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270화 (270/277)

빙긋 웃으며 혜미는 능청 떠는 카이란을 보았다.

"하긴요, 그렇긴 하겠네요. 그나저나 굉장히 예뻤죠? 그 불꽃들이요."

"네, 예뻤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 여름때 한 것보단 못한 불꽃이지 않아요? 전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후훗! 그래요? 전 비슷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오히려 그 불꽃들의 화려한 움직임에

감탄해버려서 그런 것 느껴지지도 않던데 대단하네요, 백성군."

"하핫! 원래 제가 한 대단 하는 것 아시면서 뭘 새삼스럽게요. '매사에 항상 신중해

서 사물을 살펴라' 라는 말은 저의 신념 아니겠어요."

지가 저지른 일이고, 한 두번 본 것도 아니라 당연한건데 저런 Dod뻥‥ 정말로 잘도

깐다.

"후훗! 하긴요, 그런 점이 백성군 답죠.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마지막 라스트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네, 그렇긴 해요. 엄청났죠. 그 장면이 아마도 이 이벤트의 메인이었을걸요."

"그런가요? 저 역시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전 정말 놀랐어요. 얼마나 멋지

던지 입이 벌어졌다니깐요. 무슨 글씨를 쓰기 위해 꽃들이 움직이는 것이 가장 인상

적이었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여기 세계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니까요."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글자 중 '축하해요' 라는 글자까진 읽었는데…

그 앞에 있는 글자는 못 읽겠더라고요."

"아∼! 그 글자요? 앞 글자는 당연 당빠로 선배 이름이 들어갔죠. 정확히 해석하자면

'혜미선배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해요' 라 썼었어요. 아무래도 졸업이니 그런 말은 기

본 아니겠어요. 그나저나 그걸 읽다니 대단한걸요. 그 글자는 에스란 이라는 큰 대륙

에서 만든 글씨예요. 멍청하게 어리석은 과오를 저질러 사라진 나라지만 그나마 그

나라 글자체가 예뻐서 사용한 것이에…… 흡!!"

아차 하면서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쌀처럼 주워담을 수 없었다

. 역시 단순 구조물로 되어 있는 카이란의 두뇌, 이미 그는 혜미의 언변에 넘어가 버

리고 만 것이다.

카이란은 슬금슬금 혜미의 눈치를 살폈다.

"후훗! 왜 입을 막고 그러세요? 뭐 안 좋은 것이라도 드셨어요?"

지금까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혜미는 기분좋은 웃음을 내뱉었다.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을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다 들통났으니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카이란

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사실대로 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몰래 설치를 했다고

해도 지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설치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었

다.

"고마워요."

"……."

그게 끝? 좀더 다른 말은? 어떻게 한 거예요 라든가 어떤 장치를 사용한 거예요 라든

가 그 불꽃들을 어떻게 움직인 거예요 같은 질문 없이 꼴랑 그것 하나? 어리둥절해진

카이란이었다.

"후훗!"

혜미는 눈치 챘었다. 그런 이상한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군지를…. 그렇지 않다

면 갑자기 그런 현상이 일어난 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그림은 아무래도

그림이 아닌 무슨 문자같은 느낌이 들었다. 졸업식에서 당연히 축하한다는 말은 기본

일 것 같아서 은근슬쩍 지레짐작으로 말해 본 것이다. 덕분에 그는 넘어가 버렸고,

자신의 입으로 범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저… 고맙다는 말 정도는 당사자에게 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것이 다라서 더 이

상 다른 말은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어떻게 했는지는 궁금은 했다. 어떻게 그런 단기간에 저런 것을 설치 할 수 있

었고, 어떻게 쩡쩡한 하늘을 어둡게 할 수 있었는지 물어볼 것은 굉장히 많았다. 평

범한 인간이든 대단한 인간이든 굉장한 인간이든 그런 현상을 본다면 누구나 그런 질

문 사례가 터질 것이니.

하지만 자신에겐 물어볼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설사 그가

인간이 아닌, 마법사라서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겐 상관없었다. 그 불꽃들은 굉

장히 아름다웠고, 예뻤다. 시각적으로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할까?

어떻게 했냐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에겐 누구를 위해 해줬냐가 의미가 컸다.

덕분에 졸업식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훗날 졸업식을 기

억한다면 분명…… 분명…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먼저 기억이 날 것 같았다.

"그러는 의미에서……."

혜미는 살짝 얼굴이 붉게 물들어 진 채 수줍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이것은 축하한다는 저의 보답의 의미예요."

"네?"

차마 무슨 말인지 반문도 하기 전에 혜미의 행동이 더 빨랐다.

-쪽!-

쪽? 무슨 소린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오직 느껴지는 것이라면 오른쪽 볼에 따뜻한

그녀의 온기와 향긋한 향수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밖에 없었다.

자연적으로 카이란은 오른쪽 볼에 손이 올라간 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후훗! 이것은 사미에게 비밀이에요."

부끄러운 듯이 붉게 물들어 버린 그녀는 쫑긋 윙크를 하며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

술을 붙였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의 챕터를 무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은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세번 가서 어느덧 혜미와 민지의 졸업식이 끝 난지 한 달이 지났다. 정말이

지 흐르는 강물처럼 잘도 잘도 흐른다.

"엑! 모레가 개학이잖아!!"

이른 오후부터 지붕 들썩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한 가정 집안이 있었으니… 검은머리

에 눈매 빼곤 특정한 외모라곤 하나도 없는 인간이 달력을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

다. 그는 다름 아닌, 5마리 성룡한테 다굴 당해 그대로 뒈져버린 뒤 이백성이라는 인

간의 몸에 영혼만 들어온 카이란이었다.

"어이구…!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여튼 바보 오빠 알아줘야 한다니까."

흥 하면서 팔짱을 낀 채 한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16세… 아니, 17세가 된

소녀. 무릎까지 오는 귀여운 나팔 치마가 외모에 걸맞게 참 잘 어울린 소녀, 카이란

의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민지였다.

"어째서 이럴수가… 그저 만날 만날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가끔 아침 산책 운동하

고, PS2같은 게임이나 하고, 몸풀기 운동에 똘마니들 봐주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산책에 수면밖에 안 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젠장! 역시 이런 하루 일과는 쓰레기

야!! 충실하게 보내지 않으니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

그 정도면 꽤 충실한 하루를 보낸 것 아닌가…? 라고 민지는 생각했다. 꼭 예전 TV에

나왔던 플레이 모빌 CM선전을 듣는 것 같았다.

"으으… 모레부터 그 지겨운 학교라는 곳에 가야 하는 건가?"

"왜? 뭐가 어때서, 난 그다지 지겹지 않은데. 오히려 새학년, 새학기 올라가니 두근

두근 거리기까지 하는 걸 뭐. 하여튼 사상이 불순하니 학교라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

지."

은근슬쩍 비꼬는 듯한 말투에 카이란은 쌜쭉한 눈으로 민지를 바라보았다.

"메야? 감히 이 오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후후훗…!"

의기양양하게 카이란은 코웃음으로 비웃는다.

"뭐야? 그 기분 나쁜 웃음은?"

"후후후후훗! 오늘 그러지 않아도 너의 숙제나 도와주려고 했더니… 너의 그 말 때문

에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져서 그런 것이쥐."

오늘의 일과는 언제나 사랑스럽게만 보였던 녀석이 오늘따라 얄밉게만 보이고 있는

민지의 숙제를 도와주려는 계획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렇게 시

비를 거니 카이란은 숙제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 것이다. 분명, 이 녀석

의 평소대로 패턴이라면 방학 끝나기 하루나 이틀 전날에 이나즈마(いなずま-번개-) 숙

제 치기가 시작된다.

"훗!"

"메냐? 그 비릿한 코웃음은? 설마 숙제를 다했다는 의미냐?"

콧방귀를 흥 끼며 가슴까지 탕탕치면서 호탕하게 내뱉는다.

"당연하지! 난 이제부터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간다고! 그러니 중학교 숙제가 있을

리가 전무하잖아!"

민지는 이제부터 중학생이 아니다. 고등학생으로 레벨 업이 된 것이다! 선생도 지금

까지의 중학교 선생이 아닌, 모두 새로운 선생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방학숙제를 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렇군. 그래? 이런…."

한방 먹었다는 듯이 카이란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민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낀다.

"으그! 지금 오빤 내일 내 입학식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겠군."

"입학식?"

"응! 내 입학식! 오빠는 그것도 잊은 상태였지!?"

카이란은 오르쪽 볼을 긁적였다. 그 행동의 의미는 아마도 모르고 있었다 라고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으그!"

그 모습에 민지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어쟀든, 그것은 그거고… 으으… 그렇다면 괜히 빨리 일어났네… 으∼읏샤!"

기지개를 크게 키며 카이란은 어슬렁어슬렁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가는 거야?"

그것을 본 민지가 카이란의 등을 보며 물어본다.

"어디긴 어디겠냐? 당연히 내 방이지."

"방은 또 왜?"

"괜히 아침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지. 다시 잠 보충하러 가는 것 당연한 것 아니겠어?

모레부터 그 지겨운 학교에 가는데 오늘 푹 자둬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 것 아냐."

오늘 일과의 계획은 민지 숙제나 봐주는 것. 일부러 그것을 위해 그 잠 많은 카이란

이 아침 일찍 일어난 것인데, 숙제가 하나도 없다고 하니 도로 아미타불이다. 마침

모레부터 학교 가는 날이니 잠을 푹 자두는 것이 오늘로써 마지막이라 일과를 다음날

아침까지 수면을 취할 것으로 변경한 상태였다.

"잠깐!"

갑자기 카이란의 허리를 버럭 붙잡고 소리쳤다.

"뭐, 뭐야?"

"뭐긴 뭐야!? 감히 어딜 또 자려고 해!? 그러지 않아도 오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

려는 것 아냐?"

"누, 누가 너 같은 발육부진 꼬맹이와 같이 지내려고 하겠냐?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우쒸! 발육부진이라니!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다니! 잠자는 사자의 X

X털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과연 XX털이 뭘지 각자 상상에 잠기도록 하자.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그녀답지 않게

큰 한숨을 내쉬며 주체성 인내심을 길렀다.

"후∼ 그래도 마음씨 좋은 내가 참지. 어쨌든, 오늘 오빠의 일과는 나의 숙제를 봐주

는 거였잖아. 그렇다는 것은 즉 오늘 나와 하루종일 같이 있을 거라는 의미니까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잖아."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이라 카이란은 반박할 구실이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나를 위해 투자를 하란 말씀."

"윽…."

카이란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찌보면 민지 말이 맞았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없

던 것이었다.

"마침 내일은 입학식에다가 모레부터 개학이고 해서,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려고 쇼핑

이나 하려고 해서 누구를 데려갈까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는데…."

"그게 딱 내가 걸렸다는 것이겠군."

지금까지 몰랐는데 민지는 집에서만 입는 간편한 옷이 아닌, 예쁘게 차려입은 외출복

이었다. 딱만 봐도 어디를 나간다고 써 있는 상태였다. 이것을 미리 봤었다면 아마

숙제를 봐주겠다는 말을 안 했을 텐데… 카이란은 안타까운 탄성을 속으로 내질렀다.

"응! 그렇지. 딱 타이밍이 맞았다고 할 수 있지. 히힛."

민지는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게 웃어보였다.

아아∼ 귀찮 귀찮… 젠장 젠장! 영락없이 따라 가야 하는 것인가? 카이란은 가기 싫

다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지만 당사자 민지는 방긋 방긋 웃는 채로 가만히

그 표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뭐, 쇼핑정도 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카이란은 민지

쇼핑을 도와주는 것 만큼은 돈을 준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을 정도였다. 카이란이 이

곳에 온지는 어언 1년이 다되어 간다.(10권째인데 겨우 1년… 연재 시작한지 어느덧

2년하고도 반년… 뭔가가…… 클럭!) 그 1년 사이에 민지와 쇼핑 가는 간 적이 없었

을까? 물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민지와 쇼핑을 하면 카이란의 오늘 일과는 그걸로 끝이다. 대부분 아이쇼핑을 하러

그렇게 많이 돌아다닌다. 대충 1시간을 돌아다녔다면 아마 5분정도만 쉬고 남은 시간

은 모두 걷는다. 그냥 대충 사면 될 것 같다가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또한 마냥 보는 것만도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덕분에 다리는 다리대로 아프고, 마음은 마음대로 피곤해서 아프다. 그래서 가능한

민지와 쇼핑만큼은 절대로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카이란이었으나, 오늘 된통 잘못 걸

린 날이었다.

"자자! 그럼 출발하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