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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변화한다-58화 (5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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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기

소풍은 윈터나이트의 일원들에게 즐거움을 남기면서 끝이 났다. 대대로 이어져온 대공들의 서늘한 성격 탓에 진중한 분위기가 강했던 윈터나이트에서 거의 처음 있는 행사였다.

돌아가며 기사들은 즐겁게 이야기했다. 보좌관들은 기사들과 시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녀장인 아이라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있었다. 간만에 몸을 움직인 엘리나도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할 때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이 엘리나였다고 들었다.

렌과 엘쟈네스의 사이는 좀 더 친밀해져 있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엘쟈네스는 말했다.

"렌."

"네."

"언젠간 제 아카데미 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들어주실건가요?"

"엘쟈가 하는 이야기라면 기꺼이 기쁘게 들을겁니다."

"고마워요."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엘쟈가 그랬듯 엘쟈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엘쟈네스의 머리에는 하얀 윈터데이로 만들어진 화관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한 쪽으로 늘어뜨려 땋고 있었다. 엘쟈네스의 손에 들린 꽃다발 역시 윈터데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무릎 위에 놓인 윈터데이 몇 송이는 엘쟈네스의 가벼운 여름용 드레스와 잘 어울렸다.

이 화관은 렌이 만든 것이었다. 괴로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끝마친 후 렌은 그녀에게 문득 윈터데이로 만든 화관을 씌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윈터데이는 겨울이 사라지고 따스한 계절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꽃이다. 렌의 겨울을 끝낸 것은 엘쟈네스였다.

윈터데이로 만들어진 화관을 쓴 여자는 그 해 지금까지 겪었던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렌의 손에는 엘쟈네스가 서툴게 만든 꽃반지가 끼워져있었다. 기사들은 렌의 손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듯 조금씩 수군거렸으나 엘쟈네스의 모습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윈터데이로 치장한 엘쟈네스는 마치 전설 속 윈터데이의 여신 같았다. 비가 이런 미녀이니 그 대공마저도 넘어갈 수 밖에 없으리라. 윈터나이트에 처음 와서도 다소 어두운 기색을 보였던 진갈색 눈동자에는 이제 밝은 빛만이 가득했다. 처음의 경직된 모습이 아닌 부드럽게 풀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엘쟈네스는 아름다웠다. 이제는 생동감과 사랑스러움이 넘쳤기에 그 아름다움이 더 와닿았다. 저택에 돌아온 엘쟈네스는 아이라를 불렀다. 아이라에게로 연결된 전용 끈을 잡아당기자 얼마 후 아이라가 대공 부부의 침실 앞에 찾아왔다. 엘쟈네스는 말했다.

"아이라."

"네. 마님."

"내 드레스와 보석 중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골라놓으렴. 아마릴리스 황가를 맞는 내내 최상의 모습을 보이고싶구나."

"알겠습니다. 마님."

아이라는 차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한 가지 일을 명령하면 그 이상이나 열 배의 것을 해오고는 했다. 아이라는 엘쟈네스가 표현한 것 이상으로 엘쟈네스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렌은 능숙한 춤솜씨와 압도적인 모습에 비해 사교계를 잘 알지 못했지만 엘쟈네스는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엘쟈네스를 적대하던 영애들마저도 사교계에서 엘쟈네스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는 했다.

아카데미 시절 렌을 괴물 취급했던, 현재는 발라디미르 아마릴리스 황자의 약혼녀인 여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렌에게 전혀 관심이 없거나 호의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자세한 사항은 그녀를 만나고 판단해야 하리라.

그 전에 대비를 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엘쟈네스는 거울을 보았다. 엘쟈네스는 여전히 빛났고 윈터나이트에 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을 되찾으며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거울 속의 여자는 우아했다. 엘쟈네스는 뒤돌아섰다. 황족들이 오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마침내 아마릴리스 황족들이 윈터나이트로 향했다. 아마릴리스에 무더위가 찾아온 첫 날이었다. 황족들은 대대로 더위에 약했다. 그들은 더울수록 축 늘어지고는 했다. 황족들에게 내려오는 이능 때문이었다.

무더위는 첫 날을 기점으로 해 점점 더 강해지다 몇 주가 지나면 끝났다. 사람들은 더웠기에 낮에 자고 밤에 활동했다. 무더위 시기의 밤거리와 불꽃놀이는 유명했지만 이 시기에 황족을 향한 암살시도가 기승을 부렸기에 황족들은 여름 휴가를 가졌다.

조나단 황제의 네 자녀, 황태자 니콜라이와 둘째 황자 발라디미르, 셋째 황자 레오드릭과 막내 황녀인 아나스타샤가 여름 휴가에 동참했다. 넷째인 예리카 황녀는 이번 여름 휴가에서 빠졌다. 그녀의 절친한 후배가 아카데미에서 도움을 요청했던 탓에 바빴던 것이다.

여름이 되자 다소 신경질적이 된 황후는 마차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차는 달리고 있었다. 발라디미르 황자의 약혼녀이자 아나스타샤 황녀의 친우인 라시아 블렌시아는 발라디미르 황자의 옆에 앉아 아나스타샤 황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오라버니가 애처가가 되었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믿겨져? 꽃과 함께 편지를 선물하는 오라버니라니!"

"아나스타샤. 남의 이야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지는 말거라."

발라디미르 황자는 윈터나이트 대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나스타샤 황녀에게 가벼운 주의를 주었다. 아나스타샤 황녀는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였으나 막내로 자란 탓에 다소 철이 없는 편이었다. 성인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이던 아나스타샤 황녀는 곧이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에. 그런 붉은빛은 처음 보았어. 신부의 머리카락을 본다면 라시아도 감탄할거야. 레오 오라버니는..."

"나는 이미 보았어. 엘쟈네스 크로커스라면 말이지."

"어머. 오라버니. 이제는 엘쟈네스 윈터나이트인걸! 그러고보니 오라버니는 남쪽에서 요양을 했었지 참."

아나스타샤 황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드릭은 유달리 몸이 약한 편이었다. 무리를 하면 바로 병이 찾아오고 더위에는 그럭저럭 버텼으나 추위에는 버티지 못했다. 그랬기에 레오드릭은 공식적으로 요양을 한다고 알린 후 남쪽의 아카데미에 가게 되었다.

당시 북쪽과 남쪽의 교류가 거의 전무했기에 레오드릭의 남쪽 아카데미행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따뜻한 남쪽의 기후는 레오드릭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북쪽이 아닌 남쪽이었기에 레오드릭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레오드릭은 그 곳에서 리리엘 크로커스를 만났다. 그리고 엘쟈네스 크로커스도.

첫째 니콜라이 황태자와 둘째 발라디미르 황자와는 다르게 레오드릭은 루카르엔 윈터나이트 대공을 꽤 존경했다. 우선은 그의 놀라운 능력 때문이었고, 다른 이유는 윈터나이트 대공과 비교당할 일이 없어서였다. 경쟁상대가 아닌데다 경쟁을 할 일이 없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그의 친척 형인 윈터나이트 대공에 대해 나름대로 친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루카르엔 윈터나이트의 짝이 그 엘쟈네스 크로커스라는 생각을 하며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라시아 블렌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물었다.

"레오드릭 황자님. 그녀에 대해 잘 아시나요?"

"엘쟈네스 윈터나이트가 된 여자를 말하는거라면 제법 잘 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이었나요? 윈터나이트 대공 각하께서 빠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분이셨겠죠?"

라시아의 표정 관리는 완벽했다. 발라디미르 황자조차도 라시아가 루카르엔 윈터나이트에게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물음에 아마릴리스 황녀도 함께 궁금하다는 얼굴을 했다. 레오드릭은 말했다.

"그녀는 좋지 못한 여자였습니다. 제 친한 선배와 후배의 누이였지요."

"선배와 후배라면 어떤 사람들이야, 오라버니?"

"그녀의 여동생인 리리엘 크로커스와 어린 남동생인 요하네스 크로커스. 라시아. 그녀에 대해 기대를 가질 생각이라면 버리는게 좋을겁니다. 그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으니까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러는거죠?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라시아는 교묘히 순진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황족들은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에 타인의 생각에 대해 깊이 파악하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황족으로 살며 사람을 많이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여유는 감출 수가 없었다. 레오드릭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그녀를 악녀라고 불렀습니다. 리리엘 크로커스 선배는 반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어요. 리리엘 선배가 내민 손을 그녀는 끝까지 붙잡지 않았죠. 매몰찬 구석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나스타샤. 너도 그녀에 대해 기대를 가지는건 그만둬. 사적으로 엮이지 않는 편이 좋을거야. 루카르엔 형님이 그런 여자를 사랑한다는 헛소문이 퍼진 이유를 모르겠군."

마차는 달리고 달려 워프 게이트를 통과했다. 마차가 이내 빠르게 윈터나이트에 접어들었다. 라시아 블렌시아는 이야기를 들으며 은근한 우월감과 승리감을 맛보았다. 레오드릭은 그녀에 대해 말하기조차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레오드릭은 그녀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라시아가 훨씬 아름답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라시아는 그렇지 않다며 부인했다. 레오드릭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엘쟈네스 크로커스의 얼굴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다니며 그녀를 이성으로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귀족적이고 답답한 여자와는 한 시도 함께 있고 싶지 않다. 라시아 블렌시아는 기대감을 느끼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르엔 윈터나이트의 표정이 상상되자 짜릿함이 밀려왔다.

그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며 달리는 마차에서 마침내 마차가 거대한 윈터나이트의 성문을 지나쳤다. 목적지에 도착해 황족들은 마차에서 내렸다. 집사와 성의 주인인 윈터나이트 대공 부부가 황족들을 맞기 위해 서 있었다.

라시아가 발라디미르 황자의 도움을 받아 내리는 동안 레오드릭은 먼저 내려 눈 앞을 바라보았다. 아. 순간 레오드릭의 눈이 커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레오드릭도 오냐오냐 자란데다 아나스타샤와 마찬가지로 귀가 얇은 편이었기에 아카데미의 여론에 휩쓸렸씀니다. 하지만 황족이기에 이렇게 살아도 먹고 사는데는 문제 없슴니다^0^♥

41화, 43화가 신고를 받았어요! 그게 사실 노골적인 어떤 묘사와 은유적인 표현도 없어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성적으로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간접적으로 나오거나 성행위가 나오지 않아도 '글 분위기가 야하면(=선정적, 자극적이면)' 일반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함니다. 그래서 두 화는 내렸슴니다. 미성년자도 보는 만큼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어요. 섣부른 판단 죄송함니다. 두 화는 노블 버전에 있어요!

연참을 하고 싶은데 제가 요즘 계속 시험이라...ㅇ<-< 3시간 자면 무리가 옴니다. 미안해요;ㅆ; 얼른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시간이 좀 나서 엑스레이를 찍고 와야할텐데... 저 기관지염 아니면 폐렴이래요!

ke11y님, 유르세스님, M.K님, 포슬포슬님(너무 많아요...;ㅁ;), 체리맛구슬님, 미야나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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