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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델피늄의 혁명과 그 여파로 인해 남쪽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며 로벨리아 왕국은 아마릴리스 황실에 에너지석이 가득 나는 섬을 넘겨주었다. 에너지석은 뛰어난 에너지 공급 매체였으나 그 가공법은 오로지 아마릴리스 황실만이 알고 있었다.
아마릴리스 황실은 에너지석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에너지석 하나도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로벨리아처럼 에너지석을 쉽게 내어주는 나라는 없었다. 아마릴리스의 손에 에너지석을 넘기는 것이 호랑이에게 이빨과 발톱을 달아주는 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벨리아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로벨리아는 델피늄과 여러 다른 나라들의 중앙에 있었다. 비교적 북쪽의 나라들은 델피늄의 사상에 물들어가는 로벨리아를 은근히 위협했다. 델피늄을 비롯한 비교적 남쪽의 나라들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이 컸기에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로벨리아에게 압력을 가했다.
델피늄의 혁명 이후 델피늄에 자본을 기반으로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알려지기 전의 일이었다. 그랬기에 로벨리아는 아마릴리스와 동맹 혼인을 동시에 추진했다. 크로커스가에 청혼서가 날아온 것은 로벨리아 왕실의 세 공주가 이미 시집을 간데다 로벨리아 왕실의 피가 섞인 가장 가까운 여성 귀족이 리리엘과 엘쟈네스였기 때문이었다.
동맹의 형태였기에 리리엘이나 엘쟈네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렇다해도 리리엘 크로커스와의 혼담이 오가다 신부가 파혼을 한 전적이 있는 엘쟈네스 크로커스로 바뀐데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엘쟈네스는 렌의 말을 듣고서 납득할 수 있었다. 본래 황제라는 자리는 어떤 결정을 할때 그로 인한 이익과 손해, 생겨나는 여러 파급효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엘쟈네스의 강한 마력은 왕국 내에서도 유명한 상황이었다. 리리엘에게 감사해야할 점은 그 사실이었다.
리리엘을 성녀로 엘쟈네스를 악녀로 대조하는 소문이 엘쟈네스의 능력을 은근히 가려주었다. 엘쟈네스의 마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순도가 높았다. 남쪽의 여러 나라들의 인재를 뽑아도 엘쟈네스처럼 태고에 가까운 마법을 가진 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소문은 엘쟈네스를 냉정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처럼 만들어주었다. 간혹 엘쟈네스를 전쟁에 개입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즉시 무산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크로커스 공작가의 장녀인 엘쟈네스를 이용할 수 없기도 했으나 엘쟈네스는 돌발 행동을 할 위험이 컸다.
왕을 비롯한 다른 귀족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랬기에 아마릴리스의 일원이 된다는 말에 두 손을 들고 환영했던 것이다. 엘쟈네스는 놓치기는 아까우나 갖기는 꺼려지는 마법사였다.
치유의 능력이 각광받는데 비해 그 반대 속성인 파괴의 마력을 가져 꺼려진다는 이유도 컸다. 차라리 아마릴리스 황제라면 그녀를 잘 회유하고 이용할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렌은 겨울의 마법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악에 가까운 것들을 베어냈다. 아마릴리스 황제가 엘쟈네스를 쉽게 받아들인 것은 그런 판단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엘쟈네스에 대한 조사 역시 충분히 했으리라. 그 아마릴리스 황제니까.
그러나 파괴의 마력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파괴의 마력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었다. 제대로 연구된 학문이 아니기도 했다. 그 불안전한 위험성을 감수할 수 있던 것은 엘쟈네스가 잘못될 시 렌이 그녀를 베어낼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어서였다.
또한 현재 가장 태고에 가까운 마력을 가진 크로커스가의 핏줄인 그녀를 겨울의 땅이 반길 것이라는 계산도 들어갔을 것이다.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쳐지나가는 빠른 풍경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채 엘쟈네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었다.
"그렇군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겨울의 땅에 와서 깨달았어요."
"이 땅이 이토록 엘쟈를 반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엘쟈는 이제 엘쟈네스가 달리는 길을 반짝거리는 은빛으로 만들고 있었다. 점차 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렌은 말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엘쟈를 악녀로 받아들였다는 사람들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데다 다소 딱딱한 이미지였는걸요. 잘 웃는 편도 아니었어요."
"엘쟈는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렌을 만나고 변하게 되었는걸요. 그렇지는 않아요."
"엘쟈의 웃는 얼굴은 아름답습니다. 즐거워하는 것도 좋습니다. 꽃과 보석,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웃는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작은 엘쟈는 사랑스럽다는 말에 얼굴을 갸웃거리다 엘쟈네스의 위에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가루를 뿌려주었다. 손바닥만한 소녀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으나 이야기가 길어지자 오래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심술이 난 작은 엘쟈는 기사들에게 아주 작은 우박들을 뿌려댔다. 모두 사람의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작은 얼음덩이들이었다. 기사들은 애써 아픈 척을 하며 작은 엘쟈를 달래주었다. 렌의 늑대와 엘쟈네스의 늑대가 앞서가고 있었다. 숲의 끝이 새하얗게 보였다. 렌은 말했다.
"만일 엘쟈가 변해버려 제게 마법을 쓴다고 해도, 결코 엘쟈를 베어낼 수 없을겁니다."
엘쟈네스는 눈을 크게 떴다. 렌은 엘쟈네스에게 장난을 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사실만을 말했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엘쟈네스의 몸 속에 흐르는 맑고 시린 겨울의 마법은 옳지 못한 것들을 파괴하라고 속삭였다. 그것은 겨울의 마법만이 띤 본능이었다.
그것을 거스를 수 있을 정도라면. 엘쟈네스는 렌이 변한다면 결국은 렌을 베어낼 것이다. 그러나 렌은 엘쟈네스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었다. 엘쟈네스는 다시 느꼈다. 렌을 사랑했다.
델피늄의 혁명에 대해 알려지고 남쪽의 나라들이 동맹을 맺게되고 북쪽을 아마릴리스 황실이 주도하게 되면서 그들의 시대는 평화로워졌다. 둘에게는 어떤 시련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숲을 벗어나자 드넓은 건축물들이 보였다. 늑대들은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엘쟈는 숲을 벗어나게되자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눈을 꼭 감고 엘쟈네스에게로 달려왔다.
"렌. 작은 엘쟈가 따라왔어요. 원래 숲에만 사는 아이가 아닌가요?"
"엘쟈네스가 약간의 마력을 준다면 괜찮을겁니다. 마력을 먹고 사는 생물이니까요."
엘쟈네스가 물방울 한 방울 정도의 작은 마력을 만들어내자 작은 엘쟈는 그것을 들이마시고 즐겁다는듯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숲을 벗어나자 있던 것은 거대한 수도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윈터나이트에 남아있는 오래된 북쪽 건물들의 양식을 사용한 건물들이 보였다. 여러 저택들과 집들이 보였다.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곳은 얼어붙은 도시였다. 늑대들은 멈추었다. 렌은 기사단원들에게 명했다.
"겨울의 파편들을 찾아보고 오십시오."
화이트 기사단원들은 눈과 동화되어 신비롭게 보였다. 하얀 제복을 입고 정령과 같은 새하얀 늑대들을 탄채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화이트 기사단원들 중 반 정도는 북쪽의 사람들이었다.
북쪽 사람들 특유의 옅은 머리색과 눈색을 가진 사람들과 여러 나라들의 사람들이 섞이자 전설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이 더 신비스럽게 보였다. 엘쟈네스는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없었다. 하늘은 온통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엘쟈네스와 렌은 거대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엘쟈네스는 이 도시들이 북쪽의 도시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고풍스럽고 거대한 건축물들에는 보석과 화려한 장식들이 세공되어있어 아름다웠다. 시리고 차가운 공기가 엘쟈네스를 스치며 지나갔다. 렌은 엘쟈네스에게 설명했다.
"지금부터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겨울의 땅 자체가 거대한 판이 됩니다. 겨울의 파편을 일정 이상 모아야 겨울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기사단원들은 겨울의 마법을 이용해 파편들을 추적할겁니다."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해야하나요?"
"이 도시 안에 있는 파편을 찾으면 됩니다."
"이 도시는 아마릴리스와 닮았어요."
"맞습니다. 이 곳은 옛 아마릴리스의 수도니까요. 아주 오래 전 겨울이 풀려난 일이 있었고 아마릴리스의 끝자락이 얼어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땅은 그리하여 버려졌습니다. 옛 아마릴리스의 시간은 멈추어버렸습니다."
엘쟈네스는 이토록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데도 건물들은 깎여나간 부분이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눈이 쌓인 건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멈추어버린 아마릴리스의 수도는 까마득한 오래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있었다.
문득 겨울의 마법이 신호를 보냈다. 맑은 겨울의 마법이 엘쟈네스에게 알렸다. 이 주변에 반드시 손에 넣어야할 것이 하나 있다. 파편. 엘쟈네스는 깨달았다. 엘쟈네스의 늑대가 달린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겨울의 마법이 그녀를 이끌었다. 저것을 잡아야만했다.
============================ 작품 후기 ============================
자라나는 스케일...ㅇ<-< 저는 씀니다. 사실 첫 화부터 세계관이 커져서... 글렀써요 엉엉
하빈유님, 비에스흑월령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헉...;ㅁ; 하빈유님 소설 진짜 좋아해요. 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