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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변화한다-3화 (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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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엘쟈네스

엘쟈네스가 떠나는 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엘쟈네스는 자신이 관리하던 공작가 내정의 일부를 인수인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족들과의 시간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인 공작 부부는 아카데미 시절 엘쟈네스와 리리엘의 사이가 틀어진 이후 엘쟈네스와 어색한 관계를 줄곧 이어가고 있었다.

엘쟈네스도 이 편이 편했다. 부부는 우아하고 귀족다운 엘쟈네스보다는 사랑스럽고 밝으며 소년같은 매력이 있는 리리엘을 더 사랑했다. 리리엘이 떠난다고 했을 때와는 달리 크로커스 공작 부인은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그저 어색한 얼굴로 엘쟈네스에게 작별 인사를 했을 뿐이다.

이 결혼은 부당하다던 리리엘 역시도 엘쟈네스를 따로 찾지는 않았다. 리리엘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남자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 모두가 재력이나 정치적 세력 면에서 뛰어난 집안의 영식들이었다.

리리엘이야 늘 친구라고 주장하나 리리엘을 보는 그들의 눈을 보면 그들이 리리엘에게 이성적 호감이 있다는 것을 누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리리엘이라서였다. 리리엘의 적이었던 영애들도 리리엘이 승마복 차림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곧 리리엘에게 빠져들어 그녀의 친구가 되고는 했다.

일주일 동안 엘쟈네스를 방문한건 리리엘을 주위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엘쟈네스가 정말로 순순히 시집을 갈 것인지와 리리엘을 끝까지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에 대해 알고싶어했다.

엘쟈네스는 단지 리리엘과 다를 뿐이었다. 평범한 귀족영애였기에 보석을 좋아했고 새 드레스를 맞추는걸 좋아했다. 순수하게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리리엘과는 다르게 우아한 귀족적인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 엘쟈네스의 우아한 발언에 도망치다시피해 나간 그들이 일주일간 엘쟈네스를 가장 많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계속 엘쟈네스의 평판에 대해 떠들고 다녔지만 엘쟈네스가 크게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엘쟈네스는 사교계의 실세인 귀족 부인들과 주로 어울리는 편이었다. 젊은 귀족층들이 엘쟈네스를 어려워해서도 있었지만 부인들은 확실한 엘쟈네스의 방패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귀부인들은 리리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엘쟈네스는 그것을 은근히 이용했다. 엘쟈네스에 대한 악명이 높은데도 엘쟈네스가 사교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건 그런 이유가 컸다. 엘쟈네스는 사교술에도 능한 편이었다.

"엘쟈."

아버지가 엘쟈네스를 불렀다. 아마릴리스 황가 일원의 결혼식은 오로지 황실의 핏줄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 황제의 권위에 거스르지 않기 위한 전통이었다. 오로지 황제만이 공개적인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 뒤의 피로연에는 신부측과 하객들도 참석할 수 있다.

크로커스 공작 부부와 리리엘은 역사상 처음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한 이들이었다. 리리엘은 대공이 자신에게 보복할 상황이 꺼려진다며 공작 부부를 설득했다. 엘쟈네스의 앞에 있는 것은 대공가에서 보낸 마차였다. 이 마차를 타면 무슨 일이 있지 않는 한은 이 곳에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엘쟈네스는 로벨리아 왕국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좋은 기억이 없다보니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귀부인들을 제외하고는 친한 부류도 없었기에 고향을 떠나는 것에 대한 감흥도 거의 없었다. 엘쟈네스는 은빛의 마차에 오르기 전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네."

"행복하거라."

이제 중년을 넘어가는 공작은 엘쟈네스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옆의 공작 부인도 엘쟈네스를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눈물이 고인 눈을 하고 있는 리리엘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스러워보이는 풍경이었으나 주인공인 엘쟈네스는 그렇지 않았다.

공작 부부는 엘쟈네스를 사랑했으나 리리엘을 더 우선시해 좋은 부모는 아니었다. 리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리리엘은 엘쟈네스를 사랑했으나 그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다. 그렇기에 엘쟈네스는 리리엘을 우선시하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자라와야 했다. 만일 정말로 가족들이 엘쟈네스를 아꼈다면, 북방으로 따라가 피로연에 참석했을 것이다. 리리엘의 요청에 따라 이 곳에 남을 것이 아니라. 리리엘 또한 대공이 꺼려진다며 남자는 요청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쟈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쟈네스는 리리엘에 의해 단호하고 냉정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엘쟈네스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보았자 좋을 것이 없었다. 엘쟈네스는 이미 리리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포기한지 오래였다. 엘쟈네스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엘쟈네스가 가져온 것은 정말로 아끼던 보석함 하나가 전부였다. 이내 마차가 출발한다. 로벨리아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엘쟈네스의 마차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로벨리아 왕가에서도 볼 수 없는 세련된 장식들과 우아하게 빛나는 마차의 겉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마차를 호위하는 대공가의 기사들은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엘쟈네스는 그것을 휴식을 위해 마차에서 잠시 내리고 나서야 알았다. 대공의 신부를 데려오는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엘쟈네스의 행렬 자체에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엘쟈네스는 잠시 마차 밖에서 나무를 바라보고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서늘해지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따뜻한 기후였던 크로커스 공작 영지에서는 볼 수조차 없던 나무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엘쟈네스를 호위하던 기사 중 하나는 대공 영지의 기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윈터 나이트 영지는 다른 곳들보다 서늘해 늘 가을같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으나 2개월 간 혹독한 겨울이 온다고 한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늘 비슷한 기후라고 했다. 대신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나무나 생물들이 있고 이 곳에서 나는 음식 재료들은 유달리 맛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른 곳으로 간다는 실감이 났다. 사실 엘쟈네스조차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혼이다. 언젠가는 결혼할 날이 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냥 평온하게만은 생각할 수 없던 것이다. 눈썰미가 좋은 엘쟈네스가 마차의 외양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것도 그 증거였다.

결혼식과 첫날밤. 그리고 아직 얼굴도 모르는 이제 남편이 될 대공. 엘쟈네스는 도착해 결혼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리리엘이 시간을 끈 탓에 결혼식 전까지의 시간은 얼마 없었다. 마차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북으로. 북쪽 끝으로.

대륙은 넓기에 남쪽에 위치한 로벨리아 왕국에서 북방의 윈터나이트 영지까지 마차로만 가는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마법을 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공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고 단기간에 신부가 북방으로 올 수 있도록 마법을 이용했다. 덕분에 엘쟈네스는 몇 개의 마법 게이트를 거치면서 빠르게 윈터나이트 영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틀 정도의 여정은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창 밖의 풍경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쟈네스는 곧 대공의 성에 도착할거라는 말을 들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비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나무들이 보인다. 오면서 내내 보았던 침엽수인데도 대공령의 것은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대공에 대해 물어보자 기사들은 자랑스러운 얼굴을 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대공은 미남이었고 기사단 하나가 덤벼도 이기지 못할만큼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주군이 아니라도 좋은 분이라며 그들은 웃는 얼굴을 했다. 기사들은 기사가 눈치가 없다는 말에 맞지 않게 눈치가 빠르고 판단력이 좋은 이들이었다.

엘쟈네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기에 눈치가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이들에게 이렇게 완벽히 존경받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엘쟈네스는 문득 궁금해졌다. 엘쟈네스의 마차가 달리는 길은 대공령의 뒤쪽으로 오는 한적하고 넓은 길이었다. 본래라면 사람이 지나다닐 것이나 피곤해할 신부를 위해 대공이 직접 명했다고 한다.

마차가 고풍스러운 모습의 커다란 성벽에 가까워지고 이내 성문을 통과했다. 엘쟈네스는 북방의 건축물들을 눈여겨보았다. 남쪽이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세세한 장식을 한다면 북쪽은 상대적으로 장식이 적고 우아함을 강조하는듯한 느낌이다. 조각상이 적은 것 또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었다.

마차가 더 달리다 멈추었다. 기사들이 엘쟈네스에게 도착했음을 알린다. 엘쟈네스는 내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마차의 문이 열린다. 엘쟈네스는 바깥에 서 있는 것이 집사일거라고 생각했다. 신부는 먼 길을 왔기에 치장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신부는 홀로 짐을 풀고 씻은 후 저녁에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마차의 문 밖에 서서 엘쟈네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집사가 아니었다. 엘쟈네스는 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칼. 엘쟈네스가 본 사람 중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서늘한 분위기의 남자가 엘쟈네스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엘쟈네스를 향했다.

엘쟈네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엘쟈네스를 호위했던 기사들은 모두 예를 갖추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고도 엘쟈네스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윈터나이트 대공. 엘쟈네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롤 연패는 너무 괴롭씀니다...;ㅆ; 즐거운 추석 되셨길 바래요!

vivi 님, haㅡna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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