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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변화한다-13화 (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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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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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영애들은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사교계에서 활동한 영애 중 윈터나이트 대공의 결혼식을 기대하지 않은 영애는 없을 것이다. 많은 영애가 대공의 얼굴도 모르는 신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신부는 붉은 머리였다. 사교계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붉은 머리는 천박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몸가짐이 좋지 않다는 속설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귀족들은 대공의 신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리고는 했다.

대공과 같은 시기에 아카데미를 나온 부류들은 괴물 대공의 붉은 머리 신부를 이야기하며 삼삼오오 모여 조롱거리로 삼고는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공을 깎아내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신부의 붉은 머리칼과 천박한 몸가짐을 흉내내고는 했다.

신부는 로벨리아 왕국의 크로커스 공작 영애였지만 그들은 대공을 간접적으로 깎아내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귀족 영애들이 퍼뜨린 악질적인 소문도 대공과 대공의 신부에 대한 조롱에 한 몫 했다. 그리고 오늘은 결혼식 당일이었다. 영애들은 모여서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란 카렌의 드레스를 맞췄다지 뭐에요."

"세상에. 너무 과분한 옷 아닌가요?"

"대공 각하야말로 과분하죠. 옷을 아까워할 때가 아닌걸요."

대공에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무리는 대공마저도 깎아내렸다. 대공을 존경해 붉은 머리 신부를 못마땅해하는 무리는 신부에 대한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대공을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무리는 신부를 낮잡아여겨 자신들이 신부보다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악의적인 말들을 뱉어냈다.

사람들은 대공의 신부가 붉은 머리라는 소문에 잠시 반응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 사실은 곧 잊혀졌다. 그랬기에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도 대공의 신부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공과 비슷한 또래의 영애들 무리 뿐이었다. 안에서 결혼식을 마쳤다는 오르간 소리가 들려온다.

축복의 노래는 두 사람을 축복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곧 두 사람이 걸어나와 자신들의 모습을 귀족들 앞에서 선보일거라는 예고의 뜻도 있었다. 영애들은 모여서 예식장과 연회장을 연결하는 커다란 문을 바라보았다.

대공의 붉은 머리 신부가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한다 한들 그 붉은 머리를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을 비웃어주기 위해 영애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신부가 나오기 전까지는.

예식장에서 연회장으로 향하는 커다란 문이 서서히 열린다. 그 안에 서 있는 두 명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막 결혼식을 올린 대공과 붉은 머리의 신부였다. 이제 완전히 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도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넋을 놓은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애들은 이런 고운 빛깔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붉은빛이 아름답게 도는 적갈색의 머리칼이 우아하게 구불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신부가 입은 화사한 크림색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하얀 목과 어깨를 드러내며 가슴께에서 시작되다가 신부의 허리선을 따라 내려와 퍼지며 내려오는 형태였다.

유행을 지나치게 앞서갔다고 평가될만한 화려한 것이었으나 신부의 긴 베일과 함께 너무나도 아름답게 어울렸다. 누군가가 입으면 과도하게 화려해보일만한 옷이 신부에게는 우아하고 아름답게만 보였을 뿐이다. 영애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붉은 머리칼을 비웃어주겠다는 결심과는 달리 붉은빛이 도는 아름다운 적갈색의 머리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북부의 옅은 머리색들과 비교하자 그 아름다움은 더 두드러졌다. 신부와 눈이 마주친 한 영애는 무어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채 넋을 잃고 아름다운 신부를 바라볼 뿐이었다.

신부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귀족답게 고상했고 우아했으며, 동시에 눈부신 미인이었다. 대공의 결혼식이었는데도 멍하니 신부를 바라보는 남성 귀족들이 나올 정도였다.

검은 예복을 입은 대공 또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서늘한 느낌의 대공은 본래도 보기 드물게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나 오늘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고 있었다. 결혼식에서마저도 대공은 잘생긴 남자였다.

대공의 검은 머리칼과 정중한 태도, 무심한 검은 눈을 찬양하는 레이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대공의 선을 긋는 태도에 앓는 소리를 내던 영애들이 무수히 많았었다. 대공을 미워하는 영애 중 상당수는 아직도 대공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대공을 사랑하는 영애들 역시도 대공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서지 못한건 대공의 옆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완벽한 신부가 있기 때문이었다. 신부의 가벼운 손짓 하나 에도 기품이 넘쳤다. 신부가 영애들의 생각같은 사람이었다면 영애들은 수군거리며 신부를 비웃고 대공에게 마음껏 접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영애들은 대화 한번 나눠보지 못한 신부에게 완전히 압도당해버렸다. 신부의 붉은빛이 도는 적갈색의 머리칼은 아름다웠고 그토록 비웃었던 신부는 누구보다도 고귀했다.

대공과 대공의 신부는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그랬기에 영애들은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만일 신부가 조금이라도 자신들과 비슷한 선에 있었다면 영애들은 신부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데 주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부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처럼 빛났다.

영애들은 그제서야 그녀가 로벨리아 왕국의 크로커스 공작영애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감히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엘쟈네스를 향했던 영애들의 적의는 힘없이 꺾여버리고 말았다. 그 어떤 영애도 엘쟈네스가 들어갈 때까지 다시 입을 열지 못했다.

* * *

황실의 혈족만 출입할 수 있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른 후 연회장으로 통하는 큰 문으로 나가 모습을 보여준 신랑과 신부는 큰 문의 오른쪽에 위치한 대기실로 가는 통로로 들어간다. 엘쟈네스와 렌은 문으로 들어갈때까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가 있어 의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하객으로 온 황실의 혈족들과 귀족 귀빈들을 맞이할 차례였다. 엘쟈네스의 대기실 문과 렌의 대기실 문은 마주보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엘쟈네스는 잡고 있던 렌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렌. 수고했어요. 떨리지는 않았어요?"

"엘쟈가 있어서 떨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래요."

둘은 같은 기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제 엘쟈네스와 렌은 부부였다. 일생을 함께할. 결혼식 하나를 끝마쳤을 뿐이지만 둘은 함께 큰 일을 넘겼다는 동지의식과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갓 부부가 된 둘의 모습은 무척 다정했다. 렌이 물었다.

"다시 만나는 시간은 몇 분 후가 편하십니까."

"드레스를 갈아입고 화장을 약간 손보면 삼십분 후 정도일 것 같아요. 렌은요?"

"엘쟈에게 맞추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 이따 봐요. 렌."

시녀가 문을 열었고 엘쟈네스는 다시 신부대기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들어오자마자 의상을 담당하는 시녀들이 엘쟈네스의 베일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엘쟈네스의 뒤에서 따라오던 두 들러리 영애는 바로 피로연으로 향한다고 했다. 무겁고 길던 베일이 벗겨지자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도란 카렌이 엘쟈네스를 반겼다.

"엘쟈네스님. 기분은 어떠세요?"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네요. 나쁘지는 않아요."

"결혼이란게 다 그래요. 이 사람과 결혼했다는 실감이 바로 나지는 않죠. 일단 드레스를 갈아입고 와주시겠어요? 피로연 화장은 지금 한 화장에 몇가지를 덧바르는식으로 할거에요."

"그래요."

도란 카렌이 손짓하자 시녀 셋이 와서 엘쟈네스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과정을 도와주었다. 안쪽이 매끄럽던 드레스가 벗겨진다. 팔과 어깨, 목을 모두 드러내고 가슴께부터 시작되는 디자인이었기에 벗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미리 모형에 걸려있던 진한 노란색의 드레스가 엘쟈네스에게 입혀진다.

황색에 가까운 노란색의 드레스가 빛을 받을때마다 금빛의 작은 가루들이 반짝였다. 엘쟈네스가 신고 있던 편한 구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세련된 검은 힐로 바뀌었다. 지금 입으려는 드레스는 풍성했던 크림색 웨딩드레스와는 다르게 발 끝이 노출될 정도의 길이였기 때문이다.

"대공 각하와 언제쯤 만나기로 하셨나요?"

"들어오기 조금 전부터 삼십분 후요."

"시간이 다소 촉박하네요. 잠시 눈을 감아주시겠어요? 최대한 빨리 끝내볼게요."

웨딩드레스를 벗고 금빛의 가루가 반짝이는 진한 노란색의 드레스를 입은 엘쟈네스는 아까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조금 전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다면 지금은 매혹적이다. 눈을 감은 엘쟈네스의 눈 위로 무언가가 살살 칠해졌다.

이내 붓이 눈 위를 스쳐지나갔다. 뺨과 턱 부분에 무언가가 덧발라진다. 그 위로 다시 붓 비슷한 것이 지나갔다. 이번에는 과정이 그리 길지 않았다. 엘쟈네스의 눈 중간부터 눈꼬리 부분까지 무언가가 그려진다. 그 다음에는 목과 쇄골 부분이었다.

도란 카렌은 이번에는 매혹적인 이미지에 맞게 음영을 살리기로 했다. 귀걸이와 목걸이는 아까와 같은 신의 눈물 세트였지만 드레스와 어울리는데다 가치있었기에 굳이 손대지 않았다.

"다 끝났어요."

엘쟈네스는 눈을 떴다. 아까 전 우아하고 위엄있던 아름다운 신부와는 달리 매혹적인 여인이 거울 안에 있었다. 여인의 진갈색 눈은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앞쪽 머리칼을 뒤로 넘겨 묶어 만든 붉은빛이 도는 적갈색의 머리칼이었다. 엘쟈네스는 거울을 보며 도란 카렌에게 말했다.

"머리는 풀어주세요."

============================ 작품 후기 ============================

중간고사에 조별과제에 실습이 쌓여있네요;ㅅ; 하지만 저는 열심히 연재함니다! 방학만 되어도 용량이 이 두배는 될텐데...ㅠㅠ 학교랑 글 병행이 많이 힘들어서 슬픔니다. 하루 네시간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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