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함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까?"
살 것도 다 산 것 같기도 하니 민지는 카이란에게 뭘 할지 물어봤다. 음료수 한 모금
을 마시고 카이란은 대답했다.
"나에게 물어보면 어떡해? 그것은 네가 결정해야지 내가 결정하냐?"
오늘 여기로 온 이유는 민지 때문이지 절대로 자신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결정
권은 민지에게 있었다.
"헤헷! 그런가?"
민지는 쌜쭉한 웃음기를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여기서 조금만 쉬고 집에 가자. 어차피 살 것 다 샀으니까 말야."
"그렇게 해도 돼?"
날은 이미 저물었지만 시간으로 따지자면 아직 넉넉한 편이다. 그러니 좀 이른 시간
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어서 카이란은 그렇게 물은 것이다.
"응! 괜찮아. 중요한 것은 이미 다 샀으니까. 그리고 내일을 위해 슬슬 정리나 준비
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빨리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야. 그리고 또…."
"또?"
민지는 부드러운 미소가 곁들인 엷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빤 사람 많은 것 싫어하잖아."
"……."
그 말이 참 부드럽게 안 들릴 수가 없었다. 민지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오빠가 사람
많은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어째서 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것은 각 개인
의 차이라는 생각 때문에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자신 때문에 온 것도 있고, 무엇보
다 선물도 받았으니 오빠를 위해서라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기가 힘들어 민지는 일부
러 사람이 많아질 시간대에 집으로 돌아가자고 배려한 것이다.
"히힛!"
민지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었다. 카이란은 절로 미소가
그려지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짜식… 별 이상한 걱정을 하고 그래."
쓰다듬어주는 카이란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민지는 가느다란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
"아무래도 오빠 동생이니까."
민지는 짤막하게 그렇게 말했다.
어느덧 시간은 20분 정도가 흘렀다. 날은 이제 완전히 저물어져 버렸다. 이렇게 날이
빨리 저물어 지니 아직은 겨울이라는 것이 실감났지만 지난달 1-2월 달의 비해 조금
씩 낮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슬슬 봄의 내음이 풍기고 있다는 증거이기
도 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가냘프게 들리는 어느 여성의 목소리. 뭔가 다부진 목소리라 카이란의 귓가를 간질였
는지 자연적으로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졌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난 상관없어. 너 좋을 대로 해."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목까지 오는 단발머리 여성이 옆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
기댄 채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여서 다른
인간들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카이란에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나? 괜찮아 괜찮아. 뭘 새삼스레 그런 것을 걱정하고 그러는 거야? 어차피 나도 슬
슬 한계였으니까. 그런 것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러는 너야말로 어떤거야? 혹시 지금
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재미있다는 듯이 여성은 킥킥 웃었다.
"그럼 지금까지 찍은 사진 같은 것은 어떻게 할까? 다음에 만나서 줘? 아니면 내가
버려? 응? 알았어, 내가 마음대로 할게. 그런데 말야…."
여자는 지난날을 상기하는 표정을 살짝 그렸고, 다시금 킥킥거리며 말했다.
"킥킥… 그런데 나 너 정말 좋아한 것 알아? 그런데 이렇게 끝나니까 우습다 야. 그
러니 지금 니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한테나 얼른 가라고. 하지만 나하고 사귄지 몇
개월 됐다고 벌써 다른 여자나 만난건지… 하여튼 너란 녀석은…."
아무래도 대화 내용상을 보면 지금 통화하고 있는 남자하고 사귀었는데 다른 여자라
도 생겼는지 먼저 남자가 헤어지자는 제의를 한 것 같았다.
"여기서 이렇게 나하고 통화할 시간이 어딧어? 얼른 가서 그 여자한테나 가봐. 채여
서 나한테 올 생각이나 하지 말라고. 킥킥! 알았다. 끊는다."
마지막까지 킥킥거리며 여자는 빙긋 웃음을 머금은 채 전화를 끊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가볍게 그런 식으로 그들은 헤어짐을 가진 커플들이었다.
"……."
카이란은 어떻게 저런 식으로 쉽게 헤어질 수 있는지를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역시 인
간은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아니, 인간은 끈기라는 것을 모르는 동물이라고 해야 하
나? 왜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수 있고, 왜 아무런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좋
아한다는 감정이나 사랑이라는 감정 같은 것은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잘 모른
다.
드래곤도 남말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동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한번 시작한
것은 쉽게 저버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쉽게 만나서 쉽게
헤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거나 쉽게 질려 버린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카이란은 인간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민지의 같은
경우도 예전에 판즈의 보디가드 일해서 받은 돈으로 목걸이를 사줬었는데, 몇 개월
되지 않아 금방 질려버렸다. 아마도 오늘 사준 목걸이도 분명 몇 개월 가지 않고 금
방 질릴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인간들은 대부분 이렇다. 옷도 금방 금방 질렸다는 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도 태반
이고, 핸드폰 같은 것도 금방 금방 바꾸어 버리는 것이 태반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
어 버리는 것일까? 그만큼 인간들에겐 끈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한가지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일까?
역시 인간에겐 기적을 바랄 수 있을 정도로 끈기가 없고, 금방 시들시들 해져 버린다
. 카이란은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라고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이미 어디론가 가버린 단발머리 여성이 서 있던 자리를 계속 보고 있었던 카이란을
향해 민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며 귀여운 민지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지."
"응!"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 8시 10분….
민지는 아침 일찍 얼어나 학교로 향했다. 민지의 입학식인 것이다. 물론, 부모님과
카이란도 같이 향했다.
대부분 입학하는 아이들중 50%이상은 이곳 중학생 출신이었다. 나머지가 타학교에서
온 학생들인 것이다. 졸업식은 성대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싱거웠다. 오히려 졸업식의
반 만도 못할 정도로 하객들은 별로 없었고, 오늘날의 위해 거리에서 꽃파는 장사꾼
들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시작은 단출하게 끝은 성대하게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시간 후 아리아와 하나도 민지의 입학 축하를 해 주러 왔었다. 이곳 같은 학생이
니 그녀들이 민지의 입학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중 혜미와 사미가 빠진 것이 아쉽
지만 아무래도 그녀 나름대로 대학교에서의 입학식이 있으니 여기에 올 수가 없었나
보다. 어쨌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 날 하루는 평범하게 보냈다고 할 정도로 그저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아침… 8시10분….
새로운 기분을 맞이할 때가 왔다. 그들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펄쩍! 머리가 하늘
까지 닿겠네…… 라는 예전 CM광고를 들으며 그들은 학교 갈 채비를 하기 위해 바쁘
게 움직이고 있었다. 새학기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해.
"헤헷! 나 어때?"
샤라방방∼ 민지는 빙그르 한 바퀴 돌며 부모님과 카이란에게 보였다. 부모님은 밝게
웃더니 각자 한마디식 내뱉었다.
"잘 어울리네."
"응! 역시나 내 딸!"
다름 아닌 민지는 이제부터 중학생을 탈피해서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그
러니 교복은 지금까지 중학생 복이 아닌 고등학생 복으로 바꿔 입은 상태였고, 그것
은 부모님과 카이란에게 선보인 것이다. 정말이지 고등학생 복을 입은 민지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옷이 날개라더……."
카이란은 카이란 나름대로 감상을 내뱉었으나…….
-퍽!!-
댓가는 무서운 민지의 어퍼컷을 선물로 받았다.
"오빤 동생에게 그렇게 밖에 말못하겠어!? 하여튼 오빤 그래서 안 돼!"
흥 콧방귀를 뀌며 민지는 다시금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든 준비를 맞치며 그들은 학교 갈 채비를 끝냈다. 신발은 신고, 그들은 보무님에게
갔다 오겠다는 말을 건네놓고 현관문을 나섰다.
"빨리 빨리!"
카이란만 새로 빤 가방을 매고, 새로 빤 교복을 입은 채 새삼스레 신선하게 느껴지는
보슬보슬한 아침 이슬을 맡으며 학교로 향했다.
두근두근! 새 학년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이 기다린다는 또 다른 의미…
과연 어떤 인간들이 있을지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거렸다. 특히나 민지는 고등학생으
로 올라가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럼, 오빠 나중에 봐."
"그래, 왕따 시키려는 애들 있으면 오빠한테 말해. 쉽게 오빠가 평화롭게 해결해 줄
테니까 말야."
과연 그 평화로움이 어떨지는 각자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핏! 염려마. 이래봬도 한 왈가닥 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고,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걱정 붙들어 매셔. 그리고 오빠가 말하는
평화롭게 라는 것도 내키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기도 하고말
야."
물론 그녀 성격으로 봐서 그럴 일은 거의 전무했다. 설사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더라
도 그것은 자신 스스로의 싸움이자 자신 스스로가 해결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
어서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는 것은 싫었다.
"그래? 알았다."
카이란도 피식 웃으며 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응! 오빠도 나중에 봐!"
그렇게 헤어짐을 가진 뒤, 민지는 1층, 카이란은 3층으로 올라가 배치된 각 반 교실
로 향했다.
"3학년 14반이라……."
자신의 반을 읊으며 카이란은 각 반 교실 푯말을 보며 걸었다. 6반‥ 7반‥ 8반‥ 자
신의 반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고, 이윽고 반 푯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얼라려? 맨 끝반이네?"
다름 아닌, 자신의 반 뒤로는 아무 반도 없었다. 14반… 맨 끝 반이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만화나 영화에서 보면 언제나 끝 반이면 불량학생들만 모아둔 문제아들의
모임이라고 하던데… 꼭 그렇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닷데! 하지만 자신의 성적을 보
나 용모(?)를 보나 행실(?)을 보나 심지어 신체 중 중요한 곳(뭘까?)을 보나 어딜 보
나 카이란은 전혀 꿀릴 것이 없으니 가벼운 손놀림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설마 그런
곳이 있을라나! 하하하하하핫!
-드르륵!!-
"응?"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뿌연 연기 구름이었다. 하지만 구름치곤 상당히 냄새가
독했고, 숨이 탁하고 막힐 정도였다. 이것의 정체는 담배연기였던 것이다.
교실 안은 가관이었다. 어지럽혀져 있는 교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수많은 담배꽁초
에 더러운 가래 덩어리와 침들…, 교실에서 이런 광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탓인지 카이란은 그만 어리둥절 방심을 낳아버렸다.
-퍼어억!!-
날아오는 어느 하얀 물체…… 코가 썩을 정도로 고린내가 나는 것을 보면 분명 이놈
의 정체는 실내화였고, 방심한 탓인지 카이란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만 정통으로
얼굴 안면을 강타 당했다. 덕분에 물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카이란의 고개는 절로 뒤
로 젖혀졌다.
"……."
어쩐지… 이 느낌 한번 경험한 기억이 있는 것은 기분 탓은 아니리라 봤다….
"이런 씨방새가!! 죽을려고 지랄 오두방정을 다 떠네!"
"내가 누군지 알아!? 나 5반의 짱이었어, Dog 쌔리야! 어딜 이 Baby가 개기고 그래!?
"
"니 놈이 그 허접한 반의 Baby의 캡짱이냐!? 얘기는 들었다. 허약한 애들이나 괴롭혀
놓고 캡짱 먹었다는 놈이라며? 이 반에 온 이상 그런 것이 없으니… 얌전히 내 아랫
도리에서 기거라 아가야."
"이 쉐리 보래! 그래 오늘 끝장내서 오늘 누가 캡짱인지 서열을 따져보자고!!"
"이놈들 보래? 누구 마음대로 서열 따지고 (삐리리)이야?
"이 새끼들 나 빼고 Dog 지랄 까네!! 네놈들 다 덤벼도 나한테 상대도 안 되는 것들
이 어디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거야!! 내 슈퍼 울트라 리얼리티 하이퍼 스고이
왕 필살기인 FMP의 본타군 후못후못권을 보고 싶다는 거야!"
"덤벼! Ssib-BaBy들아!!"
"우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