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263화 (263/277)

(268) 이세계 드래곤 [28] 18.스키장에서 생긴 일.

"이제 그만 잡히시지!! 슬슬 한계까지 온 것 같은데!!"

"싫어요! 잡히면 설화를 눈 녹도록 팰거잖아요!!"

눈꼬리가 돌아가면 빙긋 웃는 미모의 여성.

"오호∼ 잘 알고 있네. 그런 녀석이 감히 가출을 하다니!! 아직 대가리에 눈도 녹

지 않은 녀석이!!!"

설녀들의 세계에선 '피'가 아닌 '눈'인가 보다. 혹시 살을 가르면 붉은 피가 아닌

하얀 눈이 나오는 것은 아닐지 궁금하게 여겨진다.

"이것은 엄연히 아동 학대 죄라고요!!"

설화는 도망가면서 큰소리 쳤다. 그렇게 계속 도망가면서 그녀는 카이란의 일행들

주위에 크게 돌고 있었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고 했어. 왜 갑자기 저 꼬맹이가 도망가나 했더니만… 그것

때문이었군."

카이란은 갑자기 설화가 왜 도망가는지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미 독자들은 옛날

에 눈치 채서 왜이리 질질 끌어 하면서 하품이나 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들은 이제

눈치채다니… 지금까지의 대화를 총 집결하면 왜 도망가는지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데….

다른 이들이야 보통 인간이니 이야기의 저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일 수

도 있어 모를 수도 있지만 카이란과 아리아는 인간이 아니라서 이 둘의 얘기를 분

명히 들었을 것이다. 오해냐고? 인간이 아닌 드래곤과 엘프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하다. 눈치가 없어서…?

물론, 일리는 있지만 저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눈치 못챌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

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못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보라서…? 주인공이 바보라면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는 생각

때문에 고려상 그런 설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대체 뭐란말인가? 눈치도 아니고

… 바보도 아니고… 그럼‥ 이해 능력이 딸린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바보라

는 말과 다름없는 대답이라 No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이 몰랐던 이유는 굉장히 쉽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답을 한마디로

한다면 시나리오니까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뭔 뜻이냐고? 말 그대로다. 애초에 시

나리오대로 나기지 않고, 그녀와 그가 저 미모의 여성이 설화의 부모라는 것을 먼

저 알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써질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기니 그런 것 뿐이다.

'뻥이야! 뻥! 뻥까시네!! 원래 그런 것 생각도 안 했잖아!! 뒤늦게 변명이나 하다

니, 바보 아냐!?' 라고 생각하신다면 으쓱한 골목으로 데려가서 지긋이 밟아주어

가기 힘든 천당한번 구경시켜 주겠다. 음하하하∼!

"그나저나 나도 예전에 저런 광경이 있었지……."

피식 카이란를 입꼬리가 올라가졌다. 아득한 추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도 저

렇게 가출해서 들켰을 때 저런 적이 있었다. 그때 카이란도 저렇게 도망다녔다. 죽

자 살자로 열심히 텔레포트 하면서 도망다녀서 어디어디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

았다. 몸 안에 있는 마나가 고갈될 정도로 다녔으니 아마도 전 대륙의 1/10정도 돈

것 같았다.

전 대륙의 1/10이라면 별로 돌지 않았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카이란이 살던 세

계도 여기랑 다를바 없는 지구다. 그 지구의 1/50이라면 엄청난 거리를 나타낸다.

그래도 드래곤인데 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그때 시절의 카이란은 헤츨링때였다. 그

것도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때의 마나량을 따진다면 8사이클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나이대지만 마력은 높지 않은 상태였다. 텔레포트 마법이란 거리마

다 마나량이 달라진다. 100미터를 가는 마나와 200미터를 가는 마나량의 차이는 2

배나 달한다. 그 정도로 텔레포트란 어려운 마법이다. 그나마 카이란이 밥먹듯이

쓸 수 있는 이유는 드래곤이라는 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력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한계를 나타내는 수치라 마나가 아무리 높아도 마력이 높지 않다면 텔레포트

를 할 수 있는 거리는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열심히 도망다녔지만 윔급에 달하는 드래곤에게 도망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

능에 가까웠고, 정신차려보니 용암 굳을 때까지 맞고 있었다.

-으스스스-

갑자기 몸에 오한이 돋았다. 생각해보니 추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기억은 아

니었다. 그에게 있어선 끔찍 그 자체였으니까….

"언제 끝날지 모르니 어디에서 쉬다 올까요?"

혜미가 선뜻 의견을 내놓는다.

"음… 그래요. 어디에서 놀다 오죠."

아리아가 대신 대답했다. 보아하니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았고, 쉽게 잡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의견에 불만이 없는지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들은 저

모녀(母女)를 놔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노는 시간과 쉬는 시간만큼은 정말로 빨리 지나간다. 몸을 쉬고, 간식을 먹고, 샤

워를 하고, TV를 보고, 낮잠을 자는데 시간을 보냈다. 하늘은 어느덧 붉은 노을빛

을 뿜으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지치지도 않아요!!?"

다시 돌아왔는데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여전했다. 역시 설녀 답게 눈에 강한 면

모를 보여줬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1시간이면 한계일 것을… 그녀들은 그렇

지 않은 것이다.

"어머나∼ 금방 잡히겠네요."

이제 곧 설화는 미모의 여성에게 잡힐 것 같았다. 슬슬 10살의 한계를 보여주듯 체

력이 거의 떨어졌는지 도망치는 속도가 눈에 띠게 저하되었다. 그에 비해 미모의

여성은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니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요녀석!!"

"우아앙!!"

말하기가 무섭게 덥썩 미모의 여성은 설화의 뒷덜미 잡는 것을 성공했다. 설화는

낭패다는 식으로 일부러 울음을 터뜨렸다. 모성애를 자극시켜서 어떻게든 덜∼! 맞

아보려고 한 작전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니까.

"어딜 울어!! 잘한 짓이라고 울고 있는 거니!!? 너 어디 한번 혼나봐라! 감히 엄마

를 속이려고 하다니!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알아!!?"

하지만 무척 둔한지 그런 자극받는 모습은 코끝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

에 벌였던 상황에만 더 치중을 두는 것은 표정으로 흡사 악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

았다.

"으아아아앙!!"

"울어봐야 소용없어!!"

가출한 댓가는 컸다. 그리고 엄마를 속이려고 한 댓가도 더욱 컸다. 덕분에 그 날

설화는 진짜로 눈 녹도록 맞았다.

"지금까지 염치없는 제 딸을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허리를 깍듯이 숙이며 미모의 여성은 카이란의 일행들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마음대로 설화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 죄송할

따름이죠. 가출한지 알았다면 어떻게든 집으로 돌려보냈어야 했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한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죄송하다는 말투로 혜미도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아니요, 이유야 어쨌든…, 가출한 제 딸을 보살펴 주셨으니 감사하다는 말은 제가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같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알 수 없

었을 테니까요."

일주일이면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대다.

그러니 그녀는 무척 카이란의 일행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워낙에 개구쟁이라 민폐라도 끼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누굴 닮았는지 뻔

뻠함이 굉장하거든요."

"아야야야야∼"

미모의 여성이 설화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을 덧붙이자 설화는 아프다는 호소를 한

다. 그리고 표독스런 눈빛을 뿜으며 큰소리쳤다.

"헹! 그건 아줌마도 만만치 않게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누굴 닮았는데!!"

"오호호호호! 얘가 뭔 소릴 하는 거니? 누가 뻔뻔하다고 하는 거어니∼. 그리고 엄

마보고 아줌마라니? 누가 들으면 생판 모르는 남으로 알겠다."

"뭘… 새삼스럽게요? 지금까지 쭈욱∼ 그렇게 불렀는데. 왜요?"

이죽거리며 웃고 있는 설화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호호호호… 하긴 그렇긴 하네. 호호호호…."

"마음에 안든다면 다른 걸로 할게요. 익사이팅(Exciting)하게 아줌씨∼ 어때요?"

"그건 사양할게. 오호호호호호…."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우하한 포즈로 입을 가리며 화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눈빛만큼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어머나∼ 저기에…."

"에?"

미모의 여성은 인간들이 많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그

녀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이 가졌다.

이때가 기회다는 표정으로 지금까지 숨겨왔던 분노의 표출을 모두 주먹에 집중했다

. 그리고 방심하고 있던 설화의 뒤통수를 향해 잽싸게 후려갈겼다.

-퍼억!!-

"아코!!"

엄청난 고통이 뒤통수에서 엄습해왔고, 충격의 여파로 눈알이 튀어나올 뻔 했다.

"뭐가 있는데요?"

그런 일이 벌어지자마자 미모의 여성이 가리켰던 방향을 보고 있던 그들은 아무것

도 없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녀를 보았다.

"오호호… 아니에요. 제가 잘못 봤었네요. 순간 이상한 펭귄 한 마리가 지나친 것

같았거든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모의 여성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정말이지 눈깜

빡할 사이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어머? 설화는 왜 그러니?"

뒤 한번 돌아본 사이에 지금까지 멀쩡하게 있던 설화가 자신의 머리통을 부여잡은

채로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이자 하나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요."

양손까지 저으며 애써 설화는 고통을 참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 엄청난 고통이었는데도.

"괜찮은거야? 약 먹지 않아도 괜찮겠어?"

하나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 표정으로 설화를 보았다.

"네, 설화 아무렇지 않아요."

씩 웃어 보이며 설화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씩씩하게 일어났다.

그제서야 하나는 안심이 됐는지 얼굴 표정을 풀었다.

<주인님.>

운디네였다. 운디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카이란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란은

그녀가 왜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잘 알고 잇다는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

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잘 알아.>

카이란은 미모의 여성을 똑바로 응시했다. 처음엔 잘 느끼질 못했는데… 이렇게 가

까이에서 보니, 설화와 똑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인간의 냄새가

아닌 정령의 냄새가 났다.

'기척을 숨기고 다니는군.'

만일이라는 것도 있으니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숨기고 다녔다. 하긴 그럴

것이다. 인간에게는 '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녀가 기운을 퍼뜨리고 다닌다면

호르몬 분비로 인해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식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

이란도 인간세계 다닐 땐 기척을 숨기고 다닌다.

<굉장한데요. 기척을 이 정도로 숨길 수 있다니.>

실프가 감탄을 터뜨렸다. 카이란도 실프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기

척을 정말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꼼꼼하게 숨겼다. 웬만한 마법사들도

쉽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성급 드래곤이라고 해도 겨우 느낄 정도였다. 그나마

웜급인 카이란은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아라?"

의아한 탄음을 내지르는 미모의 여성.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무래도 그녀

는 실프와 운디네의 기운을 느낀 표정 같았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럴 낌새를 느낀 운디네와 실프는 재빨리 정령계로 돌아갔다.

"아라라?"

"왜 그래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의문이 깃든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설화가 물었지만 그녀는 웃는

표정으로 바뀌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빤히 미모의 여성을 바라보며 설

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와! 그리고 보니… 지금 이렇게 보니까. 설화는 엄마를 닮았나 봐요. 이렇게 옆에

서 나란히 보니까 완전 붕어빵이네요. 설화가 이렇게 예쁜 이유가 다 있었군요."

옆에서 나란히 서 있는 그녀들을 보며 민지가 감탄을 터뜨렸다. 민지 말 맞다나 완

전 아이 버젼과 어른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미모의 여성을 보면 설화가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둘은 정말 닮았었다.

"후훗. 그런가요? 제가 한 외모 한다는 소린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 제 피를 그대

로 물려받았으니 딸도 예쁜건 당연하겠죠."

대부분 '고마워요' 라거나 '과찬이에요' 라는 말이 정상이거늘… 얼굴에 철판을 깔

지 않는 한 쉽게 내뱉기 힘든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고 으스대는 표정도 아닌, 그

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봐야 겠네요."

딸아이도 찾았으니 이제 이곳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금방 집으로 가려고 했

다. 뜻밖의 말에 놀란 그들이었다. 그중 무엇보다 더 놀란 인물은 카이란이었다.

엑!? 벌써 간다고? 급작스런 간다는 말에 카이란은 당황했다. 아무래도 아까 운디

네와 실프의 기운을 느껴서 그런 것 같다.

이대로 그녀들이 가버리면 그녀의 정체를 아는 방법이 사라진다. 물론, 실프에게

부탁해서 뒤를 밟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녀들이라고 정령의 기운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이 먹은 어른일수록 의구심이 많기 마련이다. 특히나 사연이 있어서

숨어서 지내는 케이스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으니 어떻게든 먼저 악의가 없다는 뜻을 전해야 했다.

"설화야 너도 이 분들에게 지금까지 고맙다는 인사해야지."

이대로 보내면 이들의 정체는 평생 알 방법이 사라진다. 그리고 왜 자신은 그런 조

건을 내밀면서까지 이들을 만나고 싶어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된다. 카이란은

그녀들을 붙잡을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협박을 할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체

만 알 수 있지, 두 번째 알고 싶어하는 것은 얻지 못할 것 같았기에 패스였다. 그

렇다고 '당신 나에게 할 말 없어?' 라는 소리나 한다면 미친놈 소리 듣기에 딱 알

맞으니 더더욱 그럴 순 없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 카이란은 급급해졌다.

"잉∼ 설화, 집에 가고 싶지 않은데… 아직 더 놀고 싶어요."

아직 설화는 집에 갈 마음이 없었는지 징징 투정을 부렸다. 미모의 여성은 활짝 웃

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았다.

"설화가 이러니… 며칠간 더 신세를 질게요. 어차피 제가 늦게 찾았다면 늦게 찾은

만큼 제 딸과 같이 보냈을 것 아녀요. 그런 샘 치고 며칠 잘 부탁드립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빙긋 웃음까지 흘리며 허리를 숙였다. 역시 모녀는

용감했다…인가? 설화의 맨 처음 뻔뻔함… 아무래도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아

닐까 한다. 정말이지 뻔뻔함의 극치였다.

"‥아… 네, 네… 저희야말로……."

그녀들은 황당했는지 어떨 결에 수락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대로 헤어지면 섭섭해

서 며칠 묵고 가면 안되냐고 도리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뒤통수 한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

그중 카이란은 그녀들을 붙잡기 위해 방법을 강구했던 자신만 바보가 된 느낌을 받

았다.

"잘됐네요, 저희도 이대로 설화를 보내면 굉장히 섭섭할 것 같아서 며칠 지내다 가

려고 말할 찰나였는데."

다행히 아리아만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뺐기지 않았다. 미모의 여성은

아리아에게 눈길을 돌리자 두눈이 크게 떠지며 놀란 표정을 그렸다. 표정을 보아하

니 상당히 심각했다.

"당신…."

미모의 여성은 아리아를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표정을 보면 상당히 심각했다

. 마치 뭘 잘못 본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다는 경악성이 담겨있었다. 역시 인간이

아닌 설녀 답게 아리아의 정체를 단번에 안 것…….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와 머릿결을 가지고 있네요. 멋진 금발이에요."

…이 아닌가보다. 역시 생각이 지나쳤다 보다. 그리고 미모의 여성은 말을 덧붙인

다.

"나중에 우리 애도 크면 당신처럼 아름다울 거예요."

애 자랑까지… 그것도 바람형이 아닌, 확정형이다. 정말이지… 팔불출이 따로 없었

다.

"후훗! 지금 설화의 미모를 본다면 분명 저보다 아름다울 거예요. 지금 설화 너무

예쁜걸요. 저도 설화쯤 나일 때 이만큼 못한 외모였어요."

아리아도 웃으면서 맞받아 쳤다. 그녀 말 맞다나 지금 설화의 미모는 깜찍이 그 이

상이다. 앞을 내다본다면 굉장한 미모를 자랑할 것이 틀림없었다.

"고마워요."

빈말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미모의 여성은 무척 좋아라 하고, 그녀가

설화를 이뻐라 하니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아∼! 이런 내 정신좀 봐! 그리고 보니…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지금까지 이들에게 자신의 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콩콩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가책했다. 그리고 뒤늦게 몸 자세을 바르게 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했

다.

"설화의 엄마인 유키에(雪え) 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소개에 민지는 이상함을 느꼈다.

"이름이 일본사람 같아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유키에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당연하죠. 일본에서 왔으니까요."

그 대답에 민지는 감탄을 내질렀다.

"와! 그런데 한국말 무척 잘하네요!!? 그리고 발음도 정확하고요!!"

일본 태생이라면 뭐니뭐니해도 괴상꾸리꾸리 한 발음일 것이다. 혀가 짧기로 유명

한 일본이니 받침발음이 힘들어 발음이 이상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그런데 그녀

는 한국 태생처럼 발음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어려운 발음도 척척 나오는 것이었다

.

"당연하죠. 한국에 온지 꽤 됐으니까요."

아무리 온지 오래 됐어도 타고난 짧은 혀의 굴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받침발음

이 좋아 질리는 없다.

"그런가요? 멋져요."

그녀가 그렇다고 하는데 굳이 의심을 할 필요성이 없기에 민지는 그다지 깊게 생각

하지 않고 다시금 감탄을 내뱉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발음 잘 해야죠. 그런데……."

말꼬리를 흐리는 유키에… 그리고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하루종일 이 애를 찾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좀 사주실래요? 좀 배가 고

프네요.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좀 먹고 싶고요."

"……."

빙긋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뻔뻔함이 천연덕스럽게 묻어 있었다. 역시 생각하는 성

격과 말하는 투는 설화와 붕어빵이었다. 외모도 붕어빵이었지만… 성격도 완정 붕

어빵이다. 어찌됐든, 이리하여 그들은 설녀 모녀와 며칠 같이 보내게 됐다.

유키에와 설화와 생활한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눈위를 카이란은 조용히 걸었다. 산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위는 카이란 뿐만 아니라 오순도순 한 연인들이 서로

사랑의 속삭임을 지저귀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완전 병아리 삐악거리는 소리

라 그의 성격이라면 그런 광경에 초를 치겠지만 지금의 카이란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카이란은 신경질을 냈다. 하긴 그럴 것이다. 지금 카이란은 유키에와 지낸지 2주가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체는 물론

이고, 심지어 나이조차도 몰랐다.

2주가 흘렀는데도 알아낸 것은 티끌만치도 없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만도 했다.

"왜… 그런가요?"

"아…."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카이란은 뒤를 돌아보자 짙은 흑발머리가 가로등에

의해 찰랑 찰랑 빛나고 있는 혜미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혜미는 빙긋 웃으면서 카

이란에게 다가갔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답지 않게 그런 신경질을 내니 혜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민한 것을 밝힐 수 없는 카이란이었다. 카이란은 미소를 어리며 그녀를 보았다.

"왜 나왔어요?"

"백성군이 나오는 것을 봤거든요. 그래서 따라 나온 것 뿐이에요. 혹시 방해가 되

었나요? 그렇다면 그냥 올라갈게요."

"아니에요. 여기 있어도 되요."

어차피 해결 못하는 고민, 차라리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혜

미는 빙긋 미소를 머금고 살며시 그의 곁으로 몸을 옮겼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둘이 있어 보네요."

"아아… 여름 때는 정말 자주 있었는데요."

혜미는 여름때 일을 생각했다. 그땐 카이란과 정말 바람을 많이 쐬었는데 지금은

일행들이 많아서 인지 이상하게 둘만의 시간을 갖은 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네요. 여름때는 이틀에 한번쯤은 산책을 같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잘 그러질

못했네요."

뭔가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낸 느낌이라 꼭 숙소에 들어가면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을 한다거나 바람을 쐬러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더더욱 그

들은 시간을 갖지 못했다.

"후훗∼ 덕분에 좀 섭섭했어요."

카이란은 빙긋 웃었다.

"그런가요. 그러면 앞으로 남은 날짜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갖죠."

"저야 그러면 좋죠."

오랜만에 걷는 산책길… 여름과 달리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차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은 보이질 않았다. 아름다운 야경을 보는 느낌은 없지만 눈위를 걷는 소리만큼

은 좋았다.

-휘이이잉!-

여름은 더웠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뼛속까지 시린 쌀쌀한 바람이 자주 불어왔다. 카

이란은 추운 기운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그 옆에 있는 혜미는 평범한 인간이라 부

스스 떨리는 기운을 느꼈다.

"이거 입어요."

카이란은 겉옷을 벗어서 혜미에게 주었다. 혜미는 깜짝 양손을 저으면서 거절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 옷을 주면 백성군 굉장히 추울 거잖아요. 전 참을 수 있

으니 그거 다시 입으세요."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그저 긴팔남방 셔츠였다. 안에는 내복을 입고 있겠지만 그것

을 입고 있더라도 이런 싸늘한 추위는 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카이란은 불의 속

성이자, 마법으로 얼마든지 추위를 막을 수 있기에 추위를 탈 리가 없다. 문제는

혜미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요, 전 괜찮으니 입어요. 남자로써 어떻게 여자가 추운 것을 그냥 보겠어요?

체면쯤은 지켜달라고요."

생긋 카이란은 벗었던 오리털 파카를 더욱 혜미에게 권했다. 그러자 혜미는 마저못

한 표정으로 미소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네요. 고마워요, 잘 입을 게요."

혜미는 카이란이 건네준 오리털 파카를 입었다. 남자 옷이라서 그런지 어깨 쪽이

상당히 컸지만 덕분에 다중 겉옷인데도 꽉 끼인 느낌이 없었다.

"아… 따뜻해라. 백성군의 냄새가 나네요."

따뜻함 기운이 몸 속으로 스며드는 동시에 그의 냄새가 났다.

"땀 냄새가 좀 날거예요. 괴롭더라도 참아요."

"후훗‥ 뭐, 코의 신경이 마비밖에 더 되겠어요? 백성군의 옷을 입는데 그 정도 피

해는 당연히 감수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니 괜찮아요."

"아아… 너무한데요. 어떻게 그런 말을……. 이래봬도 샤워는 꼬박꼬박 한다고요.

가끔 에티켓을 위한 향수까지 뿌리고요."

"농담이에요."

혜미는 혀를 쏙 내밀었다. 냄새를 났다. 땀 냄새가 아닌, 향수냄새가… 그리고 깊

숙한 곳에서 카이란의 포근한 체취까지 느껴졌다. 예전에 동민 오빠와 비슷한 느낌

이라 혜미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겠어요?"

아무래도 이런 추위에 감기라도 거릴 것 같아 걱정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카이란

은 피식 입가에 미소를 담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당연히 괜찮죠. 이런 추위 견디지도 못하는 사내로 보아요? 이 정도쯤은 저에겐

추운 신경의 털끝만치도 오지 않아요.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요."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카이란은 두팔로 이두박근을 포즈를 취했다. 그

러자 혜미는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하여튼 백성군을 보면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어쩠든, 무리는

하지 말아요. 저 때문에 내일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면 제가 너무 미안해지니까

요."

"그래요? 그럼 일부러 좀 아파야 겠는데요."

그의 짓궂은 말에 혜미는 부드럽게 빙긋 웃는다.

"어머나∼ 그런 말 하는가 보면 백성군 좀 짓궂은 곳이 있네요. 그런데 왜 아파야

하는데요?"

"그야… 감기라도 걸리면 그 책임은 혜미 선배 일 것 아녀요. 그러니까, 그날 하루

는 수발이라던가 병간호 같은 저를 위한 봉사를 해야죠. 누구 때문에 그런 것이 걸

렸으니까요."

문제는, 그가 아프다면 수발이 되어줄 후보가 3명(사미, 민지, 아리아)이나 존재했

다. 그래서 혜미가 그의 병간호를 할 수 있을지 의문먼저 앞선다.

"후훗! 하여튼 백성군도…."

카이란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너무 튼튼한 나머지 그런 것에 거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

깝다고나 할까요. 이래선 너무 튼튼한 것도 죄라니깐요."

"그래요? 아깝네요. 한번쯤 아픈 백성군의 수발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평생 그럴

일이 없다고 하니‥ 좀 유감인데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일부러 유감이라는 듯이 혜미는 입맛을 다신다.

"아아… 이거 그렇게 말하는데 가만히 있기는 좀 그렇네요. 이참에 평생 걸려보지

않았던 감기라는 것을 걸려볼까요. 혜미 선배가 그런 말 하니까 갑자기 걸려보고

싶은 충동이 서려요."

"후훗… 그렇다고 일부러 걸리지는 말아요. 기회가 된다면 말이었어요. 만약 지금

감기라도 걸려야지라고 선언한다면 '이 옷 필요 없으니 다시 입어요' 라고 말할 거

예요."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후훗! 저도 알고 있었어요."

아까의 짜증스러운 일을 싹 잊은 채 카이란은 혜미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로 스키장

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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