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271화 (271/277)

활짝 웃으면서 민지는 얼른 가자는 행동으로 손가락을 하늘로 방향을 가리켰다.

"……."

"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민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바보냐? 너 지금 오빠의 모습이 뭘로 보이고 있는 거야?"

"흐음… 멋진 잠옷이네."

카이란은 지금까지 씻지도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았고, 밥도 먹지도 않았다. 지

금 시간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상태지만 이제 카이란은 침대에서 일어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의 모습은 당연히 외출복이 아닌, 잠옷상태였다. 심지어 외출

할 준비조차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 모습으로 가길 어디를 간다는 거야?

"알면 됐어."

알면 됐으니 카이란은 이제 씻으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는 순간

민지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 가긴 어디 가겠냐? 당연히 옷 갈아입으러 가는 거잖아."

샤워야 어제 저녁에 하고 잤으니 대충 얼굴은 씻으면 된다.

"왜? 그 패션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

"…농담도 정도 것 해라."

민지는 검지손가락으로 설레설레 저으며

"그래서 오빤 아직도 멀었다는 거야. 패션은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오빠의 잠옷 패션 이슈가 되어서 뜰지 누가 알아? 그러니 그러는 채로 가는 것도 괜

찮을 듯 싶어."

"……."

분명 민지 말대로 뜨긴 뜰거다. 다만 문제는 패션 이슈로 뜨는 것이 아닌, 이상한 녀

석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의 이슈로 뜰 것이다. 그리고 조금 후에 하얀차가 와서 하얀

병원에 데려가겠지.

"내 패션은 따라가는 거야."

더 말하기 전에 카이란은 재빨리 욕실로 향했다.

뽀대나는 옷을 입고 모든 채비를 갖춘 카이란은 민지와 함께 도시 중심가를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넌 그 옷으로 괜찮겠냐?"

"응? 뭐가? 내 옷이 어때서?"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무릎까지 오는 나팔치마에 하얀 색의 뽕송뽀송 털이 있

는 폴라티를 입고 있었다. 겉옷은 아이보리색 파카 잠바를 입고 있었지만 무릎까지

오는 치마 때문인지 상당히 춥게만 보였다. 아직은 3월 초다. 3월초면 아직 상당히

추울 때라 옷을 두텁게 입고가야 할 시기다.

"치마가 너무 짧지 않아?"

정작 카이란은 이상한 것을 물어본다.

"별로… 그다지 짧지 않아. 그리고 이 정도면 평균적인거야."

자신의 치마를 내려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번뜩 다른 것이 스쳤으니… 민지의

눈은 갑자기 음흉한 눈초리로 변모되며 바라본다.

"오빠 저질이야. 어떻게 동생의 그런 곳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켁! 어째서!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지!? 카이란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무, 무슨 소리야! 그냥 단순히 추울 것 같아서 물어본 것 뿐이야!"

"난 또,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보면 될 것 같다가… 괜히 사람 헷갈리게 하

고 있어. 괜찮아, 괜찮아. 별로 춥지 않아. 스타킹 신은 상태니 문제없어."

민지는 자신이 신고 있는 아이보리색 스타킹을 살짝 늘어뜨리며 보여주었다.

"저런 얇은 것으로 되?"

딱 봐도 종이 한겹 정도 밖에 안되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하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

일 수 밖에 없었다.

"응! 안 추워. 보기엔 춥게 보이지만 상당히 따뜻해."

"그래?"

"응."

그다지 따뜻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정강이에 있는 저 늘어뜨린 양말 같은 것은 뭐야? 그런 것을 신고 다니다

니… 아직 애구나 애. 나중에 집에 가면 그런 것은 버려."

민지의 양쪽 발 정강이에는 긴 양말이 늘어나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기 흉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봐도 못쓰는 양말 같았다.

"쯧쯧… 이래서 구세대란 어쩔 수 없다니깐. 이건 양말이 아냐. 루즈삭스라는 것인데

멋으로 신고 다니는 거지, 늘어난 양말이 아니라고. 아직 한국에는 뜨지 않았지만 일

본의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대부분은 이런 걸 신고 다닌다고. 하

여튼 오빤 패션을 몰라요, 패션을…."

"그게 패션이냐? 내 눈엔 그저 양말이 늘어나져 있는 걸로 보인다."

"으이구…! 오빠가 이렇게 늙다리였을 줄이야. 차라리 광고를 하지, 광고를. 훠이 훠

이∼ 노인네는 저리 가쇼."

저리 가라는 식으로 민지가 손짓을 한다.

"윽! 오빠 아직 안 늙었다. 늙다리 취급 마라."

원래 사실상 세계 최고의 늙다리가 카이란이다. 3600살이나 먹었으니 늙다리가 아니

고서야 뭐겠는가?

"전혀, 나에겐 오빠가 지금 늙다리로 밖에 안보여."

"그래? 그럼 이 늙다리 오빠 오늘 너 따라 안가도 되겠구나. 민지 체면도 있고, 이런

늙다리가 따라가면 이런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레벨이 맞지 않아 재미없을 것이잖아.

그러니 안가도 되는 거지? 그럼 나중에 집에서 보자고."

빠이빠이 하는 손짓을 하며 카이란은 그녀와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잠깐 오빠!"

농담이 아닌 진짜로 집에 가려고 하는 카이란의 모습에 깜짝 놀라 민지는 버럭 팔을

잡았다. 당연히 그녀가 자신을 잡을 거라는 것을 안 카이란은 씰룩 입가에 비릿한 웃

음기가 감돌았다.

"왜? 뭐 때문에 나를 붙잡은 것이지? 이런 늙다리 오빠 필요 없잖아. 난 너를 위해

그런 것 뿐인데… 왜 그러는 거야?"

비릿한 웃음기가 거슬렸는지 하나 남은 자존심이 그녀의 심기를 자극시켰다.

"물론 그렇지…!! 그래도 쇼핑이란 혼자 가는 것보단 둘이 가는 것이 좋잖아.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빠를 데려 가는 것 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는 없어!"

"…내가 지푸라기냐?"

오히려 지푸라기 취급하니 더더욱 기분이 나빠진다.

"당연하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망각한 채 민지는 다부지게 큰소리로 대답한다.

"……."

그 뒤 말 없이 카이란을 그녀의 손을 정중하게 내려놓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유유히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실수야!!"

마치 떠나가는 낭군님을 붙잡으려는 장면을 연상케 느닷없이 석양 배경이 쫙 깔리며

유유히 멀어져만 가는 카이란을 향해 민지는 달렸다.

그 후… 카이란의 기분을 풀게 하기 위해 오만아부를 떨었다는 전설.

이야기야 어찌됐던 그들은 도시 중심가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인간들

이 한눈에 훤히 보였다.

카이란과 민지는 버스에 내려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간 곳은 거리 쇼핑이었다

. 쇼핑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단순히 구경하는 것이 다였다. 쉽게 말하자면 아이

쇼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인파들… 많은 인간들… 정말이지 북적북적 했다. 다들 모레가 개학식에 새학기

시작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기분을 느껴보려는지 50%가 학생들이었다.

처음 카이란은 민지와 이곳에 왔을 때가 기억났다. 아마도 그때가 아리아를 처음 봤

을 때였을 거다. 예전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무척 놀라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가

지각색의 인간들… 파란 머리, 노랑머리, 귀에 이상한 것을 다니는 놈, 코에 이상한

것을 걸고 다니는 놈, 심지어 배꼽까지 이상한 것을 걸고 다니는 놈도 봤었다. 무엇

보다 여자들이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는 다는 것이 가장 이상했다. 자신의 세계에선

여성들이 바지 입는 것은 가히 드물다. 아니, 입긴 입더라도 바지밖에 긴 스커트를

입는 것이 풍속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카이란의 세계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패션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이곳에

오면 낯선 이질감이 난다. 처음엔 신선했었다. 하지만 처음일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익숙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괴리감이 생겨 버렸다. 또한 이곳은 옷 입는 패션이

나날로 바뀐다. 어쩌다간 한달만에 유행이 바뀌기도 했다. 그럴수록 카이란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더더욱 이곳에 발을 딛기 싫었다.

마치… 아직까지 시대의 흐름을 정착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이곳에 오기 싫어서 민지와 오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힘든 것이야 마

법을 이용하면 그만인데 다리가 아파서 힘들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응

은 해야만 했다. 어떻게 자신의 세계에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적응을 못하면 이 시계

에 사는 것이 힘들지도 모를 테니까.

사는 것은 손꼽을 정도로 별로 없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많은 것

은 아니었지만 쓸데없이 과소비는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꼭 필요 할 것 같은 것만

콕콕 찍어서 사지 절대로 쓸데없는 낭비는 하지 않는다. 가끔 충동구매가 있긴 있지

만 가끔일뿐이지 자주는 아니다.

"와아! 이거 예쁘다!"

순금은 보석방 쇼윈도에 보이고 있는 예쁜 무늬가 있는 목걸이를 보며 민지는 감탄을

내질렀다. 딱 봐도 고가품 목걸이라는 것을 광고하고 있었다.

"오빠 이거 너무너무 예뻐."

민지의 눈은 마치 1000캐러(Carat) 보석을 단 것 같이 눈이 반짝 반짝거리고 있었다.

"……."

정작 카이란은 그 말을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눈의 의미를…. 그녀는 지금 '사줘∼ 사줘∼ 사줘∼ 사줘∼ 이

거 가지고 싶어!' 라고 필살 메카라 빔을 쏘고 있는 중이었다.

쓸데없는 과소비는 없지만 정작 문제는 사달라고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랄까. 어쩌면

이것은 과소비보다 더 심한 것일 수도 있다.

"오빠 이것 보라니깐. 정말 예쁘지 않아? 이거 정말 예쁘게만 보여."

"…… 지금 이럴 시간이 어딧냐?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 다른 곳으로…."

최선의 방법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 그것만이 민지 필살 사줘 어택을 피할 수 있

다.

"정말 치사하네! 귀여운 동생이 예쁘다고 하면 사줘야 하는 것이 정상 아냐!? 오빠로

써 자각이 부족해!"

치사하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는 카이란을 향해 민지는 불만이 많은 자세로 두 손

을 허리에 댄 채 버럭 큰소리 친다. 카이란은 눈이 도끼눈으로 바뀌며 빤히 그녀를

응시했다.

"뭐야 그 불만 어린 눈은?"

"너 말야… 좀 너무 한 것 아냐?"

"뭐가!?"

"세상 다 뒤져봐라 저런 고가품 목걸이 사주는 오빠가 있는지…. 돈이 한 두푼 하는

것이면 말을 안 해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딱 봐도 저 목걸이는 60만원 이상 정도 하는 목걸이다. 학

생에게 있어서 60만원은 아르바이트 한달 월급정도다. 누가 한달치 월급을 동생에게

사용할까? 물론 근친상관을 연상케 애남매(愛男妹)처럼 동생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쭈∼우! 아끼면 그 정도 돈은 아깝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은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는 것이다.

"오빤 돈 많잖아! 그러니 이 귀여운 동생을 위해서 사줘도 괜찮잖아. 그리고 내일 입

학인데 치사하게 입학 선물도 안 사줄 생각이야!!?"

이제는 내일을 거론하며 바락 큰소리친다. 사실 저런 것 100개 사줄 수 있을 만큼 돈

은 넉넉하게 있지만 드래곤 특유의 좀생이 성격 때문인지 스스로 내키기 전까진 돈을

쓴다는 것이 싫었다.

"귀여운 것 다 얼어죽었네! 지난번에 그 목걸이도 얼마짜린데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

? 그거 사준지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추가로 그것 때문에 된통 사미와 아리아에게 한동안 시달린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

하면 여전히 오한이 저릴 정도로 끔찍했다.

"그래도 사줘 사줘 사줘 사줘 사줘!! 이거 정말 귀엽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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