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혜미의 등장에 일행들은 모조리 놀랐다.
"엑!? 언니 여긴 웬일이야? 학교는?"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언니가 여기 있자 사미는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
"응, 개학 첫날이니 너희들과 비슷하지 뭐. 그래서 끝나자마자 여기로 온 것이고. 신
입생 환영회가 있긴 있었는데… 그런 곳에 끼기도 싫고… 뻔히 어떻게 될지 알기 때
문에 그냥 나왔어."
어떻게 될지 라는 말의 의미는 누구라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혜미의 표정은 약간 씁쓸한 미소가 곁들여 있었다.
"헤에… 그래요?"
"응, 처음에 어찌나 애들이나 선배들이 잡던지 그것 뿌리치느라고 엄청 힘들었어."
더불어 외간 남자가 자꾸 자신에게 치근거려서 상당한 거부감 같은 남자 기피증 때문
에 더더욱 곤란했었다는 말까지 하고 싶었지만 그 증상의 비밀은 카이란만이 알고 있
으니 입밖에 내진 않았다.
"하지만 뒷사람들 보이니 애들이 순순히 보내주더라. 덕분에 다행이었어.
혜미 뒤편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대와 몇 명의 똘마니들이 보였다. 지금은 카이란도
있고 하니 혜미를 놔두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흐음 당연히 저들을 보면 안 비켜주는 인간 없겠지."
하나는 그들 마음을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혜미 선배 멋진데요?"
"그래요? 고마워요. 후훗!"
그가 칭찬한 것은 혜미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대부분 혜미를 보았을 땐 교복차
림을 보았지 사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기
드문 교복차림이 아닌, 아이보리색 캐주얼 정장 차림이었다. 신비의 마력이 깃 든 것
같이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창출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모습은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한치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성숙한 여성의 OL(Office Lady)이라는 느낌이 강
했다.
"그럼 슬슬 집으로 향할까?"
"응!"
"네!"
예전 멤버 다 모였으니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민지가 목에 걸고 있는 그 목걸이… 못 보던 것 같네."
오랫동안 같이 지낸 덕분인지 사미는 지금까지 보았던 민지의 평소 모습이 아닌 목에
액세서리가 하나 추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한 고가 목걸이라 그런
지 유난히 빛이 번쩍 번쩍 빛나고 있어서 더더욱 눈에 띈 것일 수 있지만…….
"아…! 이거요?"
민지는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응! 새로 산 거야?"
비싸 보이는 데 민지 돈 많네… 라고 놀리려고 준비할 찰나…….
"네, 오빠가 사줬어요."
-쿠릉쿠릉!! 찌릿! 찌릿!!-
그 한마디가 무섭게 사미와 아리아는 이빨 드러낸 도깨비에게… 아니, 분노의 정령
휴리에게 흘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머나…."
유난히 혜미하고, 하나만 태연했다.
"백성님 어제 무엇을 사줬다고요?"
"저희는 또 잊으신 건가요? 정말 너무하단 생각 안 드신가요?"
구구구구구!! 얼굴이 대빵 커지며 불타오르는 분노감이 카이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잠깐 뭔가요!!? 우리에겐 잠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맞아요! 맞아요!! 정말 백성님 이렇게 배반의 장미를 꽃피우면 우리들 정말 섭해요,
섭해!!"
묵비권을 행사하기 위해 발악했으나 그녀들이 더 강했는지 그의 힘은 미치지 못했다.
"너희들 것도 있다고! 있어!"
"에? 정말요!?"
"와!!"
아까의 무서운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화기애애 사랑이 가득한 분위기로 변모되
었다.
"……."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더니… 정말 빠르게도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어떤거요? 어떤거요?"
그녀들은 눈이 반짝반짝 어제의 민지처럼 1000캐럿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차라리 지
금의 목걸이보단 그녀의 눈들이 더욱 아름답게 비쳐 보이고 있어서 그녀들의 눈으로
장식품을 하는 것이 더 좋을 정도였다.
"잠깐만 기다려봐. 그러지 않아도 혜미 선배 오면 주려고 했었단 말야."
그렇게 말하고 그는 어깨에 매고 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안을 뒤졌다. 그리고 어제 사
온 목걸이를 꺼냈고, 그녀들에게 각각 주었다.
"이건 사미 네꺼. 이것은 아리아 네꺼. 그리고 혜미선배는 이거고요."
"제것도 있나요?"
없을 줄 알았는데 선뜻 내민 카이란의 선물에 혜미는 감짝 놀랐다.
"당연하죠. 입학 선물과 졸업 선물 겸이니 받아요."
"고마워요."
기쁜 듯이 혜미는 내민 카이란의 선물을 받았다.
"와! 예뻐라!!"
목걸이가 굉장히 예쁜 거였기 때문에 다들 감탄사가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사미에
겐 붉은 루비가 달린 목걸이를 줬다. 그리고 아리아에겐 푸른색 루비가 달린 것을 주
었고, 혜미에겐 보라색 루비가 달린 목걸이를 주었다. 각자 잘 어울린 색깔이라고 느
껴졌다.
"굉장히 예뻐요. 고마워요 백성님."
딱 봐도 엄청난 고가라고 광고하는 목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들에겐 카이란이 자
신들을 위해 이런 목걸이를 선물해줬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컸기에 이 목걸이가 싸구
려든 비싼거든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
그중 하나는 부러운 눈길로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여자다. 여자라면 당연히
액세서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본능이다. 특히나 저 목걸이는 굉장히 아름다웠고,
굉장히 비싸게 보였다. 이런 목걸이를 그냥 선물로 받다니… 그녀는 돈의 액수보단
이런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다는 것에 큰 부러움을 느꼈다.
물론 자신도 받고 싶다. 하지만 3개나 사는 것도 무리였을 텐데, 4개를 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은 백성이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항상 같이 집에
돌아가긴 하지만 그것은 사미의 친구로써 같이 가는 것이지 백성이와는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보통 평범한 친구니 이런 선물을 해줄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말 꼬랑지 네꺼다."
"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를…….
"이거 네꺼라고."
카이란은 노랑색 루비가 박혀 있는 남은 한 개의 목걸이를 하나에게 내밀었다.
"아, 아니! 괘, 괜찮은 거야? 아‥ 아, 아무래도 비싼 것이고 무엇보다 너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고…. 이런 비싼 것을 받기엔……."
그의 행동에 너무 놀란 나머지 하나는 말까지 더듬더듬거렸다.
"시끄러… 그냥 받으면 되지 뭔 말이 그렇게 많은 거야? 모두들 다 받았는데 너만 안
주면 이상하잖아."
뭘 그런 것을 따지는지… 카이란은 살짝 짜증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하며 들고 있
는 목걸이를 더욱 바짝 내밀었다.
"괜찮은 거야…?"
1-2만원짜리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이런 비싼 것을 받기엔 그녀로썬 굉장한 부담을 느
껴서 선뜻 손을 내밀기가 힘들었다.
"괜찮으니까, 받기나 해."
빙긋 미소를 곁들이며 카이란은 다시금 바짝 목걸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머뭇머뭇
… 그녀는 천천히 그가 내민 목걸이 상자에 손을 내밀어 받았다.
"…고마워."
카이란은 만족한 미소를 흘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목걸이의 의미는 너희들의 우정의 증표니, 소중히 간직해 줘."
어느덧 시간은 무료하게 흘렀다. 그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고, 그저 언제나 그랬듯이
별 다른 것도 없는 일상사를 보냈었다. 다만 지금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중간고사가
앞으로 한 달도 안 남은 시기라는 것이다.
고3이라면 1-3학년의 총 학업 중 내신(內申)이 가장 높다. 대학을 진학하려면 내신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올해 시험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선생들은 중간고사
문제가 어디까지 출제되는지 벌써부터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이들을 시험
공부를 이르게 시작했고, 분위기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풍경으로 시험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런 C-Room-Bird가 또 개기네!!"
"네놈 먼저 개겼잖아! 이런 좁-Rice같은 Baby놈! 나랑 한판 붙어보자는 거냐!? 이 넘
버2에게 말이다!"
"넘버2 !? 이 쉐리 개그맨 자슥이네! 누구 마음대로 니가 넘버2야!? 넌 넘버3이야,
임마! 그래, 오냐! 해보자! 이 고양이 반대 쉐리! 오늘 확실히 니놈이 넘버3 라는 것
을 각인 시켜 줄 테니, 덤벼봐! 덤벼봐!!"
"그래 덤벼봐! 덤벼!!"
유난히 다른 것은 이놈의 반은 변함이 평소 때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문제랄까?
이놈들은 시험 공부도 하지 않나? 어이 어이 고3이라고 너희들 대학 안가냐? 뭐, 포
기 한 놈들 같지만…….
물론 이 반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카이란이야 정체가 드래곤이니 시험공부는
하루나 이틀만에 끝내서 놀고 있는 것이지만 몇 명 다른 이들은 고3 수험생이라는 것
을 인식하고 정말로 열심히 하는 광경을 보였다. 문제아 반에서 무슨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녀석이 어디있냐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참고로 이 반은 문제가 반이 아니다.
아니, 카이란의 학교에선 문제아 반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인지 아
니면 필연인지 모르지만 각반의 문제아들 몇 명이 이곳에 모인 것 뿐이다.
"덤비라니깐!"
"네가 먼저 덤벼!!"
아직도냐? 말만 하지 말고 좀 싸우지…. 이상하게 그 둘은 아직 싸움판을 벌이지 않
고 있었다.
"덤벼! Dog 쉐리야!!"
"니가 먼저 덤비라니깐!!"
"……."
섣불리 싸움을 벌이지 않고 흘깃 가만히 책상위에 팔로 얼굴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카
이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뭘 눈치를 살피고 그러는 거야…? 그냥 싸울 것이지.
"…그렇게 날 보지말고 그냥 한바탕 싸우지 그래?"
"크오오옷!"
"덤벼!!"
결국 카이란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놈들은 '이놈 잘 걸렸다' 라는 식으로 서로가 빙긋
웃으며 투지를 불사른다.
"……."
싸움하는 짓도 이렇게 허락 맞고 해서야…… 거참 재미없는 반이라고 카이란은 느껴
졌다.
카이란이야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이미 반 아이들도 카이란에 대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엔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지냈지만 카이란은 그런 깐깐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렇게 생활하면 된다는 것을 인식했건만 그래도 이놈들은 2학년때만으로도 반 교실
에서 싸움 좀 한 놈들이라 사사로운 것만으로도 금방 열을 내었다. 덕분에 툭하면 일
어나는 것이 싸움이었다. 가히 일주일에 5번 정도 일어날 때도 있고, 하루에 2번 이
상도 한 적 있는 반이었다. 문제아 반도 가히 이것만큼은 아니리라 라고 생각 할 정
도로 무척 싸움이 잦기도 했다.
카이란도 싸움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애들이 싸움을 하면 재미있게 구경하
기도 하고, 가끔 무기 쓰는 것을 방지 삼아 심심풀이 삼아 심판(?)까지 봐주기도 했
다. 싸움은 등등하게 하는 것이지 한 놈은 무기, 한 놈은 주먹이면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참견한다고 말한 것이지만, 사실… 그의 본심은 분명 무기를 쓴다
면 일방적으로 싸움이 금방 끝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려고 참견을 한
것이란 걸 그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현실에서 그런 짓을 하다간 장난 까냐! 라
는 말과 함께 다굴신공으로 열라게 밟힐 테지만 여기에선 그 누구하나 카이란에게 거
역을 할 수 없으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은 참아야 했다.
어쨌든, 이유야 어떻든 카이란도 애들이 싸움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카이란이 깨어 있을 경우다. 아시다시피 카이란은 굉장한 잠보다. 예
전의 비해 많이 괜찮아진 그였지만 여전히 아침잠은 많은 편이다. 3600년의 버릇을
단 1년 만에 고쳐지기란 어려울 테니까 당연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보충 잠을 학교에
서 보낼 때가 많았다.
그는 기분 좋게 잠을 잤었었다. 그런 날에 어느 두 놈이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싸움
이라면 신경에 거슬리는 욕들과, 사물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의성어들이 귀에 들어온
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누구라도 기분 좋
게 잠을 자고 있으면 폭발 할 것이고, 카이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놈 두 놈은
엄청나게 터졌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 그 정도쯤이야 카이란은 참을 수 있었는데, 그 다
음이 문제였다.
또 다른날 또다시 어떤 두놈이 싸움을 시작했다. 정말 지지리도 싸움을 많이 하는 반
이고, 여전히 서열이나 따졌다. 물론, 카이란이 서열1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으니
배제한다. 어쨌든, 한창 싸우는 도중 둘 중에 어느 한 놈이 빗자루를 들어 버린 것이
고, 그것을 상대편에게 던져 버렸다. 한 실력 자부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 놈은 잽
싸게 피해 버렸고, 날아가 버린 빗자루는 자고 있던 카이란의 뒷통수에 꽂혀버린 것
이었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 잠자는 용의 X털… 아니, 수면에 들어간 드래곤의 X털을 뽑은
격과 마찬가지! 그 뒤 그 싸우는 놈들은 가히 중환자 실로 가야 할 정도로 카이란에
게 엄청 맞았다는 전설. 그 일이 생긴 뒤 아이들은 카이란 앞에서 싸움을 벌일 때 꼭
그의 허락을 맞고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딩동 딩동-
"젠장! 너 운 좋은 줄 알아!! 다음 쉬는 시간에 보자!!"
"흥! 내가 할 말을!! 너야말로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뒤꽁무니나 내빼지 말지!!"
승자를 가리지 못한 채 그만 1회전이 끝난 종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서로 치고 박고
한 덕분에 그들의 얼굴은 조금씩 멍이 들어 있었고, 각자 씩씩거리며 자신들의 자리
로 돌아갔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이번 과목을
가르칠 선생님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의심하나 없이 수업은
자연스럽게 거행되었다.
이런 것이 카이란의 이곳 반 일상사라고 할 수 있었다.(역시 문제아 반 맞다)
-딩동 딩동-
마지막 수업 종소리가 교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자! 종례 시간이에요."
"와와!"
"휙휙! 선생님 예뻐요!!"
종치자마자 예쁜 미모의 선생 채연이가 아이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교실에 들어
왔다.
"자자! 앉아요, 앉아. 오늘 종례는 말 할 것 별로 없어요. 모두들 내일이 모의 고사
라는 것은 알고 있죠? 모두 수능 잘 보라는 시험이니 너무 귀찮다는 생각은 하지 마
세요. 그리고 앞으로 중간고사도 한달 밖에 안 남았으니 내신 올리려면 열심히 하세
요."
"네!!"
아이들은 채연이가 만족할 정도로 크게 대답했다.
"후훗!"
그런 씩씩한 대답을 들은 채연이는 흐뭇해했다. 처음 이 반을 왔을 땐 정말 맡고 싶
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생각 외로 말썽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카이란이 평정했으
니), 싸움도 많지 않았고(카이란이 평정했으니), 지저분하지도 않았고(카이란이 평정
했으니), 반항도 없었고(카이란이 평정했으니), 어쨌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카
이란이 평정했으니)
'역시 내 미모는 사람까지 변하게 만드는구나.'
덕분에 그녀는 자화자찬과 함께 자아도취 착각에 빠져버렸다.(카이란이 평정했으니)
그녀는 박수를 짝짝 두 번 치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이걸로 오늘의 종례는 끝입니다. 자 반장."
채연이는 시선을 돌려 카이란에게 옮기자 카이란은 슬금슬금 일어났다. 임시 반장이
었던 카이란은 정식 반장이 되어 버렸다. 진짜로 반장 선거를 할 때 어떨 결에 후보
로 선출되어 버렸고, 그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가히 만장일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은 득표수를 차지해 당선되었다.
"차려! 경례!"
"감사합니다!"
크게 제식 구령호구를 외치자 아이들은 한결같이 크게 대답한 후, 우르르 교실 밖을
빠져나갔다.
카이란도 덩달아 아이들과 비슷하게 교실 밖을 빠져나갔고, 문 앞에는 반짝반짝 아름
다운 목걸이가 유난히 눈길을 끌고 있는 여성들, 사미와 아리아, 하나가 카이란을 기
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과 합류를 하고 교문 앞에서 민지까지 만나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
다. 물론, 혜미는 없었다. 가끔 오전 수업만 있을 땐 일부러 한성 고등학교까지 와서
함께 돌아가긴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는 경우다.
"이제 겉옷을 벗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손을 뻗으며 사미는 날씨의 기온을 체감했다. 카이란도 동감을 한다는 표정으로 고개
를 끄덕였다.
"응‥ 그렇긴 하네."
봄이 와서 그런지 슬슬 동복만 입어도 괜찮을 시기가 찾아왔다. 궂게 닫혀있던 꽃망
울은 무도 활짝 열어졌고, 따뜻한 봄 햇살을 체감할 정도로 날씨는 풍요로웠다. 하늘
을 날고 있는 새들도 봄이 온 것에 기쁨이 서려 있는지 다들 기분 좋다는 듯이 짹짹
거리며 천공을 활보하고 다녔다.
"헤헷! 백성님…."
어울리지 않게 실실 웃는 표정을 쪼개며 아리아가 카이란 곁으로 다가온다. 그는 왜
아리아가 그런 표정으로 다가오는지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최근 아리아가 그런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은 딱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말
을 할지 이미 알고 있기에 어렵게 생각 할 필요도 없이 쉽게 부탁을 들어줬다. 그는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며 의사를 물었다.
"너희들은 어때? 같이 갈 꺼야?"
"음… 전 괜찮아요. 저도 그.곳.이 마음에 들거든요."
"나도 괜찮아."
사미와 하나는 괜찮다는 의사를 보였다.
"와아! 고마워요! 사미양, 하나양."
같이 간다고 하니 뛸 듯 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아리아다.
"그럼 갈까."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1시간정도면 절대로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닌, 대략 1시간정도 더
소비하는 길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까 아리아가 가고 싶어하던 곳과, 그
녀 외 다른 이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은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다. 심지어 카이란까지 말이다.
그래서 카이란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고 바로 응낙해줬었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도시 중앙가가 아닌, 외각쪽으로 빠진다는 증거였다. 그
러지 않아도 외각쪽인 지역에서 더더욱 외각 쪽으로 빠진 덕분에 마치 시골길을 연상
케 그린벨트 지역까지 오게 되었다.
"화아!"
활짝 기분좋은 표정을 그리며 아리아는 양팔을 벌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미는 웃음
지었다.
"아리아양은 꼭 여기 오면 어린아이 같군요."
"그러게… 요즘 초등학생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데 말야. 꼭 6살 박이 어린아이 같아
."
하나도 그녀의 말에 동조하지 웃음을 그렸다.
"헤헤∼ 그, 그렇게 보이나요?"
쫑긋 혀를 살짝 내밀며 아리아는 열없게 웃어 보이며 오른쪽 볼을 긁적였다.
"하지만 그게 아리아 언니답잖아요."
"응! 그건 맞긴 맞아."
"그렇지, 아리아를 보고있자면 마치 때묻지 않은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처녀의 모습
을 보는 것 같으니까. 행실을 보나, 말투를 보나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곳풍경과 잘
어울린 저 아름다운 외모를 보나, 아리아는 딱 그거야."
"맞아! 맞아!"
아리아의 대해 그렇게 평가하자 그녀는 부끄러운지 양 볼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참∼ 놀리시지 말아요. 너무 하잖아요."
"놀리는 것 아냐. 당연한 거니까. 그렇지 않아?"
하나가 모두에게 물어보자 다같이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여기가 좋긴 좋지만, 유난히 아리아양은 이곳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이
유 가르쳐 줄 수 없을까요?"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 사미는 아리아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리아는 부드럽게 웃어 보
이며 이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그린벨트 지역이다.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막는 지역. 이곳 풍
경은 온통 아름다운 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마침 지금 시기는 딱 봄이다. 꽃망울
을 활짝 터뜨려 한창 아름다움을 뿜어낼 시기가 온 것이다.
아름다운 꽃들과 잘 어울려진 집들… 마치 환상 속에 빠진 것 같이 거리가 예쁘게 꾸
며져 있었다. 이곳은 그린벨트 지역이자 꽃을 재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직 다 벗기지 않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기도 했다. 이곳은 꽃이 무척이나 많았고, 주
위에는 온통 봄꽃으로만 이루어져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부드러운 꽃들의 정기로
가득했다.
"…좋아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나지막하게 아리아는 사미의 질문에 대답했다.
처음 이곳을 찾은 곳은 아리아였다. 엘프들은 자연의 정기가 풍만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감이 있다. 자신이 있던 곳과 떨어진 장소였지만 무언가 포근한 정기의 흐름
을 느껴서 이곳으로 올 수 있던 것이었다. 아름다운 장관, 꽃들의 세상… 그리고 포
근한 대지의 기운, 아리아가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래서 방과후에 모두와 같이 이곳으로 왔었고, 모두들 만족해하는 표정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았다.
그 뒤 그들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오게 되어 버렸고, 가히 일주에 3-4번은
기본으로 왔었다.
그들은 한동안 이곳을 돌아다니며 답답한 기분을 풀었다. 그녀들도 이곳이 좋지만 카
이란도 만만치 않게 이곳을 좋아했다. 싸움을 좋아하고 성격이 불같은 드래곤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장소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는 자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카이란은 아직까지 분주하게
북적거리며 번화하는 이곳 도시 생활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한적하고 평화롭
게만 보이는 이곳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 좋은 것 뿐이었다. 아리아야 원래 정체
가 엘프니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 또 왔는감?"
"아‥ 네 안녕하세요."
꾸벅… 아리아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허허! 참으로 꽃을 좋아하는 학생들이구먼."
사람 좋게 웃으면서 그들을 받아주는 이…, 대충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노인네였
다. 꽃을 재배하는 사람인지 간편한 작업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오늘도 여전히 그런 복장으로 꽃을 가꾸시네요."
사미가 말했다. 이들은 이 노인네와 처음 대면을 가진 상태가 아니었다. 이미 이곳에
몇 번을 와본 그들이기에 몇 번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던 것이다.
이 노인네는 이 꽃을 재배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아리아는 여기 이 노인이 가꾸는 꽃
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꽃의 정기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정기가
높다는 것은 그 만큼 꽃을 잘 가꾸고 정성을 쏟는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이곳에
올 때마다 이 노인네와 마주치게 되었고, 지금 오늘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그나저나 계속 그렇게 꽃을 가꾸시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그다지 힘들지 않아, 이런 예쁜 꽃들을 보면 그런 것 느껴지지도 않는걸."
사미가 다시 그렇게 묻자 노인네는 허허허 웃으면서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이 재배하
고 있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니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어떻겠나?"
이곳 꽃밭 가장자리에 조그만 한 움막집이 보였다. 이곳에서만 사용할 용도로 만든
집 같았다.
"에, 차요?"
"에구… 이놈의 주책… 늙었긴 늙었구먼.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이런 누
추한 곳에 앉히려 하다니… 미안허이, 그냥 못들은 걸로 해줘."
노인은 자책하며 자신의 머리통을 통통 두드렸다. 이런 곳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갈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아리아는 방긋 웃으면서 노인에게 말했다.
"아니요, 초대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해야겠죠. 그리고 더럽다니요. 무슨 소리를 하
시는 건가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요."
그렇게 말하고 흘끔 아리아는 다른 일행들을 보면서 물었다.
"어때요?"
"난, 괜찮아."
"나도."
일행들은 모두 괜찮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리아는 다시 노인네에게 시선을 돌려 빙긋
웃음 지었다.
"자∼ 이렇습니다."
"허허허∼ 거참 마음씨도 고운 아가씨구먼."
너털한 웃음을 터뜨리며 노인네는 기분 좋은 표정을 그렸다. 요즘 아가씨치곤 상당히
예의가 바르고 착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 누추하지만 들어와요."
"네."
일행들은 꽃밭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갔다. 움막집이라 입구란 것은 없었다. 안에는
조금 넓은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난로가 놓여져 있었다. 화제를 방지
하기 위함인지 투박한 석유 난로가 아닌, 단순히 전기 난로였다. 위에는 금색 주전자
가 놓여져 있었고, 안에 물이 가득 들은 상태로 주전자 입 쪽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
락 피어나고 있었다.
비교적 안은 지저분하진 않고,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다만 이곳 자체가 낡았기
때문인지 대충 보면 지저분한 느낌이 감돌았다.
"누추하지만 여기 앉아요."
"네, 고맙습니다."
큰 소파에는 아리아와 사미, 하나가 앉았다. 그리고 남은 민지와 카이란은 노인네가
마련해준 조그만 한 의자에 앉았다.
"자… 여기 한잔씩 들어요."
노인네는 종이컵으로 뜨거운 차를 일행들에게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은은한 향기가 향긋하게 코끝에 감돌았다
"와! 향이 좋네요."
"음! 맛도 있는데요."
저마다 한 모금씩 마신 그들은 감상을 내뱉었다.
"허허허… 그런가? 그저 별 볼일 없는 차인데 그렇게 칭찬해 주니 송구스럽구먼. 어
쨌든, 많이 있으니 많이 드시게."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들은 차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희가 올 때마다 이곳에 만날 계시던데… 혹시 하루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오시는 건가요?"
사미가 마시던 차를 무릎 위쪽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허‥ 뭐, 그런 셈이지."
"헤에… 힘들지 않아요?"
민지가 물었다. 나이가 70대 중반이면 이런 일을 하기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올 때마다 그들은 이 노인네를 이곳에서 만날 수가 있으니 아무래도 하루
도 빼먹지 않고 오는 것 같았다.
"그다지 힘들지 않아,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대라고."
"연세가 굉장히 높으신 것 같은데… 실례가 되는 말씀이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
시는가요?"
아직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그들이 보기엔 이 노인네의 외모는 70대 후반이었다.
적어봐야 7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외형으로 보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이 노인네는 평범한 인간이다. 특이한 병이 아닌 이상, 30대인데 70대처럼 외형
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한 것이다.
"내 나이? 올해로 74인가… 75던가… 망령이라도 들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구마잉
."
머리를 통통 두드리며 자신의 나이를 찾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예상대로 70대
중반이 맞았다.
"대단하시네요."
"대단할 것까진 없어. 단순히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그래요?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세요."
"허허허허, 그래야 하겠지."
그렇게 그들은 잠시간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해가 거의 산밑으로 내려가질 때까지
있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어느덧 해는 붉은 노을을 뿜어내며 산밑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인간은
사미였다.
"벌써 이렇게 되었네."
사미의 말에 각자 시계를 보며 놀란 감탄을 내뱉었다.
"어이구 내가 주책이지… 너무 잡아 둔 것 같구마잉…, 정말 미안허이."
시간을 너무 뺏은 느낌이 났는지 노인네는 겸연스레 사과했다. 아리아는 양팔을 저으
며 그 사과를 부정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일하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한 걸요."
"허허허… 정말이지 예의도 바른 아가씨들이구먼‥. 뭐, 나야 여기서 할 일이 있겠나
… 단순히 꽃들만 지켜보는 것 뿐인걸."
뭐 할 것도 없이 슬슬 재배만 하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할 일은 그저
지켜봐서 언제 재배를 할지 결정하는 일 뿐이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이 재미없는 노인네와 대화 나누는 것도 지겨웠을 텐데… 아무튼
오늘 고마우이."
"아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정말로 재미있게 대화 나누었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자주 와도 되겠죠?"
"허허허…."
너털한 웃음을 내뱉으며 노인네는 카이란과 그의 그녀들을 배웅해 주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꾸벅 작별인사를 두고 그들은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노인네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다시금 움막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백성님은 왜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방금전까지 있었던 노인의 움막집에서 카이란은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이
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무슨 생각을 종잡을 수도 없게 그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얼핏 그다운 행동이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단 느낌 때문에 집으로 가
고 있는 도중에 사미가 물었다.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었거든. 단순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오빠가!? 생각을!? 말도 안 돼!"
그의 대답에 놀란 반응을 보인 건 당연 당빠로 민지였다. 기분 확 잡치는 말투라 카
이란은 휘리릭 아니꼬운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너 말야… 내가 생각만 한다면 꼭 그 말이 튀어나오더라. 이제 좀 생각이 바뀌어도
되지 않았냐? 고등학생이나 됐으면 좀 의젓해야지… 아직까지 이렇게 애라니… 내 동
생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고개까지 절레절레, 한숨을 팍팍 내쉬며 그는 한탄했다. 울긋불긋 민지의 이마빼기에
푸른 혈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그러셔? 알겠습니다요! 오라버니! 이제 고등학생도 됐으니 의젓해지도록 노
력하겠습니다."
그나마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지 푸른 혈관을 강제로 되돌리며 웃으면서 참았다. 여
기까지 끝냈으면 좋으련만… 카이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나이만 고등학생이면 뭐해?"
무언가 간과해서 안 된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스윽 감고 팔짱을 끼었다.
"무슨 의미야?"
카이란은 한쪽눈만 실눈을 뜨며 민지의 몸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살짝 고개
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몸은 아직도 중학생 모습에서 탈피도 못했는데, 머리만 고등학생이면
뭐해? 적어도 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E컵 정도의 발육과 탄탄한 엉덩이에 아름다운
용모가 되야지. 아직 젖비린내 풀풀 나는 발육부진에 아직 아기 티를 못 벗은 녀석이
고등학생 흉내를 내……!"
그가 말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였다.
-퍽!!-
민지는 들고 있던 가방을 카이란의 안면에 있는 힘껏 혼신을 다해 냅다 후려쳤다. 무
시무시한 파워에 의해 카이란은 직경 10미터까지 날아가 남의 집 담장에 머리가 처박
혔다.
"이 저질! 흥이닷!! 오빠야말로 고3 수험생답게 좀 의젓해봐! 만날만날 그런 것만 밝
히고 말야!"
콧방퀴를 흥 뀌며 민지는 성큼성큼 무서운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먼저 앞장
서버렸다.
"으으… 아파라. 하여튼 저 녀석 고등학생이 되도 바뀌는 것이 없어요."
박혔던 머리를 뽑으며 카이란은 아픈 코를 문질렀다. 역시 주인공&픽션답게 즉사는커
녕 타박상도 없었고, 겨우 이마빡에 반창고 하나면 만사 오케이였다.
"하여튼 백성님도 참…."
도대체 누가 앤지…… 그의 곁으로 몸을 옮긴 사미가 한숨 섞인 말로 혼잣말을 내뱉
었다.
"그나저나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 거예요?"
다시 집으로 향하고 있는 도중, 사미가 그것에 대해 다시 물었다. 카이란은 시선을
붉은 노을을 뿜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글세… 별로 그런 기분이 안 난다고나 할까……."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상한 대답이라 사미는 아리송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왜요? 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혹시 카이란이 그곳을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리아가 노심초사
하는 기분으로 물었다. 그런 기분을 안 카이란은 빙긋 미소를 곁들여 아리아에게 말
했다.
"그런 것은 아니니까 염려 마."
그 말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그런 건데요?"
"글세…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미와 아리아는 서로 한번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종결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그 장소를 싫어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니 아리아로서는 마음이 놓였다. 만약 싫어한다면 그녀는
그를 위해서라도 그곳에 갈 수가 없으니까.
"……."
특별히 그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무척 그 장소를 좋아하니
까. 그렇다고 그 노인이 수상한 낌새가 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평범
한 인간의 냄새가 풍겼으니까. 아무리 냄새를 꼼꼼하게 숨겼어도,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못 느낀 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노인네가
마음에 안든 것도 아니었다. 사람 좋게 생긴 외모라 정근감이 느껴졌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그가 대화에 끼지 않고 가만히 있던 이유는 오늘 그 노인네를 만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오래 가지 않겠지.'
꽃을 가꾼 다는 것은 힘든 작업일 것이다. 인간의 특정상 끈기가 없는 것 때문인지
분명 그 노인은 꽃을 가꾼는 일을 금방 멈출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래
곤에게는 낮잠거리인 시간이지만 인간의 나이로 70대 중반이면 상당히 고령쪽으로 들
어간다. 그러니 분명히 1년도 가지 않고 이런 일을 그만둘 것이라 느껴졌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었으니 분명 할 일이 없으니 이런 일을 택한 것 같았다. 분명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아마도 한달 정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처음이야 당연히
보람을 느끼면서 오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은 힘들어 질 것이고,
점점 여기에 오는 것이 뜸해 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이 곳 일을 그만두고 편한 한
노후 생활을 즐기겠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에게 있어
서 지금까지 봐온 인간들의 행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이러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 노인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겨졌다.
그런 생각하니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카이란은 그녀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저 풍경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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