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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준비
"어서오십시오. 대공 각하.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비와 가구를 보러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허허."
가게의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렌이 들어오자마자 렌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새하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노인은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의 모자였다.
노인은 흡사 요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엘쟈네스는 렌과 함께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가게 안은 넓고 아름다웠다. 벽면의 세공품들은 실력있는 예술가가 조각한 것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각종 가구들이었다.
아마릴리스 황실의 가구도 이렇게 튼튼하고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얀빛의 나무나 검은빛의 나무, 보통 나무로 만들어진 옷장과 책꽂이 등은 엘쟈네스가 보아왔던 가구 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엘쟈네스는 오색의 찬란한 얇은 무늬들이 붙여져 광택을 내는 검은 가구를 보았다.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엘쟈네스와 렌 사이로 걸어왔다.
"마법 전쟁 전부터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오던 기술로 만든 것이지요. 이런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저희 집안 뿐입니다."
노인은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쟈네스는 그 옆의 커다란 유리관 하나를 발견했다. 유리관 안에는 작은 침대 모형들이 여러개 들어있었다. 침대 아래에 붙은 작은 번호판을 보고 옆의 종이 주문서에 번호와 요구사항을 적어 디자인을 고르는 형식인듯 했다. 엘쟈네스는 침대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작은 모형이다보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렌. 여기에 있는 모형은 정말 귀엽지 않나요?"
"달과 별이 그려진 이불이군요. 저도 어릴 적 덮었었습니다."
"정말 귀엽고 예뻐요. 정말 별이 쏟아질 것 같은걸요."
"북쪽은 남쪽에 비해 해가 빨리 져 동화가 많은 편입니다. 아마 어떤 동화에서 나오는 밤하늘 이불을 가져온 것일겁니다."
"어머나. 밤하늘 이불이요?"
"굴리쉬라는 한 청년이 태양과 내기를 해 이겼습니다. 굴리쉬는 소원의 대가로 가장 아름다운 이불을 요구했고,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밤하늘 자락을 얻게 되어 늘 이불삼아 덮고 잤다는 이야깁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렌. 이 모형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엘쟈네스가 가리킨 것은 렌의 침실에 있는 것과 흡사하지만 좀 더 문양이 들어간 것이었다. 렌은 엘쟈네스를 바라보았다. 엘쟈네스는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엘쟈를 기쁘게 한다면 사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 가게에 있는 모든 것을 주문해도 상관 없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사십시오."
"다 사기에는 너무 많아요. 렌. 둘 곳이 없는걸요."
"건물을 더 지으면 됩니다."
그 말에 엘쟈네스가 웃었다. 렌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윈터나이트 대공들은 감정의 폭이 넓지 않고 대대로 욕심도 없던 만큼 윈터나이트의 부는 어마어마했다. 렌이 황도 전체를 사들여도 돈은 남아돌 것이다. 렌은 엘쟈네스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사고 누리기를 바랐다.
엘쟈네스는 몇 번 둘러본 후 가구 중 여러 개를 샀다. 렌은 좋다고 대답했다. 엘쟈네스가 설령 대공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사들였거나 가게의 모든 물건을 골랐도 그는 긍정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엘쟈네스의 기쁜 얼굴을 보기 위해 하는 일들이었다.
여러 가지 가구의 주문을 끝내고 부부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왔다. 다음으로 들어간 가게는 커튼을 파는 가게였다. 이 곳의 주인은 긴 머리를 묶은 중년의 남자였다. 남자는 엘쟈네스가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순수한 예술적인 감탄 뿐이었다.
"각하. 오랜만입니다. 이 분은 비 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제 비입니다."
"각하만큼이나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분이시군요.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비 각하. 저희들에게 있어서 각하의 검은색은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각하를 모델로 종종 삼고는 합니다."
"괜찮다. 각하를 모델로 삼는 이들이라면 이 곳의 사람들인건가?"
"그렇습니다. 오. 맙소사. 비 각하의 발음은 부드럽고 유려하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는 넋이 나간듯한 얼굴로 펜을 꺼내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악필로 글씨가 적혀져갔다. 이내 네모 하나가 그려졌다. 그는 엘쟈네스를 한 번 보더니 그 위에 문양들을 그려나갔다.
장미와 어떤 문양과 알 수 없는 악필들이 작은 수첩에 휘갈겨졌다. 커튼의 도안인듯 했다. 렌은 그 광경을 익숙한듯 바라보고 있었다. 엘쟈네스는 렌에게 물었다.
"렌. 이 장인의 거리는 어떤 곳인가요?"
"저 사람처럼 순수하게 예술에 종사하며 여러 물품들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 많은 곳입니다."
"렌이 영감을 준다는 이야기는요?"
"아카데미에 다닐 적부터 이 거리에서 자주 장인들의 모델이 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윈터나이트 영지의 광물이나 나무, 옷감 등의 질이 좋아 장인들은 대대로 이 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윈터나이트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저는 짙은 색을 가진 편입니다."
"확실히 북쪽에 오고서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 중 렌 이외의 사람은 본 적이 없네요. 렌처럼 수려한 사람 역시 드물기도 하고요."
"제가... 잘생겼습니까?"
"제 눈에는 그래요. 렌."
렌은 묘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렌은 자신이 다른 이들에 비해 수려한 외양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늘한 느낌의 미남이라는 칭찬은 렌이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느꼈던 것이었다.
렌은 엘쟈네스에게 언제나 아름답다고 말해주었지만 엘쟈네스는 렌의 외양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렌이 취향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밝고 쾌활한 미남을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엘쟈네스의 취향도 그런게 아닌가 내심 고민했던 터였다.
엘쟈네스의 눈에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에게 묘한 충족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렌은 엘쟈네스의 손을 잡았다. 엘쟈네스는 즐거워하는 기색으로 여러가지 커튼을 들여다보았다.
남쪽의 것들에 비해 레이스가 들어가거나 더 두터운 재질로 이루어져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엘쟈네스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렌은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런 가게에서 일주일도 더 엘쟈네스를 기다릴 수 있었다.
결국 엘쟈네스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조금씩 변하는 우아한 보라색의 커튼과 어두운 붉은색의 커튼을 샀다. 두 개 모두 렌의 마음에도 들었다. 윈터나이트 대공성과 잘 어울릴만한 것들이었다.
엘쟈네스는 이후 다른 가게들도 들러 여러 가지의 물품들을 샀다. 렌은 엘쟈네스와 함께 커다란 장인의 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화이트 기사단원과 엘리나는 먼발치에서 둘을 호위하고 있었다. 엘리나 블루벨은 너무 유명했기에 대공 부부의 옆에 붙어있으면 지나친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엘쟈네스가 물었다.
"렌. 지금은 어디에 가고 있나요?"
"살 것이 있습니다."
"물품들은 다 산 것 같은데. 혹시 빠뜨린게 있나요?"
렌이 대답하려는 순간 우아한 하얀색의 가게 하나가 나타났다. 엘쟈네스는 가게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보석이 그려져있는 곳이었다. 렌은 그 곳의 문을 열었다. 황실에서 준 보석들도 아름다웠지만 이 가게의 장인은 그 사람을 보고 어울리는 장신구를 만들어내는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엘쟈네스는 렌과 함께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조명 아래에 나열된 수많은 유리관들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조명들 아래로 화려하고 반짝이는 보석들이 진열된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게 전체가 그러했다. 엘쟈네스는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은으로 이루어진 작은 장식물이 덧대어져 더없이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였다. 목걸이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가게의 모든 장신구들이 아름답고 세련된 것들이었다. 렌은 말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사십시오. 모두 다 엘쟈를 위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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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션이 있습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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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을 채우면 며칠 뒤에 풀려던 공작가쪽 외전을 내일 아침 8시 7분에 풀겠슴니다! 100 너무 많다면 50으로...;ㅅ;!
사실 여러분들이 너무 예뻐서 빨리 보여드리려고 하는거라서요☞☜ 아주 쉬운 미션이어야하는데 혹시 어려운 미션일까봐 걱정됨니다 엉엉ㅇ<-< 50 이상이면 8시 7분에 올라가요!
암흑속에사는뱀님, 샴푸군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