극기훈련을 하러 떠나는 날이다.
현재의 행동이 미래를 보는 결과물이라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미래를 볼 수
없는 것이 삶의 재미를 느끼는 한 부분이라 무슨 해프닝이 벌어질지는 신도 모르고
카이란조차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카이란은 앞으로의 벌어질 일이 두근두근
하기만 했다.
"자! 가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