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이세계 드래곤 [26] 5.당연히 크리스마스! 하지만….
"후훗∼ 놀라지 않네요."
혜미는 웃음진 얼굴로 카이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소 어색해 보이는 그녀의 미소
였다.
"그야 뭐……."
카이란은 긁적긁적 뒷머리를 긁었다. 카이란은 자신의 세계에서 밥먹듯이 살인을 저지
르거나 재미삼아 죽였던 악덕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겨우 사람 한 명을 죽였다는 인간
의 말에 놀랄 위인이겠는가? 카이란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런 사실은 당연히 모
르기 때문에 뒷말은 흐지부지 흐려지며 얘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설마 한 사람 죽인 경력이 있으니 내 동생
울리기만 한다면 당신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예요!? 라고 협박이라도 할 예정인가?
…만약 그렇다면 좀 무섭다.
"후훗∼ 꼭 살인을 해 봤다는 얼굴이네요."
뜨끔∼! …했다.
"제가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줄 아세요?
카이란은 알 리가 없으니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혜미는 측은한 눈길로 미끄럼틀 바
닥으로 향했다.
"…제가 좋아했던… 첫 남자였어요."
-휘이이잉!!-
또다시 찬바람이 덮쳤다. 리본이 매어져 있는 혜미의 머리카락이 옆으로 출렁거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죽였다니… 모르는 사람도 아닌 그냥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닌 첫사랑의 남자를…. 파격적인 말이었지만 카이란은 그저 담담히 아무렇지 않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그럴 것이다. 드래곤으로 태어나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다른 종족이나 같은 종족
을 좋아해 본 적이 없으니 좋아하는 사람을 죽였다 라는 느낌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카이란은 표정을 계속 일관했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믿음직스러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죠. 아마도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1학년 때 일거예요.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시기가요."
혜미는 바닥에 쭈그려 앉으며 미끄럼틀 아래부분의 바닥을 슥슥 손으로 문질렀다. 아
마도 그곳에서 그 사람이 죽은 곳인가 보다.
"자상한 사람이었어요. 나에게 잘 해줬었고, 뭐든지 성실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본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말았죠. 그래서 전 그 사람을 일부러 만나러 자주
갔어요. 그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이런 집안에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무
척 행복했거든요. 그 사람도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어요. 오히려 내가오면 방긋
웃으면서 반겨주었죠."
혜미 혜미도 자신의 집안을 싫어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긴 사미도 자신의 배
경 때문에 암울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데 혜미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카이란은 묵묵히 혜미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나 봐요. 그 사람은 저를 반겨주는 것이 아니었어요. 단
지 이용하려고 그런 것이었나 봐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사람과
나와 안지 정확히 1년이 되던 해였죠. 그것도 오늘 같이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고요."
이 말에 카이란은 그녀가 내기를 써서 같이 있어 달라는 이유를 눈치챘다.
"오늘 같은 이브날에 전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접근했어요. 무척 가슴이 떨렸죠. 후훗
!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콩땅콩땅 뛰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
다니깐요."
재미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쳤지만 다소 괴로워 보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전 그 사람에게 오늘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전 그 사람
의 대답을 기다렸지요. 그 사람은 웃으면서 제 부탁을 응락하더군요. 오히려 영광이다
라고 하면서요. 전 그 대답에 활짝 웃을 수가 있었어요. 처음이었죠. 이런 집안에 태
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요.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잡고 밖에서 만날 수가 있었죠."
"……."
"우리는 재미있게 놀았어요. 아주 즐겁게요.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그 사람과 분위기를 잡으며 우리는 이곳 공원에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좀 늦
은 시각이라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없었죠. 하지만 전 상관없었어요. 옆에 든든한
사람이 있으니 무섭지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건장한 인간 몇 명의 우리를 덮
쳤어요. 알고보니 다른 조직들 사람들이더군요. 전 놀라고 당황했었죠. 하지만 더욱
당황한 것은… 그 사람은 알고 보니… 아버지의 약점을 찾으려고 들어온 그 조직의 스
파이였던 거예요."
유난히 오늘따라 바람이 차가웠다. 측은함이 깃든 혜미의 목소리 때문인가? 카이란은
그렇게 느껴졌다.
"그땐 이 건물이 완공이 안됐을 때 였어요. 전 그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같이 오게 되
었죠. 저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잘 알아요. 절대로 딸 때문에 계획을 변경할 사람이 아
니라는 것을요. 그 사람도 1년간 아버지를 보았으면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 저
를 이용한 것이죠. 그 사람이 나에게 잘 해준 이유는 아마도 이일을 대비한 것 같아요
. 다름 아닌 정보를 못 캤을 때를 대비해 마지막 도구로 사용하려고요. 그리고 그 결
과 저를 이용한 거고요."
혜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다. 딸은 도구로 생각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카이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공감이 왔던 것이다.
"전 분노보단 오히려 배신을 당했다는 것에 눈물을 흘렀어요.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
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가슴이 아
팠죠. 그 만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니 정신도 차릴 수가 없었고요. 그렇게 전
한없이 눈물만 흘렀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중학교 때부터 얼굴의 변화가 생긴
저의 외모 때문인지 건장한 사내들은 음흉한 시선으로 저를 흩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
았죠. 대략 수는 20명 가까이 있었지만 그중 몇 명은 많아봐야 20대 초반정도의 사내
들도 있었어요. 그때 나이로는 영계를 범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될 나이겠죠.
그래서 그들은 저를 윤간(輪姦)하려고 했어요. 그들은 나를 가둬놓고 보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전 단념했었어요. 죽을 각오를 했다는 것이죠. 아버지는 그런 것으로 흔들릴
사람도 아니니 이미 죽었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죠. 그래서 가만히 죽는 시간만을 기다
렸어요. 하지만 가만히 죽는 것은 좋지만 윤간까지 당해서 죽는 것은 싫었어요. 그래
서 그것을 안 뒤로 전 어떻게든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뒤에는 벽으로 가로 막혀 있
었고, 탈출구는 없었죠. 전 도움을 요청하려고 그 남자를 보았어요. 옛정을 생각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이죠. 하지만… 전 또다시 배신감을 느껴야만 했어
요. 첫 번째로 저를 덮치려는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요."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모습까지 보인다면 절망감을 맞이하는 것 보다는 더 심할
것이다. 그런 혜미는 그때 그 기분을 떠올랐는지 오른손으로 가슴을 쥐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무척 많이 나왔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럴수가… 라는
말을 읊어되며 전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죠. 하지만 그는 점점 나에게 다가왔어
요. 그리고 덮쳤죠. 전 반항을 했어요. 하지만 신은 저를 도와주신 걸까요? 그 남자
바지춤에는 다름아닌 권총 한정이 꽂혀있었어요. 전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그것을 재빨
리 뺏었어요. 당황하더군요. 모든 인간들이… 덕분에 그 사람도 저에게 멀어졌고, 천
천히 저를 구슬리며 총을 뺏으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분노
와 슬픔과 좌절과 절망… 보이는 것이 단 하나라도 없었죠. 그래서 전……."
말꼬리를 흐려졌다.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혜미는 눈을 감았다.
-타앙!!-
총성이 건물을 크게 강타하며 크게 울렸다.
그를 죽였다. 자기 손으로 그를 죽여버린 것이다. 분노도 사랑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당신의 기분으로는…. 그저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 그래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그녀는 정신이 번뜩 차릴 수 있었다. 거한들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
해 했다. 설마 총을 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그것을 기회 삼아 그녀는
앞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눈물 범벅으로 인해 앞도 분간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런
것 상관 않고 무조건 뛰었다. 사물에 부딪치고 몇 번이고 넘어졌지만 그녀는 뛸 수 밖
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앓고 뛰어가는 기분이란 정말로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아니, 어떠한 설명도 할 수가 없었다. 행복을 느꼈던 첫사랑. 그리고 납치와 배신과
죽음. 이 모든 경험이 모두 한꺼번에 겪어야만 했던 그녀.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충
격을 받아버렸다. 이대로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발은 계속 달
리고 있었고, 스스로 제어도 하질 못했다. 그리고 눈물조차도 멈추질 안았다.
그리고 그런 채로 계속 갈 때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집 앞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그
제서야 자신의 손에 아직도 권총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숨을 골랐다. 자
신에게 그런 벌어졌지만 그녀는 집에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이야기 해봐야 아버
지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일을 경험했어도 언제나 평상시의 모습으로 가족에게 대했고, 주위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 처럼….
"그를 많이 좋아했었어요?"
조용하게 물어보는 카이란의 말에 그녀는 상념에서 깨며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자세
에서 고개를 위로 올리며 천장을 응시했다.
"…네. 많이 좋아했어요. 그가 죽으면서 뭐라고 한 것 같았지만 전 보질 못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 말과 그의 표정을 본다는 것이."
그를 많이 좋아했었다. 철없던 중학 시절이라고 했어도 다른 사랑 못지 않게 그를 많
이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당했었는데도 그녀는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죽을 때 뭐라고 말했지만 만약 원망하는 눈빛으로 욕하면 지금까지 그 말과 표정이 자
신을 괴롭힐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 한번도 온 적이 없었어요. 그가 여기서 죽었다는 것이 무서웠고, 뭐니
뭐니 해도 제 손으로 직접 죽였으니까요. 그리고 이곳으로 오면 그 환상이 내 앞에 펼
쳐질까봐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이곳을 찾질 못했어요. 그리고 비로소 백성군과 같이
오기로 한 결심을 한 것이에요."
"…그런가요."
혜미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
혜미는 쭈그려 앉던 다리를 펴며 일어섰다. 속이 시원했다. 그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
를 한 것과 그렇게 무서워하던 이곳을 왔으니 속이 시원해 졌다. 그 덕일까? 혜미의
오른뺨에서는 눈물 한 줄기가 그어졌다.
"어랏…?"
갑자기 눈물이 떨어지자 그녀는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닦았지만 이
번에는 다른쪽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지?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그녀는 마구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
기듯 더욱 많은 눈물만 흘러냈다.
-스윽…-
카이란은 뒤에서 혜미를 안아주었다. 왜 이런 짓을 한지는 자신 스스로 조차 놀라게
저절로 몸이 반응했다. 왜 자신은 그녀를 안아주었을까? 그리고 가슴이 조여지듯 아파
지기 시작하는 이 고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그도 가슴이 답답하게 아팠다. 하지만 이 고통은 그녀의 슬픔과 무관하다는 것은 느꼈
다. 뭔가 자신에게도 그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흑흑흑…!"
그녀는 뒤를 돌아 카이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 눈물을 흘러냈다. 그의 가슴은 무척
따뜻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흘러나왔다. 혜미는 한동안 그런 채 소리내어 울었다.
어느정도 눈물을 흘러낸 혜미는 감정 조절이 가능해졌는지 어렵사리 그칠 수가 있었다
.
"고마워요."
"아뇨, 고마울 것 까지는 아니에요."
카이란은 멋쩍은 표정으로 콧등을 긁적였다. 그리고 방긋 웃는 표정으로 카이란은 물
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듯이 혜미는 양 볼이 수줍은 듯
이 붉어졌다.
"아이∼ 그렇게 보지 마세요, 백성군. 너무 울어서 얼굴이 망가졌어요. 그러니 보면
창피해요."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얼굴을 가렸다.
"하핫! 뭐, 어때서요? 전 선배가 울 때 예쁘기만 하던데요? 세상에서 여자들은 웃을
때와 눈물을 훔칠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봐요."
"후훗! 백성군 정말 짓굿네요."
그의 말에 혜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카이란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갈까요?"
"네, 그래요."
그들은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먼저 카이란이 앞장을 서서 움직였고,
그 뒤에 혜미가 움직였다. 혜미는 걸음을 옮기는 중 문 앞에서 다다를 때 발걸음을 멈
추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방긋 웃는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 동민 오빠.'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카이란의 곁으로 몸을 옮겼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카이란의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겠죠?"
그녀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시각은 11시정도. 늦은 시간이니까. 카이란은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럼 집에 갈까요?"
"네, 그렇게 해요."
이브날은 그렇게 막을 내리듯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좀 걷고 싶었는지 그들은
바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만 했다.
"그나저나 사미 때문에 큰일이네요."
"왜요?"
"오후에 나올 때 애가 기운이 없었거든요. 뭐랄까 자포자기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막
상 이브날이 다가오니 그런 것 같아요."
확실히 사미가 기운이 없다는 것은 카이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미뿐만 아니
라 아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이브날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이브날은 연인들의
날이라고 불리우는데 장작 자신들은 좋아하는 남자와 같이 지내지 못하니 기운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전에 혜미에게 들어서 같이 보내지 못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날이 오니까 자연적으로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그녀들에게는 최악의 이브날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하하하하∼ 뭐, 조만간 기운을 차리겠죠. 그런데 선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괜찮아요."
"남자 기피증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나만 괜찮은 것이죠?"
남자 기피증이라면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만지면 불쾌감이나 치솟는 그런
증상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으로도 혜미는 즐겁다는 듯이 자신에게 달라붙었지
않는가? 아니, 예전 바닷가 갔을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싫어하는 기색 하나
도 없이 말이다. 카이란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졌었다.
"…글쎄요… 저도 그것을 알고 싶어요. 왜 백성군에게만 괜찮은지를……."
혜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역시 모르는 답이었다. 어째서 백성이는 괜찮은 것일까?
지난 여름 바닷가에서 폭주족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외간남자에게 안
겨보았다. 참으로 따스했다. 남자의 품안이 이렇게 부드럽게 따스한지는 처음으로 느
껴본 것이다. 언제나 더부룩했던 기분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기분이라니…
그녀로써는 처음 느껴본 동시에 이상했었다.
한 남자를 좋아했고, 그 남자를 살해한 그녀… 그런 일이 벌어진 뒤로부터 그녀는 외
간남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로부터 점점 멀리하게 되었
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많은 아이들에 자신에게 고백을 했었다. 배경 때문에 접근하는 아
이들도 많았지만 애초에 배경을 모르는 상태로 접근하는 아이들도 적지않게 많은 것이
다. 그런 아이들은 사미의 중학교 시절처럼 무턱대고 사귀자 라고 고백하는 아이들이
었다.
하지만 외로움을 해방되기 위해 모든 남자를 승낙했던 사미와 다르게 그녀는 그런 고
백을 모두 거절했다. 평범한 친구로 지내자고 하는 고백조차도 모두 거절했던 것이었
다. 그일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있겠지만 이미 그 일에 대한 것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담담해졌었다. 그렇다면 외롭지가 않아서? 그것도 아니었다. 친구 하나 없는 그녀인데
무엇이 외롭지 않겠는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치도 잊은 적이 없
었다.
다름 아닌 그 일이 벌어진 뒤로부터 '기피증' 이라는 생겼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신을
덮쳤다는 공포감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에 의한 증세인 것 같았다. 그
래서 몸이 먼저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카이란을 만났을 땐 뭔가 달랐다. 아무런 거부 반응도 없었다. 신기했다.
그 사람과의 일 이후에 다른 남자가 붙어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것이.
"흐음…."
그녀도 모른다고 하니 카이란은 이상했다. 꼭 혜미가 자신의 가슴팍에서 울고 있을 때
, 느꼈던 고통과 연관이 있을 것은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
지만 솟구치는 느낌은 그렇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들은 집에 도착하였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집에 도착한 시각은 12시가 아직 안된 시각이었다. 방안에는 어두컴컴했다.
"아무도 없나?"
"그런가 본데요."
불도 켜져 있지 않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마루에 불을 키고 카이란은 혜
미와 함께 자신의 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불이 확 켜지면서 폭죽 터트
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파방방방파방!!-
"메리 크리스마∼스!!!"
사미, 아리아, 민지, 아버지, 어머니였다. 그들은 카이란을 이곳에서 기다렸고, 윗층
에 올라오자마자 폭죽을 터트린 것이다.
"얼래? 다들 여기에 있었어?"
"응! 여기 있었어! 우리가 오빠와 혜미 언니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어
쨌든 늦지 않고 와줘서 다행이야. 헤헷!"
"뭐가 늦지 않았다는 거야?"
뭐를 말하고 있는 건지 카이란은 민지의 말을 이해 못했지만 옆에 있는 혜미는 그 뜻
을 알아채며 웃음을 내뱉었다.
"후훗! 정말로 우리가 늦었으면 큰일 날뻔 했군요. 다행이에요."
"역시 혜미 언니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고 있는지 눈치 하나 빠른단 말야. 그에 비해
오빠는 아직도 멀었어. 이구∼!"
민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카이란을 노려보았다.
이에 황당한 카이란은 뭔 얘기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
리고 앞에 놓여져 있는 진주성찬은 무엇이지? 왜 이런 곳에다가 이렇게 차린 것인가?
카이란은 이유를 알지 못해 다시금 말을 하려고 할 때, 혜미가 그를 저지하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여주었다.
"아!"
카이란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랬군, 그랬었어. 확실히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크리
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다. 지금시각은 12시 정각, 그러니 오늘은 이브날이
아닌 크리스마스날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부터 가족들과 보내는 날이다.
"백성님 재미있게 놀다오셨어요? 혜미 언니도요?"
"아아∼! 재미있게 놀았지. 그렇죠 선배?"
카이란은 방긋 눈웃음으로 혜미를 보았다. 그녀역시 카이란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아리아를 보면서 말했다.
"후훗! 네, 재미있었어요, 아리아양."
"아아∼ 부럽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노셨다면 다행이네요. 오늘 사미양과 함께 이렇게
음식을 차렸어요. 그러니 마음껏 드시고 함께 즐겨요. 오늘은 그러는 날이잖아요."
아리아는 빙긋 웃음 지었다.
"좋았겠네? 저런 미인과 데이트를 즐겨서 말이다."
하나였다. 그녀도 카이란네 집에 있었다. 카이란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좋았지. 누구처럼 고소공포증도 없고, 말 꼬랑지도 아니니까 말야."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흥!!"
비꼬는 카이란의 말에 하나는 바락 성을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반응에 카이란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그렸다. 그리고 옆에 사미가 쫄래쫄래 하나 곁에 섰다. 혜미는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후훗! 괜찮은 것 같네 사미야. 내가 나갈 때만으로도 기운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
사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잖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말야. 사실 내 기분으로는 꼭 언니와 백성님
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야. 뭐,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아리아양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야. 하지만 그래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지 않겠어? 배신을 당했어도 난
백성님과 언니를 아주아주 좋아해. 그러니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이 즐겨서 기쁘게 해주
고 싶어. 그러니 난 언니와 백성님을 위해 이런 것을 준비한 것 뿐이야."
혜미는 부드러운 미소로 사미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고마워."
"자자∼ 틀어박힌 재미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부터 파티 시작이에요!! 그러니 즐겨요
!"
민지는 그 둘 사이를 끼면서 외쳤다. 그리고 파티는 시작되었다.
'가만…?'
카이란의 시야는 사미를 쫓았다. 활짝 웃는 얼굴로 하나, 아리아와 정답게 얘기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 한구절이 떠올랐다.
'배신을 당했어도 난 백성님과 언니를 아주아주 좋아해. 그러니 오늘 같은 날에는 같
이 즐겨서 기쁘게 해주고 싶어.'
배신을 당했어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삐친게 아니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다
면 입장을 바꿔본다면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어도 마음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불현듯이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카이란은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혜미를 찾았
다. 혜미는 민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선배…."
카이란의 부름에 혜미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왜요? 백성군."
카이란은 생각했던 말을 그녀에게 말했다.
"선배는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무슨 말을 했을까 라는 것 생각해 본적 있나요?"
느닷없이 그가 그런 말을 꺼내자 혜미는 좀 놀랐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고개를 저으
며 대답은 했다.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 거죠?"
혜미는 그런 것을 물어보는 저의를 물었다. 그러자 카이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가 나쁜인간 같지가 않아서요. 하필 그는 윤간을 하려고 할 때 맨 처음
나서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왜 권총을 바지춤에 넣고 있었을까요? 바보처럼 덮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짓궂은 장난으로 천천히 즐길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는 분명 일
부러 권총을 보여준 거 같아요. 그때도 겨울이니 추운 날씨였으니 잠바를 입고 있을
테고 자연스럽게 동료들 몰래 권총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선배는 그것
을 발견했고, 그것을 꺼내들지마자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죠. 그는 선배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희생한 거예요. 그러니… 분명 그도……"
"그도요…?"
"…선배를 좋아했을 거예요. 그러니 죽으면서 하는 말은 아마도 '도망쳐‥'가 아니었
을까 라고 생각돼요."
그 말이 끝으로 혜미는 또다시 눈물 한줄기가 그어졌다.
"…흑‥흑… 고마워요, 백성군. 고마워요. 오늘 크리스마스의 최고의 선물 같아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카이란은 난감해 하는 표정을 그렸다. 갑자기 울어버리는 혜미
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까 처럼 안아줄 수 없는 노릇이
었다.
"에엑!!? 오빠가 혜미 언니 울렸다!!"
이 광경을 본 민지가 소리쳤다. 그러자 우르르 몰려드는 일행들….
"정말이네!? 백성님 이게 뭔일이에요!? 왜 갑자기 언니가 우는 거예요? 혹시 언니에게
나쁜 짓이라도 한 거예요!? 그런거죠!? 어떻게 그런 짓을!!!"
"맞아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죠!? 백성님 너무 실망이에요!?"
"흐웅∼ 아무래도 백성이 혜미 언니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했나보지? 하여튼 남
자는 늑대라고 하더니만 딱 너를 가리키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쁜 짓
을 하려고 하다니!!"
"흠∼ 이 아비는 백성에게 실망했다. 어떻게 가냐린 여성을 울리다니. 세상에서 제일
못된 사내가 뭔지 아니? 바로 여자아이를 울리는 짓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이란다."
"그렇구나, 백성아. 이렇게 주위에 아리아와 사미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건드리다니…
엄마는 네게 실망이 크구나. 얼른 사과하거라."
각각 한마디씩 내뱉었다. 어이어이… 이거 점점 자신이 나쁜 놈으로 몰락되고 있었다.
이것은 정말 억울했다.
"어, 억울해! 나,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선배 이거 해명 좀 해 줘요. 정말 너무하잖
아요."
그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혜미를 보았다. 그녀라면 당연히 이 난관을 구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한 착각이었으니…
"흑∼ 백성군 정말 너무해요. 저에게 그런 짓을 해 놓고 억울하다고 해명해 달라니…
흑! 백성군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너무하네요. 흑흑∼"
혜미는 슬픈 듯이 흐느끼며 비관의 여주인공 행세를 뿜어냈다. 설마 이렇게 돌변할 줄
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라는 느낌이 이런 것이리라.
"나, 난 정말 억울해!!"
카이란은 억울하다는 포효로 절규했지만 하나같이 불신이 가득한 눈빛만 보여줄 뿐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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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졸렵습니다.
바쁩니다. 바뻐..
아마도.. 며칠간 업이 없을 것 입니다..-ㅁ-;;
왜냐고요? 이걸로 9권 분량이 끝이거든요..-ㅁ-;;
그러니.. 좀 어디서 요양좀 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외전을 쓰고.. 요양을 해야 하는것이 문제랄까요..-ㅁ-;;
클럭..
여전히 바쁜 나머지.. 퇴고를 안했습니다.
워낙에 졸려서 반쯤 감겨져 있는 눈으로 적어기때문에..
오타와 비문이 많을 것 같네요.
그걸 발견시.. 멜이나 리플로 가르쳐 주심 감사하겠습니다.
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나 멜은 [email protected] 입니다.
그럼 언제나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