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266화 (266/277)

승합차에 탄 카이란은 멍하니 창 밖을 응시했다. 벌거숭이가 된 여러 나무들이 눈을

덮어쓰고 있는 광경이 빠른 속도로 지나쳤다.

지금은 집에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달을 넘게 스키장에서 놀았다. 눈위에서 즐

기는 레포츠 종목은 거의 다 배웠고, 마스터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징하게 매달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설녀(雪女)'라는 유키에

와 설화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처럼 생긴 새로운 종족을 만났었다.

인간과 다를바 없는 외모(그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마치 여신처럼!!!)지만… 보통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듯, 그녀들은 정령들과 똑같은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운을 가진 종족…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길… 속성을 지니

고 있다는 것은 고립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카이란과 운디네, 실프는 그 주장에 납득했다. 확실히 고립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

정했다는 것이다. 세상은 무척 넓다. 그것은 굉장히… 이런 넓은 곳을 그들이 다 안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태초에 인간들 세상에서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

았다. 오직 마법은 드래곤만이 지닌 힘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드래곤 몰래 마법을 배

웠다. 아직까지 인간이 드래곤 몰래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드래곤들은 분명

인간들은 마법을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혀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정체와는 상관없이 한달동안 무척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차 안

에는 화기애애 분위기로 가득찼다. 하지만 유난히 카이란의 얼굴을 즐거운 표정을 찾

아 볼 수가 없었다. 뭔가 놀러갔다 재미있게 놀았다는 느낌이 아닌, 헤어나지 못하는

이상한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백성님 뭐하세요?"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창밖에만 응시하고 있는 그에게 사미가 물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피곤해서 말이야…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 뿐이었

어."

뭔가 있긴 있지만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요? 피곤하면… 푹 자두는 것이 좋아요. 앉아서 자는 것 힘드시죠?"

사미는 툭툭 자신의 무릎을 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카이란의 머리를 살짝 부드

럽게 감싸 안으며 자신의 무릎 위로 인도했다.

"푹신푹신한 제 무릎 배게 베면서 주무세요. 이러면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

"돼, 됐어‥ 그냥 앉은 채로 자면 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특별히 이럴 것까지는 없었다. 단순히 생각할 것이 있었으니 그저 귀찮게만 굴지 않

았으면 됐으니까.

"아니에요! 그냥 앉은 채로 자면 분명 제대로 자지 못 할거라고요. 자고로 잠이란 편

안하게 자야 깨어났을 때 개운하다고요."

"나 참……."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카이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지 않고, 편안히 사미의 무릎

위에 맡겼다. 따뜻하고 푹신푹신 한 기분이 느껴졌고, 여자라서 그런지 기분 좋은 후

리지아 향기가 콧가를 간지럽혔다.

"와아∼ 사미양 동작 한번 재빠르네요."

아리아가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약았다는 말투로 말한다.

"호홋! 바로 옆에 있는 자만의 특권 아니겠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자리를 잘 잡았어

야죠."

"에에∼ 너무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쌜쭉한 웃음을 보이고 있는 사미를 향해 아리아는 황당하다는 어투와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히히! 원래 자고로 사람은 운이 좋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오늘은 아리아 언니가 운

이 없는 것 뿐이니,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요."

민지가 아리아의 머리를 나래나래 쓰다듬으며 위로한다.

"후훗! 민지양 말 맞다나 운이 좋아야 하지요. 하지만 이런 일이 꼭 오늘만 있는 것

은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테니 그땐 아리아양이 차지해요."

혜미도 아리아를 위로한다.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뭘 아쉽다고 백성이 같은 녀석에게 무릎베

개를 해주려고 그래? 백성이가 해달라고 조르면 모를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하나도 위로했다.

"운이 나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까운건 아까운걸요. 분명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거

라고요."

모두의 위로에 불구하고 아리아는 좀처럼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긴 그건 그렇네요."

"그러게요. 다 팔자 아니겠어요."

"운명이지."

"……."

방금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 흘러나왔다. 대체 이 인간들이 위로를 하는 거야? 아니면

놀리는 거야! 아리아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컹 덜컹…-

승합차라서 그런지 그다지 좋은 승차감을 주지 않았다. 아니, 이건 아무래도 불량품

차라고 느껴졌다.

사미네가 어떠한 곳인가!? 호랑이가 와도 우는 아이의 울음은 쉽게 그칠 수가 없고,

곶감을 줘도 달래기 힘들 때 사미네 조직만 말해도 언제 울었냐는 듯이 단숨에 뚝 그

치게 할 수 있는 집안이다. 그런 조직인데 가난하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미 나왔듯이 사미는 굉장한 부자다! 그것도 엄청! 무지하게! 따봉!!-랄라라∼- 할 정

도로 최고의 부자가 한심스럽게 일반 승합차를 몰고 다니겠는가!? 당연히 아니고, 지

금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최고급 밴이다.

밴이라면 최고의 승차감을 자랑해야 정상이거늘 어찌 왜 이렇게 덜컹덜컹거리는지…

이것은 확실히 불량품이다.

"……."

뭐든 민감함을 자랑하던 카이란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 흔들거려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치 꼭 차가 흔들거리고 있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그저 멍하

니 사미의 무릎을 배고 있는 상태에서 차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만간 당신에게 큰 일이 벌어질 겁니다.'

설녀라고 불리는 유키에가 자신의 귓가에 대고 한 첫말이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카이란은 우스웠다. 큰 일이 벌어져봐야 자신에게는 아무것

도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희 설녀들은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한다면 예견(豫見)

이라고 볼 수 있군요. 하지만 볼 수만 있지 그게 언제 닥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10년 후가 될 수 있고, 100년 후가 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내일 벌어질 수

도 있습니다.'

예견을 할 수 있는 종족이라니… 카이란은 새로운 종족으로도 모자라 이런 능력까지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웠었다.

'뚜렷한 영상처럼 보지는 못합니다. 단지, 그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면 느껴질 뿐입니

다. 그래서 그게 며칠후의 얘기인지 자세히는 모르지요. 그렇지만 단 확실한 것은 누

군가가 분명 당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날 거란 것이죠.`

감히 드래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긴 하는 건가?

유키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세세한 것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단지 확실

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말꼬리가 흐려짐과 동시에 흘끔 웃고 있는 사미, 민지, 혜미, 아리아, 하나들을 보았

다. 그리고 냉정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앗아버릴 정도로 큰 위험이라는 거지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카이란은 표정이 굳어버렸다. 유키에는 그런 카이란의 표정을

보았는데도 신경 쓰지 않았다. 유키에는 조금 귓가에 떨어지면서 방금 전과 다름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다 시피 언제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당신 스스로가 어떻게 할지 달려 있

을 겁니다. 운명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지만 결과는 알 수가 없

습니다. 결과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까지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유키에는 귓가에서 떨어졌었고, 다른 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러

갔었다.

"……."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카이란은 잘 알 수가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위협…….

카이란은 그녀가 말하는 위험의 존재가 마족 케르프가 말하는 '그분'이라는 놈과 동

일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는 그 둘밖에 없으

니까.

대체 어떤 인물일까…? 케르프야 애초에 자신의 상대가 되질 않으니 절대로 그는 아

니었다. 실력을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유래를 본다면 마족이 성룡 이

상급 드래곤을 이겼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케르프가 실력을 숨겨오고 있다는 것

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의 맞수라면 같은 종족인 드래곤밖에 없다. 드래곤보다 더 최강의 종족은 아마도

신뿐이리라. 하지만 카이란은 다른 기타 종족의 비해 월등히 마력과 마나를 자랑하는

최강의 전투 종족인 레드족이다. 그리고 윔급이다. 세월만 말해도 3600년… 웬만한

종족은 그의 상대가 되질 못한다.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드래곤 족은 성룡 5마리가 전부였다. 인간이야 원한 가질 놈들

이 한두 명이 아니지만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드래곤의 힘을 능가한다는 것

은 생각할 가치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지금쯤이면 원망

을 가진 인간이 살아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제외된 것이다.

그렇다면 5마리의 성급 드래곤들 밖에 없다. 하지만 5마리 전체가 이 세계에 떨어질

리가 없고, 케르프의 말에 의하면 '그분'이라고 지칭했지 '그분들'이라고 말하지 않

았으니 상대는 단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마리의 성룡중 한 마리라는 뜻인데 과연 어떤 놈일까? 아무래도 600년만에 태어난

헤츨링의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블루 드래곤 녀석일 것 같았다.

'잠깐, 한 놈 만 와서는 나의 상대가 되질 않아.'

상대가 되긴 하는 것일까? 성룡은 절대로 웜급을 이길 순 없다. 지금의 그놈이라면

지금 케르프를 간신히 이길 정도의 힘밖에 없다. 그러니 카이란에게 이길 확률은 거

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전무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단지 케르프가 알고 있는 또다른 적인 것인가? 젠장! 이렇게 되

선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잖아! 이런 채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수수께끼의 적

에게 갑작스런 공격을 받아서 당할 것만 같았다.

무섭지는 않았다. 어차피 부딪칠거면 자신 역시 최선으로 상대해주면 되니까. 그래서

두려움 따윈 카이란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다.

카이란은 시선을 돌려 사미를 보았다. 활짝 웃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채 사미는 다른 이들과 얘기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

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아리아, 민지, 혜미, 하나를 보았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앗아버릴 정도로 큰 위험이라는 거지요.'

그녀의 말 중 한가지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앗아버릴 정도로 큰 위험… 즉, 그녀들

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젠장! 이들을 순순히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수께끼의 적이 두렵기 시작했

다. 예전의 카이란 같았으면 겨우 한순간의 유희에 불과한 이들이 어떻게 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로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는 뜻이었다.

'젠장…!'

천하의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군. 처음 이세계에 오기 전에도 자존심을 버리고 도

망쳤는데… 지금은 정체 모를 적을 향해 두려움을 떨어야 하다니….

참담한 기분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는 건가요?"

정신을 차렸을 땐 혜미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건너편 좌석에 있던 혜미가 사미 옆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으니 카이란은 그냥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대답

은 없고……. 그렇다고 주무시는 것도 아니고…."

지금 둘러보니 혜미만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미, 민지, 아리아, 하나

까지 모두 시선이 카이란에게 쏠려 있었다. 아마도 이런 광경이 자신을 몇 번이고 불

렀다는 의미이리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뭐를 깊게 생각해서 그런 것 뿐이야. 고민 같은 것

은 아니라고."

이미 표정은 무슨 고민에 빠진 얼굴이라고 써 있었지만 그는 대충 깊게 생각한 거라

도 얼버무렸다. 그러자 민지는 놀란 표정을 그리며 감탄을 터뜨렸다.

"와! 오빠가 깊은 생각을!? 이거 놀랄 '놀'자네. 세상이 망하려고 하나…? 세상살이

복잡함을 모르던 오빠가 사람이 부르는데도 모를 정도로 깊게 생각할 때가 있다니…

이건 필히 세계 7대 불가사의와 버금가는 것 중 하나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민지의 눈에는 그렇게까지 해석되나 보다.

"어이… 이 녀석……."

울컥 민지를 향해 분노의 눈초리로 째려보았지만 반박조차 할 수 없게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냥 아무 말 말자 라는 생각으로 입을 다

물었다.

"후훗∼"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중 혜미만이 웃고 있었다. 그 마음 이해한다는

식으로 혜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벌써부터 수험생 걱정을 하는 건가요?"

곧 있으면 18살 고2의 생활을 탈피하면서 고3으로 올라간다. 노는 것도 지금으로써

마지막… 앞으로 더욱 학업에 치중 할 시기라 카이란의 모습이 혜미에게는 고3으로써

의 수험 걱정을 하는 것으로 멋대로 해석됐다.

"에?"

카이란은 뭔 뜻인지 모른 다는 표정으로 어벙벙한 표정으로 얼빵한 소리를 내었다.

"아아∼ 그리고 보니 우리들도 올해만 지나면 수험생이구나."

이제부터 자신도 수험생이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은 사미였다. 하나도 사미와 비슷

한 기분을 느낀 상태로 말했다.

"그러게… 이제부턴 여느 때와 다르게 학업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건가? 노는 것도

올해로 끝나겠네."

앞으로 1년 동안은 죽어라 공부만 해야만 하는 고3 수험생. 그런 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느꼈던 것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더욱 학업에 치중할 때가

온 것이라 씁쓸한 기분이 느껴졌다.

민지는 의아하단 표정으로 혜미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혜미 언닌 지금까지 수험생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보통 수험생이라면 언제나 공부 공부하면서 앞으로 대비할 수능시험을 걱정하기 마련

이었다. 그래서 4계절은 물론이고 등교길 때도… 하교길때도 심지어 화장실이나 심부

름 갈 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손에는 교과서를 들고 다녀야 할 시기다

. 하지만 혜미를 지금까지 봐 왔지만 그런 모습은커녕 너무나 느긋하게 보여 수험생

이라는 느낌을 전혀 자아내기 힘들었다. 그만큼 혜미의 모습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보지 않을 때 공부를 하는 것이 원래 고3 수험생들의 특

기예요. 그렇게 간단한 일을 굳이 티를 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

…아마도 그런 특기는 혜미만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언니는 대학은 어떻게 된 거예요? 포…기인 거예요?"

신년 둘째 달이다. 수험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대학 발표도 다 끝난 상태였다. 혜미

는 수능을 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는 것은 즉 대학을 포기했다는 의미도 있었으

니 역시 집 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민지는 조심스레 혜미의 눈치

를 살폈다.(사실 이거 쓴 놈이 혜미는 고3이라는 것을 잊은 상태고, 수능 날이 언제

라는 것도 잊은 상태라 억지로 끼어 맞춘 것이다 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

을 밝혀둔다.)

"후훗…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살풋이 웃으면서 혜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다면은요?"

혜미는 가볍게 대답했다.

"후훗∼ 이미 전, S대 수시로 합격 된 상태예요. 그러니 수능같은 것을 볼 필요는 없

죠."

그렇다! 혜미는 이미 수시로 대학에 합격 된 상태라 수학능력 시험을 볼 필요 없었다

.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채색겸비까지 모두 갖추었는데 누가 대학에서 부르지 않

을까? 더군다나 보통이 아닌 엄청난 미인이기까지도 하는데…. 그녀정도면 추천 입학

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녀를 놓친다면 국가적까진 아니더라도 대학교 손

실이 클 것이다.

"헤… 그런 거였나요."

"네, 그런 거지요."

대충 수긍하는 민지를 향해 혜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기서 하나가 나서서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혜미 언닌 제가 알기론 전교에서 20등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거 가지고는

S대 수시 입학은 힘들지 않나요?"

대학은 총 F대학이 있고, E대학이 있고, D대학이 있고, C대학이 있고, B대학이 있고,

A대학이 있고, S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순서대로 좋지 않은 곳부터 최고 좋은 대학으

로 분류한 것이다. 그러면 맨 끝에 S대학이 나왔으니 혜미가 합격한 곳은 최고 명문

대라는 것만 알아두도록 참고하자. 뭐? 세상에 그런 대학이 어디 있냐고? 고유명사를

말하라고? 픽션에서 무슨 세세한 것을 따지려고 그러나….

하나가 알고 있기론 혜미는 전교 1등이 아니다. 그렇다고 10등도 아닌, 지난번에 14

등을 한 것으로 기억했다. 지지난번 시험 때는 23등을 했으니 평균적으로 20등정도로

잡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지난번 시험 성적을 하나가 알고 있는지는 미스터리다

.

어쨌든, 전교 10등 안에 든다면 모를까… S대학쯤에 수시로 합격하려면 최소한 그 정

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자고로 혜미의 성적으론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후훗∼"

혜미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한마디만 했다.

"눈 앞에 있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에요."

"……."

여기서 단번에 그 의미의 파악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대략 짐작이라도 했는지 하나는 '역시'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팔짱을 낀 상태로 다른 이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이제부터 선배를 볼 수 있는 날은 이번 겨울방학까지네요."

아쉽다면 아쉽다고 해야 하나…. 언제부턴가 이런 멤버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

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중에 혜미가 빠진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착잡해졌다.

"후훗! 아쉬워하니 기분 좋네요."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면서 혜미는 카이란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졸업식은 언제예요?"

하나가 질문하자 뭔가 중요한 것을 알았다는 마냥 모두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천천히 혜미에게로 시선이 돌려졌다. 당사자인 혜미는 담담히 미소를 유지하

면서 손가락을 세어보며 계산하기 시작했다. 모든 계산을 끝마친 혜미는 다시금 빙긋

미소를 그리며 태연약자하게 말했다.

"오늘이네요."

뜨어!! 하는 표정이 되더니만….

"똘마니 밟아욧!!!"

운전수의 목을 조르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지도 방금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보니 나도 오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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