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이세계 드래곤 [28] 14.스키장에서 생긴 일.
"그럼, 난 저쪽에 있는 중급과 상급코스 사이로 간다."
물은 질문에 대답했으니 이제 슬슬 자신도 스키를 타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급할 때 어떻게 연락해요!?"
사미가 멀어져가는 카이란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언제나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이니 언제 어디서나 뭐가 터질지 모른다. 그럴 때 있어서 비상연락은
필수조건인데 그에겐 요즘 세상, 없어서는 왕따나 세상 살기 힘든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소지하고 있는 순간 구세대라고 놀림받을 수 있는 한물 간 삐삐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어떤 연락할 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갈게! 그런 것이라면 염려 놓고!"
요즘시대의 필수품이 없어도 카이란에게는 정령인 실프가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위
급상황이 터지더라도 바로 연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걱정 쓸데없는 기우
이기에 대충 손을 흔들며 카이란은 리프트쪽으로 향했다.
-덜컹-
리프트에 몸을 실자 살짝 앞뒤로 덜컹거렸다. 그리고 리프트는 목적지를 향해서 계
속 움직이고 있었다.
'사미 언니와 그런 식으로 약속은 했었지만 대가없이 이런 호의를 받는다는 건 엄
마가 나쁜 아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어요. 설화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서 이렇
게 지내게 해준 대신 오빠와 언니는 우리집을 안내해 드릴게요.'
일방적으로 사미와 그런 약속을 하고 난 후 설화는 카이란에게 그런 말을 나중에
내뱉었다. 원래 목적이 그녀의 집에 간다는 것이니 그때 카이란은 아무런 토도 달
지 않고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조건 없는 호의를 받는다는 것 때문에 그런 말을
내뱉은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대신 한가지 조건을 더 걸어도 되요?'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쉽게 그런 말을 내뱉은 거라 생각했다. 설화는 갑자기 느닷
없이 한가지 조건은 내세웠다. 무슨 조건인지 알 수 없으니 우선은 들어보고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이면 들어줄 생각이었다. 집 한 채를 사달라, 이곳에 있는 눈 모두
먹어라 라는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것이면 집이고 뭐고 즉시 한대(한대? 물론 수십
대) 패 줘서 콜로 기각할 예정이었다.
'쉬운 거예요. 엄마를 만나면 설화는 진짜로 눈 녹을 때까지 맞을 거예요. 우리 엄
마, 정말 무섭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집에 가면 설화를 안 맞게 해 주
면 되요.'
그녀가 뒤늦게 자신의 집에 데려가겠다는 한 이유는 자신의 대한 변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애라서 솔직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능이 딸린 것인지 속셈이
훤히 드러나 있는 음모라서 카이란은 실소가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분명 여기서 이들과 같이 보낸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낼 것이다. 같이 지
내자고 권유하는 것 자체도 오바적으로 정상적인 소유에 벗어났는데, 지내는 것은
오죽할까.
아이의 시간으로는 일주일이면 굉장히 큰 시간이다. 가출한 상태에서 일주일이나
넘어서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마도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는 느낌과 비슷할 것
이다. 그러니 설화에게는 자신의 신변에 방어를 해줄 구원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구원자는 카이란으로 낙찰됐다.
그 속을 알고 있기에 좀 찜찜했지만 어차피 애초의 약속에도 저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생각할 자시고도 없이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응낙했다.
"생각해보니 내 조건 그대로잖아."
애초에 그대로 카이란이 내민 조건이 그대로 행해진 것 뿐이었다. 그런데 왜 손해
본 느낌이 나는 것인지 카이란은 알쏭달쏭했다.
그런 생각을 한 사이 리프트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 상태였고, 이미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다. 카이란은 재빨리 내렸다.
-촤악!!-
"뜨억!!"
"꺄악!!"
"멋져!!"
"구려!!"
"별로다!"
"쟤 뭐니!?"
"짱이야!!"
"사랑해욧!!"
"별로네!"
…시간은 어느덧 쥐도 새도 모르게 흘렀다.
이게 갑자기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한다면 저 위의 것들이 일주일이 흘렀다
는 의미가 담긴 대사들이다.
이게 뭔 웃다가 사레들어 죽는소리냐고? 우선 설명을 들어봐라! 순서를 차례대로
말한다면 맨 위에 효과음은 스키장이니 만큼 여러 인간들이 스키를 타는 소리다.
그리고 밑부터는 스키 타는 인간들의 꽥꽥지르는 환성소리다. 일일이 구차하게 여
러 설명하는 것 보단 간단 명료한 시간의 흐름 대사들이다. 쉽게 말한다면 언제나
그저그런 평상시의 일상으로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세월의 흐름은 빠르지 않는가!
-사각-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히 눈위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다지 큰 소리도 아닌데도
인간들의 시선은 절로 그쪽으로 향해졌다. 그리고 연이어 이런 탄성이 터졌다.
"우와!"
"휘익!!"
"예쁜데…!?"
짙은 보라색 머리가 바람에 의해 챨량챨량 나풀거리자 하얀색 눈과 조합이 잘 어울
려진 옅은 보라색 머리 빛깔이 인간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고운 선으로 그려져
있는 수려한 외모도 한몫 거들고 있어 한번 쳐다보면 쉽게 헤어나오질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 둘러보며 걱정이 가득한 음성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마치
중요한 것을 찾는 마냥 그녀의 얼굴을 수심이 가득했다.
"헤이! 아름다운 아가씨!"
준수한 외모를 지닌 어느 청년이 느끼한 목소리로 부르자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그리고 주위에 여성이라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자 자신에게 손가락을 가
리키며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말인가요?"
준수한 외모를 지닌 청년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인다. 그리고
청년은 그녀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여기서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쪽밖에 더 있나요?"
목소리도 느끼하지만 내용도 만만치 않게 느끼했다. 하지만 느끼함의 대명사인데도
이상하게 여성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대부분 그런 말을 듣노라면 '어머! 고마워요'
라는 감사의 말이라든가 '하긴, 그렇군요'라는 마치 당연하다 듯이 도도한 입장을
보일텐데 이상하게 아무런 무반응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청년은 당황했다.
"…어, 어쨌든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차 한잔 대접
하고 싶군요. 혹시 스키도 탈 줄 모르신다면 제가 가르쳐 줄까도 합니다. 아! 물론
공짜로 가르쳐 드립니다."
다시 자세를 추스르며 애초에 접근했던 목적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도 눈이 부시에 아름다웠는데 가까이서 이렇게 보니 더욱 아
름다웠다. 다만 요즘 아가씨들답지 않게 복장이 이상스럽게 신기했다. 추위도 타지
않는지 굉장히 얇은 옷에 삼국시대 여성들이나 입고 있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디자인이라면 굉장히 이상하다고 눈초리를 받겠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생
각은 하지 않았다. 외모와 옷이 잘 매치가 잘 되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며칠전의 4명의 여성들 외 처음이었다. 물론 그때도
이렇게 접근했었지만 대답조차 받지 못한 쓰라린 기억이 있던 날이라 그는 기억하
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 어디서 많이 봤을 것이다. 준수한 외모를 지닌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예전에 사미에게 접근해서 대답조차 받지 못한 헌팅맨2였으니까. 그런데 왜 1이 아
닌 2냐고? 엿장수 맘이니까.
"그런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굉장히 바쁘거든요. 그
래서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겠습니다."
예의있게 허리까지 깊숙이 숙이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헌팅맨2는 이런 식으로
예의있게 거절할 줄 몰랐지만 어쩠든, 예상했던 대답이라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가요?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바쁘신가요? 괜찮다면 그 바쁨을 조금이라도 저
에게 줄 수가 없는지… 힘 닿는데까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느끼! 느끼!! 느끼였다!!! 그녀는 그의 말에 반색했다.
"정말인지요? 감사 드립니다. 그렇다면 감히 부탁 좀 하겠습니다."
남자는 크게 웃었다.
"하핫! 뭘요! 당연히 어려울 때 도우는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래서 무엇을 부
탁하고 싶은신 가요?"
이런 여성이 부탁하는 거라면 어떤 거라도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부탁이라고 해
봐야 이런 곳에서는 뻔히 뭐를 찾아 달라고 부탁밖에 더 있겠는가? 헌팅맨2는 오늘
이야말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를 찾고 있어서요."
헌팅맨2의 두 눈은 크게 떠졌다. 일행을 찾고 있다는 말도 되었다.
"남자인가요? 여성인가요?"
문제는 성별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좌우 될테니, 남자는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여자입니다."
"예쁜가요?"
"물론입니다. 아주 귀엽고 예쁘지요."
오옷! 일행, 여성, 게다가 예쁘기까지! 최고의 조건이 따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도 일행(헌팅맨1, 3)이 있어서 혼자 성공한다면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
마침 앞에 있는 여성에게도 일행이 있다고 하니 더없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런가요!? 잘됐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헌팅맨2는 가슴까지 탕탕치며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여성은 눈이 부시게 확 얼
굴이 밝아졌다.
"정말이신지요!?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제.딸.을 함께 찾아 주시겠다고 하니! 너무
나 감사드립니다!"
크, 클럭! 따, 딸?
혹시나 잘못 들은건 아닌지 헌팅맨2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딸이라뇨…?"
딱 봐도 2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질 않아 애 있는 아줌마라고 생각 할 수 없었다.
잘 못 들은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있는 여성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가슴에 두 팔을 얹으며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제가 지금 바쁜 이유는 제 딸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전 딸아이가 모습이
보이질 않아 이렇게 찾으러 나선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이렇게 나오니 아녀자 혼
자서 이 넓은 곳을 어떤 수로 다 뒤질지 막막하게 되더군요. 정말로 눈앞이 아찔했
답니다. 혹시 영원히 아이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서 불안에 떨었지
요. 하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이 컴컴한 어두운 곳에 밝은 빛 한줄기가
저에게 구원이 뻗치더군요!"
감았던 눈을 뜨며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쁜 눈망울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
었다.
"이렇게 스스로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니 정말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정말 감사 드
립니다. 이 은혜 꼭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무척 감사하단 표정으로 그녀는 헌팅맨2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헌팅맨2가 서 있던 그곳엔 이미 공허한 빈자리만이 보였다. 혼자 외로이
남겨진 그녀 곁엔 차가운 바람 한 점이 지나쳤다.
처음 스키 타러 온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어느 초급코스. 미숙한 실력으로 어렵
게 중심을 잡거나 조심스럽게 경사진 곳을 내려오고 있었다.
초급코스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스키철에 휴가철까지 섞이니 많은 인파가 이
곳 스키장에 몰린 탓에 초급코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타거나 배우고 있었다.
전문 강사에게 배우는 인간도 있었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서로가 서로에게 지탱하
며 즐겁게 타는 인간들도 보였다.
"꺄아! 이거 너무 힘들어!"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초급 스키장 어느 한 곳에 유난히 많은 인간들의 시
선을 끌고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외모 군단으로 하나하나 조각한 것
같이 예쁜이들이었다. 그리고 종류도 다양했다.
"그래도 잘 타는 걸."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있는 귀여운 아이.
"후훗! 그래도 나보다 더 잘타는 것 같은데. 힘네."
눈부시고 아름다운 금발 머리가 유난히 눈부시게 하는 아름다운 여성.
"오호호홋! 앞으로도 점점 더 잘 탈 수 있을 거야."
짙은 흑발 머리에 도도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미모의 여성.
"후훗! 그래도 즐거운가 보네요."
비슷한 외모지만 아름다운 미소가 잘 어울린 부드러운 여성.
"네!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요!"
앙증맞고 깜찍하고 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살인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어린 꼬마 아
이.
"에구! 설화 요 깜찍이 너무 귀여워 죽겠어."
그리고 그저 예쁘다에 속하고 있는 평범한 여성.
이렇게 6명의 여성으로 구성되어 미모 집합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무리들이
었다. 유난히 미모들이 빼어나서 인간들의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난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
회의를 느끼는 말투로 혼자서 중얼거리는 어느 한 남자. 너무나도 평이하다 못해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김이 다 빠졌다. 하지만 그 평이하다 못해 너무 평범한 남자
는 그 미녀들 무리 속에 있었으니… 주위의 인간들은 손수건 같은 것을 쥐어뜯으며
탄식했다.
"젠장! 빌어먹을!!"
"어찌하여 신은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렵니까!!?"
"이것은 시련이다! 시련! 나는 저놈에게 놀아나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저 미녀들을
구해야 만 하는 시련인 것이다!! 분명 그녀들은 도움을 청하고 있을 것이야! '살려
줘요! 도와줘요! 나를 구원해 줘요!' 라는 외침이 나에겐 들리는 구나!!"
"저런 빌어먹을 녀석!! 세상에 둘도 없는 저런 미녀들을 모두 저녀석이 차지하다니
!! 내 저주를 퍼부으리라!!"
…등등등 이런 욕 이제 너무 지겨워져 더 이상 쓰기가 싫어진다. 어쩠든, 당연 당
빠로 이미 옛날 50년전에 눈치 챘겠지만 그 미녀군단과 평이하다 못해 평범한 남자
는 카이란과 그의 그녀들이었다. 엑스트라들은 이 불공평한 광경에 온통 카이란의
대한 욕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참으라고!!"
-질질!-
이때 카이란이 성큼성큼 엑스트라에게 다가가는 것을, 하나는 또다시 허리를 붙잡
으며 말려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