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 이세계 드래곤 [28] 19.스키장에서 생긴 일.
카이란과 혜미가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같은 시각의 어느 스키장 코스… 누군가
가 가벼운 걸음으로 눈 위를 걷는 이가 있었다. 파란 머리와 추울 것 같은 복장으
로 얇은 소복을 입고 있고 있었다. 누군가가 멀리서 보면 귀신이라고 착각할 정도
로 무섭게 보였다.
짙은 구름 속에 숨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의 의해서 그녀의 얼굴이 비추
어졌다. 마치 조각상처럼 꾸며놓은 듯한 외모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다.
그녀는 유키에였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어디를 가는지 그녀는 점차 적막하고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
췄고, 빙긋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됩니다."
갑자기 웬 허공에 삽질? 주위를 둘러봐도 근방 100미터 안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그녀는 비긋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말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냄새를 보아하니 딱 봐도 근방에 누
가 있는지 알 것 같은 힘이 있는데…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잖아요."
<…….>
"그렇게 일일이 지켜보는 것, 귀찮지 않아요?"
-뚝…-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 앞 몇미터 근방에 떨어진 솔나무 이파리에서 이슬방울이
떨어졌다. 이슬방울은 중력 법칙의 의해서 밑으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유키에 앞
으로 다가왔다. 어느정도 다가온 이슬방울은 갑자기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나체의
여성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휘잉…-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도는 쌔지 않았고, 시릴 정도로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기온이라면 춥다고 느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바람이었다. 단지 시원하다 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불고 지나치지 않았다.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그녀 주위를 배회했다. 마
치 살아 있는 느낌이 물씬 풍겨올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소용돌이 중앙에는 귀여운 꼬마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고 계셨군요.>
눈을 내리 깔은 채 나체의 여성이 말했다. 차분했지만 상당히 차가운 어투였다.
<와! 잘 숨었는데 역시 알아 버렸네요. 대단해요.>
그에 비해 귀여운 꼬마는 명량할 정도로 목소리가 밝쾌 했다.
"그렇게 대단할 것 까진 없어요. 너무 졸졸 쫓아다니니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빙긋 유키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도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상당히 이상한 분이시네요. 몸 색깔도 그렇고, 나타난 것도 그렇고…,
당신같은 분 처음 보네요."
외형은 인간과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나타난 현상은 절대로 인간이 아니었다.
유키에도 이렇게 나타난 존재들을 처음봤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당신도 우리들의 존재를 모르는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물의 요정 운디
네라고 합니다.>
<전, 바람의 요정 실프라고 해요.>
그들의 정체는 카이란의 정령들인 운디네와 실프였다.
"저는 유키에라고 합니다. 운디네와 실프라… 상당히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멋
져요."
<고마워요.>
외형의 칭찬보단 이름과 속성이 잘 어울리다는 칭찬이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
는지 모르는지 실프는 헤헤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계속 쫓아 온 것이죠? 제 기억으로는 아무래도
당신들에게 무슨 짓을 한 적이 없는데요."
이런 존재를 자체를 처음 봤는데 무슨 짓을 할 리가 전무했다. 유키에는 운디네와
실프의 존재를 5일 전부터 알아챘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뚜
렷이 느껴지는 그녀들의 기운에 의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점에 대해서 죄송합니다. 단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멋대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들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군요.>
인간이 아닌 이상,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물론 타 존재의 기
운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예상도 하고 있는 상태라 꼼꼼하게 기운을 숨겼는데, 이
렇게 들킬 줄은 생각지도 못한 운디네였다.
"아무래도 같은 냄새가 나니까… 쉽게 알 수 있었거든요."
<…….>
유키에도 눈치를 챘다. 그녀들도 자신과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버렸
다.
<그렇다면 얘기가 쉬워지겠군요. 저희도 알고 싶고, 저희 주인님도 알고 싶어합니
다. 괜찮다면 당신의 정체를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걸 알고 있다면 길게 끌 것 없이 운디네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주인님? 당신들은 누군가가 불러야만 하는 존재들이군요."
장작 유키에는 운디네의 말에 답해주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화재를 옮겼다. 운디
네는 전혀 거림낌 없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녀가 말한 것을 답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소환주가 있어야만 하는 존재들… 우리들은 자연의 영체(靈體
)입니다.>
"그래요? 그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자연의 혼령들이 가끔
나타난다는 얘기를요. 그리고 우리들과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 거란 얘기까지
도요."
<헤에… 그래도 당신은 우리들의 존재를 들어봤긴 하네요.>
설화는 정령의 자체를 몰랐던 것의 비해 유키에는 좀 알고 있다는 표정이라 의외라
는 얼굴로 실프가 말했다.
"이렇게 봐도 우리들은 유래(由來)가 있는 편이니까요.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
이에요. 생각보단 우리들과 다를바 없는 외모라 좀 놀랐어요. 전 좀 무섭거나 이상
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들은 하급정령이라서 그래요. 중급부터는 중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무섭게 생
긴 정령들이 존재해요.>
"그래요? 그런데 당신들이 제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소환주도 제 근처에 있다는 뜻
이군요. 아마도 검은머리의 남자애겠죠? 금발머리 아가씨 일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그녀는 아직 힘이 못 미쳐 당신들처럼 모습까지 형성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유키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 말 맞다나 아직 힘이 높지 않는 아
리아에겐 카이란처럼 정령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중급 클
래스 정도 되야 가능하다. 그래서 아리아가 정령을 소환하더라도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
그렇다고 카이란이 소환주라는 것을 단번에 안 것은 그녀들로써 좀 놀랐다. 이곳에
서 의심이 가는 인간들이 그 말고 한두명이 아닌데 단번에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상당히 놀란 표정이네요. 저희는 미약한 힘이더라도 느끼기만 한다면 깊숙한 내면
까지 느낄 수가 있어요. 그 사람… 아니, 인간이 아니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군요. 어쨌든, 느끼기 힘들 정도로 꼼꼼하게 힘을 숨겼지만 저는 알 수 있었어
요. 그 역시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처음 설화가 카이란과 대면을 했을 때 눈물을 터뜨렸던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
것은 그녀들만의 힘인가 보다.
"사실 처음 인간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솔직히 좀 놀랬어요.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라서요. 하지만 저 역시 인간이 아닌자. 다른 존재가 있지 말라는 법은 없
으니 그냥 그렇다 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녀도 다른 이종족을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로운 종족을 본 카이란도 적지
않게 놀랐는데… 그녀도 카이란과 아리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곳은 타종족이 없는 세계. 태초에 그런 곳이니 인간이 아닌 자신이 이곳 세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타 종족이 한두명 더 있어도 이상
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체를 알았어도, 시치미 뚝 떼면서 모
르는 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당신들쪽에서 저를 신경 쓸 줄은 몰랐네요."
반대편 기분을 생각지 못한 유키에였다.
"그래요. 그런데 무엇을 알고 싶어서 제 뒤를 쫓고 있었죠?"
<그 질문에 대한 거라면 앞서 먼저 말했습니다만.>
"아∼ 그렇죠. 제 정체를 알고 싶다고 했죠?"
깜빡 했다는 표정으로 유키에는 손을 딱 쳤다.
<네, 그렇습니다>
"정체라… 가르쳐 드리죠. 제 정체는……."
운디네와 실프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제 정체는…… 설녀입니다."
<…….>
거참 멋진 대답을 내놓아서 황당하게 만들었다. 설화와 똑같이 도움의 '도'나 Help
의 'H'자도 못되는 말을 선뜻 내놓는다. 운디네야 감정 이입이 적은 편이라 내색은
없었지만 실프는 좀 달랐다.
<흐에엑… 뭐예요? 그 대답은… 완전히 놀리시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럴리가 있냐는 표정으로 유키에는 말했다.
"왜 제가 그러겠어요. 정체를 가르쳐 달라고 하길래 대답한 것 뿐이에요."
얼핏 그녀의 시각적으로는 거짓말 한 것이 아니다. 사실인 것이다. 그녀의 정체는
이미 말했다 시피 설녀다. 설녀라고 정체를 가르쳐 줬을 뿐인데 놀리는 거라니…
당치 않는 말이었다.
<죄송하지만 설녀라는 것은 당신 딸에게 이미 들었던 바입니다. 저희는 좀더 구체
적인 것을 알고 싶습니다.>
차분한 어조로 운디네가 덧 붙였다.
"구체적인거요? 음… 뭐가 있을라나……."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아! 인간이 아니라는 점."
<…….>
그걸 누가 몰라서 하는 말인가?
"에또… 그리고…… 예쁘다는 점."
자랑하는 건가?
"또, 저처럼 예쁜 딸 아이 있고요."
애 자랑까지….
"음…… 인적이 드문 외딴집에서 산다는 점이랄까요. 집 주소까지 가르쳐 주고 싶
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어서 힘들군요. 어쩠든, 이것 밖에 없는 것 같네요."
<…….>
역시 설화의 엉뚱한 성격은 아무래도 유키에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얼
굴에, 뻔뻔함에, 엉뚱함까지… 안 물려받은 것이 뭘지 앞으로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
<에에엑! 역시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놀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는 대답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유키에는 진지했기에 양손까지 저으면서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제가 왜 당신들을 놀리겠어요."
<그렇다면 질문에 제대로 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대로라고 해 봐야 유키에는 정말로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이게 제대로 된 대답인걸요. 더 이상 해 드릴 대답이 없군요."
<…….>
대체 주인님은 왜 이런 여자를 봐야 하는 느낌을 받았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래도 농담이 아닌 것 같아, 운디네.>
실프는 그녀가 장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운디네도 실프와 똑같은 것을
느껴서 질문을 바꿨다.
<저희가 물어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4대 원소, 수(水), 풍(風),
화(火), 지(地)로 이루어져 있는 혼령입니다. 육체가 없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하
지만 당신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들과 똑같은 기운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정령은 듣고보지도 못했습니다. 저희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운디네는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걸 알고 싶어하는 거였나요?"
운디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라는 표정으로 유키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글쎄요… 왜 그런 것일까요."
<…….>
인내심을 실험하는 대답이었다. 운디네야 무슨 대답을 하든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
관하겠지만, 생각하고 있는 감정을 뚜렷하게 표출하는 실프는 똥십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헤에‥ 아무래도 장난치는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전 물어본 말에 대답 한 것 뿐이에요."
문제는 그 대답이 전혀 쓸모 없다는 것이었다. 운디네는 미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당신도 그런 이유를 모르는 것 같군요.>
운디네는 체념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말은 한치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응에 기대 못한 대답을 해서 죄송하네요."
순순히 그녀는 사과를 건넸다. 분명 그녀들의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닐거란 것을 알
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선뜻 그렇게 물어본 우리들이 잘못입니다.>
도리어 사과를 건넨 운디네였다. 유키에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네?>
유키에는 실프와 운디네를 보면서 더 말 할게 있다는 듯이 덧붙였다. 운디네와 실
프의 시선은 자연적으로 그녀에게로 향했다.
"당신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이런 힘이 느껴지는 것 때문인가요?"
운디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당신과 비슷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서요?"
<네, 그렇습니다.>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유키에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쪽 눈썹이 찡그러졌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운디네와 실프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쯤 유키에는 입을 열었다.
"왜 저만 이상하게 여기시는 지요?"
갑자기 뜻 모를 말을 내뱉자 운디네와 실프는 고개를 갸웃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말 그대로예요. 왜 저만 당신들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
시는지… 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들의 기운은 절대로 인간이 가질 수 없습니다. 아니, 육신을 지
니고 있는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이 기운을 느껴진다는 것은 우리 정령들만이 가
진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들은 우리들 밖에
없습니다.>
운디네의 단언하는 설명에 유키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뚜렷하
게 말했다.
"아니요, 당신들말고 또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의 주인인 검은머리 소년이요.."
<…….>
무슨 소리냐는 듯이 운디네와 실프는 유키에의 얼굴을 응시했다.
"제가 앞서 말했다 시피… 그 소년의 힘을 쉽게 느낄 수 있던 것은 저와 똑같은 냄
새가 났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도 육신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그
당신들과 비슷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요. 그것도 상당한 힘을요."
<하지만 그분은 예외가 됩니다. 그분은 인간 따위하고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비교 자체가 이상한 것 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분류가 되는 것이죠? 육신이 있고 당신과 똑같은 기운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죠?"
<당연히 그분은 인…….>
운디네는 아차 싶었는지 더 이상 내뱉지 못하고 말꼬리가 흐려졌다. 결정적인 모순
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키에는 빙긋 웃었다.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겠죠. 맞습니다, 당신 말이… 그 소년은 인간이 아니
지요. 하지만 알아두세요. 저 역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
"애초에 당신이 주장하고 있던 것은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꼭 육신이 없다
는 거였습니다. 마치 자신들 외 이런 힘을 쓸 리가 없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주인에겐 육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각 못하신 것 같네요. 4대 원소라고 했
나요? 과연 4대 원소라는 것은 누가 정했었는지요? 원소의 종류는 100가지가 넘습
니다. 4대 원소라는 것은 그저 당신들만의 한정된 종류에 불과 합니다."
유키에는 오른손 팔을 들어 올려 빠르게 반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녀 주위에서 갑
자기 억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의 힘은 느껴지지 않아
뭐든지 날려버리는 힘은 없었다. 그저… 빠른 속도로 눈들이 이동하고 있는 것 뿐
이었다.
"제 힘은 이거입니다. 바로 눈이지요. 저는 눈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
습니다."
다시 오른손을 올려 반원을 그리자 억센 눈보라는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눈도 원소입니다. 수, 풍, 지, 화는 단지 4대 원소에 불과한 것, 그중 당신네들이
존재하지 않는 설(雪)의 속성을 저희가 지니고 있는 것 뿐입니다."
<…….>
"육신이 있다고 자연의 속성을 지니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네들이
모르는 존재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운디네와 실프는 아무런 말도 꺼내질 못했다. 틀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
신들은 그저 한쪽으로 치우친 고립된 생각에 얽매여 있는 것 뿐이었다.
카이란도 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이다. 자신들처럼 혼령으로 이루어져 있
지 않고, 육신이 있는 존재다. 자연의 속성을 지닌 존재는 자신들뿐만 아니라는 것
을 왜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이것도 쉽게 답이 나왔
다.
드래곤은 모든 종족과의 비교 자체가 되지 못할 정도로 만능을 자랑하는 존재이니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운디네와 실프와 유키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의 같은 시각 카이란과 혜미가
있는 곳, 카이란은 느닷없이 재채기를 한다.
"엣취!!"
더럽게 콧물이 쭉 흘러나왔다.
"어랏?"
이, 이건 감기…? 어째서?
그런 일이 지난뒤 다다음날…. 왜 다다음 날이냐고? 훗! 저 윗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음날은 카이란이 감기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 감기 걸리면 걸린 것이지
왜 다다음 날이야? 마법은 봉이야? 마법은 그런 단순한 병도 치료 못한데? 라고 딴
지를 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말하자면 약속대로 혜미가 하루종일 그를 간호했기 때문이다. 치료 마법 시전하는
데 누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 속성상 마법을 사용
하면 그의 몸에는 붉은 빛이 일렁이기 때문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마법으로 치료하면 될 것 아니냐는 물음이 올 수 있다. 그 물음에 이렇게 답
한다.
혜미는 그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절대로 혼자 둔 적이 없었다는 것을…….
심지어 화장실조차 가지 않은 그녀였다. 그녀는 초인이라도 되는 것일까? 화장실도
가지 않게. 어쨌든, 그런 연유가 존재했기에 다다음 날이라고 밝히는 거다.
뭐…, 사실 카이란이 납득이 갈 정도로 일리는 있는 핑계를 이용해서 혼자 있게 하
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한번쯤은 병간호를 받고 싶었는지 카이란은 그런 핑계
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하튼 다다음날…, 시간은 다시 저녁으로 흘러갔다. 일행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카이란은 자신의 방으로 곧 향했다.
"그래…?"
<네, 그렇습니다.>
카아란 곁에는 운디네와 실프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유키에와 대화했던
내용을 모두 들려준 상태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군."
카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자신도 운디네와 다를바 없는 생각을 지니
고 있던 거였다.
<저도 어제 그녀의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확실히, 저의 생각이 짧았다는 느낌이
절실히 들었었습니다.>
"뭐, 그런게 아니겠어. 내가 예전에 말 했었잖아. 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가 굉장히 많다고. 이것도 그런 것의 한가지 아니겠어."
며칠전에 자신이 말한 말을 그대로 반영하며 카이란은 너털한 웃음을 내뱉었다.
<왠지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답은 가까이에 있었는데 장작 멀리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지금 그들에게 저 말이야
말로 적절한 딱 어울린 표현이었다. 카이란 역시 실프의 말을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나저나… 그거에 대한 것은 대충 알아냈으니 다음 얘기로 넘어가지."
그녀들에게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제 알았다. 이제 그거에 대한 얘기는
끝났으니 다음 것으로 넘어갈 때가 됐다. 얼핏 카이란에게는 지금 이 얘기보단 다
음 얘기가 더 기대가 서린 표정이었다.
<헤에… 주인님 보니까 지금까지의 얘기는 관심도 없었다는 표정이에요.>
표정을 보면 지금까지 그녀들의 정체는 관심도 없었다는 표정이라 실프는 입살을
찌푸렸다.
"뭐, 그렇게 보이나? 어쨌든, 다음 얘기나 가르쳐 줘."
사실 카이란에겐 설녀들의 정체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으론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지녔기 때문인지 그녀들이 정령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
이 크게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얘기를 하겠습니다.>
카이란이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운디네는 특유의 냉한 표정을 유
지하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그 다음 부분을 회상하기 시
작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저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저희 주인님이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답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유키에에게 운디네는 정중하게 물었다. 다소 실례가 되는 질문일 거라는 생각때문
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대답해 드려야겠지요. 네, 괜찮습니다. "
비밀 같은 숨길만한 것이 없는지 유키에는 가볍게 대답했다. 운디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인간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카이란이 알고 싶어하는 질문. 유키에는 다소 의외의 질문이라는 표정으로 운디네
의 차가운 얼굴을 보았다.
<당신의 외모를 보면 인간과 다를바 없는 외형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딸 얘기를 들
어보면 인간을 절대로 집에 데려오지 말라고 하는군요. 어째서 입니까? 왜 함께 생
활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지내는지요?>
동양적인 외모로 상당히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녀다. 속셈만 있다면 백만장자를
잡는 것도 무리도 아니다. 누구라도 이 여성을 본다면 흠뻑 빠져버릴 정도라 독한
마음만 먹으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게 하지 않고 외딴곳
에서 홀로 지내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길만도 했다. 외모가 괴물처럼 생긴것도 아니
고,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니고, 문둥병 같은 이상한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그녀는 인간들과 교류를 끊고 있었다.
"흐음… 그거 말인가요."
좀 꺼린다는 표정으로 유키에는 입살을 찌푸리며 오른쪽 볼을 긁적였다. 그녀의 표
정을 읽은 운디네는 다시 말했다.
<말하기 곤란하신가요?>
"곤란한 것은 아니에요."
확실히 그렇게 곤란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것이 운디네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
"흐음… 밝힐 수 있는데 생각만큼 기대되는 대답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믿을지 안
믿을지도 알 수 없고요.
무슨 이유 때문이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운디네는 대답을 원한다는 모습으로
침묵했다. 믿든 안믿는 우선은 들어봐야 하니까.
"원하시는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쳐 드려야겠죠. 참고로 기대는 하지 마세
요. 그리고 절대 속이는 것도 아니에요."
숨길 만한 것도 아니니 가르쳐 주지 못할 건 없었기에 유키에는 운디네가 질문했던
물음에 대답했다
"뭐?"
<…….>
카이란은 눈이 크게 떠졌다. 잘못들은 거겠지 라는 표정으로 운디네를 보았다. 하
지만 운디네는 특유의 냉한표정을 일관하며 확인대답을 해줬다.
<사실입니다. 단지 그 이유 만이라고 하더군요.>
운디네의 성격상 농담할 위인은 아니라는 것은 카이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런 대답은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어이가 없던 거였다.
"참나…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어이가 없는 헛바람을 삼켰다. 지금까지 그것 때문에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은 느낌
이 들었다. 손해까지 보는 기분도 느꼈다. 이것은 분명 그 뿐만 아니라 아리아도
같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싶어했으니까.
<그것을 들었을 때 주인님이 어떤 표정이 나올지 안 봐도 선하게 보이더라고요. 저
도 그 대답에 어이없었거든요.>
실프는 팔짱을 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직접 들었던 자신도 어이없는 대답이
었는데 그것을 알고 싶어했던 카이란은 어떤 표정이 나올지 상상이 간다는 표정이
었다. 그리고 그 상상대로 표정이 일치됐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난 좀더 거창한 이유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
런데,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 확실해? 혹시 모르잖아. 말하기 꺼리는 거라도 속이고
있는 것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유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이 섰다. 원래 진짜 이유는 말하기 힘든거라 대충 얼버무린 것일 수도
있다는 예상이 들은 것이다.
하지만 운디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다시 회상에 잠기며 그에게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실인가요?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들과 교류를 끊는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군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운디네는 이채가 짙게 물들며 다시 물었다. 그런 대답을 믿으
라고 한다는 것은 거의 바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유키에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고, 입가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로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기대되는 대답이 아닐거라고요. 저는 사실을 말한 거예요.
제가 왜 교류를 끊고 있는 이유는……."
유키에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 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