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이세계 드래곤 [23] 2.극기훈련 중...
지루할 정도로 버스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 한 채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현재 고속도로라서 급커브나 지변굴곡 없어서인지 버스 안은 평온하기만 했다. 일
반 버스가 아닌 고속버스라서 흔들림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또한 이 버스의 운전
사 운전솜씨는 예전에 판즈의 매니저가 운전하는 솜씨와 차원이 다르게 안전운전 3
65일 자체였다.
카이란은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는 상태였다. 요즘 나오는 신세대들이 듣는
음악을 들으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소통이 원활한 반대쪽 차선에는 시원시원 차들
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하암...."
카이란은 하품을 내뱉으며 서서히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귀에 들리는 음악소리 조
차도 이제는 자장가로 들리는 듯 했다. 학교에서 떠난 시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
다. 대략 1시간 정도였다. 카이란은 예정대로 버스 안에서 못 채운 아침잠을 청하
기 시작했다.
조용하기만 한 버스 안.. 친구들끼리 수군거리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꿈속으
로 파묻힌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버스 안은 잠자기에 무척이나 쾌적했다
.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는 카이란의 눈은 이미 반쯤이나 감겨 있었고, 어느덧 의지
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그의 눈꺼풀은 감겨졌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는 고속도로가 아닌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와 있었다. 2차선으로 되어
있는 도로의 길목 양측에는 모텔이나 여관 같은 하룻밤 잘 수 있는 숙박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건물들 뒤에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아름다운 붉은 단풍이나 여
러 종류의 나무들이 없어서인지 화려한 숲이 아닌 어디에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푸른 산이었다.
"흐음..."
카이란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아이들도 그렇고 그도 그렇다. 그저.. 극기훈련장
에 다 왔구나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 버스 안 말고 다른 버스까
지 다 합쳐도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그런 식으로 한결같았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은
제외였다.
"화아.... 멋져..!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아.. 정정을 하자면 사람이 아닌 숲의 요정, 엘프인 아리아였다. 아리아는 카이란
이 타고 있는 버스의 뒤로 3번째 버스를 타고 있는 상태였다. 길게 뻗어 있는 산들
을 보니 아리아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숲의 상태는 최고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기가 가득한 흐름이 아리아의 눈에 보였다. 엘프인 아리
아에게는 이 정도로 정기가 활발한 숲을 본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풍만한 기운.. 아리아에게는 활력소를 불어주는 것과
비슷했다.
"와.. 기분 좋아..."
어린아이 마냥 즐거워하는 아리아를 보자 그녀의 반 아이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
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밖에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는지 확인까지 해 보았지만.. 구경거
리는커녕.. 오로지 숙박건물들만 연이어 보일 뿐이었다.
-부우웅..-
엔진소리를 내면서 버스는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풍경은 바뀌지 않았고,
조만간 목적지가 보일 듯 했다.
30분쯤 안으로 들어가니 큰 공터가 나왔다. 적어도 버스 18대 이상이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앞에 달리고 있던 버스는 그 공터 안으로 들어가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 내려야 하니까.. 모두 짐들 챙겨라.."
선생님이 일어나서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리에 일어나서 위
쪽 짐칸에 놓아져 있는 자신의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카이란 역시 올려져 있는
짐을 찾았다.
-치익..-
공기 빠지는 소리가 울리자 버스 앞문이 천천히 열려졌다.
"자.. 모두 나가서 번호순으로 줄을 슬 것. 자.. 나가라.."
맨 먼저 선생님이 버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기 시작했다. 한 사람밖에 나갈 수가 없는 좁은 버스 문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줄을
서서 한 명 한 명씩 나가기 시작했다. 카이란도 아이들 뒤로 줄을 서며 나갔다.
"흐음... 공기 좋다."
생소한 이곳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내뱉은 첫 감상이었다. 역시 삼면이 산으로 된
지역답게 경치는 그다지 볼 것이 없지만 공기하나만큼은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동
네와 차원이 달랐다. 장작 버스로 5시간이나 걸쳐서 온 보람이 있었다. 물론 혼자
서가 아닌 학교에서 온 거였지만...
"으.. 추워.. 역시 산지역이라 무척이나 춥네.."
"이러다가 감기 걸리는 것 아닌가? 에겅.."
"덜덜... 내, 내가 지금... 떠, 떨고 있니.....?"
추위를 잘 느끼지 못하는 카이란은 그저 이곳에 공기가 좋다는 것만 느꼈지만 그
반면 아이들은 그것이 아니었다. 첫발을 내딛자마자 아이들은 양손으로 몸을 감싸
안아서 춥다는 소리가 그들의 첫 감상이었다. 확실히 산 지역이라서 그런지 상쾌함
이 묻어나는 공기에는 기온까지 높았다.
그들을 보며 카이란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양팔을 쭈욱 위로 올려 기지개를 켰다.
"으읏~ 자!"
상쾌하고, 산뜻한 공기를 크게 들어 마시며 힘껏 기지개를 키자 몸이 날아갈 정도
로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숙소를 찾으러 갈거니.. 모두 잘 따라 오도록..."
그런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른 반쪽 아이들은 걸음을 옮기고 있는 상태였다. 번호
순으로 대오 된 아이들은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순식간에 그 대오가 흐트러지며 친
한 친구를 찾기에 바빴다. 카이란은 어차피 친구 하나 없으니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이들과 도보를 맞추면서 걸었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혼자 가는 것도 그다지 심심하지 않아서 카이란
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이었다. 숙소를 찾는 도보행렬은 30분을 걸었건만 아
직까지 도착을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
분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와! 우리 학교 돈 좀 썼나봐!? 저 건물들 좀 봐! 죽이는데!!"
"캡이닷! 저런 곳에서 한번 자봤으면 소원이 없었는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오오! 저 멋진 건물들을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닷 예술!"
"나 기절할 것 같아! 이런 멋진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 점점 학교가 좋아진다!!"
주위에는 여전히 호화롭고 고급스런 숙박건물들이 연이어 줄을 이으니 모두들 어떤
숙소에서 지낼지 기대가 서려 있었다. 10분 정도 더 걸으니.. 드디어 고대하고 기
대하던 숙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자.. 오늘부터 2박3일 동안 여기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니.. 모두 짐을 풀고 방
편성을 할 테니.... 어쩌고... 저쩌고... 쫑알쫑알.."
선생님이 이것저것 설명을 마구 하기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
지 않았다.
"............."
숙소를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아연한 얼굴로 말도 나오질 않았다. 하나같이 경악
을 금치 못한 아이들은 눈알이 콩알만해졌고, 30초 정도간 적막감이 그들 사이에
이루어 졌다.
예술적인 감각을 자아낼 정도로 투박한 시멘트로 만들어져있는 허름한 건물. 건물
색깔조차 눈살이 절로 찌푸릴 정도로 푸른색,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이 건
물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가로 세로로 'ㄱ'자 방식으로 2개의 건물로 이루어져있
었다. 남자, 여자 건물들이 따로 나놔져 있는 것 같았고, 하나같이.. 촌티의 풍채
가 느끼할 정도로 물씬 풍겨왔다. 곳곳마다 거미줄에 벌레들이 보이는 것은 고사하
고, 쥐들이 다니고 있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분위기라 여자아이들은 무서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끄악! 이런 썩을! 역시 내가 학교를 믿는 것이 아니었어!"
"난 왜이리 지지리도 복이 없을까!! 다른 학교는 고급호텔에 최고급 시설이라고 하
던데!! 왜 유난히 우리 학교만 이러는 거야!!"
"으앙! 내 비싼 극기훈련비!! 아깝다! 차라리... 철권4 소프트나 살걸!!"
"나 죽을래! 그런 비싼 극기훈련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허접한 숙소냐고!!?
젠장맞을!"
역시 김치국 먼저 마시면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법칙이다. 뭐.. 문제는 지
들끼리 북 치고 장구 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뿐이지... 애초에 학교에서 숙박소
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건 심할 정도로 비교되긴 비교가 됐다. 이
쪽은 서민저택, 저쪽은 귀족저택으로 보일 정도로 차이가 심하니... 아이들이 그렇
게 실망을 한 것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다른 숙박건물의 비해 이곳은 아이들을 총 집합할 수 있을 정도로 아득하게
넓었다. 지금 현재 2학년생의 인원은 총 합쳐서 400명 조금 안되거나 넘는다. 사정
상 극기훈련 참가하지 않은 사람을 제외한 인원수다. 그래서 이곳을 제외하고는 대
부분 호화롭게 꾸며놓은 별장 같은 숙소지 이곳처럼 층과 방수로 이루어져 있는 곳
은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인원이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랐고, 이럴 때는 질
보단 양으로 선택한 것이 옳은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돈 많은 학교라면.. 저런 고
급 숙박소를 5-6개 빌려도 되지만 그런 부르주아 짓을 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카이란은 그다지 충격이 없었다. 물론.. 건물 외형에 대해 황당하기까지는 했지만
아연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자.. 시끄럽고.. 이제부터 반 편성하니까 조용히 해라. 그러지 않으면.. 훈련도
하기 전에 가볍게 몸을 풀 준비를 하던가.. 흐흐흐흐흐..."
간사하게 흠칫한 미소를 그리며 선생님이 그렇게 웃자 아이들은 오싹한 기분을 느
꼈는지 불평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흠.. 이제 조용하군... 어쨌든.... 이제부터 방 편성을 할거니 내말 잘 듣도록. 1
번부터 15번까지...."
조용해진 아이들을 향해 선샌님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방 편성을 하기 시작했다.
"백.. 성.. 님.."
어디선가 미약하게 카이란을 부르는 소리가 나자 귀가 좋은 카이란이 그것을 못들
을 리가 없기 때문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름 아닌 사미가 부른 것이었다. 카이
란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헤헷..."
사미는 카이란의 반을 알기 때문에 시선을 앞에 두지 않고 카이란의 반으로 옮겨서
그를 찾았었다. 그의 반을 훑어보니 카이란이 있는 것이 보였고, 미약한 음성으로
카이란을 부르기 시작했었다. 아직도 주위는 웅성웅성했지만 같은 반이 아닌 다른
반 사람을 부르는 것이기에 큰소리로 말할 수가 없어서 미약하게 말했던 것이다.
또한 그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니까.
다행히 카이란이 그것을 듣고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쳐다보자 사미는 활짝 배시시
웃으면서 오른손을 흔들었다.
"훗..."
카이란도 그녀의 반김에 웃음으로 그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럼 이상! 모두 각자 배치된 방으로 가서 짐을 풀도록.."
"엑...?"
카이란은 사미를 쳐다보고 있는 바람에 자신이 무슨 방을 가야 할지 못 들어 버렸
다. 다시 물어볼 찰나 선생님은 이미 다른 반 선생들과 같이 총총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백. 성. 님!?"
애교스러운 말투로 사미는 카이란의 팔을 잡았다. 사미는 이미 카이란이 어디 있는
지 확인을 해둔 상태이니..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었다.
"몇 호예요?"
방이 어딘지 물어보는 사미. 물론 알 리가 없었다. 누구 때문에 못 들었으니까.
"몰라.. 못 들어 버렸어."
"엑? 정말요? 왜요?"
"............"
카이란은 대답대신 눈빛으로 말을 했다. 바로 사미 너 때문이라는 눈빛으로...
"헤에? 왜 저를 쳐다보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놀란 말투를 내뱉었지만 표정은 전혀 놀라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는 뭐가 묻어있는
지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가증스런 사미의 행동에 카이란은 그저 무섭게 한번 째려
보았다.
"됐다 됐어. 뭐.. 있다가 애들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죄송해요. 백성님.. 저 때문에.."
원래 자신 때문에 못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미는 사과를 건넸다.
"아냐..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되니 그다지 화낼 것이 못되기
때문에 카이란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헷.. 그런데.. 아리아양은 안 오네요.. 방 배치가 끝나면 바로 백성님을 찾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보니.. 그렇네..."
이미 2학년 전교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다들 짐을 정리하러 배치 받
았던 방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리아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배치된 방으로 향했을 수도 있지만 아리아 성격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할 것 같아서 먼저 방으로 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흠.. 아무래도........"
'먼저 갔나 보네' 라고 말할 찰나 카이란은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리고 어이없는
미소를 흘렸다.
'이거 이러다가 나를 찾을 때만 사용하는 것 아닌가?'
카이란이 말꼬리를 흐려진 이유는 바람의 정령이 그의 주위를 한바퀴 스쳐지나 갔
기 때문이었다. 아리아가 바람의 정령을 부려서 자신을 찾았다는 답이 나왔기 때문
에 곧 그녀가 이곳으로 온다는 뜻이어서 말을 다 하지 않은 것이다. 카이란은 갑자
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아리아에게는 어딜 가도 쉽게 들통나거나, 쉽게
장소까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커 짓은 하지 않겠지만 귀찮게 될 거
란 것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