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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겨울과 같은 근원에서 태어난 겨울의 마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을 베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겨울의 마법은 윈터나이트 대공가의 피에 깃들며 오랜 세월동안 내려왔다.
윈터나이트 대공들은 대체로 한 명의 자녀를 가졌다. 한 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다고 해도 겨울의 마법이 깃든 아이는 단 한 명 뿐이었다. 겨울의 마법은 다른 마법처럼 그 자체를 공격이나 치유 등에 이용할 수는 없었으나 사용자로 하여금 겨울처럼 초월적인 무언가를 비롯한 저 세상의 것들을 벨 수 있게 했다.
대공에게 평생의 맹세를 바친 화이트 기사단은 겨울의 마법에 대고 맹세해 영혼을 묶어 겨울의 마법 중 일부를 빌렸다. 그리고 대공비들은 대공과의 접촉을 통해 겨울의 마법을 직접적으로 받아갔다.
렌이 엘쟈네스에게 깃들게 한 것은 겨울의 마법 그 자체였다. 윈터나이트의 피가 섞이지 않았기에 주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기사단처럼 맹세를 통해 빌린 마법을 쓰는 대신 자신의 것이 된 겨울의 마법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엘쟈네스는 렌과 비슷한 위치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겨울의 마법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강해지거나 특별한 능력을 받았다. 단, 겨울의 마법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소유주들은 윈터나이트에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그 곳에 머물러야만했다.
그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다음 대의 대공이 대공위를 물려받으면서부터였다. 화이트 기사단은 모두 사연이 있었다. 겨울의 마법은 그런 이들을 윈터나이트로 이끌었다. 겨울을 베어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역할을 할 이들을 부르는 것이다.
그랬기에 렌은 신부가 될 사람에게 겨울의 마법을 주고 싶지 않았다. 겨울의 마법의 소유주는 지나친 강함에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엘쟈네스가 죽어가지 않았더라면 렌은 평생 엘쟈네스에게 겨울의 마법을 선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은 경고했다. 엘쟈네스의 마법은 상상 외로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이런 이에게 겨울의 마법을 선물하면 위험할 것이다. 감정은 말했다. 엘쟈네스는 겨울의 마법을 받는다면 다음 윈터나이트 대공이 대공위를 물려받기 전까지 매년 겨울마다 겨울을 직면할 것이다.
화이트 기사단 중 겨울을 마주하고 자살한 이가 몇 있었다. 전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엘쟈네스가 강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런 삶을 살게 해도 괜찮은걸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창백한 얼굴의 엘쟈네스를 살려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엘쟈네스를 만나 교감하고 감정을 나누고 함께 잠들면서부터 렌의 삶이 달라졌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엘쟈네스가 베스 아룬델과 함께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부터 그랬다. 그답지 않았다. 베스 아룬델을 벤 것도, 엘쟈네스에게 주저없이 겨울의 마법을 깃들게 한 것도. 윈터나이트 대공비는 대공과 함께 겨울을 베어내거나 겨울을 베어내는 대공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랬기에 윈터나이트 대공비는 다른 대공비들과는 다르게 각하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대공만큼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작위만 있는 허울 좋은 자리가 아닌 실질적인 권력의 자리였다.
렌이 밀어넣은 겨울의 마법은 엘쟈네스의 몸에 스며들었다. 심장에 자리한 겨울의 마법이 저 세상의 마법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파괴의 마력에 겨울의 마법이 깃들었다. 파괴의 마력과 저 세상의 마법은 충돌하는 중이었다.
이내 파괴의 마력이 저 세상의 마법을 소멸시켰다. 추잡한 속성을 띠었던 저 세상의 마력이 사라지자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오묘한 마력의 빛이 엘쟈네스의 몸 구석구석에 퍼져나갔다. 겨울의 마법이 실린 파괴의 마력은 엘쟈네스의 몸에 남은 저 세상의 부정한 흔적들을 태웠다. 렌은 그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동시에 엘쟈네스의 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엘쟈네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진갈색의 눈동자가 속눈썹 사이로 나타났다. 엘쟈네스는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렌은 엘쟈네스에게 다가갔다. 윈터나이트는 격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전대 대공부부의 사이도 열렬한 사랑의 관계보다는 친근한 우정의 관계에 가까웠다. 그러나 렌은 반려자가 깨어나는 것을 보는 순간부터 그답지 않게 격한 초조한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엘쟈. 정신이 듭니까."
"렌. 이리 가까이 와요."
엘쟈네스가 작게 웃었다. 엘쟈네스는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 같았다. 창백하게 질린채 차가워졌던 고비때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겨울의 마법을 받은 이상 그 어떤 부정한 것도 엘쟈네스를 감히 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 세상의 것들과 겨울은 엘쟈네스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렌은 엘쟈네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엘쟈네스가 팔을 벌렸다.
"안아줘요."
렌은 엘쟈네스를 끌어안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엘쟈네스는 모든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시녀장 후보로 나타났던 베스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말아야할 어떤 마법을 이끌어다 썼다. 그것이 엘쟈네스에게 스며들을때쯤, 렌이 나타났다.
눈이 가려져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렌이 엘쟈네스를 구했다. 그리고 엘쟈네스의 생명을 구했다. 엘쟈네스는 미약하게 숨을 내쉬고 있을때 입 안으로 들어온 시리고 청량했던 작은 마법을 기억했다.
그것은 강대하고 순수한 어떤 마법이었다. 그것들은 지금도 엘쟈네스의 마력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엘쟈네스가 렌에게 몸을 기댔다. 이 순간 렌은 충족감을 느꼈다. 전해지는 엘쟈네스의 체온이 따스했다.
렌은 천천히 엘쟈네스를 잡았다. 엘쟈네스가 렌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렌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마주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엘쟈네스가 눈을 감았다. 서로에게 묻지 않아도 뜻을 알 수 있었다. 입술이 완전히 포개진다.
뜨거웠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만족스러웠다. 렌은 엘쟈네스를 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점차 더운 열기가 둘을 잠식했다. 렌의 입술이 엘쟈네스의 목에 닿았다. 그 분위기를 깬 것은 두 번의 노크소리였다. 집사가 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렌의 허락에 들어온 집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각하. 시녀장 후보와 블랙 기사단원 네 명 모두가 깨어났습니다."
"알겠습니다. 위치는 어디입니까."
"양쪽 다 병실에 눕혀두었습니다."
"같이 가요. 렌."
"몸은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렌이 있잖아요."
렌은 엘쟈네스를 신경쓰고 있었다. 엘쟈네스는 렌에게 물을 것이 많았다. 베스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베스가 썼던 마법과 엘쟈네스에게 스며든 마법에 대해. 둘은 손을 잡고 방에서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엘쟈네스는 렌을 올려다보았다.
"렌. 아룬델은 무엇인가요? 제가 물어보아도 될까요?"
"엘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룬델은 옛 아마릴리스에 존재하던 귀족가문입니다. 윈터나이트는 대대로 겨울을 베어냈고 아룬델은 대대로 그것을 방해해 왔습니다. 먼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은폐되어 아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베스는 아룬델이었나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룬델의 몇 안되는 남은 후손 중 하나입니다."
"그녀가 쓴 마법과 렌이 제게 준 마법은 무엇이었나요? 솔직하게 말해줘요. 렌."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먼 옛날 누구도 모르는 어떤 일로 인해 세계가 뒤집혔다. 이것은 엘쟈네스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세계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이 학자들이 발견해낸 흔적으로 인해 밝혀졌으나 그 외의 증거는 없었다.
마법 전쟁이 일어난 것이라는 가설이 지금은 가장 타당한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렌이 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였다. 세계가 다시 시작될 무렵부터 겨울은 존재해왔다. 엘쟈네스는 이야기를 듣다 물었다.
"베스가 보여준 것이 그 '겨울' 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아룬델이 겨울을 모방해 불러낸 저 세상의 마법에 불과합니다."
겨울은 가장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에너지였다. 새하얀 그것은 어떤 형태로 겨울마다 윈터나이트의 북쪽 숲에 나타났다. 2개월간의 겨울 안에 겨울을 베어내지 못하면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은채 세계가 멸망한다.
그 베어내는 과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겨울의 마법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밀이었다. 그랬기에 렌과 화이트 기사단은 마법 전쟁 이후 이것이 생겨났다는 추측을 막연히 했을 뿐이다.
엘쟈네스는 몸 속에 흐르는 맑고 시린 어떤 마법을 느꼈다. 그것은 엘쟈네스의 심장에서부터 시작되어 파괴의 마력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겨울의 마법일 것이다. 엘쟈네스는 렌과 잡지 않은 손 위로 마력을 흘려 마력을 실체화 시켰다.
예전과 달랐다. 서늘하고 극도로 차가운 어떤 것이 마력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파괴의 마력은 그것을 받아들여 한층 더 강해진 상태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심장 부근에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마력쪽으로 흐르는게 느껴졌다.
"렌. 이것이 겨울의 마법인가요?"
"네. 다치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아직 엘쟈의 몸이 마법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겁니다."
"고마워요. 주의할게요."
아룬델은 자신의 몸이나 타인의 생명을 제물로 삼아 저 세상의 것들을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렌의 이야기를 들으며 엘쟈네스는 저 세상의 것이라는 말에 동감했다.
베스가 불러낸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될 더러운 불순물 비슷한 것들이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기에 엘쟈네스의 파괴의 마력이 소용없던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엘쟈네스의 피에 흐르는 겨울의 마법이 악한 것을 향해 반응했다.
엘쟈네스는 느꼈다. 다음에는 그것들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내 두 사람은 저택의 병실에 도착했다. 본래 이 곳은 대공 부부만이 사용하는 곳이었기에 다른 병실을 사용해야했으나 엘쟈네스를 지키다 당한 네 기사의 출혈이 심해져 우선 이 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집사가 두 번 노크했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밝은 음성이었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밝은 인상으로 웃고 있는 처음 보는 여자였다. 엘쟈네스는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세 시녀장 후보 중 한 명이 베스의 손에 죽었다. 이 곳에 있는 사람은 무사히 발견된 나머지 한 명의 후보였다.
============================ 작품 후기 ============================
오늘 표지가 제가 직접 그린 그림임니다...◑_◑ 제가 그린 인물화는 요거 뿐이에요!
지난 화 의외의 논란: 렌은 화이트 기사단과 키스를 했는가☞아닌 것으로 밝혀졌슴니다!!!^0^(심장 후들후들)
godqhrcjstk님, 홍홍홍설님, somin님, 미야나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오늘은 @ 붙이고 질문해주시면 선착 다섯 분께 리코멘을 해드릴거에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