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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모래시계를 되돌린다-137화 (137/199)

137화

“전하께서는…… 도대체 뭘 어떻게 알고 계셨던 겁니까.”

다짜고짜 물어 오는 피아스트 후작 에게 아스가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 했다.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 그리 서

서 떠들 이야기는 아니니.”

“……알겠습니다.”

그에 비카가 눈치 빠르게 시종을 불 러 차를 내오도록 지시했다.

그가 집무실 근처에 나타났을 때부 터 대기를 하고 있던 터라 차 두 잔 이 곧장 준비되었고, 아스와 피아스트 후작이 집무실 옆방에 준비된 응접실 로 자리를 옮겼다.

“알아챈 건 내가 먼저가 아니야. 프 레이 였지.”

“프레이라면…… 설마……?!” 바이올렛의 장녀인 프레이?

비록 클로이와 바이올렛이 추방당한 이후부터 떨어져 지내게 되었지만, 클 로이와 오랜 시간동안 함께 지내 온 그녀라면 아리아를 한눈에 알아보았 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프란츠 프레이. 그대도 잘 아 는 사람이겠지.”

“……그녀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런 듯 보이더군. 직접 찾아가서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녀에게 가족을 모두 빼앗은 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바이올렛을 빼앗아 간 것은 제 국의 황족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프 레이 혼자 제국에 남게 되었으니 그 녀를 당당히 만나러 갈 수 없는 입장 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핏줄 또한 아 닌 아이이고.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인지 감사하다는 표정이 아니 었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이를 눈치챈 아스가 시간을 낭비하 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클로이에 대 해 알아보게 되었지. 아주 어렸을 때 얼굴을 보았던 기억이 났거든. 찾아보 면 볼수록 아리아 영애와 겹치는 부 분이 많아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 었어.”

“그래서 절 찾아오셨던 거군요. 진 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래. 제국에서 추방당한 모자를 거 뒀을 사람이 후작 외엔 달리 떠오르지 않았어. 힘 있는 권력자가 도와주지 이상, 이렇게 정보가 단 하나도 나오 지 않을 리가 없었을 테고 말이야.”

꽤나 그럴듯한 추리가 그대로 맞아 떨어져 이렇게 끊어질 뻔한 인연이 이어졌다. 백작 부인이 결혼을 한 것 은 퍽 나쁜 소식이었으나, 행방조차 모르던 과거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 다. 아리아의 존재마저 찾을 수 있었 고 말이다.

때문에 기쁨으로 사뭇 떨리는 손으 로 차를 마시는 후작에게 아스가 물 었다.

“클로이는 아리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나?”

“예. 애플이라는 여성과 만나자마자 출생의 비밀이 폭로되어 추방을 당했 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애플?”

“현 로스첸트 백작 부인의 과거 이 름입니다. 매춘부에게는 흔한 가명이 지요.”

참으로 괴상한 센스였으나, 꽃이 귀 족가를 상징하는 제국에서는 꽃 외의 것을 가명으로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중에서도 애플은 쉽게 볼 수 있는 과일이었기에 열에 대여섯은 그 이름 을 쓰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 녀의 행방을 찾기 쉽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곧장 사람을 시켜 수소문 을 하지 않았지? 아무리 추방을 당했 다고는 하나, 후작이 거둬들였으니 가 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추방을 당했을 당시의 클로이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말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그간 아비 라고 믿었던 자가 아비가 아님을 알 게 되었는데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 었지요. 지금도 이따금……. 아니, 아 무튼 그 뒤에 찾으려고 사람을 보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 군. 클로이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 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아를 만나 그 목적이 바 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기 뻐하는 표정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순수하게 아리아의 존재 와 그녀와의 만남에 감동하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클 로이도 바이올렛도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군요.”

“……이대로 그냥 돌아갈 생각이라

고?”

“그냥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 까?”

“백작 부인은 백작과 혼인을 하였으 니 더 이상 클로이와 함께할 수 없을 테고, 아리아 영애께선 제국에 자리를 잡았으니 후작을 따라가지 않을 테고. 단지 피가 섞였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이대로 그냥 돌아가겠냐고 묻는 거야.” 그것이 아스에게 가장 바람직한 결 과였다. 만에 하나 아리아가 후작을 따라 크로아로 가 버린다면 지금보다 더욱더 만나기 쉽지 않게 될 테니까. 거리가 너무 멀어 능력을 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걱정되 어 묻자, 조금 고민하던 후작이 대답 했다.

“아니요.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 다. 애플, 아니, 백작 부인은……. 말 씀하신 대로 혼인을 한 상태이기 때문 에 동행하기 쉽지 않겠습니다만, 아리 아 영애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문으로밖에 듣지 못했습니다만, 지 금껏 천대받던 제국보다 크로아가 그 녀에겐 지내기 쉬울지도 모르지 않습 니까. 그간 누리지 못했던 것을 모두 지원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리아에게도 그 편이 더 나 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이 후작처럼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제국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하여도, 서면으로 처리하는 일 이 대부분이었기에 크로아 왕국으로 떠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글쎄. 그게 과연 생각처럼 쉽게 될까.” 하지만 다른 이들이 모두 찬성한다고 해도 아스만은 찬성을 할 수 없었다.

아리아가 아스와 연인 관계라는 소 문은 이미 널리 퍼져 후작 또한 인지 하고 있었기에 애써 그의 부정적인 대 답에 까닭을 묻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애의 마음이 중요하겠지. 후작이 데려가고 싶다고 하여 데려갈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 다. 그러니 의사를 물어보아아겠지요.”

“ 의사라……

아무것도 없던 시기에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던 혈육이 보란 듯이 성공 한 뒤에 갑자기 나타나 널 데리러 왔 다고 하면 그 누가 기쁜 마음으로 받 아들일까. 과거, 매춘부의 딸에 그쳤 던 아리아라면 기뻐 날뛰었겠지만, 지 금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 어딘가에서는 아 리아가 자신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것 이라는 근거 없는 자만 또한 있었다. 아리아라면 갑자기 나타난 후작이 아 닌 자신을 선택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 면……. 크로아와 통한 국경을 닫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미성년자는 국외 로 나갈 수 없다는 법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 서도 그렇게 해서까지 아리아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았다. 권력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리아가 어떻게 대답하든 후작이 그녀를 데려가지 못하게 할 방도까지 떠올린 아스가 퍽 밝아진 표정으로 후작에게 말했다.

“좋아. 그러 후작의 말대로 직접 물 어보는 편이 좋겠어.”

“직접…… 말입니까? 지금요?”

첫 대면을 그다지 좋지 못하게 끝냈 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후작이 퍽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후작이 불편하다면 내가 대신 물어 줄 수도 있어.”

직접 묻는다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이 각서라도 작 성하여 영영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을 굴 리며 고민하던 후작이 이내 아스의 제안을 수긍했다.

“천천히 관계를 진척시켜 차후에 묻 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현 상 태의 의사를 알아 두는 편도 좋겠지요. 전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야 감 사할 따름입니다.”

그게 덫이라는 것도 모르고. 만족스러운 대답에 아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마음이 급했 던 아스가 약속도 잡지 않고 아침 일 찍 백작저를 방문했다. 가발을 써 그 럴듯하게 마부로 위장을 한 후작과 함께였다.

휘황찬란한 마차의 등장에 아침 산

책을 하던 병사들이 놀란 얼굴로 주변 에 모여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차에 그려진 튤립 모양의 인장에 저마다 숨 을 삼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에 아침도 들지 못하고 뒤늦게 저 택 현관으로 나온 아리아가 눈을 동 그랗게 뜨며 까닭을 물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 요?”

“영애를 만나러 온 것 외에 무슨 목 적이 있을까요.”

“저를요? 하지만 너무 이른데…… 게다가 굳이 휘황찬란한 마차까지 타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또 수도 전 체에 자신을 만나러 간다고 자랑이라 도 하고 싶었던 걸까. 바로 방으로 올 수 있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리아가 함께 아침을 들겠냐고 물었다.

“아침은 저와 함께 밖에서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밖에서요?”

“오붓하게 둘이서 말입니다.”

오붓한 저녁도 아니고 아침을? 참으 로 이상한 권유였으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리아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갈아입어야 해요.”

“기다리겠습니다.”

그 외에도 머리카락을 다듬어야 했기

에 조금 시간이 걸릴 터지만, 이를 개 의치 않는다는 대답에 아리아의 마음 이 급해졌다.

그렇게 서둘러 저택 안으로 다시 사 라진 아리아가 분주하게 치장을 시작 했다.

“아가씨! 이 드레스는 어떠세요?”

“목걸이는 이게 좋겠어요!”

“머리카락에 금가루를 뿌릴까요?”

“세상에. 손톱에 광도 내야겠어요!”

분주해진 것은 아리아뿐만이 아니었 다. 시녀들 역시 갑작스런 황태자의 방문에 바빠졌고, 아침 식사를 하려던 백작 부인 역시 소란을 피우며 제 딸 의 치장을 도왔다.

“이 어미의 보석을 좀 가져올까? 이 번에 새로 구입한 다이아가 아주 아 름답단다.”

결국 점점 과해지는 겉모습에 아리 아가 손을 내저어야만 했다.

“다들 지금이 아침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파티가 아닌 아침 식사 를 하러 가는 거니까.”

그렇지 않아도 본판이 화려하건만, 정성을 다해 치장을 하자 눈이 부셔 서 감히 쳐다도 보기 힘든 외형이 되 어 있었다.

아침부터 이토록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이가 존재할까. 아무리 귀족이 라고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그제야 멈칫하며 꾸몄던 것들을 회 수하는 손길에 아리아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준비를 끝냈다.

“……이렇게 아름답게 꾸미고 나오 시면 마차에서 내려 드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너무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 겠네요.”

마지막에 치장한 것을 모두 회수하 여 그리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으나, 입매가 호선을 그리는 것을 막을 수 가 없었다.

아리아를 태운 마차는 곧장 백작저 를 떠나 시내를 활보했다. 아침부터 휘황찬란한 마차를 마주하게 된 사람 들은 잠시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 으나, 이내 몇 번이고 이런 일이 있었 다는 것을 깨닫고 황태자가 단단히 사랑에 빠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 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정말 아침을 같이 드시고 싶어서 오 셨나요?”

“그럼요.”

궁금한 것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아 침을 같이 먹고자 하는 것도 사실이 었기에 아스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 다.

“ 정말요?”

“예. 한동안 못 뵈어서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죠. 그래서 이렇게 아침 일찍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거짓은 아니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아리아가 떠오르 는 통에 몇 번이나 공간을 이동할 뻔 했으니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 지, 아리아의 얼굴에서 의심이 사라지 고 화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라서 순간적으 로 아스가 말을 잃을 정도였다. 실제 로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방문하기는 했지만, 오길 잘했다며 아스 역시 부 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 뜬금없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영애께 갑자기 친부가 나타나 영애를 데려가고 싶다 한다면, 어떠실 것 같 습니까?”

아스의 목소리가 마차의 벽을 넘어 마부석으로 흘러들어 갔다. 일부러 벽 이 얇은 마차를 고른 덕분이었다.

이에 후작이 마른침을 삼키며 아리 아의 대답을 기다렸고, 아리아가 고개 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정말 말씀하신 대로 뜬금없이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영애께서 성인이 되실 날이 머지않 아 그런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 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친부가 나타나 사라지시면 어쩌지. 내가 싫다고 하며 도망치시면 어쩌지. 국경이라도 막아 야 하나.”

마치 연기라도 하듯 손을 턱에 괴고 퍽 고민하는 얼굴로 대답하는 탓에 아리아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영애께서 도망가는 꿈을 꾼 적도 많으니까요.”

스스로 이룬 것이 많은 아리아는 굳 이 황태자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당 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차라리 그녀에게 능력이 없어 자신 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라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고, 아스 역시 바라 지 않는 일이었기에 포기한 지 오래 였다.

“글쎄요. 지금 와서 나타난다면 그 진심을 의심하게 되겠네요.”

“무슨 뜻이지요?”

“죽도록 힘들었던 시기에는 그림자 조차 비추지 않더니, 이렇게 홀로 살 아갈 만큼 자립을 하니 나타났다는 뜻이 아닌가요? 달갑게 보일 리가 없 지요.”

그리고 과거에는 스물 중반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나타나지 않던 친부가 갑자기 지금 나타난다니. 정말 본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무언가 이유가 있 어 나타나지 못했고, 영애께 아무것도 없어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 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것치고는 꽤나 설명이 구체적으로 변해,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을 하던 아리아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이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글쎄 요. 거절하지 않을까요?”

“……어째서요?”

“아스 님께서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먼저 말 해 놓고는 장난이라도 제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라는 듯한 떨리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긍정을 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앞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갈 이는 그간 소식도 연락도 없던 친부 가 아닌 아스였다. 그리고 늘 자신의 곁에서 위로를 해 준 이 또한 아스였 다. 이제 와서 내가 네 친부이니 거둬 주겠다고 해 보았자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 그 대답에 마차가 한차례 덜컹댔다. 그리 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후작의 마 음을 대변하는 것임이 분명한 흔들림 이었다.

악녀는 모래시계를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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